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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열린선원 원문보기 글쓴이: 자비
가을
1934 <종이 · 담채> 170×11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수수밭을 배경으로 세 인물이 크로즈 업되어 있다. 수수이삭과 낫을 들고 가는 소년과 그리고 잠자는 아이를 업은 처녀가 낮참을 머리에 이고가는 이른바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다.
어디까지나 동양화의 화구로 그려 졌을 뿐, 화면에 담긴 정신은 거의 양화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특히 평면화법을 위주로 하면서도 그러나 사물 하나하나의 묘법에는 약간의 음영(陰影)이 들어 있어서 어딘가 입체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와같은 화법은 이미 이당(以堂)에 의해 실험되었는데, 운보(雲甫)의 이 작품은 스승에게서 영향된 것이라고 보겠다.
목단(牧丹)
1935 <종이 · 담채> 37×93㎝, 고대박물관 소장
정통적(正統的)인 산수화를 그리던 시대의 작품이다. 운보(雲甫)는 이당(以堂)의 문하에서 산수를 배웠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결코 이당(以堂)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통적인 화법을 익혔으며, 그것을 기반으로 자기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이 작품은 사군자(四群子)의 화의(畵意)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두 송이의 활짝 핀 모란이 화면 아래로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막 필까 하는 봉오리가 윗쪽으로 하나 보인다. 더욱 한쌍의 원앙새가 나뭇가지에서 교태를 부리고 있는데 모란 꽃에 비해서 그것들은 너무 왜소해 보인다.
닭과 칠면조
1957 <종이 · 담채> (각) 139×69㎝, 작가 소장
전통적인 문인화의 필치로 사물을 다루고 있다. 한 쌍의 닭과 칠면조, 그러나 이들 사물들은 화가의 내면의식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의 고유한 존재방식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한 쌍의 닭은 싸우고 있는 형태로 그리고 다시 한 쌍의 칠면조는 애무(愛撫)하는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문인화의 그것처럼, 우주의 기본질서를 상징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구멍가게
1952 <종이 · 담채> 55.5×69㎝, 작가소장
배경을 약분(단순화)하고 대상을 평면적으로 처리하는 화법은 본질적으로 동양화의 것이지만, 그러나 소재가 시민의 일상생활로 집중되는 것은 역시 양화의 정신이라 하겠다. 이를테면 동양화의 기법으로 시민시대의 이념을 담는 실험은 이미 1910년대의 일본에서 시도되었던 것이다. 소위 일본화라는 것이 그것이다.
어찌되었건 문제는 동양화의 재질이나 기법을 토하여 얼마만큼 양화정신<근대정신>을 소화시킬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체로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구멍가게의 풍경이 묵직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투명해 보인다.
복덕방
1953 <종이 · 담채> 73×96㎝, 작가소장
시민사회의 풍경이 투명하게 보인다는 것은 결국 대상이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대상이 화가의 심리적인 필터를 통해 변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덕방 영감의 존재도 그러하려니와 집들이 묵직한 실재감을 잃고 있으므로 해서 현실감이 없다. 결국 우리는 수채화에서 느끼는 심경묘사와 같은 가벼운 소나타의 느낌을 받게 된다.
보리타작
1956 <종이 · 담채> 83×265㎝, 작가 소장
운보(雲甫)의 작가적인 바탕은 초지일관 한국적인 미학을 구현한다는데 있다 하겠다. 그러나 그의 한국적인 미학의 탐구는 표현양식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법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추구하는 것이다. 화면 전체에 타작을 하는 풍경이 가득히 채워져 있다. 낱가리를 나르고, 훑고, 혹은 찧고 하는가 하면, 몰려드는 닭을 쫓는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군(群)
1959 <종이 · 담채> 69×138㎝, 작가 소장
병풍용의 작품이므로 역시 옆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어 있다. 머리에다 짐을 이고가는 일단의 한국 여인들, 물론 거기에는 아이들과 노인들도 있지만, 대체로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있는 피나민과 같이 보인다.
단순히 선묘로 처리된 듯한 그림은 배경이 담백하게 처리됨으로써 한결 더 선명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매우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유산(遺産)의 이미지
1960 <종이 · 담채> 135×169.5㎝, 작가소장
색면을 조립하여 한 덩어리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촘촘하게 생긴 형태로 부터 시작하여 크고 한결같이 섬세한 색채묘법(色彩描法)에 의해 수식되어진다. 얼핏 점묘법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인상주의와는 무관하다 하겠다.
비파(琵琶)
1960 <종이 · 담채> 66×67.3㎝, 작가소장
이 작품은 정물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정물은 물론 양화적인 의미의 정물은 아니다. 색채의 묘법(描法)이 매우 거칠고, 또한 형태와 배경이 평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어디로 보나 사물의 존재방식을 추적하려는 입장이 아니고 도리어 사물의 입장을 박탁하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나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대상으로서의 사물이 화가의 심리적인 어떤 안전대를 통하여 번역되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한국적인 미감을 추적하려는 집념의 한 반영물이라고 하겠다.
