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4일
전날 4월3일 밤은 부활절이었다. 독실한 신자이신 연꽃님은 처음 오실 때 부터 부활절 예배는 꼭 봐야한다는 조건으로 오셨고 마침 장평공소에서 저녁때 단체로 장흥성당으로 예배보러 가는 편에 합류할 수 있었다. 신고정신 투철한 어느 대한민국의 시골 덕분에 경찰이 출동하였고... 곰세마리님의 갑오징어를 비롯한 요리는 너무 훌륭했고 결국 몸무게 +1kg의 원인이 되었다. 늦은 밤 서울에서 뒤늦게 출발한 바이올렛이 도착하였고, 우리는 (결국 술 좋아하는 일부지만) 뭔가에 홀린 듯 약간의 흥분상태에서 잎새들을 쓰러뜨렸다. 영하의 싸한 기온과 하늘에 무수히 빛나던 별들... 낮에 걸었던 아름다운 길에 대한 추억이 우리의 기분을 상승시킨 듯했다.
제산저수지 - 보성강둑길 - 연동리 - 죽동 - 다시 보성강변 - 보성군 노동면 영구리까지 15.5km를 걸었다.
하룻밤을 야영한 장평면민회관 뒤뜰...
제산저수지로 이동한 후 보성강둑을 향해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향한다.
나흘을 걷는 중 날씨가 가장 좋았다...
보성강의 지류인 장평천을 만났다. 보성강은 전라남도 보성군, 장흥군, 순천시, 곡성군을 127km 북동류하다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 제암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화강천이라 불리며 북동진한다. 이틀전 야영한 제암산자연휴양림 부근이다. 갈대와 수초들이 많이 자라는 보성강 유역은 철새의 낙원이었다.
아직은 보성강이라 부르기 전인 장평천 제방길을 따라 걷는다.
제방둑 위로 햇살이 가득 넘쳐흐른다.. 이 강이 흐르는 방향이 우리가 갈 방향이다.
고요하고 유유한 강의 모습을 보며 포근한 흙길의 감촉을 즐긴다..
보성강의 본류라 할 수 있는 화강천 다리를 건넌다.. 다리 건너 왼쪽의 보성강으로 향할 것이다.
화강천과 장평천이 만나 비로서 보성강이 되었다.. 이름은 강이나 하류쪽에 많은 보가 생겨 이곳에서는 거의 개울 수준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영구마을 주민에 따르면 예전 보성강은 물이 너무 맑아 물속에서 눈을 뜨고 헤엄치며 놀았다고 한다. 물흐름이 바뀐 지금은 물속의 바위틈이 모래흙으로 메워지고 한발 움직이면 뻘처럼 뿌옇게 흐려진다고 한다...
제방길이 끝나는 듯한 곳에서 연동리 마을로 우회한다. 이때도 지도상의 죽동마을로 생각하고 한시간 정도면 일정이 끝나리라 생각했다. 5만분의 1 지형도의 한계이다. 비슷한 모습의 땅모양이 나오면 착각하기 십상이다...
연동리 밤실마을을 지나 다시 보성강쪽으로 다가간다. 이젠 누구할 것 없이 시멘트포장길을 버리고 논둑길을 택한다.
무덤들이 있으니 길이 있지 않을까?? 오늘은 쿨라가 앞장을 섰다... 가시덤불이 좀 나와야 하는데 길이 너무 좋다.
죽동마을로 내려왔다.
죽동마을을 지나면서 본 보성강변의 낭만적인 풍경
도내교를 건넜다면 쉽게 일정을 끝낼 수 있었는데.... 계속 강의 오른쪽을 타고 걷다 섬안마을로 들어서 고개를 넘어간다. 강가의 작은 마을들은 한 두채의 집만 남기고 사라져 마을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고개를 넘어오니 보성군이다...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치고 점심이 늦어진 우리는 주린 배를 움켜잡고 다시 강변마을로 다가간다. 저 마을에 제발 식당이 하나라도 아니... 구멍가게라도 있길 바라면서... 보성군 노동면 영구리 마을 일곱그루의 소나무가 동산을 이루었다.
영구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어디에도 식당은 있을 것 같지않다.
영구마을회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우리를 태울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배고프다. 시간은 이미 오후 두시가 가까왔다. 써포터들이 차를 가지러 떠난 후 급반전이 일어났다.
마을회관 옆집의 진달래처럼 고운 누님이 찬은 없지만 밥한끼 먹고 가라고 내준 찬이다. 묵은지에 멧돼지 혈통을 가진 F1 삼겹살...보성에서만 특별히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호의를 받게 된다. 고운 마음씨 처럼 깊은 맛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3월31일 밤 주작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와 4월1일부터 4일까지 4일간 86km를 걸었다.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던 해남을 벗어나 강진, 장흥을 지나 보성 땅까지 올라왔다. 1차 때에 가졌던 '과연 얼마만큼의 흙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하던 의문에 비하면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고 할 만하다. 앞으로 또 어떤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갈 길에 대한 기대감도 더 높아졌다.
1차에 비하면 2차에서 여러면에서 좋아졌다. 3차 때는 조금 더 나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운 흥분에 따라 술병의 숫자가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고, 먹고 자는 일은 좀 더 나누어지게 될 것이고, 같이 걷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좀 더 커질 것이고, 이 길을 끝까지 가야겠다는 기대도 커질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참가하기 힘든 일정이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은 걸음걸음이었다. 이렇게 4~5일을 한꺼번에 가도 2년, 3년 걸릴 길이기에 그렇게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한번에 같이 가지는 못해도 이 흙길을 이어가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해본다.
첫댓글 자유와 여유로움...덕분에 잘 봤어~
형 아무래도, 조만간에 형을 모셔야 할듯,, 3차 때 성미랑 금요일날 합류 하세요... 송광사에서 선암사 가는 길은 토요일로 빼 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