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작가는 조용한 시간에 모닥불을 피웠다
탁 탁 탁 하면서 모닥불의 장작이 튀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하도 정겨워 물끄럼히 불을 바라본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오로지 불꽃만을 바라 보고 있다
작은 불꽃이 바람에 날리면서 이리저리 춤사위를 보여 준다
그 불꽃의 방향에 따라 나의 눈동자도 이리저리 운동을 한다
그 불꽃을 바라보믐 마음은 무념 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른다
그 불꽃을 바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청춘은 불꽃이다
그 불꽃처럼 뜨거운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불꽃의 밝음으로 세상을 비춰 주리라....
그 불꽃으로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청춘이 있다
그리고 그 불꽃이 서서히 힘을 잃어 가게 된다
뜨거움도 그렇게 사그러져 가고 있는가 보다
열기가 사라진 모닥불이 그 생명을 다 하려나 보다
그 사그러져 가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검을 숯덩이로 바뀐
나무 등걸을 물끄럼이 바라 본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장작개비 하나를 들어서 사그러져 가는
잔불 위에 올려 놓는다
연기가 나면서 잔불에 불이 다시 붙어 오른다
그 불꽃이 서서히 살아 나면서
다시 환한 불꽃 더미가 되려 하면서 다시 뜨듯해 짐을 느낄때
새로 넣은 장작개비 안에서 개미 한 마리가
횡급히 더위를 못참겠는지 기어 나온다
그러더니 다시 장작개비 자기집으로 들어 가서는
자기가 낳아놓은 애벌레를 물고 피난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는 동작을 반복 한다
그러다 그 개미는 활활 타 오르는 장작불에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산화해 버린다
아!
그런거로 구나
개미가 그렇게 불구덩이 속에서도 자신들의 가족?을 위해
자신은 희생의 제물이 되어 지는구나
그런게 그들의 세상이구나
그런데 그런 그들의 세상을 누가 가르쳤느냐?
훌륭한 선생님 께서 가르치셨는가?
훌륭하신 부모로 부터 배워 오셨는가?
그를 알수는 없는일 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행동을 실천으로 입증을 한다
그런게 그들의 삶이다
그 삶의 방식에 감동을 받는다
자신을 죽여 후손을 보호 하는 그들의 모습이 성스럽다
교회의 전례력으로 요즈음을 사순 시기 라고 한다
순(旬)이 주는 의미는 열흘이라는 의미를 말 하는데
더 하여 거룩하게 변하여질 나의 기간을 말 함이
아닐까 ? 라는 주제 넘은 생각을 하게 되는건
아직도 덜 여문 볍씨 같아서 그런가 ?
부활을 맞이 하기 전 40일 동안 이라는 그런 기간이다
그런 기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희행과 고난을 묵상 한다
묵상을 통해 나를 키워 가는 그런 시간이다
묵상을 통해 나를 돌아 보는 거룩함의 시간들...
그런 가운데 나를 키우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교정 받아야 한다
교정의 과정이란?
개미의 생활을 통해 내가 성장 하고 발전 하는 모습을
볼수 있음을 의미 하는 하나 하나의 순간들 이라고 생각 한다
미물인 개미의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면서
고등 동물인 나를 돌아 보는 그런 마음을 채우는 나 라는
개체를 돌아 봐야 하는건 분명히 나의 발전이고
나의 성 스러움을 키워 내는 일 이다
따가운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
따가움 이란 그런 햇살의 사랑이 잔디 위에 네린다
어제와 다른 모습의 푸르름이 더해지는 잔디밭
그 곳에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봐야 할것 같다
내 발 밑에서 움찔움찔 새 생명을 준비 하는 많은 씨앗들
그 씨앗 들의 거대한 합창을 들어야 할것 이다
그 합창곡은 베토벤의 운명의 노래 이다
운명이란?
힘찬 생명의 협주곡이 아닐까?
협주곡은 나 만의 특별한 음색이 아니고 함께 울리는 소리의 합인데
그 합의 소리가 바로 내 소리는 작아야 하고
현의 움직임은 그들의 눈동자와의 속도를 조절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위대한 운명은 탄생 되어 지고
아름다운 생은 그렇게 만들어 질것 임을 알아 차려야 하겠다...
거룩함(聖) 은?
바로 혼자서는 살아 갈수 없음을 깨닫는 일로 부터 출발 한다
개미새끼를 불로 부터 구한 그런 모정이 있음을 알아낸 개미가
또 다른 개체를 위해 온몸이 새까맣도록 땡볓에서 움직이듯
그들의 수고를 알아 내는게 너와 나로 부터 출발 되어 져야 된다
첫댓글 카페에 글이 올라오니 카페에
들릴 맛이 나네요~~감사^^
심오한 글이라 생각하며
읽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