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삼동 패총전시관. 바다가 보이는 박물관이다. 바닷물이 들락대는 야외스탠드는 학습장 겸용. 꼬맹이서 초등학생까지 둘씩 셋씩
쪼그려 앉아 야외체험학습 중이다. 학습내용은 돌로 쪼아 조개껍질에 구멍을 내는 것. 눈구멍 콧구멍을 내고 가면을 만드는 것.
어디서 왔냐고 두세 번을 물어도 아이들은 조개껍질에 빠뜨린 코를 들지 않는다.
"언제 또 해요?"
동삼초등 4학년 정효주 이현지. 재미를 붙인 두 아이가 전시관 선생님에게 또 하자고 보챈다. 조개구멍에 실을 꿰어 목걸이를 하고
있다. 효주가 오늘 만든 조개목걸이는 세 개. 팔찌도 있다. 목걸이 하나는 사촌남동생에게 줄 생각이다. "참가한 아이는 다시
참가할 수 없다"는 선생님 말씀은 들은 체 만 체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참가할 눈치다.
패총은 조개껍질 무덤.
죽은 사람을 묻은 무덤은 아니고 내다버린 조개껍질이 겹겹이 쌓여 무덤처럼 된 것을 이른다. 요즘말로 하면 쓰레기하치장이다. 동삼동
패총전시관은 여기서 발굴된 패총이 남다르다 해서 지어진 박물관. 전시관 정원 같은 잔디밭이 패총이 발굴된 자리고 바로 앞이 바로
옆이 하리 포구다.
잔디밭에 드러눕는다. 8천년이나 되었다는 동삼동 패총. 조개가 겹겹이 덮고 덮은 8천년 역사
위에 드러눕는다. 구름 사이로 가을하늘이 비친다. 반만년을 훨씬 웃도는 그때에도 하늘을 가렸을 구름. 그때에도 구름 사이로 보였을
하늘. 구름을 물들이는 석양의 빛깔인들 그때와 별 다르리. 멀리 해운대 장산 꼭대기가 보인다. 장산 꼭대기인들 그때와 별
다르리.
둘러보면 모든 것은 두 가지다. 다른 것과 다르지 않는 것.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 무엇이 좋다
나쁘달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있다. 다 다를 때 다르지 않는 것 하나쯤. 다 바뀔 때 바뀌지 않는 것 하나쯤. 소중한 것은 또
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도 오랜 세월을 두고 보면 그때 그대로인 구름 같고 하늘 같은 것. 가지는 흔들려도 뿌리는 끄덕도
않는 듬직한 나무 같은 것. 그래도 다른 것은 있게 마련이다.
"바다 색깔이 다르지요." 전시관 최정혜 학예연구사는
바다 색깔을 보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안다. 언제 또 하느냐고 두 아이가 보챈 선생님이다. 가을 이맘때면 바다 색깔이 깊다.
부산박물관에서 이리로 옮긴 지 1년. 하리 포구의 봄가을을 알고 아침저녁을 안다. 하리 포구는 아침에 활력이 넘친다. 배가
들어오고 뱃소리가 들어오고 들어오는 배를 따라서 갈매기가 들어온다. 어디 아침만 활기차랴. 저물녘은 저물녘대로 활기가 넘친다.
"두 마리 만오천 원, 떠리미!" 한국해양대 방파제에서 건너온 낚시꾼에다 대고 포구 방파제 성일이 엄마는 '떠리미'를
강단지게 외친다. 붕장어도 있고 우럭도 있고 세발낙지도 있다. 떠리미가 된 것은 문어. 동삼초등 동창인 남편과 새벽 세 시에 배
타고 나가서 잡아온 문어다. 안 팔리면 만 원에 달라고 말이 됐는데 덜렁 팔린다. 약간은 미안한지 뒷말이 화끈하다. "다음에 오면
세 마리 만 원에 줄게."
방파제에 걸터앉아 붕장어를 먹는다. 아나고는 붕장어 일본말. 회가 입에서 녹는다.
