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가 오늘 개통 40주년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이란 나라사랑 정신이 큰 성화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후 지도자들은 사심에 가득찬 통치형태를 계속하고 있다. 진정 나라를 위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 40년 역사를 다시 되돌아 봐야할 것 같다. 국가 지도자가 전리품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으야...
경향신문 서의동 기자는 7월 7일 "금융계에 대한 권력 실세들의 인사전횡이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금융회사의 경우 수장은 물론 임원 인사권까지 일일이 간섭한 것으로 전해졌다. KB금융지주 회장 선출과정에서는 청와대 고위인사까지 동원돼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라고 했다.
사회 곳곳에 사심이 작동하는 것 같다. 조선일보 사설은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과연 시대 변혁을 몰고 왔던 그때의도전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가. 인천공항 건설을 내세울 수 있을 뿐, 세종시 수정안의 좌절, 대운하 계획 포기, 4대강 사업 논란, 기업도시-혁신도시 지지부진 등 최근 10년 사이 주요 국책사업은 잇달아 실패하거나 국민적 호응을 받지 못했다."라고 한다.
40년 전의 국민은 다른 것 같았다. 그 때 국민들은 '조국근대화'에 적극 동참했다. 동 사설은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최종 개통됐다. 꼭 40년 전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대구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경부고속도로는 조국 근대화의 상징적 도로이며 남북통일과 직결되는 도로'라며 '민족적인 대(大)예술 작품' 이라고 평가했다."라고 했다.
또한 동 사설은 "경부고속도로가 2년 5개월이라는 단기간 내 연인원 900만원을 동원해 완성됐다. 한해 국가 예산의 4분지 1을 몰아 투입했고, 428㎞ 구간 대부분의 공사를 국내 건설회사와 우리 군의 토목 기술만으로 이루어냈다."라고 했다.
한국일보 이영창 기자는 "국도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최소 15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것이, 고속도로 건설 이후 5시간 30분으로 단축됐다. 그제서야 서울과 부산이 1일 생활권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동 기자는 "윤영호(85) 전 국가기간고속도로 계획조사단장이 계획, 설계 시공 등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 전반의 의사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한 증인이다. 1967년 육군본부 소속 대령(공병 병과)이던 그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 파견을 나가, 전국을 누비며 고속도로 계획 노선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도맡았다."라고 했다.
또한 동 기사는 "'청와대 집무실 벽에는 온통 지도자가 가득했고, 박 전 대통령은 장관과 시, 도 지사를 불러 자신이 직접 지도 앞에서 노선을 설명하기도 했다.'박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의 전 과정에 걸쳐 실무 작업에까지 직접 참여했고 세부 노선 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대통령이 보상비를 책정하는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내놓고 착공 후에도 공사 현장을 사찰나와 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해결해 줬다'고 회상했다"라고 했다.
또한 동 기사는 "윤씨는 '박 전 대통령이 서독에서 빌려온 3,00만달러에, 서독의 중계로 일본에서 받은 차관, 미국에서 받은 현물, 월남전 파병 대가로 받은 달러 등을 합해 겨우 공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모두 동원된 셈인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착공시 공사비로 책정된 330억원(실제 공사비는 429억원)은 67년 국가예산(1,643억원)의 2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한마디로 국운이 걸린 토목 사업이었던 것이다."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그렇게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심 없는 나라사랑 때문이었을 것 같다. 과연 그가 사심에 가득차 있었다면 당시 야당들이 가만히 있었을 이유가 없다. 그가 사적으로 돈을 챙겼다면 그 사업은 부실공사로 바닥이 났을 것 같다. 지금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사심을 뒤로하고, 박 전 대통령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