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에 간다. 모임이 있을 것 같다는데 감감무소식이라
모임이 있는지 없는지 전화로 다시 확인해보고 소로정에 간다.
그간의 발길과는 좀 다른 마음임에 살짝 웃으면서 간다.
차.맛.어.때.
맛이 어떠냐는 직접적인 물음을 앞세운 모임이었건만
그간의 나는 맛을 따라 맛을 따러 한걸음 한걸음 깊어갔던 발자국이 아니었고
정작은 차맛은 온데 간데 없었고
알거나 모르거나 물어주고 들어주는 미소와 대화
서로를 바라보아주며 다듬는 시선속에 나누어지는 가슴과 가슴
차한잔 차한잔에 다북 다북 차올라 포만해지는 정서의 충만함으로
맛을 알아도 좋았고 맛을 몰라도 좋았으니
차를 안다하여 부럽지않았고 차를 모른다고 부끄럽지않았다. 그저
어떠한 다기와 차라도 한모금 한모금 널로 더불어 함께 할 수 있음이 감사하여
점점 사람들이 지펴내는 인연의 향에 물들면서 향을 따라 향을 따러 걸음걸음이 깊어졌었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 이천다회에서 감사하게도 다기와 다반 차의 구색을 갖추었기에 그 연말
사람과 사람, 그 사이의 여백을 자연스러운 향으로 지펴주며
대화와 침묵, 그 적절한 배합을 이끌어내어 은은한 미소의 운으로
서로의 마음과 몸을 함께 씻어주듯 어울려지는 차한잔의 풍경을
내 가까운 이들에게 전해주고자하였더니
덜그럭 덜그럭 스스로가 서툴러 팽주하는 자세가 어설픈 내 모양이 보이고
보리차나 대추차도 좋더라만 다도라는 건 어떤 것이관데 그리 요란스레구느냐?는 한마디에
다도라하여 너무 어렵거나 특별하게 생각지마시고 편하게 가까이 즐기시면 되는데
저도 다도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쉬이즐겨 마시고 마시다보니 술자리와는 또다른 멋으로 어울림을 사릅지.
이건 무슨 차고 어떻게 좋은데? 아아, 뭐~ 저도 잘 모르고요 일단 한번 자주 함께 마셔보자는 것입지.
그토록 우물쭈물 답변이 궁색하고 차를 우리고 따라주는 내 자세의 어설픔은
그님들 처음 호기심에 맞는 이미지로 차의 매력을 전해주기보다는
별거없고 번거롭기만 하구만 하는 인상을 지펴주며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고 말았다.
에구에구, 유인력을 사르며 찻자리를 피워내지 못하고 이내 파하고 말았었다.
그간 몇년을 차와 그 차인연의 사람들로 더불어 차 한 잔 가까이 함께 있었는데
제대로 차의 매력을 이끌어 소개시켜주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여?
이미 차의 맛과 향 덕에 마음이 있는 사람들 속에선 내가 굳이 차이야기를 할 필요없이
주변주변에서 한마디씩 해주므로 그 어울림에 묻혀서
차를 알아도 안다 할 바 없고 몰라도 모른다 할 바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차 이외의 이야기를 덤으로 얹어 그 자리 분위기에 한 몫 느낌 그대로 수놓으며 좋았는데
내 자신만의 차맛과 멋으로는 차의 매력을 발산하여 확산시킬 수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차 인연 속에 묻혀 차가 좋다며 소리를 내며 지낸만큼이나 이제는 더이상
"차를 안다하여 부럽지않았고 차를 모른다고 부끄럽지않았다."고만은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웃는다.
그러던 차에 이번 이천 번개모임에서 보이차에 대한 감별을 안내해주겠다는 귓뜸에
보름을 갓지난 달빛을 벗삼아 그 저녁 소로시 소로정에 들었더니
시간은 8시30분으로 달음질치고 있었고, 이미 차탁에 다우들이 자리하여 각각에 찻잔 두개씩 놓여진 채
하나는 엎어져있고 하나는 잦혀져서 숙우에 담겨진 숙병보이차를 따르며 맛을 나누고 있었다.
샤프하고도 정갈했던 이미지의 몽상가님이 덥수룩한 머리에 텁텁한 드레서로 파격의 편안함을 보여주시고
사진 속과 후기 속에서만 뵈었던 껌정산나비님은 그 화면 그대로 활달하고도 시원시원한 웃음의 맵씨를 살라주시네.
연잎차와 연자 등 연꽃 정원으로 대변되는 연해주님은 재준이를 경계하며 한말씀 한말씀 차분히 차연을 보태주시고
그자리 막내둥이 재준이는 엄마는 괜히그래? 저 여기 삼촌이모들이랑 잘 놀고있다니깐. 으쓱으쓱 낯가림없이 홀로도 잘노네.
