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란 때때로 행복한 기억을 불러온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던 유년 시절의 정겨운 추억 때문일까. 꽁꽁 얼어붙는 엄동설한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만둣국 한 그릇이 더 그리워진다. 만두는 쌀이 귀하고 날씨가 서늘한 중부 이북지방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새해 첫날 남녘에서 무병장수를 비는 마음으로 떡국을 먹듯이, 북녘에서는 복을 듬뿍 싸먹는다는 의미로 만둣국을 먹었다.
각 지방마다 만두 모양새나 맛이 조금씩 다른데 크게 보면 서울만두, 개성만두, 평양만두로 나뉜다. 서울만두는 양반가의 음식으로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다. 개성만두는 둥근 엽전 모양의 중간 크기로 신선한 채소를 듬뿍 넣는 것이 특징이다. 평양식 만두는 알이 큰 왕만두로 만두소가 두툼하다.
서울 압구정동의 ‘만두집’은 평양식 만두를 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무 장식 없이 그저 ‘만두집’이라고 간결하게 적힌 쪽간판만 봐도 자부심이 느껴지는 집이다. 만두는 손이 많이 가서 집에서는 물론이고 업장에서도 귀찮은 음식 1순위로 꼽힌다. 그 만두를 고집스레 빚어온 지 34년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으로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쌀쌀한 날씨에는 더욱 북적인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 오픈 주방에서 만두를 삶는 구수한 향이 풍겨온다. 메뉴는 만둣국, 만두전골, 콩비지, 빈대떡, 고추전 등 몇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만둣국을 주문한다. 만둣국에는 맑은 국물에 고명 하나 없이 어른 주먹만 한 만두 여섯 알이 꽉 차게 들어 있다. 국물을 휘휘 저으면 양념이 풀어져 발그레해지는데, 맵지 않고 칼칼한 고추향이 퍼지면서 시원한 국물이 끝내준다. 만두를 한입 베어 물면 쫄깃한 식감의 도톰한 만두피 속에 부드럽고 고소한 만두소가 입안에 가득 퍼진다. 갖은 정성을 들인 어머니의 손맛이랄까. 아무리 먹어도 물릴 것 같지 않은 담백한 맛으로 먹을수록 더 당긴다. 마지막 두 알쯤은 국물에 꾹꾹 눌러 밥 말아 김치 한쪽 올려 먹으면 딱 좋으련만! 그러기엔 배가 너무 부르다. 중국의 딤섬, 일본의 교자, 티베트의 모모, 인도의 사모사,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등 지구촌에 만두 사촌들이 여럿 있지만 푸짐하기로는 이 집 만둣국이 최고다.
▲ 만두를 빚는 과정.
만두집 문을 연 한동숙씨(2004년 84세로 작고)는 평양 사람으로 1951년 1·4후퇴 때 월남했다. 평양의 유명한 축구선수였던 남편 옥정빈씨는 집에 친구들을 불러 만둣국, 빈대떡 등 이북음식을 대접하곤 했는데 솜씨가 너무 좋아 다들 식당을 열라고 성화였다고 한다. 그때마다 귀 흘려듣다가 1980년대 초 압구정동에 한창 아파트 바람이 불 때 26㎡(8평)짜리 조그만 가게를 얻었다. 처음에는 간단히 빈대떡만 팔다가 만둣국도 메뉴에 추가했는데 어찌나 솜씨가 좋았던지 금세 줄서서 먹는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한씨의 막내딸 옥혜경(67)씨는 농구선수로 은퇴한 뒤 ‘만두집’ 시작부터 어머니를 도왔다. “처음에는 그냥 조그맣게 한번 해보자였는데 손님들이 다들 맛있다고 하니 힘을 얻어서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네요.” 만두집에 청춘을 바친 그녀는 결국 만두와 결혼했다. 두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내려와 평생 어머니와 함께한 옥씨는 소탈한 성격에 고지식하게 만두집을 챙기는 모습까지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어머니 한씨는 평양만두라고 다 같은 평양만두가 아니라며, 만두는 무엇보다 만두소가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아가시던 해까지도 손을 놓지 않고 만두소 비비는 것만큼은 철저하게 챙기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든 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 어머니에게서 옥씨는 만두의 맛을 최상으로 이끌어주는, 좋은 재료 고르는 법부터 배웠다. 고기는 만둣국의 주재료다. 때문에 아무리 한우 가격이 들썩거려도 가게를 열 때부터 거래해온 단골 정육점에서 최상급으로 준비하고 있다. 채소 역시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모두 국내산으로 준비한다.
