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5)
'가까이 오지 마라'로 번역된 '알 티크라브'(al thiqrab)에서 '티크라브'는
'접근하다', '멀지 않다', '가까이 오다'(창세27,41), '가까이 나아가다', '다가가다'
(신명4,11)라는 뜻을 지닌 '카라브'(qarab)의 미완료형이며, 여기에 일시적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알'(al)이 결합되었다.
히브리어에는 금지를 나타내는 표현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동사의 미완료형에
부정어 '로'(lo)가 결합된 형태로 '절대적 금지'와 '계속적 금지'를 나타내며, 또 하나는
여기처럼 부정어 '알'(al)이 사용되는 '일시적 금지'의 형태이다.
여기서 일시적 금지의 표현이 사용된 것은 모세가 선 곳이 그전부터 계속해서
거룩했던 곳이 아니라 지금 하느님의 임재와 현존하심으로 거룩해졌기 때문이다.
후에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도 이와 같은 금지의 명령이 내려졌다.
"주님 군대의 장수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네가 서 있는 자리는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는 그대로 하였다." (여호5,15)
'거룩한 땅이니'로 번역된 '아드마트 코데쉬 후'(admath qodesh hu)에서 '거룩한'으로
번역된 '코데쉬'는 하느님의 절대적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묵시4,8).
엄격한 의미에서 하느님만이 절대 거룩하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되신다
(이사43,3.14).
그러나 '코데쉬'가 피조물과 관련되어 사용될 수도 있다.
즉 '코데쉬'가 '장소'(신명23,14-15), '의식'(레위19,2; 21,6.8), '절기'
(탈출16,23-26; 이사58,13), '물건'(레위19,24; 27,28; 여호6,19),
'제물'(탈출30,32-33; 민수18,32) 등과 관련해서 사용되는 성경의 용례들을 볼 때,
그것들이 비록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하느님과 관계를 가질 때 거룩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들은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도 그 '땅'이 거룩한 이유는 그 땅 자체가 원래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모세가 있었던 시나이 산은 아름다운 숲이나 멋있는 경관이 있는 곳이 아니고
화강암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볼품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 곳에
임재하시니까 거룩한 땅이 되는 것이다.
한편, '신을 벗으라'로 번역된 '샬 네알레카'(shal nealleka; put off yout shoes;
take off your sandals)는 '너의 신을 벗으라'는 뜻이다.
고대 근동에 있어서 '신' 곧 '나알'(naal)은 발 밑바닥만을 보호하는 간단한
'샌들'(sandal)을 가리킨다. 그리고 '샬'(shal)은 '벗다'(여호5,15)라는 뜻을
지닌 '나샬'(nashal)의 명령형이다.
성경을 보면, 거룩한 장소나 상중에 신을 벗었고(여호5,15; 2사무15,30; 에제24,17),
자신의 기업을 포기할 때도 신을 벗었다(신명25,9; 룻기4,7).
히브리인들에게 신을 벗고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수치스럽고 비참한 일이었으며
(2사무15,30; 이사20,2), 노예들이나 맨발로 다녔다.
그리고 먼지가 많은 근동 지방의 특성상 신발은 더러움과 죄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하느님 대전에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자 자신의 낮고 비천함에 대한 고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