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을 강조하는 히딩크 감독의 스타일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가 박지성(21)이다. 박지성은 도무지 지칠 줄 모른다. 그래서 ‘머슴축구’를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스타팅 멤버로 출전했음에도 후반 45분이 가까워지도록 처음 그라운드에 들어섰을 때처럼 펄펄 날아 “쟤 약 먹고 뛰는 거 아냐”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박지성은 지난 2000년 4월 동대문축구장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 처음 A매치 경험을 했다. 그때가 열아홉 살이었다. 지난해 1월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 때 수비형 미드필더로 상대 공격수를 철저히 막아 히딩크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후 5월에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한국이 2승을 거둔 경기에 모두 어시스트를 기록해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뛴다는 소리도 들었다.
박지성은 175cm, 70kg의 비교적 작은 체구다. 사실 평균 180cm에 80kg이 넘는 폴란드와 포르투갈 선수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 갖고 있는 근성을 높이 산다.
박지성은 어릴 때 정육점을 하는 아버지가 힘들게 운동한다며 자신에게 쇠고기의 좋은 부위를 많이 먹여 체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 박성종씨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뒷바라지를 충분히 못해준 게 한이다.
명지대를 휴학하고 일본 프로축구 교토 퍼풀상가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은 자신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한 허정무 감독을 가장 존경한다.
허정무씨는 당시 무명이던 박지성을 발탁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자 “글쎄, 1년만 지켜보면 제가 왜 지성이를 국가대표에 뽑았는지 알 겁니다”고 일축했다. 이제 박지성은 월드컵대표팀의 오른쪽 날개로 폴란드 격파의 선봉에 서게 됐다.
꽃미남 이민성, 누나들 덕택에 축구 시작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일본과의 경기. 1대 1 상황에서 후반 41분. 볼을 치고 나가는 순간 일본의 골문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는 약 25m. 아무도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골문이 한층 넓게 보였다. 마음먹고 왼발로 강슛을 날렸다. 발등에 착 달라붙는 느낌. 골인임을 직감했다. 볼은 미사일처럼 날아가 그라운드에 한 번 튄 뒤 그대로 일본 골네트에 빨려 들어갔다. 이 한 골로 일본 열도는 침묵했고, 한반도는 열광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그때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월드컵축구대표팀의 이민성. 그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짜릿해진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날의 역전 결승골은 잊지 못할 것이다.
182cm, 75㎏의 체격. 단정한 고수머리에 탤런트 뺨치는 준수한 용모. 겉모습만으로는 도무지 축구선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가 거친 승부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누나들 때문이다. 딸부잣집(1남3녀) 막내로 태어난 이민성은 어려서부터 귀염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누나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성격이 너무 여려 샌님 같았다. 아버지(이지형씨)는 그런 그에게 운동을 하면 좀 남자다워질까 해서 축구를 시켰다. 시흥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이민성은 2002 한·일 월드컵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지금도 ‘부상’ 때문에 시련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이번 시련도 충분히 극복해 나갈 것이다.
윤정환은 정말 체력이 약할까
꾀돌이 윤정환(29)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히딩크 감독이 체력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항상 ‘다 좋은데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고 수비 가담 비율이 적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정환은 체력이 약하지 않다. 20m 거리를 왕복하는 셔틀런 테스트에서도 유럽 선수의 평균 수치인 120회를 훨씬 넘어 130회에 이른다.
윤정환의 아내 이효영씨도 남편 윤정환이 체력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혹시 자신이 뒷바라지를 잘 못해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아닌가 해서다.
그래서 윤정환 선수가 집에 올 때마다 개고기 수육을 준비해 먹이거나, 보약을 장기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
윤정환은 자신이 수비 가담이 적었던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월드컵대표팀에서는 수비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렇다고 공격형 미드필더가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내려갈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윤정환은 지난 96년 러시아의 비쇼베츠 감독이 이끄는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주장을 맡았다. 그때부터 몸싸움을 싫어하고 수비에도 소극적이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날카로운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고, 기회가 생기면 자신이 직접 중거리 슈팅을 성공시키는 윤정환의 고급 축구를 이해하는 감독 밑에서는 ‘최고 선수’라는 소리를 들으며 총애를 받았다.
프로축구 부천 SK 팀을 맡았던 니폼니시 감독은 “윤정환은 장점을 살려주어야 하는 선수다. 그의 단점은 다른 선수로 메워주어야 한다. 단점을 보완하라고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며 윤정환을 중심으로 한 플레이를 하도록 했다.
