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먹기 좋은 날
김만년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린다. 이런 날은 딱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다. 나는 휴일의 느긋함에 빠져 리모컨을 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난다. 감자 삶는 냄새다. 한 집에 오래 살다보니 도가 통했는지 아내는 입이 궁금해 질 남편의 습성을 미리 알고 감자를 삶고 있다. 사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 간식거리로 감자만한 것이 또 있을까. 나는 유독 감자를 좋아한다. 오직하면 신혼 때 아내에게 ‘밥상에 감자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라고 선언했을까. 옹알이 하는 아이들을 배 위에 앉혀놓고 불러준 동요도 “자주꽃 피면 자주감자 파보나마나 자주감자”였다.
감자는 구황작물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救荒’이란 뜻은 흉년이나 극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를 일컫는 말인데 어릴 적 내 경험으로는 풍, 흉년에 관계없이 거의 주식으로 먹던 것이 감자였기 때문이다. 하지 무렵에 캔 감자는 여름 한철 온 동네를 먹여 살렸다. 저녁이면 집집마다 옥수수와 감자 삶는 냄새가 진동했으니 말이다. 가족들이 여름밤 멍석위에 둘러앉아 은하수를 바라보며 감자를 먹는 풍경은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처럼 우울하거나 눅진하지 않았다. 타닥타닥 나무삭정이 타는 소리, 아버지의 헛기침소리, 소담한 이야기꽃이 피어나던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감자를 먹다보면 늘 그 시절의 저녁풍경이 되살아나곤 했다. 사람들은 그 힘든 시절을 감자를 먹으며 감자 꽃 같은 이야기들을 피우며 견뎠던 것이다.
감자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요즘에는 조리법과 입맛들이 고양되어서 감자샐러드나 감자크로켓, 감자버터구이 등 퓨전 요리들로 많이 활용된다. 그러나 그 시절엔 감자수제비 감자옹심이 감자떡 감자밥과 같은 한 끼 요기로 쓰이는 때가 많았다. 그중에 내가 좋아하던 감자는 밥 위에 얹은 가마솥 감자였다. 어머니는 아침밥을 하실 때면 가마솥에 보리쌀을 미리 푹 끊이신 후 맨 위에 도시락용 쌀 한줌과 씨알 굵은 감자를 얹었다. 아침상에 열무저리와 된장, 보리밥과 감자가 올라오면 나는 으레 감자에 손이 먼저 갔다. 감자만 먹고 밥은 안 먹는다는 어머니의 꾸중을 귀에 달고 다녔지만 밥알이 듬성듬성 붙은 투실한 감자에 손이 먼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었다.
감자에 대한 추억도 많다. 한여름 밤 가설극장이라도 들어서면 나는 으레 삶은 감자를 들고 갔다. 영화가 한창 클라이맥스에 오를 때 갑자기 치르르륵, 하며 필름이 끊기면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내 돈 돌려 도’ 라며 휘파람을 분다. 이때쯤 나는 삶은 감자를 먹으며 다음 장면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3D 영화관에서 팝콘이나 콜라를 마시면서 보니 격세지감이다. 감자에 대한 추억 중에 으뜸은 역시 감자삭구다. 아이들은 여름한철을 냇가에서 천렵이나 멱 감기를 하며 보냈다. 감자삭구는 아궁이를 파고 양철 판을 올린 다음 젖은 모래를 덮고 감자를 굽는 방식이다. 물에서 한참 놀다가 보면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기 마련, 그때 아이들은 감자삭구 아궁이로 오종종 모여든다. 젖은 팬티를 널어놓고 벌거숭이로 둘러앉아서 구운 감자를 까먹는다. 그렇게 아이들도 여름한철을 감자처럼 까맣게 익어갔다.
내가 주말농장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도 감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서 먹어도 되지만 직접 키워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감자 꽃이 필 때면 그 은은한 정취가 좋다. 감자 꽃은 화려하지도 고혹적이지도 않은 수더분한 시골아낙 같은 꽃이다. 나는 이런 감자 꽃에 일찌감치 ‘엄마 꽃’이란 별칭 하나를 붙여주었다. 감자 꽃은 잠깐 피었다가 지는 꽃이다. 다른 꽃들이 만화방창 좋은 시절이라고 분내를 풍기며 벌나비를 불러들일 때 감자 꽃은 달빛을 머금고 함초롬히 자적自適하다가 때가 되면 조용히 꽃을 떨 군다. 엄마의 반달 같은 젖을 물고 오종종 매달려 있는 품 안의 새끼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감자 꽃을 자식에게 주는 헌화獻花요 희생의 꽃이라고 부르고 싶다. 올해는 감자가 실하게 들었다. 밑거름을 많이 준 탓인지 한포기를 캐니 소 불알만한 것들이 대 여섯 개 씩 우르르 달려 나온다. 아내의 입도 함지박만 해졌다. 역시 농사 중에는 감자 캘 때가 제일 넉넉하고 풍요롭다.
감자가 파실하게 익었다. 뜨거운 껍질을 까서 입에 넣으니 담백한 맛이 난다. 둘째 녀석한테 하나 먹어보라고 했더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하긴 달고 톡 쏘는 음식들에 익숙해져서 감자 맛을 알리가 있을까. 머리를 곧추세운 폼이 아직 겉멋에 심취할 나이인가도 싶다. 감자 맛을 아는 나이가 되면 저 곧추선 머리도 좀 수굿해지려나, 채근에 못 이겨 둘째 녀석이 어물쩍 감자 한 알을 짚는다. 이때다 싶어 나는 또 구전사설을 늘여놓는다. 감자삭구 하는 방법이나 호야 밑에서 책 읽던 이야기, 나무 하다가 산토끼 잡던 무용담도 덤으로 들려준다. “호야가 뭐예요? 나무는 왜 해요” 라며 둘째는 눈만 멀뚱거린다. 아마 아버지의 추억담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쯤으로 들렸는가 보다. 불과 1세대 차이인데도 아버지의 시대는 먼 전설이 되어버렸다. 문명에 가속이 붙으면서 삶의 패턴이 급격히 변화된 결과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은 앞으로 가고 아버지는 뒤로 간다. 아이들은 포켓몬 고를 추적하며 미래와 교신하고 아버지는 감자를 먹으며 과거를 채집한다.
감자 꽃 일렁이는 볕 좋은 언덕 어디쯤에 소담한 집을 짓고 살고 싶다. 마당 한쪽에 가마솥을 걸고 밥풀이 듬성듬성 묻어있는, 이제는 아내의 손때가 묻어있는 가마솥 감자를 먹고 싶다. “아이들 크면 시골로 갑시다. 왕비처럼 모시겠소.” 기회 있을 때마다 청탁을 해보지만 아내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좋은가 싶다가도 뜬금없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지네 나온다던데, 아니 뱀이 나올지도 몰라.”라며 연신 부정의 신호를 보낸다. 그 마음 이해가 갈 법도 하다. 도무지 농사를 모른다. 감자 따러 가자고 하면 감자 따러 가자고 하고 고추 캐러 가자고 하면 고추 캐러 가자고 한다. 그래도 부창부수, 바늘 가는데 실 안 따라 가겠는가.
내가 감자 한 개를 먹으면 아내는 감자 한 개를 까놓는다. 아내는 감자껍질을 까고 나는 감자를 먹는다. 미안해지면 나도 감자 한 개를 까서 아내 앞에 놓는다.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왔지만 또 감자처럼 투담한 정분이 쌓이는 시간이다. “굿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식탁에 앉아서 아내와 나는 감자를 먹는다. 감자먹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