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양천고성지, 궁산(宮山)과 소악루(小岳樓)
대한경제 기사입력일 : 2020-10-30
김묘정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한강변을 따라 동작나루와 여의도를 지나서 양천동 서울식물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서울식물원 바로 직전 안양천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점에 작은 산이 하나 나온다. 궁산(宮山)이다.
궁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덕양산(124m)과 마주보고 있다. 산의 북쪽은 한강과 올림픽대로가 지나는 곳으로 가파르고, 남쪽은 양천현아가 있었던 곳으로 완만하다. 정상부에 오르면 덕양산, 안산, 북한산 산맥들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한강 변의 풍광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주변의 지형이 낮아서 덕양산과 행주산성 일대가 두드려져 보이고, 두 산 모두 한양의 관문에 위치하여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요새이다. 궁산(높이 74.3m, 면적 약 45,000평)은 작은 산으로 파산(巴山), 성산(城山), 관산(關山), 진산(鎭山)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양천 현아(縣衙) 및 향교의 배경 산으로 진산(혹 주산)의 역할이 큰 듯하다.
궁산에는 백제시대 축조된 양천고성지(古城址)(사적372호)가 있다. 산 정상을 띠처럼 수평으로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집결지로 권율장군이 주둔하다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서 크게 승리했다는 스토리가 있는 중요한 전략지이다. 조선시대에는 산 남쪽 언저리에 펼쳐진 양천현아와 객사, 향교 등에 의해 행정의 중심지였다. 백제시대 축조된 성곽은 여러 차례 발굴을 통해서도 아직 확실하게 성격이 규명되지 못한 아쉬운 점도 있다.
만약 조선시대 양천현이 읍성의 기능을 갖출 정도의 규모였다면, 해미읍성과 유사한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양천고성의 범위를 궁산과 현아가 있는 마을까지 포함한다면 산과 평지를 둘러싼 평산성의 형태를 취하고, 성내에 관아와 객사, 향교 등 여러 건물이 배치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궁산에는 한강의 승경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 들었다. 특히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으로 재임(1740~1744)했던 5년 동안은 시문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겸재 정선은 궁산 기슭에 위치한 소악루(小岳樓)에 자주 올라가서 한양 주변의 풍광을 그렸다.
소악루는 중국 동정호(洞庭湖) 인근의 악양시에 있는 중국의 명루 악양루(岳陽樓)에 비유하여 붙인 이름이다. 파산(巴山)도 악양루가 있는 산 이름이 파릉(巴陵)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양천의 옛 문인들은 한강을 중국 동정호(洞庭湖)에 비유하고, 악양루를 지었지만 소실되었다. 그 터에 다시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李楡, 1675~1757)가 1737년(영조13)에 작은 악양루란 의미의 소악루(小岳樓)를 지었다. 지금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1994년 강서구청에서 한강 변의 경관 조망을 위해 원위치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전망이 좋은 곳에 재건하였다.
겸재는 양천현령을 지내면서 소악루와 관련한 그림 두 점을 남겼다. 소악루(小岳樓)와 소악후월(小岳候月)이다. 누각에 오르면 북한산, 안산, 인왕산, 남산 등이 한눈에 보이고 탑산, 선유봉 및 한강 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등 승경이 펼쳐졌다. 그는 여기서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연강임술첩(連江壬戌帖)이라는 걸작품 등도 남겼다.
중국 시성인 두보(杜甫) 역시 악양의 악양루에 오르기를 간절히 바랬고, 노인이 되어서야 악양루에 올랐다. 그 감회를 ‘등악양루’라는 시문으로 남겼다. 전쟁으로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동정 호수가에 지어진 악양루는 무한의 황학루(黃鶴樓), 남창의 등왕각(滕王閣) 등 중국 남방의 3대 명루(名樓)이다. 황학루가 있는 무한(武漢)은 코로나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무한에서 시작된 이 전쟁 같은 상황을 두보가 보고 있다면, 여전히 ‘등악양루’의 시문과 같은 마음으로 우려와 걱정을 담고 있을 것이다.
양천고성지와 소악루를 품은 궁산은 ‘궁산 근린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시민들에게 한강의 풍광과 여유로움 마음과 푸르름을 담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민들은 ‘코로나 블루’라고 부르는 심한 우울감을 가지고 있다. 마음의 안정을 얻고 치유할 수 있는 생활 속의 공원, 정원으로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길게 뻗은 산책로를 걸어 다니며 자연 속에서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바란다. 그 옛날 양천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소악루에 올라 한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재충전의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서울 궁산(宮山)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