지난 날 라틴댄서의 몸매가 몹씨도 부러웠던 김승재님은 어디가고 한층 편안하고푸근한 맵씨(?) 여전히 고운 머릿결은 부러워라
그 옆에 남들 차맛과 자신의 차맛이 반대인 것 같아 진실로 차맛이란 무엇인고? 열심히 기록하며 공부하던 인어공주님
왜 겨울버들이요? 잎지고 삯풍에 춥고시립지않소? 하였더니 성과 이름에 버들과 겨울이 들어가 이리 지었노라며
시커먼 눈썹에 단단한 몸매가 멋진 수줍은듯 그 분위기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고요하고도 다북하였네.
오늘 아침 가입하고 처음 왔다며 아하님 따라서 지난번의 번개에 이어 두번째라셨던 포도님 좋은 시간이셨는지요?
어느 만화의 케릭터 이름 중에 티거가 있었는데 이미 티거가 있기에 8을 부쳐서 티거8님
친구를 통해 차맛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그 친구보다 더 차의 매력에 담뿍 젖여들었다며 웃음을 나누었네
피곤한 기색임에도 팽주 아란도님의 옆에서 물나르며 분주했던 설유화님은 얘기나눌 새 없었고요
그 밖에 너무 자주 보니 새삼 소개할 바가 적어진 아란도 이스크라 소로 대로 차유 아하 폴라리스 모리화 흐름이어라
그렇게 우리는 저녁 8시로부터 자정넘어 1시이후까지 아란도님과 소로님의 안내를 받으며
보이 숙병과 청병의 색향미를 느껴보았습니다.
먼저 숙병 세 종과 묵도리님의 3분숙병을 맛보며
아란도님의 안내에 따라 그 특성과 차등적인 입안의 느낌을 음미하였고,
그리고 엎어져있던 찻잔을 잦혀선 다시
아란도님이 보관하고 있었던
예전 공동구매 때 들어온 3년청병과 원광님이 맛보아보라며 주셨다는 7년대엽청병.
묵도리님의 협찬과 배려로 98청병, 7572대익차, 도갑차
소로님이 내주신 73청병
다시 정리하면
숙병 :전차,병차,반생반숙,3분숙병
청병:3년 청병,7년 대엽청병,98청병(10년),7572대익청병,도갑차,73청병
첫재잔으로 숙병시음,두번째 잔으로 청병시음
이상 10종의 보이차를 음미 감별해볼 수 있었다.
그 세세한 특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청병과 숙병의 전반적인 특성은 정리가 되는듯
입안에 도는 세세한 맛에서는 아란도님과 소로님의 이끌림 대로 수긍하며 수렴이 되는듯 하였으나
식도를 타고 되넘어오며 몸이 느끼는 감각과 후두를 감싸고 되새김되는 향과 촉에 대해서는
너무도 다양한 차를 한자리에서 거푸 맛보고 있어서 어떤 차의 진미인지는 알 수 없었기에
다음엔 맛보는 차종을 두셋으로 한정하여 충분히 그 사이에 텀을 주고
각 차가 주는 진미를 몸으로도 감별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자하며 함북 웃음을 덤으로 얹어서는
10종의 차가 목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입안에 감도는 느낌의 감별로만도 감지덕지한 경험이었다.
후원해주신 묵도리님 연해주님 소로님
개인적으로 받은 선물을 풀어 함께 나누어주는 아란도. 아울러 그 선물을 보내주신 님들.
그 관심과 베풀어주신 배려에 감사.^^
보이차 감별과 그 진미의 여행에 있어서
처음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새삼 생각해본다.
차의 맛과 향이라는 것은 섬세하고도 예민하여 그 마시는 심리와 심상에 따라 천양지차였다.
그냥 무덤덤하다가도 안내자의 말에 따라 그런가? 하며 느끼고자하면 느껴지고 있었으니
제 무지와 귀가 얇아서일까요? 하며 말을 건네며 함께 웃어도 보았는데
정말 안내자가 표현해주는 맛과 향이 내 귓가에 울려지면 그것이 내 심상을 지피고
차맛은 내 심상에 따라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만큼 안내자의 미감이 객관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백지라서 표현해주는 그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인지...
안내자의 맛 표현대로 내 입안의 맛이 마치 복사되듯 심상대로 느껴진다는 건
고집이거나 소신이거나 꽤 주관이 강한 나에겐 신기한 경험이기도 하였다.
그러고보면 차맛이란 것이
객관적인 지표로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함이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개괄적 테두리 내에서
저마다의 심상과 기호 속에 길들여지고 적응되어지며 서로가 서로의 맛을 이끌어주고 길들여가는
주관 주관의 설득력과 그에 호응함으로 한자리 함께 동화되는 심심상인이 아니었을까?
꼭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하며 익숙해지는 경험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호기심이 호감이되고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였을 때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듯
그대에 대한 모든 것이 좋습니다. 감별이 일어나지않고 오로지 그대 거기 존재함만으로 감사하고 놀랍습니다.
그러다 함께 살다보면 하나씩 하나씩 거슬림이 나타나고 그로 문제도 일어나고 우여곡절 굴곡이 지는데.
그 세월을 이겨내면 인생의 경륜이 쌓이고 어느 새 미운정은 원숙미가 되어
기대고 기다리며 보듬어 또 하나의 가슴을 열고 부족함이 그대로 완곡하고도 완숙한 아름다움이 되는 너는 내 세상.
