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다녀온 지 꼭 1년이 지나 다시 집을 나섰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은 마음을 들뜨고 설레게 합니다.
특히나 이번엔 작년 쉼터에서 신부님이랑 다른 분들의 나눔을 보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영국을 경유하여 체코의 프라하로 가는 길, 기내에서 내려다 본 런던의 모습은 숲이 푸르릅니다.
저기 어디쯤 버킹검 궁전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곧 착륙한다니 카메라는 집어 넣습니다.
영국에서 환승해서 체코의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미 어둠이 내렸습니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하루를 비행기 안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원래 15명이 떠나기로 했는데 딱 12명입니다.
한국 바오로 수도회 지도 신부님이 도착하시려면 아직 몇시간 남았습니다.
그 사이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korea House라는 한국 식당,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배부터 채웁니다.
스승 없이 12 사도(?)만 저녁을 먹으려니 조금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저녁을 굶을 수는 없기에 우리끼리 ....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곳이라는데, 그건 어쨌거나 배가 고파서였는지
된장찌게가 아주 맛있게 느껴졌지요.
아, 저 사진에서 혹시 가브리엘라 어디 있나 찾으시는 분은 없겠지요? ^ ^
9세기 말부터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자리 잡은 프라하, '북쪽의 로마'또는 '유럽의 음악 학원'이라고도 불린다는
이 고색창연한 도시에서 첫 아침을 맞습니다.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고 길을 건넙니다.
15세기에 지어졌다는 고딕 양식의 Powder Tower는 고대 왕들의 대관식이 있을 때 프라하 성으로 향하기 위한
입구였다는데요,
오랜 역사가 담겨 있는 그 탑 아래로 대관식을 위한 행렬은 아니지만 순례의 첫 통관식(?)을 한다는 각오로
지나가 봅니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죠반니'를 기념하기 위해 이야기에 나오는 유령(석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처음엔 '오페라 유령'이라는 줄 알고 이곳의 오페라 유령은 저런가 싶었지요. 이 무식함을 어찌할지.....
구시가지 광장인 Old Town Square로 가는 길,
고흐의 해바라기를 연상케하는 그림 아래로 모자 쓴 여인들이 즐비합니다.
갤러리 안이 궁금하지만 기웃거리지 말고 곧장 가야지요.
프라하의 심장부에 위치한 이 광장은 14세기 프라하 성 주변으로 도시가 형성되면서 지어진 대형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시청 건물의 천문 시계탑과 저기 보이는 니콜라스 성당,
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틴성당(성모 마리아 성당)과 종교 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으로 유명합니다.
시계탑 아래 모여 있는 아이들과 오른쪽으로는 틴 성당입니다.
틴성당의 성모자상을 가까이 카메라에 담으며 이번 순례의 여정에 어머니께서 함께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아침 9시 부터 12시간 매시 정각에 작은 창이 열리고 12제자 인형이 하나씩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천문 시계탑
이 시계탑은 15세기 프라하 대학의 수학 교수 하스주가 만들었는데 시계가 너무 아름다워
유럽의 각국에서 똑같은 시계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프라하 시청에서는 시계탑을 독점하고자 교수의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이 있지요.
욕심이 사람의 눈을 멀게한다는 말이 혹시 여기에서 유래된 건 아닐까?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이 시계가 오랫동안 멈춘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후 사람들은 시계가 멈추는 것을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매 시 정각 시계탑 위의 나팔수가 나팔을 붑니다.
10시, 딴짓하느라 열두 사도가 창으로 지나가는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돌아섭니다.
일행이 있으니 다음 한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요....
루터 이전에 이미 가톨릭의 부패에 반기를 들었던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동상입니다.
결국 화형에 처해졌다고 해요.
이 동상은 그의 죽음 500년을 기념해서 1915년에 세워졌습니다.
광장 한켠에 보이는 니콜라스 성당, 빙 둘러선 석상들이 멀리서 봐도 참 인상적입니다.
신교 신자들이 보면 우상들이라고 하려나...
가이드 율리아노 형제님의 말에 의하면 본인은 굳이 현지의 한국 가이드들은 쓰지 않는다고.
대부분 천주교인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영어를 하는 현지인이 훨씬 좋다고 해서 영어로 설명들으랴 한국어로 또 들으랴
이중으로 시간이 걸렸지요. 뭐 이쪽 저쪽 미흡한 부분은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지만
시간이 황금같은 여행에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광장을 벗어나 걷다가 마주친 건물. 원래는 예수회에서 지은 학교였다는데,
지금은 도서관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담쟁이 넝쿨이 벽의 반도 더 뒤덮고 있는 도서관, 저 안에 책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세상에 읽어야 할 책도, 보야야 할 곳도 참 많구나 싶어요.
물론 먹고 싶은 것도 많구요^^
17세기에 예수회에서 만들었다는 우량계입니다. 현지 가이드 가브리엘라(저랑 이름이 같았지요)가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설명을 했는데,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그게 그리 중요한 건가 싶어요.
아니면 제가 이해를 잘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돌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카를교(Charles Bridge)입니다.
14세기 챨스 4세에 의해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그 입구에 있는 탑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 보헤미아 수호 성인인 성 비투스, 양 옆에 체코 건국의 아버지 챨스 4세와
바츨라프 4세(Wenceslas IV.)가 새겨져 있습니다.
30개의 석상이 세워진 카를 다리, 블타바강, 우리에겐 몰다우강이라고 알려진 강이 다리 아래를 흘러갑니다.
다리 입구에서 바라보니 프라하성이 보이고 그 안에 주교좌 성당인 비투스 성당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다리 위의 십자가....
신부님이 준비해 오셔서 나눠주신 성경구절이 적힌 말씀 사탕이 생각 났습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고린 4,16)"
첫날 뽑은 말씀을 떠올리며 내 안의 사람이 새로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비통한 슬픔에 잠긴 성모님의 얼굴과 그 아래 사람들의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 대비를 이룹니다.
우리가 기쁨 안에 살기를 원하시는 어머니,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푸른 하늘을 따라 강물도 구름도 흘러갑니다.
사람도 삶도 모든 것이 저리 흘러가고,
우리 생의 다리가 되어 삶의 구비치는 고비마다 그 강물을 건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음악의 향연, 콘서트는 못 가더라도 조용히 서서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도 여의치 않습니다. 프라하 성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생의 다리를 건너는 동안 음악 같은 위로를 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볼 시간도 잠시뿐인 것이 안타깝습니다.
작년 카페지기 신부님의 소개로 알게 된 네포묵 성인.
왕비의 고해 사제였던 성인은 아내의 비밀을 캐기 위해 발설을 요구하던 왕의 요구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아
혀가 잘리고 온 몸이 꽁꽁 묶여서 강에 던져져 죽음을 당했다고 하지요.
이 다리에 세워진 모든 석상 중 가장 먼저 네포묵 성인의 상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다리를 건너 조금 걸으니 마을의 집들 사이로 블타바강의 지류인 듯한 작은 내가 흘러갑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여행객인지 마을 사람들인지 모여 앉아 있습니다.
이제 곧 저 나무의 잎새들 물들어가고 가을도 깊어지겠지요?
그런데, 반나절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하고 있으니 나머지 이야기들은 어떻게 다 할지 고민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저도 나무 아래 앉아 쉬어야 겠습니다. 함께 앉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