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조사에 따르면 왕곡마을은 총 51가구가 있으며, 주민 150명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산다. 전체 주민 중 함씨가 약 80%, 최씨가 약 20%를 차지하고, 단 4가구만 다른 성씨다.
마을 입구로 들어가 실개천을 기준으로 금성교 상부(금성리)는 함씨가 주로 살고, 하부에는 최씨가 자리 잡았다. 땅이 부족해 서쪽에도 주거지가 형성돼 있다. 왕골마을은 실개천 옆에 있는 하나의 안길을 주축으로 마을이 나뉘어져 있어 답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왕곡마을은 풍수지리상 배를 밀어 넣은 행주형(行舟形) 지형으로 알려진다. 이런 지형은 한국 전통마을 중에서 매우 중시되는 길지 중의 길지다. 마을이 물에 떠 있는 배 형국이라 구멍을 뚫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전설 때문에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풍수지리적 해석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물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최종복 사무국장에게 질문하자 낙안읍성마을과 동일한 대답을 한다. 왕곡마을에서 굳이 우물을 파지 않아도 식수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수질이 풍부한 3곳의 천연 우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이들 우물을 사용하지 않지만 최창손 가옥 앞 연못에는 마을사람들이 사용하던 우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풍수지리적으로 행주형 마을인 왕곡마을에서는 우물을 파지 않고 천연우물을 이용했다. 최창손 가옥 앞 연못에 예전에 사용하던 우물이 남아있다. 이종호 제공
●‘북풍한설’ 피하려 밀착한 건물… 북방식 한옥인 ‘겹집’
14세기경부터 취락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나 현재 보이는 건물들은 19세기 전후에 건설된 것이다. 왕곡마을의 기와집 가옥은 대부분 안방, 사랑방, 마루, 부엌이 한 건물 내에 수용된 구조다. 또 부엌에 외양간이 붙어 있는 ‘ㄱ'자형으로 이는 조선시대 함경도 지방(관북지방)의 전형적인 겹집 구조다.
북방식 한옥은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한옥이다. 외풍을 피하면서 부엌의 열을 최대한 이용해 집안에서 의식주가 함께 해결되도록 만들었다. 소를 기르는 외양간도 부엌과 이웃해 한기를 피하도록 했다.
겹집은 여러 채가 겹으로 되거나 잇달린 집으로, 한 개의 종마루 아래에 두 줄로 나란히 방을 만든 집이다. 이런 집은 같은 부피의 홑집에 비해 외피 면적이 작아 열 손실이 적으므로 추운지역에 적격이다. 실제로 사랑방의 경우 난방을 위해 별도의 아궁이를 만들었고, 불씨를 보호하려고 별도의 공간도 만들었다. 이는 함경도를 비롯한 관북지방에서 볼 수 있는 북방식 전통한옥 구조인데, 왕곡마을에서 살펴볼 수 있다,
북방식은 가능한 온기를 빼앗기지 않도록 추위를 피해 건물끼리 밀착하다보니 집 모양이 밀집형의 ‘田’자가 됐다. 반면 남방식은 바람이 통하고 방과 방이 떨어지도록 대청을 들인 ‘ㅡ’자형이 기본이다. 그러므로 북방식 전통한옥은 마루가 발달한 남방식과 구별된다.
●여름에는 마당으로 냉방… 동선 짧고, 방어 쉬운 장점 선호
북방식인 겹집의 문제는 여름철에 나타난다. 겹집은 두 공간(방)이 앞뒤로 겹쳐 있으므로 맞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홑집에 비해 통풍이 잘 안 된다. 더욱이 왕곡마을은 부엌 앞에 마구가 있어 부엌에도 맞바람이 들지 않는다.
왕곡마을에서는 이런 문제를 마당으로 해결했다. 여름철 한낮에는 뒷마당에 그늘이 지므로 주위보다 기온이 낮다. 반면 개방적인 앞마당은 내리쬐는 태양복사열로 인해 기온이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방문을 열어두면 뒷마당의 차가운 공기가 방을 통해 앞마당으로 이동하게 되므로 방 안을 시원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마을에서 겹집이 지속된 이유가 기후뿐만 아니다. 근래 알려진 연구에 의하면 왕곡마을의 겨울철 평균 기온은 서울 기온보다 높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겹집보다 홑집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겹집을 만든 이유가 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겹집은 모든 주거공간을 한 채에 통합해 집터를 적게 차지하고 동선(動線)도 짧아진다. 경사가 급한 산지에는 집터를 넓게 조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눈이 많이 오면 채 사이를 이동하는 것도 만만찮으므로 겹집이 더 유리하다.
또 겹집은 정지(부엌)와 사랑방을 통해서만 채 안팎을 드나들 수 있고, 본채와 그 뒷마당을 쉽게 폐쇄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주거공간의 방어와 관리가 비교적 수월하다. 외진 산간마을의 경우 외침 방어는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겹집이 유용했다.
결국 이런 장점이 부각돼 왕곡마을에 겹집이 대를 이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우리고향산책』, 김선규, 생각의나무, 2002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창비, 2003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1)』, 김봉렬, 돌베개, 2006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한필원, 북로드, 2007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한필원, 휴머니스트, 2011
『한옥마을』, 신광철, 한문화사, 2011
『낙안읍성』, 송갑득, 순천시, 2012
「한옥」, 최준식, 네이버캐스트, 2010.01.18
(16-4에 계속)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과학저술가 mystery123@korea.com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