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9.17일 최보식 언론에 장석영 대한언론인회 회장이 올린 글인데 글중의 " 세상에 가장 허망한 약속이 ‘나중에’ ...나중은 없어요"라는 구절과 함께 가슴에 진한 울림을 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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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 중환자실로 찾아갔다. 중환자실의 가족 면회 규칙은 아주 엄격하다. 하루에 한 번 오후 1시부터 20분간이 면회 허용시간이다.
4층 병실 앞에서 환자의 이름을 대고 자신과의 관계와 성명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등을 방문 일지에 기재하고 유의사항을 듣고 병실로 들어간다. 그것도 가족 한 사람만 가능하다. 교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
아내는 내과병동에 맨 오른쪽 창가에 누워있다. 담당 의사선생의 말은 현재 자기 심장의 박동이 어려워 기계로 도와주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환자의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의식이 돌아오는데 현재는 그런 상태가 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그러나 다시 심정지가 되면 그때는 회복이 안 된다고 한다. 연휴가 끝나면 뇌 사진을 찍어서 현재 상태를 다시 정확히 확인해보겠다고 한다.
오늘 면회는 우리 가족이 섬기는 강남교회 담임목사님이다. 아내는 한 달 전에 부목사님의 심방을 받은 뒤 나에게 담임목사님을 뵙고 싶다고 했다. 나는 미리 병원 정문 앞에 가서 기다리다가 목사님이 도착한 후 병원 본관 4층 중환자병실까지 안내해 드렸다.
담임목사님은 “오늘 한번만 죄를 짓는다“면서 환자의 사위라고 적고 들어갔다 왔다. 목사님은 면회 허용시간 내내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나왔다. 그리고 병실 밖에서 우리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어제 나 혼자 들어갔을 때는 어찌나 목이 메는지 기도를 제대로 못했다. 그래도 아내의 찬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아내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목사님을 배웅하고 사위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동네 친구가 전화를 걸어 시간이 되면 차 한 잔 하자고 한다. 카페에서 친구는 ”늙으면 나중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어느 명사가 초청강연에서 ‘행복’이란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하다가 청중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여러분,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가야지, 다리가 떨릴 때 가면 안 됩니다.”
그러자 청중이 한바탕 웃으며 “맞아, 맞아, 여행은 가슴이 떨리고 힘이 있을 때 가야해 다리 떨리고 힘없으면 여행도 못가는 거야”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했다.
“말씀은 좋은데 아이들 공부시켜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하고, 해줄 게 많으니 여행은 꿈도 못 꿉니다. 나중에 시집, 장가 다 보내고 그때나 갈랍니다.”
하지만 나중은 없다. 세상에 가장 허망한 약속이 바로 ‘나중에’라는 것이다. 무엇인가 하고 싶으면 바로 지금 실천에 옮겨야 한다. 영어로 ‘Present’는 ‘현재’라는 뜻인데 ‘선물’이란 뜻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라는 시간은 그 자체가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친구의 지론 같았다. 나도 절대 동의한다고 했다.
아내가 입원하기 두어 달 전쯤일 것 같다.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나는 바보처럼 산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보세요. 아들 유학 보낸다고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입고 싶은 것 못 입고 했잖아요.”
“그런 면은 있지만 그래도 당신이 아껴 쓰느라고 그랬지, 못 먹고 못 입고 하지는 안 했어요. 무슨 영화배우들처럼 입고 싶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하고 국내외 여행을 얼마나 많이 다녔어요.”
“그건 그래요. 당신 덕분에 국내 여행은 거의 안 가본 데가 없어요.”
나는 한 예를 들었다.
“암 환자들이 의사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대요. 선생님, 제가 예순 살이 되면서부터는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살려고 평생 아무 데도 다니지 않고 악착같이 일만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암에 걸려서 꼼짝도 할 수가 없네요. 차라리 젊었을 때 틈나는 대로 여행도 다니고 즐길 걸 너무 너무 억울 합니다.”
의사 선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은 정말 갈비가 먹고 싶네. 그래도 내가 평생 먹지도 않고 쓰지도 않으면서 키운 아들 딸이 셋이나 있으니 큰 아들이 사주려나, 둘째 아들이 사주려나, 아니면 막내딸이 사주려나? 그러나 어느 자식이 일하다 말고 '어! 우리 엄마가 지금 갈비를 먹고 싶어 하네, 당장 달려가서 사드려야지!' 이렇게 하는 아들, 딸이 있을까요? 없지요.”
의사가 이어서 말했다.
“내 말 잘 들으세요. 지금 갈비가 먹고 싶은 심정은 오직 자기 자신만 알지 다른 사람은 몰라요. 그러니 갈비를 누가 사줘야 하나요? 내가 달려가 사먹으면 됩니다. 누구 돈으로 사먹어야 하나요? 당연히 자기 지갑에서 나온 돈으로 사 먹어야지요. 결국 나한테 끝까지 잘해줄 사람은 자기 본인 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또 하나 명심할 것은, 나의 행복을 자식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자주 찾아와 효도하면 행복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껴안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가만히 앉아서 누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정신상태부터 바꿔야 합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가 알아서 사먹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행복한 일을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의사의 말씀에 아내도 수긍이 간다고 한다.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중은 없어요. '지금'이 당신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부터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나중에’라는 말은 지구 밖으로 멀리 던져 버리세요. 지금 당장 실천하고 행동해서 행복의 기쁨을 누리세요. 자, 먹고 싶은 게 뭐예요. 내가 쏩니다. 입고 싶은 것도 말하세요. 내가 번 돈 내가 모은 돈 내가 안 쓰면 다른 사람이 씁니다. 짧은 인생, 나중은 없어요.”
내 제안에 아내는 자기가 쏜다고 한다. 무척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해줬더니 크게 동감한다고 했다. 친구는 자기도 벌어놓은 재산이 얼마 안 되지만 쓰지 않고 남겨놔야 결국은 벌지 않은 아들딸 들이 모두 쓰게 된다면서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아내와 갈비부터 먹으러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출처 : 최보식의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