그날그날 잡은 거라 입에서 녹고 센 '물빨'로 육질이 딴딴해 입에서 녹는다. 아무리 맛있다 말해도 잡숴봐야 안다며 성일이 엄마는
회에 잘게잘게 칼집을 낸다. '도꾸이'들이 김해서도 오고 양산서도 온다. 뱃일은 하루 서너 시간. 미리 놓아둔 그물에 이상이
없으면 그렇고 그물이 찢어졌거나 무슨 사달이 생기면 서너 시간은 턱도 없다. 물빨이란 말도 그렇고 도꾸이란 말도 그렇고 포구
내음이 진득하다.
영도엔 포구 내음이 진득한 사람이 많다. 토박이가 많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다. 뱃일
하는 성일이 엄마도 그렇고 포구 초입 등대회센타 여주인 김현숙(44) 씨도 그렇다. 트인 바다를 보는 섬에서 나고 자란 영도사람은
영도 밖이 갑갑해 영도를 좀체 떠나지 않는다. 영도에서 사람을 만나고 영도에서 평생을 보낸다. 동삼동 패총은 그런 영도사람들의
흔적이다. 토박이의 토박이의 흔적이다.
"거칠기는 하지만 따뜻해요." 김현숙 씨가 말하는 영도사람 기질이다.
영도사람은 거칠다. 거친 바다 탓이고 거친 뱃일 탓이다. 거친 만큼 화끈하다. 좀생이 짓은 하지 않는다. 도 아니면 모다.
아무나 '니 내' 하는 토박이답게 정도 도탑다. 김장김치는 너 나 없이 나눠 먹고 이웃이 힘든 일을 당하면 너도 나도 모여든다.
거기다 대면 나는 잔망스럽다. 왜 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가. 만날 뒷짐을 진 채 얼쩡대는가.
'그녀는 부산
영도사람이다. 영도 안에서도 영도사람이고 영도 밖에서도 영도사람이다. 보고 또 보고, 가도 또 가도 언제나 영도에 목멘다. 안과
밖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영도는 그녀 안에 허물어지지 않는 성(城)이 된다.' (-심득순 수필 '그녀'에서)
영도사람은
어딜 가도 영도사람이다. 영도에 살아도 영도사람이고 다른 곳에 살아도 영도사람이다. 영도사람은 무얼 해도 영도사람이다. 바다일로
먹고 살아도 영도사람이고 다른 일로 먹고 살아도 영도사람이다. 내가 누구인 줄도 모르고, 내가 무엇을 하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살이. 그런 사람살이를 몰아내듯 포구 바람이 분다. 거칠게 분다.
해가 넘어간다. 해양대가
있는 아치섬에서 떠올랐을 해가 봉래산 너머로 넘어간다. 섬과 산 사이에 있는 포구 하리. 섬도 날카롭고 산도 날카롭고 깨진
조개껍질처럼 포구도 날카롭다. 손을 대면 베일 것 같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도 좋지만 날카로워야 할 때는 날카로우라고
일러주는 포구 하리. 두루두루 좋다고 해서 능사만은 아니라고 일러주는 포구 끝자락에 나를 세워두는 게 두렵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바람은 여전히 거칠다. dgs1116@hanmail.net
■ 동삼동 패총전시관 - 바닷가
신석기인들 8천년 전 삶의 흔적
사진은 동삼동 패총전시관. 이곳에서 발굴된 패총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2002년 지어졌다. 동삼동 패총은 약 8천년 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신석기 선사시대 사람들의 유적. 조개껍질 물고기뼈 육지동물뼈
토기 장신구 등과 농경사회였음을 알리는 조와 기장이 발굴된 게 큰 수확이다.
이와 함께 당시에 종교의식이 있었음을
알리는 구멍 뚫린 조개껍질, 일본과의 교역물인 흑요석 등이 발굴되었다. 동삼동 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실체와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자료. 전시관 김일규 문화관광해설사 평가대로 여기 패총 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패총을 총망라한 대표적인
유적이자 세계적인 유적이다.
전시관은 동삼동 한국해양대 입구에 있다. 동삼동은 영도 동쪽에 있는 세 마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세 마을은 상리 중리 하리. 해양대가 있는 아치섬에서도 패총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예부터 사람 살기가
좋았던 모양. 임진왜란 이후 영도가 무인도로 방치됐을 때도 이 일대 어장에는 사람 출입이 빈번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