내 자리는
김순희
조금은 떨어진 곳에
내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도 부딪치는 갯바위보다
창 너머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물속에서 헤엄치기보다
흐르는 물 따라
마음을 흘려보낼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산 정상에 서기보다
조금은 멀리서
산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기쁨이나 슬픔
좋아하는 것들에
풍덩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조금은 거리를 둔 곳이면 좋겠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꼭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모든 것들에
조금은 떨어져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내 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김순희 시집 『간이역을 갖고 사는 여자』사색의 정원, 2021, 124~125페이지)
[작가소개]
김순희 경북 안동 출생. 부산 경남여고 졸업, 동아대 국문과 수료. 『문예시대』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문인협회 회원, 부산불교문인협회 회원, 밀양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민족서예협회 초대작가, 한국 전통서예협회 초대작가, 한국 서예미술진흥협회 초대작가. 시집『차 익는 소리 들리는가』(우리글출판사 2011), 『차 한 잔 우려두고 』(도서출판 해암,2012)
[시향]
말은 마음의 초상(肖像)이란 말이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의 말에 가만히 귀기울여보면 모든 삶의 상황마다 “조금은 떨어진 곳에/ 내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내 자리는, “산 정상에 서기보다/ 조금은 멀리서/ 산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마음에 간이역 하나 들여 놓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내 자리였으면 좋겠“다고도 한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처럼, 무슨 일이든 어느 곳에서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살기를 원한다 생의 어느 변곡점에 서면 이렇듯 모든 일상을 관조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또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시를 읽는 동안도 평온하다
글 : 박정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