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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 제 8장 기드온의 마지막 행적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을 계속 추격하여 요단 동편 헤레스 비탈에서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아 오는 기사와, 그 이후의 기드온의 행적이다. 소심하고 겁이 많던 기드온은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 잡혀 삼백 용사와 함께 수많은 적을 섬멸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다.
1. 에브라임 지파의 불만 (8:1-3절)
미디안과 전투와 관련하여 에브라임 지파가 기드온에게 불평하는 일이 발생했다. 저들은 전쟁의 처음부터 자신들을 동행시키지 않은 데에 큰 불만을 품고 이를 따진 것이다. 이에 대하여 기드온은 노를 발하기보다는 저들의 공적이 더 컸다고 치하했다. 이로써 에브라임 지파는 노를 풀게 되고 자연히 분쟁은 종식되었다. 에브라임 지파는 12지파 중 가장 불만이 많은 지파이다. 이들은 가나안 땅 분배 시에도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의 기업이 좁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었으며, 나중에 사사 입다와 다투었는데 입다가 이끄는 길르앗 사람과 전쟁을 하였으나 42,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크게 패했던 것이다. 훗날 이스라엘 왕국을 분열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여로보암 역시 이 지파 출신이다. 결국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로 나타난다.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에게 ‘우리를 이 같이 대접함은 어찌됨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는데 이 전쟁에 빠진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만은 아니며 이들은 오히려 전쟁의 말기에 참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난한 것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가진 지파인데 그 주도권을 전쟁에서 행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에브라임의 불만과 기드온이 크게 다투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난 기드온의 성품이 잘 나타난다. 그는 겸손하고 온유하여 명예와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기드온은 분별력이 뛰어났으며 에브라임 사람들의 불평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내부의 분열 위험을 감지하고 지혜롭게 예방책을 강구하였다.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기드온 집안사람들인 아비에셀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운 공로보다 전쟁의 마지막에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이제 내가 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라고 하면서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라고 포도원의 수확에 대해 비유하면서 에브라임을 치켜세워 준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표현하면 ‘에브라임의 포도 찌꺼기가 아비에셀에서 수확한 정상 포도보다 낫다.’라는 것인데 실제로는 끝물 포도는 맛이 시고 단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상적인 포도와 비교할 수 없으며 이런 비유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쟁의 전 과정을 주도했던 기드온과 그의 가문의 업적은 에브라임 지파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게 뛰어났지만 그런데도 그가 이처럼 겸허한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 때문이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지파들 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반목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신앙의 정도에 자신을 승복시킨 것이다.
*마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기드온은 에브라인 지파를 요단 나루턱에 배치했는데 그 길목에서 그들은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였다. 기드온은 이 사건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고 함으로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을 명예롭게 하셨다.’고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드온이 행한 모든 일들은 그와 같은 영광에 비하면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드온의 이 같은 유순한 말에 에브라임 사람들의 분노가 풀리고 형제 지파 간에 갈등이 무마되었던 것이다.
2. 숙곳과 브누엘인들의 패역 (8:4-21절)
미디안 군을 분쇄했던 기드온은 마지막 잔당들까지 섬멸하고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쫓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너무나 지친 기드온과 300 명의 용사들은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이에 격분한 기드온은 미디안 군을 섬멸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사람들을 응징하게 된다. 그리고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에 대해서는 그들의 죄과에 대해서 묻고 처형한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은 모레 산골짜기 곧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적과 싸우며 요단 나루턱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적군을 추격했기 때문에 매우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이는 기드온이 체면을 불구하고 숙곳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청한 사실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비록 피곤했지만 도망치는 적군을 지금 추격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므로 끝까지 추격하였다. 실제로 이들 삼백인은 충실한 징병이며, 최후까지 긴장하고 희생하는 순교적 투사들이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잠시 출전하여 다행히 적의 방백 두 사람을 잡아 죽인 공로를 내세워 이익과 명예를 얻으려고 분쟁을 일으켰던 에브라임 사람들과는 그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숙곳은 요단 동편의 갓 지파가 차지한 성읍으로 얍복 강에서 북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갓 지파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기드온이 스스럼없이 떡덩이를 요구했던 것이다. 기드온이 미디안의 왕인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한다고 했으나 이들은 미디안 족속의 왕이라기보다는 미디안과 아말렉, 혹은 동방 사람들의 연합군의 왕이었을 것이다. 기드온이 떡을 요구했지만 숙곳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왕과 기드온이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잘 모르므로 떡을 줄 수 없다고 그의 요구를 거절해 버렸다. 즉 숙곳 방백들은 기드온의 300 용사들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기드온의 군대가 미디안에게 패할 경우 미디안의 보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지원을 거절한 것이다. 이는 동족의 아픔과 배고픔을 외면한 기회주의적 이기주의였으며 응징을 받아야 마땅했던 것이다.
