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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에 가득찬 행복! `보리비빔밥` | ||
음식 잘 하시는 어머니께서도 집에서만큼은 안 하시는 게 있다. 보리밥이 그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집에서 보리밥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께서 보리밥을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당신께서 어렸을 때 질리게 드셨던 탓인지 보리밥에 대한 안 좋은 기억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서야 그저 막연히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허기졌던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 싶지 않으셨던 게다. 감자만 죽어라 먹어 감자는 거들떠도 안 보는 사람, 수제비에 한이 맺혀 수제비의 수자도 듣기 싫어하는 사람... 우리 아버지에겐 보리밥이 삶의 아픔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보리밥에 된장찌개 생각이 절실할 때가 있다. 더위에 지쳐 입맛 없는 요즘 , 꽁보리밥에 몇 종류의 나물 넣고 된장찌개 한 국자 푹 떠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잃었던 입맛이 되돌아올 것만 같다. 며칠 전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을 타 엄마와 함께 꽁보리밥에 된장찌개 한 대접 비벼 먹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 보리밥은 소화력이 약해진 여름에 더욱 좋은 음식이다. 웰빙 열풍을 타고 사찰음식이나 산채음식과 더불어 현미나 보리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근래 들어 식당 간판에 ‘보리밥’ , ‘산채 보리밥’, ‘시골보리밥’,이란 글자를 쉽게 볼 수 있다. 경기도 파주 보광사 입구의 <시골보리밥집>의 개울물에 발 담그고 먹는 보리비빔밥은 서울에선 느낄 수 없는 향수의 맛이고, 일산 풍동 애니골 <잎새>의 쌈밥은 소쿠리에 무명천 깔고 그 안에 보리밥이 담겨 있어 과거의 맛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정겹기 그지없다. 서울에도 보리밥 맛난 데가 몇 있지만 남산 자락에 위치한 <남산골 산채집>의 보리밥은 보리 밥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표방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집의 보리밥은 무쇠 솥에 직접 짓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전의 보리밥은 겉보리로 지어 입안에서 탱글탱글 따로 놀아 씹기도 영 거북했는데 요즘은 두 번 삶지 않아도 되는 찰보리를 사용해 간편하기도 하고 쫄깃하니 씹는 맛도 즐겁다. 보리밥은 대충 씹어 넘겨도 소화에는 문제없지만 자꾸 씹다보면 보리의 은은한 향과 침샘에서 분출되는 침이 서로 엉겨 단 맛이 돈다. 산채집의 5천 원짜리 보리밥정식에는 몇 종류의 나물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딱 먹을 양만 담겨 있어 잔반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보리밥 하는 집이니 이런 토속적인 반찬도 만날 수 있다. 된장으로 버무린 무청 시래기. 이 맛을 아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어쩌다 백반집서 이 반찬을 보면 시골집에라도 온 듯한 애틋함을 느낀다. 보리비빔밥에 빠져서는 안 될 열무김치. 고추장에 열무김치만 넣고 비벼도 밥 한 그릇은 뚝딱! ^^ 된장찌개가 맛있는 집은 뭘 먹어도 다 맛있다. 산채골의 된장찌개는 바지락도 들어있고 마른새우도 들어가 내 입에는 조금 거슬리지만 된장의 구수한 맛이 살아 있고 간도 적당하니 짜지 않아 보리밥과 잘 어울린다. 애호박의 단 맛과 오징어의 씹는 느낌이 좋은 사이드 찬. 얼갈이 배추를 삶아 무친 반찬, 반가운 우리집 반찬을 보는 듯하다.^^ 얼갈이 무침은 고추장을 슬쩍 섞어야 더 맛있다. 표고 향을 그대로 살린 버섯볶음. 양념을 과하게 넣지 않은 점이 이 집의 장점이다. 모든 반찬에 똑같은 양념으로 도배질을 하는 시중의 밥집에서는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는데, 이 집은 각각의 풍미를 최대한 살리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수덕사 ‘수덕여관’의 산채 정식과 진부 ‘부림식당’, 속리산 입구 ‘영화 식당’에서 그런 소중한 제 맛들을 경험할 수 있다. 고사리 요리 하나로도 그 집의 음식솜씨를 가늠할 수 있는데 의외로 고사리 반찬 제대로 하는 곳 드물다. 중국산 고사리가 판을 쳐도 잘 삶아 볶아 낸다면 이도 제법 맛있다. 종로 피맛골의 ‘순천식당’의 고사리만큼 훌륭한 곳은 아직 못 봤다. 콩나물도 제대로 삶아 온전한 모양에 살캉 씹는 느낌이 좋다. 무를 생으로 채 썰어 발갛게 버무려 먹는 것도 별미지만, 모든 재료를 다 익혀 먹는 산채골의 비빔밥은 무 역시 곱게 채 썰어 볶았다. 물이 생기거나 너무 무르면 무채의 맛이 달아나는데 적당히 잘 익힌 무채는 달고 고소함까지 느껴진다. 온갖 종류의 나물과 된장찌개, 고추장으로 마무리한 모양. 이 한 그릇으로 하루 종일 배가 든든해 사는 게 즐겁다.^^ 참고로 보리밥은 비벼 놓고 시간이 지나면 맛이 없어진다. 발효라도 일어나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쿰쿰한 보리 냄새도 짙어지고 풋내도 나는 듯 하다. 그러니 보리밥은 얼른 후다닥~ 잽싸게 먹어야 한다.^^ 젓가락으로 고슬고슬 비벼 서로 엉겨 짓이겨 지는 걸 최대한 줄이고 각각의 재료들과 보리밥의 어우러짐을 입속에서 느껴 보자. 여기서 잠깐~! 비빔밥 비비는 모습을 보면 숟가락으로 치대듯이 비비는 사람이 있는데 기왕 맛있게 먹으려면 젓가락으로 비벼보자. 숟가락으로 문대듯 비비다 보면 밥알도 으깨지고 재료들도 짓이겨져 맛도 혼란스럽다. 이미 다 익힌 재료들을 비빈다면 서로 어우러질 정도만 슬쩍 비비면 좋겠다. 잘 비빈 찰진 보리밥 알과 함께 씹히는 콩나물 대가리의 뽀드득거림, 살캉 씹히는 무채, 질깃한 참나물, 된장 향 그윽한 시래기,., 마음속까지 구수해 지는 보리비빔밥의 대 향연을 만끽해 보자.^^ 보리밥 뒤엔 반드시 숭늉이 따라줘야 한다. 온갖 맛들의 대 전쟁을 치룬 입안과 뱃속의 평화를 위해 숭늉 한 사발 마시고 나면 비로소 보리비빔밥의 훌륭한 마무리가 된다. 시원한 바람 부는 대청마루에 앉아 소박한 밥상을 받는다. 금방 끓여 구수한 냄새 가득한 된장찌개와 잘 익은 열무김치, 고소한 시래기 나물, 매콤한 무생채, 뒤웅박에 넉넉하게 담긴 보리밥... 아! 상상만으로도 온 몸이 나른해 진다. 여름이라 덥다고 찬 음식만 찾으셨다면 이제 보리밥으로 열 보충을 해 보시길.. 보리비빔밥 한 대접 먹고 배 뚜드리며 크윽~ 트림이라도 시원하게 하고 나면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만 같다. 작지만 소중한 행복,여러분들도 함께 누려 보시길.. ^^ |
첫댓글 넘~ 맛있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