만두는 주재료 못지않게 양념 또한 중요한 음식이다. 양념에 따라 만두 맛이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늘은 의성마늘을 전국 제일로 치지만 갈아서 만두에 넣을 때는 더 깊은 맛이 나는 남해마늘을 사용한다. 참기름은 꼭 재래시장에서 갓 짜온 것을 사용해 고소한 맛을 돋운다. 아주 소량 들어가는 후추까지도 마트와 재래시장의 유명한 것까지 다 맛을 보고 그중에서 최고의 것을 찾아서 쓰고 있다.
손님이 늘면서 바로 옆에 가게를 넓혀 냈다. 예전의 만두집은 이제 만두 빚는 주방으로 쓰는데, 유리창 너머로 여럿이 함께 만두 빚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만두피를 소주병으로 일일이 동그랗게 밀면 두세 명이 만두소를 주먹만큼 집어넣어 큼직하게 빚는다. 빨간 바구니에 가지런히 담긴 하얀 만두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 창업자 한동숙씨의 생전 모습(왼쪽)과 딸 옥혜경씨의 2000년대 초반 모습. photo 김용호
▲ 서울 압구정동 ‘만두집’ 입구.
이 집 만두는 모든 과정을 기계 대신 손으로 하기에 모든 재료가 더 잘 어우러진다. 특히 밀가루 반죽은 오래 치대어 하룻밤 숙성시키기 때문에 만두피의 쫀득한 맛이 유별나고 살짝 도톰해서 삶을 때 터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옆구리가 터진 만둣국은 상상하기도 싫다. 하루 평균 1500여개의 만두를 빚어 수백 개를 삶아 손님상에 내지만 터지는 법이 없다고 한다. 만두소도 물기를 잘 짜서 꼭꼭 눌러 넣어 빚기 때문에 국물에 터뜨려도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집만의 자랑이다. 이런 비법으로 명절 즈음이면 생만두를 사러 오는 발길이 많아져 하루 5000여개를 빚는다고 한다. 육수까지 포장판매하기 때문에 집에서 간편하게 평양식 만둣국 맛을 볼 수 있다.
이 집 육수는 마치 냉면 육수처럼 맑다. 한우 양지를 삶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대파 우린 물을 섞어 만드는데, 구수한 고기육수와 대파 특유의 시원한 감칠맛이 어우러져 먹을수록 끌린다. 삶은 양지는 잘게 썰어 빨갛게 양념한 다음 국물에 조금씩 넣어준다. 적은 양이지만 화룡점정이라고 할 만큼 만둣국의 맛을 완성해 준다.
이 집은 갈 수 없는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집으로도 통한다. 초창기에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이북 출신의 유명 인사들이 진을 치고 앉아 고향 음식을 즐겼다. 그때 손님들이 이북에서 먹던 어복쟁반을 자꾸 주문하는 통에 어느 날 탄생한 메뉴가 만두전골이다. 큼직한 냄비에 만두를 한 바퀴 돌려 담고, 채소와 양념을 얹어 즉석에서 끓이는데 푸짐한 안줏거리로 그만이다.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은 각양각색이다. “한자리에서 30년 넘게 하다 보니 그동안 대통령만 빼고 다 다녀갔어요.” 그만큼 정재계와 문화계 유명인사들을 비롯해 직장인과 주부들까지 고객층이 두껍다. 1990년대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제복 입은 사람들이 청와대로 만두를 포장해 가기도 했다. “옛날에 여기서 데이트하던 손님들 자녀가 벌써 서른이 넘어서 와요.”
옥씨는 대를 이어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오늘도 거르지 않고 만두를 맛본다. 오랜 세월 물릴 만도 한데 어머니의 맛을 잘 지켜나가기 위해서다. “늘 변함없이 한결같아야지요. 그 이상 뭐가 있나요?” 이런 생각 때문에 그동안 프랜차이즈 문의가 들어올 때마다 한사코 거절해왔다. 좁은 골목길 안에 작은 간판이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오랜 세월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