기드온의 군사들은 너무나 기진맥진했지만 끝까지 전의를 상실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의 확신을 굳게 다졌다. 기드온은 저들의 거절에 대해 심히 분노하고 자신들이 세바와 살문나를 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겠다고 선언하는데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그들을 들가시와 찔레 위에 눕혀 놓고 타작용 기구로 타자하듯이 치겠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분노한 것은 이 전쟁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숙곳을 떠나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떡을 구하였으나 브누엘 사람들 역시 숙곳과 같은 거절을 함으로 기드온은 브누엘 사람들에게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겠다.’고 위협했는데 망대를 헌다는 말은 성읍을 파괴해 버린다는 의미이다. 브누엘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고 난 후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였다.’고 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던 바로 그곳이다. 그러므로 브니엘의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인데 이곳 사람들 역시 미디안의 보복이 두려워서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했던 것이다. 당시에 세바와 살문나는 ‘갈골’에 있었는데 ‘갈골’의 뜻은 ‘양의 우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모세와 갓 지파가 ‘욕브하’ 근처에 만든 양의 우리가 있는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미디안 연합군은 이미 120,000명이 죽었고 남은 자는 15,000명 정도가 갈골에 있었다고 한다. 이들만 하여도 기드온의 삼백 용사의 50배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이들은 이미 갓 지파의 경계를 벗어나는 지점에 이르렀으므로 안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드온의 군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급습하여 공격했기 때문에 저들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다시 도망했으며 드디어 기드온은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체포하고 만다. 적군의 왕이 사로잡혔다는 소문이 나자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되었다.
기드온이 갈골에서 승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숙곳에 사는 한 사람을 잡아 그를 심문하고 숙곳 장로 70명의 명단을 입수하였다. 이들은 숙곳 성읍을 다스리며 재판을 총괄하는 대표자들이었다. 기드온은 숙곳 방백들에게 자기를 조롱한 죄가 얼마나 큰 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게 하려고 사로잡은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그 증거로 보여 주었다. 그의 이러한 의도는 숙곳 방백들로 하여금 더 이상 적들이 보복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자기 동족의 고통을 나누지 않은 방백들을 이제 세바와 살문나처럼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드온은 숙곳 방백들과 장로들을 처형하였고 그들의 죄에 대한 징계를 분명히 하였다. 이는 사소한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버린 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또한 브누엘 망대를 헐었는데 이는 기드온에 의해 브누엘 성읍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미디안 왕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하기 전에 그들을 심문하였는데 그것은 세바와 살문나가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탈할 때 그들을 죽인 일을 재판하고 심문하였다. 미디안 족속들이 죽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기드온과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았다.’고 대답했다. 사실 19절에 보면 그들은 모두 기드온의 형제들이었으며 그들의 모습이 기드온과 같이 왕자 같았다는 것은 요아스의 아들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 같다. 기드온은 ‘그들이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었다.’고 했는데 이 말을 직역하면 ‘그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라는 말로서 그들이 동족이나 친척이 아니라 기드온의 친 형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에 대해 피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노아 시대에 ‘피를 흘리게 한 자는 그 사람 역시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씀과 모세의 율법 사상에 근거하여 공의의 심판을 가하는 것이다. 기드온은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명령하기를 ‘일어나서 그들을 죽이라.’고 하였으나 여델이 아직 어려서 칼을 빼지 못하자 기드온이 직접 일어나 피의 복수를 감행하였다. 이로 보건데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한 곳은 자기 고향 아비에셀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기드온의 아들 여델은 아직 어려서 칼을 빼지 못하는 소년이었기 때문에 300 용사 안에는 포함되지 못했던 것이다. 기드온은 두 왕을 죽이고 난 후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을 빼어 취하였는데 이는 금과 은으로 된 반달 형상의 장신구이다. 미디안 족속은 달의 신을 숭상하였으므로 그들의 관습에 따라 반달 모양의 장식물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다. 기드온은 이러한 장신구를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취했던 것이다. 그리고 300명의 용사들로 하여금 저들이 탈취한 금귀고리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다. 당시 전쟁에 승리하여 적국의 물건들을 노략물로 취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용사들도 모두 적군의 탈취물을 많이 획득하였던 것이다.
