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최원현 | 날짜 : 03-11-25 22:04 조회 : 4098 |
| | | 가슴으로 불어오는 바람
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사화집 《시든 가지에 봄빛을 나르며》란 시집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시들 속에 빠져 있다. 참아내기 어려운 아픔의 고통 속에서도 소망으로 바라본 아침 햇빛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 보였을까.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수록 안으로 환하게 눈뜨게 하옵소서!' 육신의 시력을 잃는 마당에 마음을 환하게 눈뜨고자 하는 찬란한 슬픔의 소망을 보며 나는 아침 이슬보다도 더 맑고 정갈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것만이 감동적인 것이요, 크고 좋아 보이는 것만이 귀한 것은 아니리라. 슬프지만 아름다운 얘기가 있고, 고통스러운 얘기인데도 감격스럽고 승리로운 얘기가 있듯이 인간은 감정에 따라 희로애락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도 있고, 여과해 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바쁘다는 핑계로 읽을거리보다는 스위치만 켜면 현란한 색상으로 다가와 주는 영상 앞에 아무런 주저 없이 빠져들고 말던 나의 시간들, 그러나 펼쳐든 이 시집의 시, 그 간절한 목 메임은 내가 쉽게 책을 놓을 수 없게 했고, 두 번, 세 번 나를 추스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것은 어쩌면 드라마 같은 대역이 아닌 본역의 절절한 마음이 활자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으로 그대로 전해져 오는 때문인 것 같다. 아픔 속에서도 오히려 평안과 감사와 위로를 찾아내는 마음은 솔 내음처럼 향기롭고, 시냇물 소리같이 정다운 어린 날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함이 아닐는지. 사람은 자신이 가장 약한 존재임을 느끼는 순간 귀향 본능을 느낀다지 않던가.
유난히 별이 총총한 밤, 마당에 편 멍석 위에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수놓은 듯 펼쳐져 있는 은하수의 별들을 세었었다. 이따금 뒷곁의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쏴아쏴아-" 들려오고, 나는 그 바람소리를 들으며 할머니께서 읽어주시는 <유충렬전>, <박씨부인전>, <조웅전> 등 충신 열녀전의 이야기에 가슴을 조이곤 했다. 어려운 말들이라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지만 온갖 모함에 빠지면서도 종내는 적을 다 물리치고 마는 통쾌한 이야기를 밤 가는 줄도 모르고 들었었다. 키보다도 더 큰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리는 모습, 혼자 말을 몰아 적진으로 들어가서 적장의 목을 잘라 그 긴 칼 끝에 꿰어 돌아오는 모습이 어린 눈에도 선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참 좋아했었다. 특히 할머니처럼 소리 내어 읽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꽤 많은 책들보다 그때 할머니께서 읽어주셨던 충신 열녀의 이야기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실감나던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맑고 깨끗한 기억의 그릇에 처음으로 담겨지는 것들이어서 감동도 기억도 크고 오래 간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에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좀처럼 옛날의 그런 감동이 일지 않으니 모를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내 마음의 상태가 수술을 네 번이나 받은 환자로 돌아가 있었기 때문일까. 여하튼 참으로 오랜만에 작품성으로서라기 보다는 그냥 가슴으로 와 닿는 뜨거움을 맛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서점에 자주 가는 편이다. 요즘은 매일 매일 엄청난 분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서 내가 꼭 필요로 하는 책 한 권을 골라낸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 아닐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사리 한 권의 책을 골라 사들고 나올 때의 느낌은 아주 잘 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올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가 맛있게 먹어버린 음식의 뒷맛이라면, 책은 맛있게 먹기 위해 정성 들여 잘 차려놓은 음식이라고나 할까. 집안 정리를 하다 생각지도 않게 발견한 옛 벗의 편지 한 장이나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찾게 된 빛 바랜 사진 한 장에서 받는 감격처럼 사람들은 찬란한 아름다움이나 눈부신 순간적 영상보다는 희미하더라도 오래도록 남아 잔잔하게 이어지는 감동을 더 아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없는 듯이 있음으로 그래서 전혀 귀해 보이지 않아도 버릇처럼 자주 손이 가는 몇 권의 책이 늘 곁에 있다는 것을 나는 큰 행복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린 날의 정겨움이나 따스함 같은 것을 발견할 때면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얻는다. 꼭 감동적인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그것들은 내 가슴 밑바닥으로 잔잔히 흐르고 있는 그리움 가득한 추억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인의 《꽃삽》이나 정채봉의 《그대 뒷모습》, 생땍쥐베리의 《어린 왕자》, 법정 스님의 《무소유》, 김용준의 《근원수필》같은 책들을 좋아한다. 이런 책들은 내 가까이서 없는 듯이 있으면서 내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는 햇볕 따스한 고향산 언덕같이 마음을 기댈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다. 왠지 삭막하기만 하고 늘 다급하고 초조해 지기만 하는 일상 속에서 시원한 한 줄기 바람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이건 다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하나밖에 없는 친구 같기도 한 그런 책들은 마음을 살찌우기보다는 맑고 신선하게 해주는 것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멍석 위에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빛을 받으며 대숲으로 오가는 바람소리에 섞인 옛날 얘기를 듣는 풍경, 생각만 해도 아름답고 정겹지 않은가. 아무리 뛰어난 영상으로도 불러일으킬 수 없는 향수와 무한한 상상의 공간, 그런 바람소리, 풀내음, 그런 향기로움은 가슴으로만 담을 수 있는 것들이다.
잊혀질 만하면 어디선가 살며시 나타나 어린 날의 나를 일깨워 주곤 하던 삶의 스승 같은 것, 가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여 가득 채우게 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해주는 어린 날의 얘기처럼 오늘은 작은 시집 한 권을 들고 감동하고 있다. 사실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아픔을 위로할 수 없으리라. 그것은 체험해 보지 않은 상상만으로 굳게 닫혀있는 진실의 문을 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가슴을 열고 상대의 아픔을 송두리째 안을 수만 있다면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참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소중한 것은 오히려 작고 하찮은 것이듯이 우리의 마음 안에 아이 같은 마음들이 남아있게 하여 어린 날의 동화가 언제까지고 살아있게 할 수만 있다면 현란한 영상물 보다는 무한한 상상의 나라로 마음껏 나래를 펼 수 있고, 대역이 아닌 본역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참 느낌의 삶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 것은 가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는 일이다. 가슴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가슴으로만 맞아야 한다. 가슴 가득 담긴 바람은 바람이 아니라 우리의 지나온 삶 중 맑고 청량한 그리움들이고, 그 그리움들이야말로 이 땅에 한 줄금 시원한 빗줄기로, 또는 바람 한 자락으로, 더러는 따갑지 않은 봄볕 한 가닥으로 남아 각박한 삶의 한 와중에서도 작게나마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창문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헌데 나는 아직까지 내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내게 해주신 것처럼 책 한 번 읽어준 적이 없으니 저 아이들의 가슴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이제 새삼스레 읽어주마고 할 수도 없고, 또 이젠 저희들이 마음껏 읽을 수 있을 때니 오늘은 모처럼 아이들에게 책 선물이라도 해야 할까보다. 그래야 저 아이들 가슴에도 아빠에 대한 추억이 작게나마 남게 되지 않을까. ★ http://essaykorea.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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