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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12신]아들아, 죽음을 누가 알겠니?
[프로젝트 12신]아들아, 죽음을 누가 알겠니?
아들아, 오늘 보내준 너의 일기는 아주 주제를 잘 잡았다. 동생의 수술실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김밥만 먹고 있다가 어느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하며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봤다는, 그 며칠 후 하얀 시트에 덮인 시신을 봤을 때의 느낌을 아주 솔직하게 썼더구나. 너는 기껏해야 10년전쯤 ‘구와나사’(입이 돌아가는 병)로 입원하신 할머니를 보고 충격을 받아 엉엉 울었다는 일화가 죽음과 관련한 유일한 추억이겠지. 외할머니의 돌아가심은 기억에 거의 없을 터이니.
그래, 사람은 그렇게 살다가 죽는 거란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돌아가실 것이고 나도 엄마도 죽게 된단다. 인생에 있어서 예정된 종착역이 바로 죽음이다. 너는 이제 며칠 있으면 만 스무살이 되는 생일이다. 이 시점에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너도 알겠지. 인도의 왕자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다 결국 출가하고 보리수 밑에서 용맹정진하여 득도한 이야기말이다. 동생이 왼발을 몽땅 기브스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바라보는 너도 답답하지 않든. 조금만 아파도, 다쳐도 그럴진대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는 저 컴컴한 죽음의 터널은 과연 어떤 곳일까. 아무리 유명한 학자나 출세한 사람도 죽음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그래서 종교라는 게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가항력의 섭리에 순응하고자 종교에 귀의하는 게 아닐까.
우리, 같이, 이 순간, 두 눈을 꼭 감고, 지금 당장이거나 아니면 오늘중, 내일중 죽는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두려우냐. 온 몸에 소름이 돋지 않느냐. 그게 전율(戰慄)이라는 거다.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상관없이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이다. 단지 삶을 많이 산 사람들은 연륜이나 경륜이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겠지. 아버지도 이미 가까이는 할머니(너로선 증조모)와 장인-장모(너로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님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봤으며, 고등학교 친구들도 10명이 넘게 이미 유명을 달리했구나. 순간순간마다 허망한 것은 말로는 다 못하겠더라.
이렇게 죽는 것인가? 이제 다시는 못보는 것인가? 생각하며 밤을 설치는 날도 많았단다. 그런 엄청난 슬픔을 겪고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또한 ‘망각’(忘却)이라는 단어가 있어서이다. 잊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어른들 하는 말씀에 “사는 사람은 산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하지. 어떻게든지 산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이 될 수가 없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게 죽지 못해 산다고 하더래도 말이다.
어쨌든 죽는 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오늘은 죽음을 빌어 삶을 말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산다는 것이 축복이고 행복이고 감사할 일 투성이라고 말한 1급장애인을 만났다. 그는 한때 잘 나가는 방송국PD였는데, 불의의 사고로 죽음직전까지 갔다. 아, 클론의 강원래를 예를 들으면 네가 잘 알겠구나. 아내의 지극정성 보살핌이 없었다면 어찌 그 고통을 이겨내고 휠체어춤을 추며 결혼을 할 수 있었겠냐. ‘인간승리’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얼마 전에 암으로 투병하는 아버지 친구를 생각하며 쓴 ‘아주 특별한 독후감’이란 칼럼을 같이 보내마.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찬찬히 숙독해보도록 해라.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과 ‘분홍옷 갈아입고 꽃길을 가네’라는 2권의 투병일기를 읽고 아버지의 소감을 적은 것이다. 느낌이 자못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찌 죽음을 달관하기가 쉽겠냐만, 예정된 종착역에 담담하게 도착하려는 보통사람들의 지혜를 보면 참으로 숙연해진다. 주변의 친한 사람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준다.