3. 기드온의 마지막 행적 (8:22-35절)
이제 미디안 족속들을 모두 물러가고 가나안 땅에는 평화가 찾아왔으며 이러한 평화는 기드온이 살아 있었던 40년 동안 계속되었다. 기드온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을 찾아와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이 이런 요구를 한 것은 사사 제도는 이스라엘 통치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과도기적 제도로서 이스라엘 역시 왕정 시대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왕정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지시하신 바가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기드온의 용맹과 지도력에 의존하여 안전하게 살고자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세습까지 요구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들의 요구는 하나님께 물어 본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에 진정 왕이 필요했다면 하나님께 간구해야 마땅함에도 저들은 임의로 왕을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이것은 왕이신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불신앙이었던 것이다.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기드온의 이러한 신앙과 지도력은 백성들로 하여금 사람을 의뢰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뢰하도록 하는 교훈을 담고 있었다.
기드온이 부하들에게 금귀고리를 달라고 하자 용사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겉옷을 펴고 탈취한 귀고리를 내어 놓았은데 금귀고리의 무게가 금 칠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초승달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이 입던 자색 옷과 그 외에도 많은 장식들이 있었다. 한 세겔은 11.4g 이므로 기드온이 받은 금은 21.38kg 이었다. 기드온은 이 금으로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 하나를 만들었는데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 대제사장은 이 옷을 입고 우림과 둠빔으로 판결을 구하였다. 기드온은 이 에봇을 자기 성읍에 둠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는 소지를 마련하였다. 그 결과 백성들은 실로에 있는 성막의 제사에 집중하지 않고 오브라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함으로써 점차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에봇을 음란하게 섬겼는데 이는 에봇을 우상 섬기듯이 섬겼으며 이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미디안은 그 후 세력이 약화되었고 유목 생활은 겨우 유지하였지만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는 못했다. 기드온이 통치하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있었지만 동시에 타락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는 가증한 행실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기드온 사후에는 에봇마저도 버리고 다시 바알을 열렬히 섬기기 시작하였다.
기드온은 노년에는 사사의 공직을 사퇴하고 조용히 집에 머물면서 여생을 보냈는데 그가 일평생 아내를 많이 얻어 70명이나 되는 아들을 두었다. 그가 비록 왕위는 거절했으나 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으며 말년에는 영적으로 많이 타락했던 것이다. 그는 주변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아 일부다처를 따랐으며 사사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70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결국은 다 몰살당하는 징벌을 받게 되었다.
기드온의 본래 거주지는 오브라였으나 그는 첩을 세겜에 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세겜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첩을 두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세겜에 있는 첩이 아들을 낳았으며 그 아들의 이름은 아비멜렉이었다. 이 이름의 뜻은 ‘왕의 아비’ 혹은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뜻으로 기드온의 지위를 따라 지은 것이다. 70명의 아들 중에 유독 이 아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가 후일에 왕위 찬탈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죽어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에 장사되었고 사사의 죽음은 곧 백성의 타락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다시 우상을 숭배하였다.
‘바알브릿’이라는 말은 세겜 지역에 존속했던 가나안 인들의 바알 신이다. 그 뜻은 ‘언약의 바알’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바알과 언약을 맺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며 그와 언약을 맺은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일전에 하나님 앞에서 패역하여 대적들의 손에 빠졌던 것과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은 사실을 모조리 잊어버린 것이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며 바알들을 따라가자 이전에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던 여룹바알 곧 기드온의 가정을 선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기드온의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과 공모하여 반역을 도모하는 동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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