이제 히딩크 감독으로부터도 ‘한 방 날릴 만한 선수’로 인정받은 윤정환은 월드컵을 앞두고 ‘카리스마를 키우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팀의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는 보스 기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폭급 얼굴의 ‘아름다운 조연’ 최은성
사실 최은성(30)은 월드컵 무대에 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김병지 이운재 골키퍼가 건재한 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주전 골키퍼인 김용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최은성을 보면 험한 인상에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마치 조폭처럼 짧게 깎은 머리, 험상궂은 얼굴, 그리고 운동을 해서 보통 사람보다 휠씬 큰 체격. 사실 국내 감독이었다면 최은성의 월드컵 출전은 1%의 가능성도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오로지 실력과 팀 공헌도로 선수들을 선발했다. 특히 최은성은 성실성 면에서도 히딩크를 감동시킬 정도였다.
최은성은 그동안 후보였지만 월드컵 멤버에 끼일 때마다 ‘마당쇠’ 역할을 도맡아 했다. 공격수가 부족하면 그쪽 팀 공격수로, 수비가 모자라면 수비로도 뛰며 훈련을 도왔다.
김현태 골키퍼 코치는 “사실 국제경기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은성이도 병지나 운재 못지않은 순발력을 갖고 있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결국 최은성은 실력으로 김용대를 밀어내고 ‘골키퍼 엔트리 3명’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엔트리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비록 지금의 위치는 김병지 이운재의 불행(?)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조연’에 그치고 있지만 월드컵 무대에 선 것만 해도 행복하다. 최은성은 “병지 형이나 운재가 월드컵 무대에서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30세에 월드컵 대표로 뽑힌 것만 해도 영광이다”며 겸손해하고 있지만 남몰래 실력을 가다듬고 있다. 지금 당장 월드컵대표팀의 골문을 지키더라도 ‘역시 넘버 스리가 아니었군’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최태욱은 대표팀의 수도사
축구팬들이 최태욱(22)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준마처럼 그라운드를 질주하다 골을 넣은 뒤 수도승처럼 무릎 꿇고 감사 기도를 하는 장면이다.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팀을 상대로 한국 월드컵 출전사상 첫 골을 넣은 박창선 선수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지만 왠지 거룩해 보여 보기 좋다.
실제로 최태욱의 인생은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다. 최태욱의 신상명세를 보면 별명은 ‘주의 종’,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성경이라고 쓰여 있다.
월드컵대표가 된 후에는 이동하는 대표팀 버스에서도 기도를 한다. 최태욱의 기도에는 이 자리에 오도록 도와준 하나님께 감사하고, 앞으로 노력한 만큼 결실을 보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최태욱의 신앙심은 월드컵대표의 최성용 이천수를 기독교에 귀의하도록 했다. 훈련을 끝내고 방에 돌아오면 최태욱은 찬송가를 틀어놓고 성경책을 읽는다. 최태욱은 일상생활에서도 멋이라곤 모른다. ‘최고 미남’이라 불릴 정도로 준수한 외모지만 옷차림은 수수하다.
최태욱은 지난 2000년 부평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축구 안양 LG에 입단했다. 함께 졸업한 이천수와 함께 고려대나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었지만 이왕 축구에 인생을 걸려면 일찌감치 프로물을 먹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킥의 달인’ 현영민은 야구선수로도 제격?
히딩크 감독이 ‘영미니’로 부르는 ‘긴팔원숭이’ 현영민(23).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의 월드컵 엔트리 합류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저하게 무명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광희초등학교, 경희중학교, 경희고등학교를 비롯해 울산 현대에 입단하기까지 단 한 번도 그 또래의 대표선수를 지낸 적이 없다. 대표팀 경력도 1년이 채 안 됐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현영민의 가능성을 봤다. 그가 추구하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전형적인 멀티플레이어인 데다 체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현영민의 플레이는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수비력, 체력, 몸싸움, 슈팅력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그리고 감아차기, 깎아차기, 꺾어차기 등 차는 기술도 투수들의 변화구처럼 다양하게 구사한다. 게다가 롱 스로인 실력은 과거 70년대 황재만 선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갖고 있다.
현영민이 이같이 롱 스로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투구 속도가 시속 130km를 넘었다. 그래서 ‘프로야구를 해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현영민은 축구를 하면서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출전한 금석배 대회 8강전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경희고는 그 대회 우승후보였는데 자신이 승부차기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탈락하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 현영민은 모든 훈련을 끝내고 킥 연습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현영민의 킥은 월드컵대표팀 내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정확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날으는 삼겹살’ 이운재, 부부 금실도 최고
김병지가 튀는 골키퍼라면 ‘날아다니는 삼겹살’ 이운재(30)는 안정감 있는 골키퍼다. 이운재의 페널티킥 막는 실력은 이미 국제 축구대회에서 인정받았다.