청자(靑磁)의 이미지 A
1965 <종이 · 채색> 121×86.5㎝, 작가 소장
색채의 묘법에 특별히 시선을 끌게 만든다. 세 개의 원형에서 유독 중심에 있는 부분이 희미하고 아래와 위에 있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유의할 점은 색감이다. 얼른 도자기의 색채를 연상케 하는 차분하고 담담한 색채가 전체의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는 철저하리만큼 추상적인 의욕이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청자(靑磁)의 이미지B
1965 <종이 · 채색> 121×86.5㎝, 작가 소장
60년대의 작품에는 주로 감각적인 터치로 사물을 가볍게 처리한 것들이 많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과거의 일본적인 스타일의 화법에서 탈피하는 과정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그러한 경향 속에서도 특별히 괄목할 만한 것이다. 거의 우연하게 이루어진듯한 형태를 존재케 하기 위해서 무수하게 반복되도록 색점이나 색반, 색선을 찍어가고 있다. 얼른 그것이 점묘적인 효과를 낸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색점의 집적(集積)과 흰 배경과의 대비를 노린 듯한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매우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겠다.
탈춤 A
1965~6 <종이 · 담채> 48×38㎝, 작가 소장
한국적인 회화를 탐구하려는 그의 노력은 우선 소재정신에 집중된다고 하겠다.옛날의 도자기나 공예품은 물론이지만, 탈춤과 같은 민속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농묵(濃墨)으로 중요한 선이나 면을 만들고, 약간의 색채를 써서 농묵의 영역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감이다. 빠르게 처리된 선이나 면이 담백하게 나타남으로써 동양화의 특징인 직관적인 분위기를 과시해 보인다고 하겠다.
탈춤 B
1965~6 <종이 · 담채> (각) 46×49㎝, 작가 소장
탈춤을 소재로 하여 그린 작품의 시리즈나 줄로 선을 사용하여 탈춤의 율동을 잡고 있다. 색채를 얼룩얼룩하게 만듦으로써, 어딘가 분위를 텁텁하게 만들고 있으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의할 점은 배경의 단순화이다. 배경이 단순화됨으로써 , 탈춤의 인물들이 강하게 돋보이는 동시에 또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나비의꿈
1968 <종이 · 채색> 32×39㎝, 작가 소장
두개의 커다란 색반(빨강, 노랑)을 두 개 만들고 가운데로 묵(墨)을 한 줄로 흘러 내리게 하고 있다. 여기선 번지기라기보다는 기름과 물의 물리적인 갈등이라고 할 수 있며, 나비의 꿈은 우연히 얻어진 형태를 정리해 보려는 데서 탄생한 제목이었다고 하겠다.
준동(蠢動)
1968 <종이 · 채색 > (각) 32×39㎝, 작가 소장
번지기의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다. 동양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번지기의 기법은 이미 60년에 묵림회(墨林會)가 시도한 바 있다. 즉 앙포르멜의 미술 이념을 번지기로 소화하려 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는 묵색의 번지기가 아니라, 색채의 번지기로 되어 있다. 빨강, 노랑, 그리고 묵을 화면에다 던진 듯이 튕기는 물리적인 반동이 그대로 흔적으로 남아 야릇한 미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부엉이
1972 <종이 · 담채> 100×182㎝, 작가 소장
엷은 담묵(淡墨)으로 배경을 깔면서 자연의 일각(一角)을 크로즈 업 시키고 있다. 동양화의 정통적인 수법으로 자연의 생동함을 드러내 보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뻗어나간 가지 위에 다섯 마리의 부엉이가 앉아 있다. 앞, 옆, 혹은 뒷모습으로 각기 자기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양화의 묘미는 자연이 단순히 자연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우주적인 상징이 된다는 데 있다. 부엉이를 통하여 우주의 깊은 뜻을 되새기게 되는 것은 동양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한 것이다.
회고(回顧)
1976 <종이 · 채색> 52.5×45㎝, 작가 소장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운보(雲甫)의 작품에는 이른바 「바보산수」라는 것이 등장한다. 그림의 성격으로 보아서는 정통적인 산수화의 세계를 결합시킨 것인데, 실제로 그가 표현한 것을 보면 매우 희화적(戱畵的)으로 나타난다. 고구려 시대의 고분 벽화에 보이는 수렵도를 재현시킨 것인데, 화가는 여기에서 화의(畵意)를 바보스럽도록 회화 시킨다.
하과(夏果)
1970 <종이 · 수묵 · 채색> 164×512㎝, 작가 소장
옆으로 길게 늘어진 병풍에 알맞는 그림이지만 그러나 그런 구도의 특수성과는 관계없이 과일과 가지와 잎사귀의 존재가 각이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음이 실감된다.