처음 차는 내게 호기심과 호감 속에 남들이 뭐라하든 한모금 맛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하고 황홀했습니다.
남들이 좋다 나쁘다 선별해 들려줄지라도 저에겐 다 감미로왔고 쉬이 맛볼 수 없는 아껴지는 고마운 존재였지요.
목이 붓는다 걸린다 혀가 붓는다 에리다 그런 느낌에 대해선 전혀 수긍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맛을 탓할 바 없이 오직 감사함만으로 맛볼 수 있는 제 체질이 그렇게 복될 수 없노라 자랑자랑이었는데
어느 순간 몸이 피곤할 적에 그 마시던 차들이 목구멍에서 걸리고 목이 잠기고 혀가 까끄라와지고...
차에 대한 好惡가 일어나고 그 차에 대하여 분별(감별)이 생기더라지요.
그러면서 더 깊은 맛에 찬사하게 되고 몸을 편안하고도 개운하게 하는 차에 감탄하게 되며
기대와 정성이 보이고 그 구함과 동경에 따른 기대와 염이 싹트기 시작하더랍니다. 절로 자연스럽게...
그와 같이 감별은 깊어져도 모든 차를 감사히 몸에 받아들일 수 있기를
차와 제 몸에 일어나는 느낌을 경주하며 그 느낌의 시작과 끝을 따라 몸을 바라보려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차는
그 어떤 음료보다도 그 마시는 이의 심상에 예민하고도 민감하여 그 마음과 섬세하게 닿아있지않은가?
그 맛과 향을 따라 몸의 느낌을 쫓다보면 그것이 바로 마음을 관하는 명상과 다름아니라 禪茶一味라 하지않을까?
시간은 두시를 넘어가고 있는데 다들 녹초가 되었습니다.
한 자세에서 여러 차를 음미하며 공부하노라니 얼굴은 달아지고 몸은 배배꼬아집니다.
이내 다탁은 주탁이 되어 복분자 이슬 매실주가 나오고 귤 홍합 김치찌개 등이 펼쳐집니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하는 김승재님 인어공주님 설유화님
일찍자고 일찍일어나야하는 어린이 재준이
10시경 북한산등고 약속이 있는 대로님 들께선 방과 위층에 등을 붙이고 있으신데
밖 대청 다실에서 도란도란 맛이 어떻고 멋이 어떻고 떠들떠들함에
쉬이 눈을 붙이지 못하고 나왔다 들어갔다 전전반측입니다.
술을 한잔도 안하시는(못하시는) 소로님은 본디 술과는 상관없이 분위기에 동화되시며
한 분위기의 바탕을 펼쳐주시는 든든한 지킴이시옵고
술을 안하시는(못하시는) 연해주님도 복분자의 맛에 감탄하시와 한 잔을 깔끔이 비우시옵고
복분자, 너 보려고 내 이리 왔구나! 차보다 더 반갑다는 듯
환호로 넙죽넙죽 받아넘기시며 입이 귀에 걸리신 몽상가님이시옵고
술을 거절하려다 권함에 차마 거절못하고 앞에 놓인 물잔그라스에 받아넘기셔야했던 껌정산나비님도
아란도 산울림 몽상가 이 쓰리쿠션 열띤 분위기 휘저음에 제동을 기꺼웁게 걸어주시옵고
역시나 술을 한잔도 안하시는(못하시는) 차유님도
몽상가님의 주담에 잡혀선 다탁에 자리를 옮기지도 못하고 차분차분 조곤조곤 마주 바라보아주시니
서경지킴이 차공부 그 마음을 내어 제안한 입장에서 다들 의미있고 즐거워하니 더욱 뿌듯한 폴라리스님
더욱 황홀히 모리화님 옆에서 복분자를 즐기시었고
포도님에게 소개한 입장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에 미소가 더 짙어졌던 아하님은 술 한 잔 받지않아도 좋았고
오랜만에 조촐한 주탁으로 마주앉은 낯익은 님들과의 편안함에 모리화님 얼굴 붉게 달아올랐고
내가 복분자 마시면 다른 사람들 마실 게 없다며 이슬 한 병으로 복분자의 충동을 참아내셨던 흐름이어라님
초반에 감기 몸살 기운으로 핼쑥했던 이스크라님은 다탁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맴맴돌면서 꿈벅꿈벅
몸도 피곤하겠다 술을 안하려다 복분자라서 석잔을 즐겁게 받고는 더이상은 딱 절주하시는 티거8님
있는듯 없는듯 살며시 주면 주는대로 물으면 묻는대로 소복히 받으며 한말씀 얹어주시는 겨울버들님
몽상가님과 아란도님 그 사이에 산울림과 껌정산나비님의 기염을 어떻게 받아내었을까 궁금해지는 포도님도
복분자를 부드럽게 몇 잔 입안에 넘기시는 게 보여지고
뒤척뒤척 내일 약속에 눈을 붙이려다 그여 붙이지못하야 다시 합석하신 대로님도 몇 잔 받아드시옵고
우리는 흐벅지게 '맛과 멋'을 화제로 꽃피우며 새벽을 꼬박 새우며 서로를 달구며 열어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