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조금 탈선했지만 진정한 자신을 되찾은거야. 우리 잡히지는 말자. 계속가는 거야....
1991년 미국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명대사이다.
당시 그 영화를 보고 매우 인상깊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마지막 장면....
아리조나 그랜드 캐년에 도착한 델마와 루이스가 벼랑을 향해 달리는 차의 악셀레이터를 힘껏 밟을때의
그 환한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자유로움, 진정한 해방감. 사랑을 뛰어넘는 여성의 연대감, 그리고 자아찾기의 여정......
남편에게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평범한 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독신 생활을 즐기는 웨이트리스 루이스(수전 서랜든)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나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았으면..... 그런 자유 한번 누려보았으면.....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
그런데 오늘 나는 참으로 영화속의 델마와 루이스처럼 한나절을 살다 왔다.
제니와 단 둘이서 차를 몰고 가을 끝자락이라도 붙드는 아쉬운 심정으로 길을 떠났다.
밀양 꽃새미 마을.
마을 전체가 허브로 뒤덮였다는 마을.
봉황저수지를 끼고 종남산 숲을 오를 수 있는 곳
메타세콰이어 길을 여한없이 걸을 수 있는 곳
허브향과 감꽃 향이 지천을 이루어 사람의 발길을 끌어 당긴다는 그곳
키 큰 풍차가 아름답게 서 있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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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부산-대구 고속도로를 타면 30분만에 닿을 수 있는 길을 나와 제니는 오래도록 굽은 국도를 일부러
찾아 헤매었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 길을 묻고, 또 묻고.... 달랑 지도 한장 들고 두 여자가 간 크게 길을 떠났다.
단풍도 끝나고 이제 온통 낙엽뿐이다.
방방 음악도 울리고, 고함도 치고, 노래도 하고, ....
정말 제니와 나는 완전한 델마와 루이스가 되었다.
자유, 낭만, 탈피, 해방, 완전히 잡히지만 않고 갈 수 있는데 까지 가기였다.
언양- 석남사-산내면-긴늪삼거리 -밀양 -무안-방동마을
아아, 2시간 30분이나 넘게 걸렸다.
가는 길에 얼음골에서 사과따기도 하고, 감도 따기도 하고
그 아삭아삭 밀양얼음골 사과도 먹었다.
황금깃털 은행나무 가로수가 보이면 그 아래 서서 사진도 찍었다.
해가 다 저물 무렵에야 <밀양꽃새미 마을>에 당도하였다.
봉황저수지로 낙조가 들었다.
아아...... 흰바탕에 붉은 빛 풍차가 바람에 조용히 돌고 있다.
마치 유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동화속의 그림같은 마을이다.
허브하우스, 야생화단지, 저수지, 종남산 숲길, 메타세콰이어길, 풍차, 산허리를 휘어감은 감밭..........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를 따라 펜션에 들어가 국화차와 밀양단감을 잘 대접받았다.
인심도 후하시지..
-아니, 달랑 여자 둘이서만 오셨어유?
-네.
-무슨 일이라도?
그때 갑자기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나서 내가 농담조로 말하였다.
-우리 집 나왔어요.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그냥 집 나왔어요. 근데 갈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무슨 불만이 많으신지... 어디 한번 들어보입시더
-우리 남편은요, 빨래를 하긴 하는데 제 속옷을 삶지 않았지 뭐에요?
하고 내가 말했더니 옆에 있던 제니는 한술 더 뜬다.
-내가 식혜가 먹고 싶다했는데 식혜 맛이 너무 싱겁지 뭐에요? 우리 남편 음식솜씨가 형편없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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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말에 펜션 안주인 배를 잡고 깔깔대고 웃는다.
우리는 금방 친해져서 펜션을 내 집처럼 여기고 말았다.
낙조가 깊어지는 걸 보면서 아름다운 허브마을..... 꽃새미를 떠났다.
50분도 채 안되어 통도사에 도착했다.
다요에 들러 따뜻한 녹차수제비와 보이차를 마시면서 밤10시가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
다요 주인장은 언제나 따뜻하고 부드럽다.
나만 가면 <에너지 넘치는 삶>을 전수받으려고 야단이다.
나는 주인장의 잔잔한 삶이 보기 좋기만 한데 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도도하면서도 여린듯. 여린듯 하면서도 강한 물살을 안은 그 삶이 좋기만 한데 말이다.
차를 마시면서 자아를 찾아 떠난 델마와 루이스처럼 우리는 흥건한 기쁨에 젖어들었다.
이 가을....
마지막일지도 모를 가을의 끝 자락을 껴안으면서 델마가 되고, 루이스가 되어보았으니 어이 기쁘지 않으랴?
이 나이에
자아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아낙네들이 좀 많은가?
주어진 낭만조차 누리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여인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래 , 참 잘했다 싶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어야 하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야 하고
말하고 싶을 때 말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여자들은 누구나 델마와 루이스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니와 함께 델마와 루이스가 되어 아름다운 풍차마을 밀양꽃새미 마을을 다녀와서 -
첫댓글 두분이 델마와 루이스 였군요. 그래요 그래 보였습니다. 속옷을 삶아놓지 않아서 집 안들어 간다던 영화 자막같은 재밌던 말씀도 이해가 가네요. 떨어져 바람에 떼구르르 구르는 낙엽들이 하프소리를 연상케 하던 그 맘까지 공감이었으니 떠나는 가을 가만두지 않는 들판님의 가당찬 에너지는 늘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늘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