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삼성 라이온즈 |
◆ 수비밖에 없었다
1996년 인천고를 졸업하고 계약금 2억8000만원을 받으며 현대에 입단한 박진만은 데뷔 첫 해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다.
김재박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정진호 수석코치의 수비조련으로 빠른 성장 곡선을 그렸다.
특히 약관의 나이에도 유격수 수비만큼은 톱클래스로 평가받았다.
타고난 유연성과 강한 어깨에서 나오는 넓은 수비 범위와 정확한 송구 그리고 경기를 읽고 타구를 예측해 포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적어도 수비 능력만큼은 초고교급이었고, 프로에서 체계적인 훈련으로 한 단계 더 발전했다.
그러나 박진만에게도 콤플렉스는 있었다. 바로 타격이었다.
현대 초창기 때 박진만의 타순은 언제나 9번이었다.
물론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하게 빛난 동료 타자들의 영향일 수 있고,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라는 위치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애석하게도 박진만의 타격이 너무나도 형편없던 탓이었다.
데뷔 첫 해에는 2할8푼3리라는 수준급 타율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1할8푼5리라는 극악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지금도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 역대 한 시즌 최저 타율로 남아있다.
박진만의 타율은 1998년(0.203)에도 멘도사 라인을 맴돌았고, 1999년(0.263)에도 그리 돋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0년부터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타율 2할8푼8리를 기록했고, 2001년에는 정확히 3할 타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22홈런을 때려내며 공포의 9번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부터 현대에 둥지를 튼 김용달 타격코치의 조련이 타격 상승의 밑거름이 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박진만의 타율은 2002년에 2할1푼9리로 다시 곤두박질치다 2003년에 2할8푼3리로 올랐고, 2005년에는 또 다시 2할4푼9리로 떨어지는 등 등락이 심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주식가격처럼 박진만의 타율은 믿을 것이 못됐다.
◆ 타격에도 눈을 뜨다
그래도 박진만이 막강 현대에서 주전멤버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뛰어난 수비 덕분이었다.
전성기적 박진만의 수비는 물 샐 틈조차 없었다.
유격수는 포수 다음으로 타격보다 수비가 우선시되는 포지션이다. 자고로, 포수-유격수-중견수로 이어지는 센터 라인이 강해야 강한 팀이다.
그 중에서도 내야 전체를 주도하는 유격수 수비는 투수들에게 심리적인 안정 또는 불안을 안길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수비가 좋은 유격수는 15승 투수와 비견될 정도다.
박진만의 타격도 그가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이기에 용납될 수 있었다.
김민재(한화)·김종국(KIA) 등도 박진만과 함께 두 차례씩이나 한 시즌 최저 타율을 기록했지만, 수비 하나만으로 주전 자리를 지켰다.
전성기적 이종범(KIA)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것도 그의 포지션이 바로 유격수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격수라는 포지션은 수비가 우선시된다.
현실 감각이 크게 떨어지는 감독이 아닌 이상, 타격이 좋고 수비가 나쁜 유격수보다는 타격이 나빠도 수비가 좋은 유격수를 택하는 게 정석이다.
수비만 좋은 유격수였던 박진만은 이제 점점 타격도 좋은 유격수로 발전해가고 있다.
손등 부상으로 다소 고전한 2005년을 제외하면 2003년부터 박진만은 줄곧 2할8푼대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유격수라는 것을 감안하면 고타율이다.
게다가 두 자릿수 홈런도 고정적으로 때려내고 있다. 한 방까지 갖춘 셈이다.
특히 지난해 전반기 막판부터 타격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기록하고 있는 타율은 2할9푼2리다. 베테랑이 되면서 노림수가 좋아진 것도 한 요인이며 방망이 헤드를 투수 쪽으로 향한 타격 준비동작도 박진만의 밸런스에는 딱 맞는다는 평. 지난해부터 5번 타자로 자리매김한 박진만은 이제 당당히 클린업 트리오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공수 겸장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 최고 유격수 롱런 향해
◇ ⓒ 삼성 라이온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