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2020년 12월 11일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매달 11일은 중요한 날이다. 바로 11번가에서 대대적으로 티 멤버십을 껴서 할인을 해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루의 낙을 쇼핑으로 풀던 시절 나는 그야말로 온라인 쇼핑몰의 노예였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대신 휴대전화 소액 결제를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한도 내에 썼다. 결제는. 다음 달에 내가 할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진짜 다음 달에 내가 한다.
이러다 파산하는 거 아냐. 할 때쯤 쇼핑몰 앱을 지우고 11번가 하나만 남겨 두었다. 귀찮음 때문이었다. 최저가 비교하고 쿠폰 받고 무료 배송 때문에 뭘 하나 끼어 넣고 하는 일이 번거로웠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 그리하여 최종 안착지는 11번가.(이거 홍보하는 거 아닌데. 그냥 어쩌다가 내가 쓰는 통신사의 멤버십 할인이 된다는 걸 알고 11번가에 뼈를 묻은 건데.) 그래봐야 사는 건 커피, 쌀, 김치, 화장지, 물걸레 등등.
10일에서 11일로 넘어가는 밤.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심장아 나대지 마라. 12시가 되자마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물건들을 결제한다. 이것저것 뿌려주는 쿠폰을 먹이고 먹여서. 1원까지 남김없이 포인트를 끌어모아서. 결제. 이런 풍경은 11월까지였다. 어제는 달랐다. 왜냐.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있었다. 김얀의 『오늘부터 돈독하게』라는 책. 나는 귀가 얇아서 누구의 말도 잘 듣기 때문에 시키는 건 잘한다.
김얀은 집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 간다. 대출 상담을 받으러 간 건데. 거기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연소득 480만 원으로는 대출의 대자도 꺼내지 못한다는 거. 그리하여 김얀은 꿈을 수정한다. 대문호에서 대부호로. 『오늘부터 돈독하게』는 여타의 부자 되기 책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으로 승부를 보려는 자가 어느 날 부자가 되겠다는 계시 아래 하나씩 자신의 습관을 바꿔가며 돈을 모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무슨 돈을 밝혀. 돈 이야기는 좀 그렇네. 할 수 있나. 당장 내일 먹어야 할 쌀이 없는데. 공과금 고지서가 책상 위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는데. 요즘 최애 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미니 데이트를 부른 윤영아 가수는 이런 말을 했다.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아티스트 좋은데 우리는 또 살아내야 하지 않냐." 그녀는 마트에서 캐셔 일을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반해 윤영아를 응원하기로 했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가수도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