아버지 어린 시절엔 죽음이 항상 바로 옆에 있었다. 집 대문만 나서면 바로 야산의 수많은 봉분들이 우리들의 놀이터였단다. 죽음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비석과 비석을 두고 뛰어다니며 술래를 잡던 ‘진도리’라는 놀이는 얼마나 재미있든지 어두워지는 줄도 몰랐다. 묘의 주인들은 우리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였을 것이나, 눈이 쌓이면 맨 위 봉분 정상에서 아래, 그 아래에 있는 봉분들을 줄줄줄 타고다니는 자연스런 썰매장이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땅속에서 영원히 잠을 잔대, 하며 꾀복쟁이들과 낄낄거리는 ‘만남의 장소‘였다. 그런 놀이터가 언제부터 무서워지더구나. 아버지도 언젠가부터 뒷산에 계시는 상할아버지와 상할머니의 묘소에서 두 번 절하고 하염없이 넋두리를 하게 된 나이가 되었구나.
네가 일기에서 썼듯이 “난 아직은 애다. 어린이니 뭐니 성인이 됐다느니 이제 부모님 허락없이 결혼할 수 있다느니 해도 아직은 죽음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애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겪은 친구들은 굉장히 어른스러워 보인다. 난 아마 깨질걸.”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 네 말대로‘심하게 깨질’ 것이다. 아버지도 사실상 마찬가지란다. 그러니 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 세상 어우르며 살아봐야 할 일이다. 줄인다.
7월7일 아버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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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벗에게 보내는 특별한 독후감]
죽음, 죽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아보라. 왕후장상인들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두렵다. 무섭다. 솔직히 죽고 싶지 않다. 노인들의 ‘죽고 싶다’는 말짱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렇다. 어느 누가 죽음에 당당하게 맞짱뜰 수가 있을 것인가.
개똥밭에 이슬로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공자, 부처, 예수 등 성인들이라고 ‘저쪽’황천(黃泉)의 일이 궁금하고 두렵지 않았겠는가. 꽁쯔는 말했다. 산 것도 모르는데 하물며 죽음의 일(사후세계)을 어찌 알겠는가”. 아예 사후세계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가 관심갖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노릇, 사람답게 사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 부처는 저승의 세계를 몇 갈래의 하늘로 나눴다. 도솔천은 육계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미륵보살의 정토를 말한다. 모든 것은 인연과 업보와 윤회의 원리로 풀었다. 예수는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에게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기도로만 매달렸다. 그들로 그럴진대 하물며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이 죽음에 맞닥뜨리면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책 두 권을 연거푸 읽었다. 한 권은 수년 전 읽었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세종서적 펴냄. 1998년 초판 발행)인데 이번에 다시 정독을 했다. 그때는 40대초여서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던 듯 하다. 엊그제 다시 읽고는 깜짝 놀랐다. 10년 후에 다시 읽으면 느낌이 또 색다를 것이다. 좋은 책이란 이렇게 세월에 따라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이다. 나이 오십줄에 들어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은 자가 있으면 x잡고 반성할진저! 제발 부탁인데 하루빨리 읽어다오.
본래 사소한 일에도 감동을 잘 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이 책의 주인공인 모리교수는 한 마디로 엄청나다. 루게릭병이 진행되면서 저승사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데도 죽음을 관조하며 삶의 철학을 얘기하는 이 시대 진정한 스승 모리는 누구인가. 모리 슈워츠는 사회학과 교수였다. 당연히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 진실인 것이다.
1995년 3월 ABC TV의 유명한 토크쇼 ‘나이트라인’ 사회자인 테드 코펠과 인터뷰를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대학때 수제자인 미치는 16년만에 투병중인 은사를 다시 찾아 ‘마지막 논문’을 같이 쓰게 된다. ‘싸가지없던’ 제자는 결국 은사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게 된다. 눈 밝은 모리교수는 학교때부터 ‘저 놈이 나중에 내 친구가 될 것’을 알아보았으리라. 단 한 명뿐인 제자 미치를 앞에 놓고 모리는 당신이 평생 배우고 익힌 온갖 지식과 정보와 지혜를 쏟아붓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매주 화요일’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스승과 제자를 보면 진짜로 숙연해진다. 한번 들어보자.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모리가 의사에게 묻는다. “죽을 병입니까?” 의사는 말한다. “죄송합니다”. 사실,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다. 죽는다는 것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할 것인가. 그러나 모리는 ‘엉뚱한’ 일을 저지른다. ‘살아 있는 장례식’. 기발하지 아니한가. 살며 알고 지낸 많은 사람들이 웬일인가 싶어 한 자리에 모여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식 사연을 들으며 같이 울고 웃는다. 사촌처제는 시를 바친다.