이운재는 지난 1월 말에 개최된 북·중미 골드컵 축구대회 멕시코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2개의 페널티킥을 잇따라 막아내 한국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다.
이운재는 페널티킥을 잘 막는 요령을 “평소 상대 선수의 킥 버릇을 알아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킥을 차는 선수의 발을 보면 대개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밝힌다. 이운재는 소속팀(수원 삼성)에서도 승부차기 승률을 80% 이상 끌어올렸다.
수원 삼성은 후반 30여분이 지나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아예 무승부 작전을 편다.
이운재는 아시아에서도 정상권 골키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4월 아시안컵 준결승전 우즈베키스탄의 나사프 카르시아전과 안양 LG와의 결승전에서 잇따라 무실점 방어를 해서 소속팀 수원 삼성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만약 이운재가 주전 골키퍼가 되지 못하더라도 한국팀이 16강 이상에 올라 승부차기 상황이 되면 이운재를 기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운재는 약간 뚱뚱한 편이다. 182cm로 골키퍼로는 그리 크지 않은 키지만 체중이 85kg이나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컵대표팀에서도 ‘날으는 삼겹살’로 불리는데 이운재도 그것에 불만이 없다.
부인 김현주씨와의 금실은 월드컵대표팀 내 김병지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윤정환 등 유부남 클럽에서도 알아줄 정도다.
‘잡초 축구인생’이을룡, 시련은 그만
축구에 관한 한 자칭 잡초인생 이을룡(27)은 오는 8월이면 아기 아빠가 된다. 그러나 아빠가 되기에 앞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게 급선무다. 자신은 비록 잡초처럼 살아왔지만 2세에게는 ‘월드컵에서 좋은 플레이를 한 아빠’를 둔 자랑스런 인생을 살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월드컵 엔트리 23’에 들었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경기에 출전하는 ‘베스트 14’에 들어야 한다. 이을룡은 우선 6월4일 벌어지는 폴란드전에서는 ‘선발 베스트 11’이 아니면 교체멤버 3명 안에는 들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을룡은 흔히 말하는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와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 축구인생을 살아왔다. 강원도 황지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해 강릉중학교, 강릉상고를 거쳐 곧바로 프로에 들어온 게 아니라 아마추어 철도청에 입단했다.
사실 아마추어에서 프로팀으로 입단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그러나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제나 튀어나오는 법, 프로축구 부천 SK팀에서 그를 불렀다.
프로무대에서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어 빛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 아래서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등으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 내는 멀티플레이어로 인정받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왼발과 오른발을 모두 잘 쓰는 이을룡의 가능성을 보고 중요한 경기에 꾸준히 기용했다. 이을룡 때문에 김도근 선수가 희생되기도 했다.
“나는야 찰거머리” 수비도사 최성용
지난 4월27일 월드컵 대표선수들은 중국과의 평가전을 0대 0 무승부로 끝낸 후 전원 산삼을 먹었다. 선수들이 단체로 먹은 산삼은 30~50년 묵은 장뇌삼으로 한 뿌리의 가격이 평균 200만~300만원이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치들도 먹었고, 특별히 간택된 임원들 일부도 맛을 봤다. 그러나 최성용(27)은 삼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올해 들어 잇따라 가진 평가전에서 거의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틀러 최성용’의 월드컵대표팀에서의 위치는 애매하다. 자신의 주 포지션인 윙백에는 이을룡 송종국 등이 있고,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안정환이 차고 들어왔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려가자니 이미 김남일이 자리잡았다.
어느 포지션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지만, 그렇다고 어느 포지션에 가도 주전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는 처지다. 물론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빠른 스피드, 강한 대인마크 능력이 돋보이지만 키가 작아 공중전에 약한 것이 약점이다.
사실 최성용은 상대팀의 스트라이커를 막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지난 98년 4월1일 잠실에서 열렸던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는 일본 축구의 핵인 나카타를 꼼짝 못하게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폴란드의 올리사데베, 미국의 도노반이나 비즐리, 그리고 포르투갈의 피구 등을 잡는 데도 최성용이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최성용은 일본 프로축구 빗셀 고베를 거쳐 지난 2001년 오스트리아 프로리그 라스크린츠팀에서 활약했다. 최성용은 오스트리아 프로리그에 진출해 불과 2경기 만에 데뷔골을 넣는 등 비교적 빨리 적응했다. 최성용은 지난해부터 다시 국내 프로축구로 복귀해 수원 삼성팀에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