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한국전쟁이후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특별한 여론조사를 거치지 않았지만 아마도 1997년 외환위기 즉 IMF 시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에도 이런 저런 경보등이 요란하게 켜지고 사이렌 소리가 발생했지만 설마 그렇게 되겠어, 한강의 기적이 그렇게 쉽게 허물어지겠어, 정부 당국자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니 별 일 없겠지 하면서 별 것 아닐 것이라고 한 그 경제적 난국이 결국 한국 태동이후 처음으로 국가 부도사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쫒겨났고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온 기업들이 생존을 놓고 힘든 사투를 벌였습니다. 자영업자들의 연쇄 파산이 이어졌습니다. 정말 한국이 이렇게 침몰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권은 바뀌고 새로 들어선 정권은 국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몰락해 가는 나라를 살리자고 말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바로 금 모으기 운동입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힘을 발휘할 것인가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힘을 모았습니다. 당시 조그만 백일 반지도 대거 등장해 나라를 지키는 도구로 등장했습니다. 그 순간만은 한국의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그 광경을 지켜본 한국인들은 모두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외신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환란은 진정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한국은 상당한 혼란과 어려움도 존재했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 무지막지하던 코로나 19 팬데믹도 비교적 순조롭게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문제보다 경제적 문제가 더 해결하기 힘들다는 그 조악한 진리앞에 한국은 또 한번 좌절합니다. 바로 부동산 대란입니다. 한국에 부동산 대란이 없었던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전세대란에다 부동산 난민이 속출하고 고담준론의 달콤함에 만족하던 당시 정권은 된서리를 맞게 됩니다. 촛불혁명으로 겨우겨우 되찾은 민주화흐름을 부동산 투기라는 거악이 거칠게 막아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힘들게 만든 좋은 시절의 희망의 불꽃은 그렇게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을 메운 그 거대한 함성이 부동산이란 괴물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 뒤에 벌어진 상황에 대한 언급은 생략합니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역대급 폭염을 견디어냈지만 새로운 가을을 맞을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가을에 대한 희망을 많이 가졌던 것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요즘 한국인들 가운데 편안한 정서를 가진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이라는 존재앞에 놓여 있는 산적한 과제가 너무 버겁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느 곳 하나 편안해 보이는 데가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한국이 풀어야할 초저출산문제와 초고령화사회는 너무도 강한 힘으로 한국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외국 언론들은 유모차보다 더 많은 개모차현상을 연일 보도하고 있으며 산부인과 병원은 폐업하는데 그 장소에 애견센터와 동물병원이 대체되고 있다는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고 있습니다.
낮에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갑자기 너무도 많아진 노인들의 모습입니다. 65세 이상의 노인층이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니 특히 출퇴근 시간이 아닌 시간에는 거의 대부분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조용히 목적지에 가면 그나마 편안할테죠. 하지만 온갖 음향시설을 최고도로 높이고 주변의 시선은 나몰라라하면서 자신들의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지공거사라는 지하철 공짜로 타는 인간들이라는 그 거추장한 감투를 썼으면 지하철 공사나 젊은층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지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는 그 모습에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젊은층들이 낮시간에, 특히 노인층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지하철 역사주변에는 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도 편한 구석이 없습니다. 원래 정치판이 그렇지만 요즘처럼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노태우시대에도 협치라는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한국 정치에 협치라는 단어가 과연 있는 것인지 회의감이 드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정치는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 대치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이유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동일합니다. 현 정부에서 시도하는 이런 저런 혁신도 이제 갈등수준을 넘어 공멸수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문제입니다. 의료대란의 터널은 그 끝을 예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한국의 의료계가 폭망하지 않을까 우려스런 시각이 상당합니다. 정부는 이 의료문제에 후퇴를 하는 순간 끝이다라는 의식인 듯하고 의료계도 결코 물러서면 자신들의 앞날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중재역할을 자처했지만 그야말로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향곡선을 계속 이어가고 부인주변의 이런 저런 일들이 온통 정치면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으면 되는데 한쪽에서는 죄를 지었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런 혐의가 없다고 하고 참 힘든 세상입니다. 하필 이럴때 미국에서 대선이 벌어집니다. 이제 보름정도 남았습니다. 남의 나라 이벤트에 한국에서 이렇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렇지만 이런 정국을 악이용하는 집단도 존재합니다. 북한의 우크라 파병설로 이런 저런 추측과 억측이 난무합니다. 북한의 오물풍선과 북한이 주장하는 드론의 침입 등으로 휴전선주변의 긴장감이 여전합니다. 만일에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나가서 싸우겠느냐는 질문에 10에 1명만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경제는 또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주머니 사정은 괜찮나요. 한국이 자랑하는 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하향곡선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수출이 흑자를 보인다고 하지만 상당히 쪼그라든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소비처가 사라진 탓입니다. 한국의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는 우려스럽게도 세계 최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재정부채도 엄청납니다. 전국의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인데 서울의 특정지역만 급등하는 그야말로 요상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앞에 바로 낭떠러지인데 그곳을 기를 쓰고 가겠다는 영끌족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각 기업들은 비상경영에 들어갔고 상당수 기업들에서 강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물가는 정상을 찾을 모습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그런 설문조사는 없지만 만일에 한국에서 제 2의 IMF사태가 일어나면 다시 금붙이를 가지고 나오겠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는 응답자가 과연 몇명이나 될 것인가 궁금합니다. 27년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한국의 사회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갈등이 심각한 나라로 한국이 거론된지 오래됐습니다. 물론 타국도 이런 저런이유로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형국이지만 한국은 유독 그 정도가 심한 것같습니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세대갈등, 남녀갈등, 빈부갈등, 가족갈등은 타국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가진 그 분단국의 비극처럼 한국에는 보혁갈등이 너무도 심각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 가진 숙명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온 국민이 함께 축하해야할 노벨 문학상 수상에도 반기를 들고 악담하고 스웨덴 한림원까지 원정가서 난리를 피우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이 현 한국의 상황입니다. 이제 그 갈등을 치유할 방법도 방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한국이 초저출산과 초고령화만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한국인이 함께 공유할 국민적 공통점이 없어졌다는 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국가축구대표 A매치때나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을뿐 그외의 이벤트에 같은 공통 분모가 없다시피합니다. 그냥 너와 나로 존재합니다. 그러니 가정이 싫어 무작정 뛰어나가는 1인가구가 급증하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슬픔과 아픔과 갈등을 치유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정치권인데 그 정치권이 갈등을 더욱 조장하는 갈등 유발자 결정판들 아닙니까. 희망과 비젼도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젊은층들은 결혼도 아이도 낳을 생각을 하지 않고 조그마한 강아지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맞이해 살아가는 그런 현상을 만든 것 아닙니까. 비젼과 희망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왜 결혼과 출산을 마다할까요. 그런 사회현상을 치유해야 할 정치권은 오늘도 무너져 가는 슬픈 사회현상에 애써 눈을 감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물론 여야 양측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주어진 임기와 다음 대권만이 최선이자 최고의 목표일 것입니다.
2024년 10월 2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