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또 청년 예배 때 말씀을 잘 증거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진리를 분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판단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영혼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오염된 제 영혼을 십자가 보혈로 덮어주옵소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본문 주해)
유대 총독 벨릭스가 발언권을 주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밝혀 자신의 무고함을 변증하는 내용이다.
10~13, 17~21절 :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죄목은 세 가지로서 천하에 있는 유대인들을 소요케 하고, 나사렛 이단의 괴수인 예수를 전하고, 성전을 더럽히는 자라 것이다.
이러한 고발에 대하여 바울은 벨릭스 앞에서 전부 부인한다.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 간지 12일밖에 되지 않았고 성전이나 회당이나 성읍에서 아무런 소동을 일으킨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증인을 세워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을 음해하려고 했던 유대인들이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떳떳하게 재판정에 나와 고소를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고소해놓고 재판에 출두하지 않은 유대인들의 행위를 문제 삼은 말이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여론몰이로 바울을 죽이려 하였으나, 그것이 실패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사라졌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로서, 고소인들이 법정에 출두하지 않은 것은 고소철회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4~16절 : 더둘로는 시종 바울의 행보를 정치적인 것으로 끌고 갔지만, 바울이 말하는 진실은 자신은 예배하러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1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새로운 정치 집단을 만들어서 로마 정부에 반기를 들 수 있겠느냐고 변론하였다. 그 12일 중에 4일은 붙잡혀서 구류를 살고 있었고, 일주일의 정결례 기간 가운데 마지막 날 잡혔기 때문에 1주일은 성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남는 시간은 하루밖에 없으니 어떻게 정치적인 행동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한 후 바울은 ‘그러나’ 라고 다음말을 시작한다.
앞의 정황적인 증거들, 그 뚜렷한 증거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바울의 신앙고백이다.
정황적인 증거보다 자신이 가진 믿음과 소망 때문에 모든 일에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것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과 같이 자신도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자신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 소망이라는 것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라는 것이다.
이 변명에서 바울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유대인의 방식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도, 즉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의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데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가 고대하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라고 증거 한 것이다.
22~23절 : 벨릭스가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견대장 루시아가 내려온 다음에 바울의 사건을 심의하겠다고 하면서 재판을 연기한다.
벨릭스가 그리스도교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추론하기는, 그의 아내 유대인 드루실라를 통하여 기독교의 지식을 가졌다는 것과 유대 지역을 총괄하는 총독으로서 업무상 그에 대한 정보를 꿰뚫고 있었다는 것이다.
벨릭스는 백부장에게 바울을 지키되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고 친지들의 뒷바라지를 막지 말라고 명령한다.
(나의 묵상)
변호사 더둘로는 총독 벨릭스 앞에 온갖 아첨을 했지만, 바울은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진실을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당당함의 근원적 힘을 16절로 표현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16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이유는 ‘이것으로 말미암는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께 향한 소망’ 즉 ‘부활 신앙’인 것이다.
바울은 부활의 소망이 자신의 삶에 모든 영역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소망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 삶이 달라진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소망이라면 악착같이 살아야 할 것이다. 남보다 앞서서 쟁취하고, 남들보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나도 그런 소망 속에 살았다.
하지만 복음을 알고 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성령께서 내게 참 소망을 가지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삶이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이 아니고서는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는 믿음만이 참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소망을 가진 자가 이 땅의 사람과 돈과 권력 앞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땅의 것 때문에 매이는 것이 없으니 진실만을 말할 수 있으며, 누구 앞에서나 당당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때때로 세상 것 앞에 비굴한 나를 발견하곤 한다.
세상 앞에서 위축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몸은 세상 것으로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가지만 나를 주관하는 것은 말씀임을 잊지 않기에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세상의 유혹과 시험거리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더 이상 그런 것들에 좌우되어 살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하는 일이다.
이러한 복음의 능력이 나의 삶도 바울처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 되도록 인도할 것을 믿는다.
나는 힘이 없고 신뢰할 바 없는 존재이나, 복음의 능력을 믿으니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만을 무한 신뢰할 수 있다.
(묵상 기도)
주님,
저는 사람 앞에서도 잘못하는 것이 많은 자이니
하나님 앞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자 되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 이루실 것을 믿으며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오니
긍휼히 여기시어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