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람을 별로 가리지 않는 나는
대놓고 막되먹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별 편견없이 사람을 만난다.
아마도 어릴 적에
'좋은 친구, 나쁜 친구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하라'는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자란 것이 가장 큰 동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만나고 보니 끼리끼리 교류하게 되는 것이 많지만,
나름 교류의 폭이 넓은 것을 자랑쯤으로 여기며 살았다.
물론 질풍노도의 시절에 극도로 폐쇄적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하루에도 열 두번씩 웃고 울고를 반복하던 시절도 있었다.
돌아보면 그렇게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을 때는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나도 모르게 숨어있던 상처들이 밖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나의 외부라 여겨지는 것들과 날것으로 부딪치면서, 생채기가 나고 그러다가 치유되는 과정이었던 듯 싶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상처들의 거품을 걷어내가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지구력이 조금은 길러지다보니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냈던 수많은 방어기제들이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져,
그 방어기제를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오래 걸리고 있다.
마치 습관처럼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들이라 쉽게 걷워지지를 않는다.
대개의 경우는 그 습관을 바로보기도 쉽지 않아, 자신도 모르고 지나쳐버리기 쉽다.
삶의 방식은,
대개의 경우 그 상처들의 방어기제가 가장 왕성하게 발달한 쪽으로 편향되기 마련이다.
평상시에 만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유달리 과도하게 느껴지는 부분(시쳇말로 '오바하는 경우')은
대개의 경우 관계에서 비롯되어 형성된 방어기제가 역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 스스로 방어기제를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 같아
오히려 방어기제의 역으로 행동하게 되는 경우다. 그런데 그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가 아니어서,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형성된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어서 나와 상대를 둘 다 불편하게 만들기 쉽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 상처가 생긴 원인을 알게 되어
그 원인과 화해하는 과정이 결여되면, 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중삼중으로 자신을 감싸게 되어
오히려 더 큰 마음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진정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 아니라, 살아가면서 생긴
상처들이 내가 되어버려 나는 그 상처로 절름발이가 되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꼴이다.
상처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외부와의 소통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것이 한곳에서 막혀버리면 그게 상처가 되어버린다. 그건 빨리 빨리 돌려서 풀어버려야 할 것이지
꼭꼭 감추어둔다고 해결될 것은 없다. 죽으면 해결되고 말 것도 없다. 이왕이면 몸뚱이가 제대로 움직여줄 때
빨리 빨리 해결할 건 해결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잊을 건 잊어서 남아있는 시간을 마음 편하게
놀면서 살다가 가야할 것이 아닌가.
일상에서 전개되는 자신의 행동방식을 보면서 스스로도 자연스럽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을 보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더욱 편하게 살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작업은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생각의 방식이 굳어지기 전에,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나이 먹어가면서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들이 앞으로 얻을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세상의 흐름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왔던 '나'를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은 마음,
한 마디로 무언가 지켜야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부터 보수적으로 변하게 된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일단은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손익계산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무게중심은 지키려는 쪽으로 가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영역에서 대단한 손실을 입거나,
무게중심이 뒤흔들릴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있지 않고는 습관처럼 되어있는 가장 익숙한 행동방식에 따라
비슷한 결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쉬운말로 편하지 않다면,
하루라도 빨리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선악이나, 옳고그름이라는 기준은 없다. '편한' 쪽으로 생각하면 된다.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가는
것이 생각의 기준이 되겠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세상의 트렌드(유행)대로 살아가는 것이 나름 소통의 수단이 되어 무리에서
소통하는 재미는 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것이 쌍방간의 소통이 결여된 매스미디어나 교육을 통한
일방적인 주입식 트렌드라면 대개의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어먹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등장한 것들이라, 소위 '마음의 평화'라는 것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하는가.
하핳, 이건 각자 찾을 일이다. 역사상 가장 마음이 편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찾아 들어보자.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기 아직 불편함이 남아있는 자의 말은 들어 무엇하겠는가.^^
지금 여기서 끄적거리게 된 이유는
조금 전에 '혈액형의 진실'이라는 다큐를 보고나서 답답해져서 그렇다.
이미 ABO식 혈액형놀이에 대한 개념정리는 일찌감치 끝냈기 때문에 왜 그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느냐고
어떻게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리해서 판단할 수 있냐고 일절 무시해왔지만,
간혹 만나는 혈액형 신봉자들을 보면서, 나이를 먹을만큼 먹고, 살만큼 살았으면서도 아직도 그런 거에
얽매이냐고 말하면서도 그 사람과 더불어 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이 다큐를 만났다.
가끔 만나는 지인 하나가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교류의 가부도 결정하는 양반인데,
내 혈액형은 못 맞추는 거다. 어느 정도 친해진 후에 내 혈액형을 듣고는 흠칫 놀란다.
그 사람이 꺼려하는 혈액형에 속하는 사람이 나였던 거다. 그러면서 나보고 하는 말이
'오, 그 혈액형에서 잘 보기 드문 성격을 가졌네... 특이해...'
이 양반도 '꼭 세차하는 날에 비가 온단 말이야'와 같은 비슷한 심정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좀 편하게 살자.
다큐에서는 ABO식 혈액형놀이가 유독 성행하는 곳이 일본과 우리나라라 한다.
미국에서 거리인터뷰를 하니 대개의 경우 자기 혈액형을 모르고, 알아야할 필요성도 못느끼고 있다.