<내 사랑하는 사촌형부/당신의 늙을 줄 모르는 가슴은/마치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점점 여린 세쿼이어 나무처럼...> 눈물이 앞을 가린다.
당신은 모리와 같은 스승을 가졌는가. 죽어가는 선생님을 꼬옥 껴안아주고 싶은 마음과 수족을 쓰지 못하는 스승에게 냅킨을 건네주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본 기억이 있는가. 모리와 미치는 운명처럼 화요일에 만났다. 그들은‘화요일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이야기한다. 아니, 대부분은 역시 노련한 모리교수가 미치에게 코치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때론 침묵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너무 자연스러울 때가 있는 법이다. 어느 날의 모리는 강의 한 줄 하지 않고 침묵으로 말을 한다.
죽어가는 선생님 곁에서 ‘반짝 강의‘을 들으려 매주 1100km를 비행기 타고 날아가는 제자의 열정도 대단하지 않은가. 미치는 말한다. 모리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면 시간이 정지된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고, 그 자리에 있을 때면 자신이 훨씬 마음에 든다고. 멋지지 아니한가.
발부터 무릎, 엉덩이, 점점 더 위로 상체까지 마비되어 오는 상황에서 아침에 일어난다. 몸의 부분조차 제대로 만질 수 없는 상태가 어찌 행복할 것인가. 그러나 모리는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다, 딱 그 순간부터 멈추고 자기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한다. 말하자면, 그 이상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소변을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도 창피해하지 않는다. 제자가 코를 풀어주거나 밥을 먹여줘도 고맙다. 휠체어 위에서도 강의는 계속된다.
“나는 자네도 알다시피 곧 죽어. 그러니 뭐든지 물어보라구. 다 말해주고 싶어. 내 인생까지도 말야. 이를테면,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탐욕, 결혼, 가족, 사회, 용서, 의미있는 삶, 이런 주제말이야” 미치는 정말 행복에 겨운 놈이다. 저런 노스승의 총애를 받다니, 이제껏 살아본 부나비같은 삶이 순간 허접쓰레기처럼 느껴진다. 테드가 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70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그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모리는 곧바로 대답한다. “그럼요” 그렇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신이 백 살이 되면 무슨 상관인가. 삶을 달관한 모리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영원한 테마가 아닌가. 오직 가족만이 ‘정신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시귀는 오든의 작품이던가.
사랑 때문에, 이별 때문에 속상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때문에 외롭고 괴로운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모리의 탈출방법을 따라해보자. 모리는 말한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감정으로 마음껏 세수를 하라” 무슨 말인가. 두려움이 마음 깊이 파고들면 내버려둬라. 늘 입는 셔츠처럼 두려움을 입어버려라.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풀어놓고 눈물을 흘리고 충분히 느껴라. 그런 후에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내가 쓸쓸함을 느끼는 건 한 순간이야. 난 고독이 두렵지 않아. 옆으로 밀어놓고 이 세상에 있는 또다른 감정을 맛봐야겠다고 생각하라.
나이 들고 늙어가는 게 겁나고 서글픈가. 그럴 필요가 없다. 인생은 나이 만큼 사는 것이다. 모리는 말한다. 나이 드는 것이 어찌 쇠락만 있겠느냐고.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한다. 나이드는 것을 껴안는다고 말한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하는 말은 현재의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는 것 아니겠는가. 늙어 좋을 것이야 없겠지만, 살아가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어 할 것인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빨리 65살이 되고 싶다’는 말도 나오지 않을까. 요는 나이 먹는 것에 맞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젊고 건강하다는 게 부럽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부러운 마음과 현재 상태를 수긍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누구나 자기 안에는 모든 나이가 있게 마련이다. 동시에 3살이기도 하고, 20살이기도 하고, 40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세월을 다 거쳐 왔으니까 말이다. 어린애가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어린애인게 즐거울 것이고, 현명한 노인이 되는 것이 적절한 때는 현명한 어른인 것이 기쁘지 않겠는가. 어떤 나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그러니 어찌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팔팔한 시절을 부러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내가 다 거쳐온 세월인데.
