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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
황 석 영
길이 젖어가고 있었다.
신문기자는 법무관을 만나 고교 동창들의 얘기를 나누며 찌뿌드드했던 기분이 얼마쯤은 가신 것을 느꼈다. 요즈음의 우울이란 게 고작 이런 정도임을 알고 그는 생활에 너무 쫓기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시외버스의 종점이 있는 종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비가 내리는 인도의 양끝으로 떨어져서 걸었다.
그 무렵에 칠팔명의 친구들은 제각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찌감치 총에 맞아 죽은 녀석도 있었고, 열띤 논쟁을 벌였고, 음악을 들었고, 연애를 했고, 오입도 했고, 술을 억척으로 퍼마셨고, 데모나 싸움질을 하다 머리도 깨졌고, 배신도 했고, 실연해서 울기도 했으며, 밤새워 책을 읽기도 했는데, 낙제도 했었지. 그러곤 군대에 나갔던가…… 기자는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한창 좋았지…….”
“응, 뭐가?”
법무관이 두리번대며 물었고, 기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염두에 두고 대답했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말야.”
“세상두 바뀌 나보다 했을 무렵이니까.”
“하여간에 눈에 뵈는 거 없었지.”
“지금은 많이 원만해진 셈인가?”
날씬한 군용 레인코트 차림에 모자챙 밑에서 올려다보며 물어오는 법무관의 어조가 어쩐지 비아냥거리는 것만 같다고 기자는 잠깐 생각했다. 그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쓱 빗어올려 보이면서 말했다.
“나 말야…… 이젠 나이들어 보이지?”
법무관이 기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장가두 안 든 놈이 뭘. 나처럼 결혼한 사람두 청년 소릴 듣는데.”
“안사람하구 요새는 좀 통해?”
기자가 그렇게 말하는 데엔 별로 저의가 없었건만, 대뜸 건드림을 받았다고 느꼈는지 법무관의 표정이 시큰둥하게 되어갔다.
“처가 동경에다 전화를 걸구 법석을 떨었지.”
“친정에다 하소연 했던가? 이해하구 살아야지.”,
“파이프가 막혀서 말야, 물을 손수 길었던 모양이라.”
법무관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흐린 눈빛 때문인지 그는 정이 많고 유순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가 짜증난 어조로 말했다.
“못살겠다구 쫑알대길래 귀쌈을 한대 올렸더니만.”
“고생을 안해봐서 그럴 텐데, 좀 과했다, 너.”
“제기랄, 고생은 뭐…… 그 정도면 여기선 최고급 아파트라구.”
법무관의 처는 재일교포의 외동따님이었다. 밉상이긴 했지만 성품은 상냥한 여자였다. 법무관은 원래 학교 적엔 ‘가마보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책상머리에 붙어앉아 공부를 파던 형이었다. 친구들간에도 꽤나 명석하고 정의파라고 알려져왔던 터였고, 그는 재학 시절에 이미 고시에 합격되었다. 똑똑한 남자란 딸 가진 세도가들이 탐내는 법이다.
“내게 너무 과분해서 그런지 원.”
법무관이 얼버무렸다. 그는 아내 얘기만 나오면 어쩔 수 없이 기가 죽는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하는 말이 있듯이, 그는 처가의 덕을 음양으로 입고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세상에 잘못은 아니겠다고는 생각해주더라도 자랑이랄 것은 못된다.
처음에 그들 부부는 영어와 일본어로 적당히 의사를 주고받아야 했다. “달링” 어쩌고 하는 말로라도 뜻이 충분히 통하는 경우란 둘이 끌어안고 잘 때뿐이었다. 그는 오늘의 방문에 사실은 한몫 끼고 싶지가 않았다. 중간에 새버릴까 했다가도, 그는 기자 때문에 마지못해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 셈이었다. 법무관도 한마디 들먹였다.
“참, 그 여자하군 소식이 영 끊어졌나?”
“지난번에 거리에서 본 적이 있지.”
얼버무리며 기자는 상가의 진열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거기 비추어진 두 사람을 확인했다. 고등학교 동창 관계는 어느 때의 친구들보다도 가까운 사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이 나쁜 직장 동료보다 훨씬 적의를 품게 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에서의 상대방의 변천과정을 우정에 기대한 만큼도 이해하려 들지 않는 태도 때문일 것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적의의 직전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알량한 우정은 오늘과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을 거였다. 엿이나 먹어라, 하며 뒤통수에다 쑥떡 한방 먹이고 언제 돌아서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회한이 많은 잡놈들이니까, 하면서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만났어.”
“붙잡아서 쥐어패기라두 했냐?”
“아니, 그냥 덤덤하게 지나쳤어.”