다큐에서 실시한 여러가지 실험들의 종합적인 결론은 성격과 혈액형은 별 상관관계가 없고,
오히려 역사적으로 차별을 불러일으킨 위험한 생각이라고 경고한다.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혈액형놀이가 성행하는 것은, 집단주의 문화가 대세인 공동체 안에서
자신에 대한 에고가 형성되기도 전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나 품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라기 때문에 그렇다는 결과가 내려졌다. 그러니 늘 다른 이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왕따나 이상한 사람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개성 개성 하지만, 대개의 그 개성은 패션 브랜드나, 얼리아답터들의 최첨단 유행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그건 개성이라기보다는, 장사해먹기 편한 착한 손님들, 한 마디로 '호구' 되겠다.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은
'바넘현상'-심리학에서 누구에게나 사실일 수밖에 없는 정보들을 자기에게 특별히 사실인 것처럼 믿는 현상-에
관한 실험이다.
설문의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당신은 때로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고 상냥하지만 또 어떤 때는 내향적이고, 말이 없고 조심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당신 성격에 약점들이 조금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것들을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와 같은 설문을 ABO식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을 분류해놓고 설문지를 나눠주고 그 결과에 대해 물어보았다.
혈액형대로 맞춤한 서로 다른 설문이라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다 똑같은 설문지다.
대답들이 걸작이다. 거의 다 자기와 맞다는 사람들이 70%가 넘는다. 그럼 도대체 혈액형별로 나누어놓은 것과
성격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되느냐는 말이다.
혈액형놀이가 유행처럼 번졌던 것은 나름대로 개념정리하기로는
지금 시대는 매스미디어가 점령한 시대라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문화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착하디 착한 호구들이 세련된 소비자가 되어 개성을 부르짖는 시대이고,
외부에 드러난 피아식별의 도구가 '나'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트렌드에 따라 남들 눈치 봐가며 꾸며대는 것이라 이놈저놈 구분이 안가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가장 손쉬운 피아식별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ABO식 혈액형놀이라는 것이 나의 개념정리였다.
지금도 이 개념정리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소싯적에 칼융과 프로이트의 책들을 뒤적거리긴 했지만,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자세한 용어에 대한 것은
그나마 아는 것도 다 까먹어서 잘 모른다. 그냥 내 경험상 주절거린 것이니, 개념정리가 안 되어 혼동을 주는 것이 있으면
애놈이 무식해서 그러려니 하고 지도편달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결론.
좀 편하게 살자.
사는 건 노는 거다
첫댓글 ㅋㅋㅋㅋㅋ 결론이 깔끔하십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
다름을 인정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거기에는 열등감 우월감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것이라,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다면, 최소한 내가 다른 이들에게 존중받기 위해서는 나또한 다른 이를 존중해야한다는 기본적인 룰이 서로에게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먹고살기 바쁜 경쟁사회에서 남들을 인정하면서 자기를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를 못했기에 우리는 맨날 남들과 비교하면서 박터지게 사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해요. 흠...
좋네요. ㅎㅎ 편하게 살자는 것. 거치적 거리는 것들, 불필요한 것들을 가득 쌓아두고 살 필요는 없죠.
하모예~
형님이 제시한 실험의 결과가 바로 '바넘 효과' 라지요. '꼭 내 이야기 같은 것...'
좋은 글입니다(이 곳에 유령회원이나... 공감되는 부분 많아 무례히 댓글..)...
에유, 무례하긴요. 공감하자고 글도 올리는 건데요. 뭐. ^^
"편견" 그것이 눈에 잘 보이는 것이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든... 보다 견고한 시선과 응시로써 녹여 없애야하는 것(그래서 모든 종류의 잘못된 "힘"의 행사를 차단하는 것)이 "순수자아"를 살아남게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극단적으로)...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보다 견고한 시선과 응시'라는 것이 늘 앞에 대상을 두고, 상대적인 것에 머물게 되면, 그리고 그거 계속 유지하려고 하면 그것도 괴로움이 되는 듯 해요. 그건 그냥 그런 것. 내버려두어야지 그것이 습관처럼 되면, 거기에는 이 세상 부대끼는 것보다 더한 권태와 외로움을 느끼는 듯해요. 그걸 내버려두는 건, 애시당초, 그건 잡을래 잡을수도 없는 것이기에 냅둬버릴 수 밖에 없거든요. 흐르는 강물이 흘러갈 때 강물이지 손바닥으로 떠올렸을 때는 더 이상 강물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요. '순수자아'가 고정될 때 그것도 순수를 고집하면 또 다른 '나'로 규정되고 지키려고 하죠... ^^ 즐거운 하루 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당~ㅋ글 읽고나서 든 생각인데, 언젠가 치매햄이랑 햄이랑 한 술자리에서 치매햄께서 "너대로 살아. 너는 너니까" 라고 정리해주신 적이 있죵...저도 무서웠나봐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게 두려웠나봐요...ㅎ 근데...생각한대로 껍질 깰거임~크하하하 참. 근데 만두 맛 괜찮았나용? 그것도 궁금..ㅋ
오~ 나도 얘기한다는 게 깜박했네..^^ 만두 맜있더라. 만두속도 맛있고, 만두피도 쫄깃한게 맛있더라. ㅎㅎㅎ 덕분에 입이 호강했지..ㅎㅎㅎ 쌩유~
아~~~쉐이 너무길어 줄여 ㅋㅋ
에유~ 잉간아!~ 너야말로 방어기제 빨리 작살내야 장가간다니깐...
사는건 노는거다.
뭐 혈액형을 믿는거나, UFO를 믿는거나 ^^;;
난 Ufo 믿는디... 허허헛
우와 글 잘 읽으셨습니다. 근데 애술가님 혈액형은 뭐에요? ㅎㅎ
앙 가르쳐주~~쥐~!!ㅎㅎㅎ
혈액형을 보고 깜딱 놀랬다........................................................RH 나누기형????ㅋㅋㅋ
단순하게 사는게 장땡입니다 그려~~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