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엄마, 엄마! 왜 이래?
2022년 5월 25일 수요일
음력 壬寅年 사월 스무닷샛날
전날밤 꿈자리가 뒤숭숭, 이상했다.
꿈결에,
저녁무렵 밭에서 물주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장모님)가 나오셔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큰 이서방! 고생이 많네! 날이 왜 이렇게 가물어
우리 이서방 고생을 시키는 거야? 쯧쯧..."
라고 하셔서 물주던 호스를 들고 큰소리로 말했다.
"엄마! 어서 들어가 계셔! 배고프시지? 금방 끝내고
들어갈께요." 라고 했더니 늘 하시던 말씀처럼
"오야! 어서 끝내고 들어와 밥먹세!"라고 하시고는
우리집으로 가시는 뒷모습까지 바라봤는데...
꿈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아내가 엄마가 입원하고
계신 병원에 전화를 하여 면회시간을 조율했다.
오후 3시가 비었다고 하여 면회시간을 예약했다.
그래서 그런 꿈을 꾸었구나 싶었다.
어차피 원주에 나가는 것이고, 면회시간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서 고마운 분을 찾아뵙기로 했다.
지난 3월 어깨 수술로 원주의 병원에 입원을 했을
당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셔서 어려운
걸음으로 문병을 와주신 이서화 시인님을 찾아뵙고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단계동
이서책방으로 갔다. 책방 개업 당시에 아내와 함께
뵌 적이 있어서 시인님께서는 반갑게 맞아주셨다.
시인님께서 끓여주신 맛있는 우엉차와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며 정겨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후에
책방에서 시낭송회가 있어 참석하면 좋겠지만 엄마
면회시간을 맞춰야 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에
만나 식사를 하기로 하고 시인님의 배웅을 받으며
책방을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오랜만에
하게 되는 엄마와의 대면 면회가 잔뜩 기대되었다.
점심 무렵이라 원주에 나가면 가끔씩 들리는 수타
짜장면을 하는 음식점에서 짜장면 한 그릇씩 시켜
먹었다. 맛있게 먹었다. 그때도 아내와 함께 엄마를
볼 생각에 설레였다. 아내는 엄마를 만나면 무슨말
부터 해야할까? 라고 하며 더 설레이는 것 같았다.
기왕 원주에 나왔고 예약한 면회시간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아 잠시 이마트에 들려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했다. 그때도 쇼핑하며 아내와 엄마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가 빨리 보고싶은 마음이라서 그런지
쇼핑을 마쳤지만 시간이 남았다. 그냥 병원에 가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코로나19 검사를 해야했다.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면회준비를 하는 사이에
담당 의사와 면담을 하겠느냐고 하여 그렇잖아도
엄마의 상태를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잘 되었구나
싶었다. 담당 의사도 보호자를 만났으면 했단다.
현재 엄마의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고 담당 의사는
계속 잠을 주무시는 것 외는 괜찮다고 하며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없어 영양공급을 위해 L튜브(콧줄)를
꽂았으나 그마저 거부반응이 있어 제거를 했다고
하며 영양주사를 놓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배로 영양공급을 하는 뱃줄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지난번 L튜브를 꽂을 당시에
전화로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듯이 이또한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으나 선뜻 답을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상태를 우리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담당 의사의 말이 거부반응이 없어야
할 수가 있어 약 일주일 가량 지켜봐야한다고 했다.
상담을 하면서도 우리는 엄마와 대화를 하게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담당 의사와 면담을 마치고 간호 수녀님의 안내를
받아 병실에 올라갔다. 엄마가 누워 계셨다. 우리가
면회를 온 것도 모르고 잠을 주무시는구나 싶었다.
아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어깨를 흔들면서 깨웠다.
"엄마, 엄마! 우리 왔어! 일어나봐?" 라고 했으나
엄마는 반응이 없었고 잠만 주무셨다. 촌부도 함께
"엄마, 엄마! 좀 일어나 보셔! 우리가 왔어요." 라고
했으나 감고 계시는 눈을 뜨지 않았고 어깨와 등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아내도 울고 촌부도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급히 간호사에게 달려가
"우리 엄마가 왜 이러시냐?"고 물었더니 와서 하는
말이 "어르신이 계속 이렇게 잠만 주무시네요."라고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몇 번 흔들어 깨우더니 "계속 이러고 계세요."라고
하면서 나가 버렸다. 아내도 촌부도 계속하여 "엄마,
엄마!" 하며 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울부짖음이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하늘까지
무너지는 청천벽력이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인데...
그렇게 우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내는 엄마의 이마에 입술을 대고 촌부는 엄마의
손을 만져주고 나왔다.
우리 집안의 비상사태이다.
이런 와중에 의사는 이 상태로 요양원에 가실 수가
없으니 가족들과 상의를 하여 양자택일을 하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이 상태로 계속 병원에 계시거나
큰 병원에 가서 일주일 가량 소요되는 뱃줄 시술을
하여 오시게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엄마가 이 정도 상태인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아내는 두 처제와 처남댁에게 엄마의 지금 상태를
알려주었다. 원주에서 집에 까지 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 눈물만 쏟아졌다. 집에 오자마자
밭에 나가 물주기를 해야했다. 엄마는 병원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계시는데 가뭄에 목말라하는 채소를
살리겠다고 물을 주고 있으니 이또한 못할 짓이라
들고있던 호스를 내팽겨치고 소리내어 펑펑 울었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 시원하게 울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이럴진데 아내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장인 어르신, 아버지, 어머니
세 분을 먼저 보내드리기는 했지만 엄마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는데... 병원에 누워 계시는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한 아침이다.
첫댓글 쾌유를 기원합니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계시겠지만
더 나빠지지 않고 일어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촌부님 힘내시기 바랍니다.
답글이 늦었습니다.
위로와 격려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찡 합니다.
코로나로 찾아뵙지 못하는동안
어른들의 마음은 많이 피폐해저
몸도 마음도 많이 저물어 가시나 봅니다.
어르신의 빠른쾌유 바라며
두분의 마음도 챙기세요.
마음이 힘들면 건강을 해치니까요
힘 내세요
그러게 말입니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격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촌부님
어머님의
빠른 안정을 기원 합니다
위로와 격려에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