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일 토요일 맑음.
안개가 잔뜩 낀 날이다. 새벽 5시30분에 기상했다. 어제 구입한 후레쉬로 시계를 몇 번 확인했는지 모른다. 깨워주는 사람이 없으니........ 새벽에 불이 들어온다. 그래도 어둡다. 짐을 단단히 싸고 숙소에서 6시에 계단을 내려온다. 복도에 있는 힌두상이 눈에 거슬린다. 간이 침대에 직원이 누워 잔다. 쇠줄로 단단히 걸어 잠근 문을 열어준다. 대충 서로 인사하고 어두운 길을 나선다.
미국 대사관이 있는 큰길에서 여행사 버스는 출발한다. 어두운 안개길을 걸어가니 대로변에 여행사 차들이 줄지어 있다. 네팔어를 모르니 차량에 붙어있는 번호판으로 확인한다. PA662번이다. 10여대의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모두 포카라로 가는 차인가 보다. 배낭을 맨 여행객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고, 자기 손님을 찾으려는 호객꾼들의 소리가 들린다. 네팔사람들도 이 버스들을 이용해서 함께 간다. 우리버스는 33인승에 제법 깨끗하고 크다. 7시30분이 되니 버스는 하나 둘씩 출발한다. 우리차도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카트만두를 떠나는구나.
어제 발로 걸었던 길을 보니 낯설지 않다. 카트만두는 작다. 차장이 몇군데 차를 세워 손님을 태우고 주유소 같지 않은 곳에서 연료를 보충한다. 언덕을 살짝 넘더니 계속 아래로 산길을 돌고 돌며 내려간다. 날이 밝아 안개가 걷히더니 까마득한 산 밑으로의 길이 눈 아래 펼쳐진다. 엄청나게 험한 길이다. 절벽이 있고, 길은 좁고 경사도 급하다. 힘들게 올라오는 트럭들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고장 나 서버린 트럭도 있다. 그러고 보니 네팔은 산악국가로 수도 카트만두는 산위의 분지에 자리 잡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카트만두는 해발 약 1400m에 위치한 하늘도시다. 산 밑에 살고 있는 네팔 사람들은 카트만두를 하늘에 있는 마을로 생각하고 있다. 푸른 하늘로 올라가버릴 것 같은 언덕을 오르고 구름을 지나면, 은빛 봉우리들이 환영처럼 북쪽하늘에 빛나는 산마루를 넘어가면 카트만두다. 황금빛 벼 밭 한가운데에 동화 속에 나올법한 예쁜 농가가 홀연히 나타난다. 카트만두는 갈색일색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시에 달라하라 탑, 11층의 빔셈 타워만이 유일하게 새하얀 빛으로 우뚝 솟아 있다고 어느 여행가가 기록해 놓았다.
먼 나라의 작은 도시 카트만두, 카트만두는 네팔 왕국의 수도로, 과거에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히피의 메카였다. 또 히말라야 거봉에 도전하는 등산가들이 한번은 머물던 도시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나이 지긋한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시 주변에는 5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분지다. 그 안에는 카트만두외에 2개의 고도(古都) 파턴과 벅터프르, 그리고 작은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분지에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면서 도시문명을 건설한 것은 네와르 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네와르라는 이름은 예전에는 카트만두 분지를 뜻하는 네팔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건축, 금은세공, 조각등의 공예에 뛰어난 이들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기후는 일년내내 온화하고 상쾌하다. 겨울에도 따듯해서 주변산에 눈이 내리기라도 하면 몇 년 만에 구경하는 눈이냐며 화제가 될 정도다. 산촌 사람들에게 있어서 카트만두는 곧 네팔을 의미한다. 지금도 네팔 사람들은 카트만두에 가는 길을 네팔에 간다고 한다. 중세 도시에 온듯한 착각을 주는 도시 카트만두를,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도시를 떠나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귀가 멍하다가 서서히 열린다.
경사가 급한 도로를 어지럽게 걱정하며 내려오니 오른쪽에 냇가를 끼고 좀 여유 있게 냇물과 함께 달려 내려간다. 이 냇물은 북쪽 거봉들이 우뚝 솟아 있는 곳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와 티베트에서 시작되는 트리슬리 강이다. 돌과 암벽에 어우러져 풍광이 좋고 물도 깨끗하다. 강물은 넓어졌다, 좁아졌다, 깊어졌다, 얕아졌다 하며 흘러간다. 머리 통 만 한 돌맹이를 주워 모아 파는 사람들도 보인다. 바위를 깨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기구나 기계가 없이 손으로 한다. 간간이 강가를 따라 속이보이는 허술한 집들이 보인다. 왼쪽 산지에는 층계식 경작지로 햇빛을 받아 멋있게 빛난다. 강 건너편에도 계단식 논이 사진 작품처럼 펼쳐진다.
네팔 인구는 2000만명을 넘는데, 카트만두의 비옥한 분지에 150만명 정도가 산다. 네팔인구의 50%는 산악지대의 빠르버티 힌두교도들이다. 빠르버티 힌두는 네팔의 국어인 네팔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인도에서 이주해 왔고 네팔 전역에 거주하고 있다. 카스트로 그들의 신분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산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고 카스트 제도로 벽을 만들고, 언어로 소통이 어렵고....... 폐쇄된 나라일수록 가난하고 개방된 나라일수록 물질은 풍요로운 것 같다. 누가 더 행복한지는 알 수 없지만.......
9시 30분에 차는 도로가에 섰다. 휴게소란다. 손님들은 모두 내려 식당의 화장실을 먼저 찾는다. 여자들은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고 남자들은 후미진 곳에서 대충 해결한다. 주차장 주변에는 노점상이 자리 잡고 있다. 민물고기를 잡아 말린(훈제)것들이 특이하다. 곡식을 종류별로 비닐봉지에 담아 팔고 있다. 채소 종류와 토마토, 오렌지 등도 팔고 있다. 사각 나무판 위에서 동전같은 프라스틱을 팅기며 꼬마들이 놀고 있다. 길 끝에 있는 조그만 식당에서 금방 기름에 튀겨 만든 세모모양의 사모사를 사 먹었다. 속에 으깬 감자가 든 튀김이다. 구석에 세워진 허름한 안내지도를 보니 이곳 지명이 Malekha라는 곳이다. 카트만두로부터 67km를 달려왔다.
잠시 후에 차는 출발해서 또 달려간다.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허름하고 한가하던 도로에 차가 밀리고 느려진다. 도로변에는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다. 강 건너에 케이블카가 보인다. 여기가 어딘가? 왠 시골에 케이블카가....... 이곳은 네팔에서 하나뿐인 케이블카가 있는 머너카머나(Manakamna)다. 고르카의 남쪽 해발 1385m의 산등성이에 있는 머너카머나는 네팔인들 에게 인기 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창건된 것은 현재의 사허 왕가가 고르카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원성취라는 뜻을 담고 있는 여신인 머너카머나에게 기원하면 소원이 잘 이루어진단다.
1998년 11월에 네팔 최초로 관광 케이블카가 생겼다. 케이블카라고는 하지만 레일 위를 올라가는 등산 전차형태가 아니라 6인승 곤돌라가 트리슬리 강을 내려다보면서 연이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리프트식 로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