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핀란드 슈타이너 학교의 교감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슈타이너 학교는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해 독일에서 시작되었고,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적 자유를 획득한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발도르프 학교들이 있는데요, 유럽 국가에서는 발도르프 교육이 일찍부터 주류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핀란드의 슈타이너 학교는 다른 공립 학교들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해요.
일반학교보다 몸과 정신, 영혼의 조화를 통한 전인교육을 강조하기 때문에 예술과 만들기 수업을 강조하는 슈타이너 학교. 사실 핀란드에서 발도르프 교육이 이렇게까지 잘 자리잡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제가 사는 동네에도 슈타이너 학교가 있다고 해서 너무 반가웠어요. 교수님의 초대로 한국에서 발도르프 인형극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학교에 직접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 글과 영상으로만 만났던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어요.
슈타이너 학교가 일반 학교와 다른 점
교감선생님과 나눈 대화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핀란드의 슈타이너 학교들이 국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으면서도 본연의 특색을 잘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핀란드의 슈타이너 학교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고유의 교육방식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지는 않았을까 싶었는데 재정 지원을 받는 동시에 발도르프 교육만의 교육철학과 교육방식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어요. 다만, 설립 당시부터 지원을 받았던 것은 아니고 1991년부터 정부 지원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이런 슈타이너 학교가 일반 학교와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지 여쭈어보았을 때, 교감선생님께서는
1. 가르침의 순서를 아이들의 발달에 따라 맞추려고 하는 점
2. 교육의 중심이 아이들에게 있다는 점
3. 전인적인 인간을 양성하고자 한다는 점
이렇게 세 가지를 꼽으셨어요. 이 밖에도 핀란드의 슈타이너 학교 역시 8년동안 같은 담임 교사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8년 담임제, 정해진 주기동안 특정과목을 공부하는 에포크 수업, 몸으로 표현하는 유리드미 등 발도르프 교육만의 독특한 방식을 따르고 있었어요. 핀란드의 슈타이너 학교의 선생님들은 슈타이너 교사 전문 양성기관인 Snel lman Korkea Koulu 출신이 많지만 일반교사도 추가연수를 받고 후 채용하고 계시다고 해요. 하지만 유리드미 같은 경우에는 관심있는 교사에 비해 실제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많지는 않아 1,2,3,10학년에서만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시네요. 한편, 슈타이너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컴퓨터 사용에 부정적인 분들도 계시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세상에서 살아나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학교의 임무이기 때문에 6-7학년부터 자연스럽게 사용하도록 지도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특히 2016년부터 핀란드 졸업시험 중 독일어, 지리, 철학 등 일부 교과가 컴퓨터를 사용하여 치루어지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이런 장비를 추가로 구입해야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학생들이 직접 만든 교과서
아래 사진들은 학생들이 직접 만든 교과서에요. 슈타이너 학교에서는 일반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교과서를 만든다고 해요. 이렇게 학생들이 직접 교과서를 만드는 이유는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긴 하지만 학생들은 집에서 배운다고 믿기 때문이래요. '배움에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는데, 언뜻 생각하면 당연한 말같지만, 그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게 되더라구요.
슈타이너 학교와 예술
슈타이너 학교에서는 예술교육과 노작교육을 굉장히 중시하는데 이 작은 집도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직접 만든 거라고 해요.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Myytavana'는 'For Sale'을 의미합니다. 700유로, 그러니까 100만원 정도에 팔겠다고 내놓았군요 ㅎㅎ 이밖에도 슈타이너 학생들은 음악, 미술, 종교, 언어 수업을 매주 중요하게 배우고 있고, 매년 1-2주간 농장과 공장, 사회복지 시설 등에서의 심도깊은 체험활동, 연극활동 등을 한다고 해요.
학생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진 달력입니다. 과연 예술을 중시하는 학교 학생들의 작품답죠? 정부에서 학생들을 위한 지원금은 보조해주지만 학교 건물 등에 사용되는 비용이나 교직원들의 월급은 직접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운영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부모회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고 해요. 재정 면에서 슈타이너 학교는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하시는데요, 일부 재정을 직접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 비해 각종 장비가 부족한 편이고, 특히 고등학교 학비가 비싸다고 해요. 지난 4월부터 졸업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학생 수만큼 학교 재정 지원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새 방침이 들려와서 좀 더 긴장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학교 전담 상담사는 없지만 시의 상담사를 지원받을 수 있고, 부모-학생-교사 간의 관계가 더 돈독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도 잘 헤쳐갈 수 있다고 하시네요.
단지 지식을 채우는 공부 뿐만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정신과 영적인 성장까지도 함께 돕는 슈타이너 학교. 교감 선생님과의 대화 끝에 아이들은 어떤 순서로 자라나는지,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교육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어떤 순서로 짜여져 있는지, 우리 학생들은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우리 교육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곰곰히 되돌아 보아야겠지요.
첫댓글 학생들이 만드는 교과서 좋으네요. 살아있는 지식이 되겠지요. 집도 정말 그럴싸하네요. 궁금했던 발도르프 학교의 장면들을 보내주어 고마워요 잘봤어용^^
윤영, 생생한 소식을 핀란드에서 직접 전해주니 느낌이 무척 새롭네요. 남은 기간 의미있는 공부 잘 마치고 돌아오시기를...... 북유럽 국가 대부분은 "교육은 공적 활동"이라는 개념이 주류기 때문에 소정 조건만 갖추면 국가지원을 해주지요. 국민과 정부 사이에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우리는 공적지원을 눈먼 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죠. 덴마크에서는 공적 가치가 있는 뜻으로 부모 10명만 모이면 공적 지원을 받고 교육을 실행하기도 한대 해요. 참 많이 다른 사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