군마(群馬)
1976 <비단 · 수묵> 148×316㎝, 작가 소장
병풍그림이므로 옆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어 있다. 일군(一群)의 말들이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나 우리들의 시선을 모으면서 횡단하고 있다. 크게 벌린 입모양이며, 또 한껏 오무린 다리나, 흩날리는 털을 모아 굉장히 급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게 한다.어떤 박진감이 느껴지는 것은 배경을 단순화시키는 데서 오는 효과라고 보아진다.
꽃과 새
1976 <종이 · 채색> 65×63㎝, 작가 소장
역시 민화적인 소재를 도입한 실험적(實驗的)인 작품이다. 꽃과 새, 그리고 바위들이 모두 문인화의 소재이면서도 그러나 그 표현방법이 민화적인 데가 있다. 사물의 형태를 왜곡시켜가는 방법이 그것인데 그러나 바위의 표현법에는 또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畵)에서 볼 수 잇는 번지기의 수법이 가미됨으로써 어딘지 모르게 민화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꽃 아래에 놓여진 바위의 한 가운데에 앉아 있는 새의 모습은 나무만치나 바위와의 친근감(親近感)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점이 있다고 하겠다.
군안 (群雁 ) 1970 <종이 · 담채> 142×316, 작가 소장
스케치
스케치
스케치
以堂과 雲甫
흥락도(興樂圖 )1959
스케치
사자놀이(스케치)
스케치
제작중인 김기창
26세 때의 김기창
雲甫 金基昶은 以堂의 문화생으로부터 그림을 시작하였다. 그런 탓으로 그의 그림은 처음부터 동양적인 의미의 조형, 이른바 사생력이 그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 사생력(寫生力)은 이당(以堂)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완전히 과거의 양식으로 굳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것이었다. 그런 점은 그의 초기작품인 <가을(1931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비록 인물이 전면으로 확대되는 등 단조로운 구도법은 이당(以堂)에게서 영향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생생한 인물묘사나 혹은 현지(現地) 감각을 살린 소재의식(素材意識)은 단연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자면 그의<가을>은 아직도 「선전」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소박한 민족의식을 정략적으로 장려하려 했던 식민지시대의 테에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53년을 고비로해서 운보(雲甫)의 세계는 완전히 이당(以堂)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다. 결국 이당(以堂)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전통회화의 교조성에서 벗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인의 악사(樂士)>나 <무당>, <탈춤>과 같은 과도기적인 작품을 거쳐서, 60년대의 유연성을 과시해 보이는 작품들, 이를테면 <나비의 꿈>, <태고(太古)의 이미지> 등에 이르면 완전히 서구적인 현대미술의 문제의식과 합류하게 된다.
그는 강렬한 국수주의자의 풍모를 지닌다. 그러나 그의 국수주의는 물론 회화의 양식성을 존중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재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소재주의라는 말은 바로 그런 뜻이다.
운보(雲甫)의 70년대, 이른바「바보 산수(山水)」계열의 작품에 주목해야 된다. 왜냐하면 이들 「바보산수」는 결국 그의 소재주의가 민화적인 세계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시세에 민감한 일단의 젊은 화가들과 같이 전통적인 미학을 서구적인 것으로 개혁해 가려는 국제주의적인 경향에 섣불리 동조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완고하고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결코 그의 작품들은 과거적인 것에 주저앉지 않는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한국적인 미학이란 바로 그러한 태도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산 그리고 물>, <꽃과 그리고 새>, <사람과 그리고> 등의 시리즈는 분명히 그에게서만이 찾아볼 수 있는 개성적인 그림들이다. 사슴, 학, 해, 구름, 불로초, 산과 같은 소재들, 정확하게 말해서 전통적인 도상(圖像)들은 모두가 과거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전혀 그의 그림에서 새롭게 되살아 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의 작품들은 동양화가 지니는 미감이나 흔히 유현성이라고 부리는 신비성이 제거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해서 그의 도상들은 어떤 의미에서 동양화의 유현성에서 해방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두고 동양화의 속화(俗畵)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 속화(俗畵)는 시민사회적인, 이른바 근대적인 의미의 속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스러운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극적인 재 창조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전망에서 보자면 분명히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반문명적인 사물들은 인간적인 친근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이 그의 작품을 주목케 만드는 점이 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와같은 인간적인 친밀성은 적어도 전통적인 지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운보(雲甫)의 작품들은 비록 교조적인 기반을 철처하게 청산하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지향하는 바가 보다 더 사회적인, 이른바 현실적인 구상성(具像性)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결 의의있는 일이라고 평가된다.
<韓國現代美術>
첫댓글 참 좋은 작품 감상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잘,,,보고 모셔 갑니다.
감사 합니다.
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