묘비명에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라고 쓰일 자가 몇이나 있을까. 여기 모리의 묘비명은 바로 이것이다. 모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젊은 제자에게 충실한 강의(열 네번에 걸쳐)를 하고 공교롭게도 화요일날 마지막 길을 떠난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무덤에 찾아와 모든 것을 얘기하라고, 당신은 가만히 끝까지 들어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저 뜨거운 불길 속으로 천천히 밀려 들어갔다. 이 ‘마지막 논문’은 당연히 스승과 제자의 합작품이다.
다시 태어나면 우아하고 빠른 가젤영양이 되고 싶다던 모리는 단 하루 24시간이 건강한 몸으로 주어진다면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스위트롤빵과 차로 멋진 아침식사를 하고 수영을 하러 가겠단다. 그런 다음 찾아온 친구들과 점심을 들고 그들의 가족과 주요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무가 있는 정원으로 산책을 나가 여러 가지 나무와 새들을 구경하고 싶단다. 저녁엔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싶고 홀에서 춤을 지칠 때까지 추고 집에 돌아와 깊고 달콤한 잠을 자겠다고 한다.
얼마나 소박한 꿈인가.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던가.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하지 않는가. 원서를 찾을 수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이 책은 마침 얼마전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윤병로님이 기증한 책이었다. 군데군데 연필로 밑줄이 쳐져 있는데, 윤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읽은 대목일까 싶어 기분이 묘했다.
두 번째 책은 죽음을 앞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37살 젊은 나이에 몹쓸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랑하는 딸을 지켜보며 쓴 어머니의 ‘간병일기’이고 딸의 ‘투병일기’이다. ‘분홍옷 갈아입고 꽃길을 가네’(목경희-박혜신 지음. 1991년 초판 교음사 발간). 한국판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 다름아니다.
이 세상에 온갖 종류의 일기책이 많이 나왔지만(백수일기, 섹스일기, 목수일기, 안네의 일기, 명상일기, 구도일기...), 모녀가 엮은 이러한 간병-투병일기는 처음 봤다. 이른바 병상문학이다. 무심코 읽다 가슴이 너무 저려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책을 집어들었다가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고,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생의 한 가운데를 살아갈 중년의 나이에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딸의 고통을 지켜보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는 어머니의 애절한 기도. 그 어머니를 두고 떠나야 하는 불효에 죄송스러워 하는 딸의 피눈물 기록. 모녀는 어쩌면 친구처럼 살았다고 한다. 전주여고 선후배이기도 하다. 투병-간병일기 말고도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는 딸이 보내는 생전의 편지들을 읽다보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보는 듯 하다. ‘엄마, 저도 엄마가 되나요’ 편지를 보면 생산을 앞두고 들뜬 초보엄마의 애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딸을 유학보내고 쓴 엄마의 ‘너를 보내고’를 보면 늙은 엄마의 노파심을 읽을 수 있다.
딸의 투병일기는 87년 2월12일부터 3월20일까지 기록되어 있다. 엄마의 간병일기는 그 뒤를 잇는다. 3월21일부터 ‘분홍옷 갈아입고 꽃길을 가던’ 6월21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독실한 신앙심이 없었다면 이런 엄청난 아픔을 모녀가 어떻게 이겨냈을까. 평소의 독서습관대로 도저히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가 없다.
그 고통속에서도 엄마와 딸과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한 자 한 자 아픈 배를 끌어안고, 미칠 듯한 슬픔을 부여잡고 기록해낸 일기. 딸은 죽기 13일전 미리 책의 서문을 써놓는다. 숨이 턱에 차고 토하고 주사맞는 일만이 살아 있다는 유일한 표적인 나날속에서 회갑을 맞는 어머니를 두고 먼 길을 가야 하는 불효에 땅을 친다.
한 밤중에 “내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외치며 통곡하는 어머니가 옆에 있기에 가는 날까지 끝까지 의연해하고자 했던 딸은 서문에서 ’어머니의 사랑의 목소리가 죽음 저 편까지도 따라올 것같아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말하고 나직히 ’어머니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한다.
그후 어머니는 어떻게 살았을까. 글을 썼다고 한다. 수필가가 되었다고 한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려 5년 후에 이런 기가 막힌 ‘모녀 산문집’을 펴냈다.
어머니는 말한다. “모진 것이 목숨이어서 순서가 바뀐 채 딸애는 하늘에 있고 나는 아직도 땅에 있다”고. 그렇다 목숨처럼 모진 것이 어디 있으랴. 어머니는 감정을 오버하지 않고 마음 깊이 슬픔과 고통을 묵새기며 아름다운 수필들을 엮어냈다. 최근에 펴낸 ‘그리움의 나라’가 그중 하나이다. 한국수필문학협회와 월간 수필문학이 시상하는 수필문학상도 받았다.
박완서의 자서전을 읽는 듯, 최명희의 혼불을 읽는 듯한 느낌의 어머니 수필은 살아온 세월만큼 내공이 깊고 절제가 알맞게 되어 있다.
두 권의 책은 나에게 영원한 숙제를 던져준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모리교수의 말처럼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 말하자면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는 말인데, 돌멩이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 방법은 내가 찾아야 할 일이다.
10여년전 일본의 어느 고등학교 사회선생이 학생들에게 학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죽음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지론은 "죽음을 알아야 삶의 방향을 세울 수 있다"는 것. 필수과목으로 자리잡은 '죽음교육'과정을 개발하는데 일본정부는 해마다 4억엔을 쓰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공립 초중고교에서는 20년전부터 '죽음에 관한 책, 시, 음악공부' '장례식장과 묘지 방문' '죽음에 관한 영화-사진 감상과 토론' 등의 과목을 가르쳤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 '예비과부를 위한 죽음준비 교육'프로그램이 흔하다고 한다. '죽음학 자격증'까지 있다. 마침 서울의 한 시립복지관이 '노인 죽음 준비학교'를 열었다는 소식이다. 수강생들은 가족들에게 건넬 자서전이나 유언장을 쓰고 영상편지를 만든다. 국내 대학에도 '죽음준비 교육'이 있다. 시인 박두진은 '흙에 대해서'라는 글에서 <사람은 왜 죽는가 하는 물음은 곧, 사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에 직결된다>고 했다.
생명과 죽음, 이런 고귀한 살아가는 과정이 인간에게 펼쳐져 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4.2명으로 OECD국가중 1위라고 한다. 비극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뒷산 묘지위에서 썰매를 즐기고 숨바꼭질을 하며 자랐다. 비석을 사이에 두고 하던 '진돌이'라는 놀이는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봉분은 마치 엄마의 유방처럼 우리에게 친숙하여 죽음이 전혀 겁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죽음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멀어져 갔다. 아마도 그때쯤부터 우리의 삶이 거칠어지지 않았을까.
뒷산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버젓이 지켜보고 있는데, 차마 나쁜 생각을 하며 삶을 꾸려갈 것인가. 흙속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밤중에도 소주 한 병 차고 묘를 찾아 세상살이 하소연을 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 그런 풍경은 싸그리 자취를 감추었다.
못되면 조상탓이고 잘 되면 제 덕분일 뿐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죽음을 모르면 그렇게 되고 만다. 치기만만한 대학시절, 필자는 '명제'라는 이름의 시를 하나 짓는다. 그 구절중 기억나는 게 <우리는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하여/삶을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야 할 일이다>. 이게 무슨 돼먹지 못한 생각인가. 지금도 알지 못하겠다.
아무튼 나의 벗도 지금 열심히 몹쓸 병마와 싸우고 있다. 아니 싸운다는 말은 맞지 않다. 병과 같이 사귀며 놀고 있다. 나의 벗은 틀림없이 ‘그 친구’와 잠시 즐겁게 놀다가, 머지 않아 그 친구를 ‘빠이빠이’ 배웅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넉넉한 마음의 벗을 볼 때마다 참으로 듬직하다.
우천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