그 여자가 주춤 섰다. 인사를 했다. 그는 얼이 빠져 서 있었다.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는 꼴로 내뺐다. 기분은 멀쩡했는데도 두 눈이 펑 젖어왔다. 최소한 여자문제 한 가지라도 꿰뚫어볼 줄 알았다면, 젊은 날에 사람 구실을 잘할 기회가 더욱 많았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소문에는 그 여자가 외국엘 갔다고 전해들었다. 아마도 다니러 온 거였겠지. 그에게는 지긋지긋한 기억이었다. 무려 칠 년…… 칠년 동안 맹하니 짝사랑으로 상병신이 되었던 거다. 그가 가르쳤던 그 여자의 동생 녀석은 그가 완전히 미쳐버린 걸로 알았을
정도니까. 그 앙큼한 여자가 차를 내온다, 과일을 깎는다, 고궁엘 가자, 눈이 오니 밤새껏 음악을 들으며 대화하자, 그러면서 제 기분만 내었던 거다. 그는 식모가 가끔 와서 빨래나 받아가고 밥상이나 들여오던 썰렁한 이층 북향 방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찌된 건지, 짝사랑에 대해 연상되는 게 크리스마스고, 그게 떠오르면 그 여자가 약혼했단 기별을 받았던 날이 생각났다. 그는 입술 사이로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법무관이 의아하다는 듯이 덩달아 웃으며 물었다.
“왜 웃니…… 그 여자랑 존 일 있었어?”
“여자가 휴지뭉치라면 좋겠단 말야.”
언젠가 기자에게서 농조로 들은 적이 있는 법무관도 피식 웃었다.
“이 녀석아, 그건 가난뱅이의 여성관이야. 찍었으면 획득을 해야지.”
그들은 각자가 다른 생각을 떠올리며 웃었다. 둘 다 침울해 있던 기분에서 잠깐 놓여나는 듯했다.
기자가 그 여자의 동생에게서 약혼 소식을 들었던 날 거리에는 성탄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선물 꾸러미를 든 사람들이 점포와 백화점마다 꾸역꾸역 몰려나오고 있었다. 거리는 귀신 들린 흉가처럼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괴물 거인 같은 산타클로스 영감이 입을 쩍 벌려 혈색 좋고 영양 좋게 웃어대며 아양을 떨고 있었다. 그는 번화가 백화점의 높다란 계단 위에 올라서서 실연의 쓰라림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잠깐 싱거운 망상을 떠올렸다. 그래 휴지를 한아름 사자. 그걸 고급 포장지로 싸서 예쁜 리본으로 묶어 들고 여기 하루종일 섰는 거다. 저기 저기 네 모친께서 지나가신다. 어이 엄마 어디 가슈. 이리 좀 오쇼. 내 연인을 소개합니다. 그럼 가보슈. 또 저기 저기 대학 동창이 간다. 야야 오래간만이다. 내 연인이지. 그럼 가봐라. 저기 은사께서 지나가신다. 그렇지 저기 드디어 온다. 그 여자가…… 그래 남편두 함께, 저기 유력자의 아드님이, 재벌의 친척, 청년 실업가, 외국서 돌아온 박사님, 국회의원 비서, 또 저기 저기 정당원이, 모기관원이, 저기 또…… 어휴 바쁘다, 한꺼번에 모두 가봐라.
신문기자는 생각했다. 자기는 아직도 자신마저 별로 사랑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든 앙갚음하려고 별러가며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졌다. 옆에 있는 이 친구와 자기가 둘 다 어딘가 극도로 진화되어 있거나 아니면 퇴화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둘을 합쳐 똑같이 나눈다 할지라도 절대로 공평한 느낌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빈손으루 갈 수야 있나.”
하급 관리가 말했고, 도안사는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적당히들 투자해라.”
법무관과 도안사가 빈손을 채우러 갔다. 기자가 관리에게 물었다.
“환쟁이는 아직두 출판사에서 곤충도감을 베끼구 있나?”
“때려치웠나보더라.”
관리는 몸이 귀찮은 모양이었다. 그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대합실 처마 끝을 흘끔흘끔 올려다보며 손수건으로 비대한 턱밑을 훔쳤다. 터무니없이 살은 쪘건만, 풍채가 좋아 뵈지 않는 건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눈가에 잡힌 잔주름과 누런 안색 때문일 것이다. 기자가 말했다.
“직장을 때려치면 무슨 대책이 서 있대?”
“이민가게 됐나봐. 재 작은형이 캐나다에 있잖아. 그앤 손재주가 좋으니까, 건너가면 잘 풀릴 거야.”
“거 잘됐군. 고생 많았지.”
“많이 했지. 맨손으루 뛰어서 그만큼이라두 해놨으니 보통내기가 아냐. 은근히 고민두 되는 눈친가봐.”
“가든가 안 가든가, 결정이 빤할 텐데.”
“겁이 나는가봐. 막상 큰 변화가 오게 되니까…… 여기서 자리는 잡았거든.”
“하긴, 안정이란 게 사람을 소심하게 만드니까.”
그들이 버스에 올라탔을 때, 도안사와 법무관이 물건을 잔뜩 사들고 헐레벌떡 돌아왔다. 법무관은 도안사와 나란히, 기자와 관리가 함께 앉았다. 버스가 느릿느릿 혼잡한 중심가를 빠져나갔다.
“요샌 뭘 하구 지내?”
기자의 말에 관리는 다른 생각에 잠겼다가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그럭저럭…… 주말마다 낚시질하러 다니는데, 아주 그 놀음에 쏙 빠져버렸다.”
“낚시질 조오치. 찌를 바라보노라면 머리가 한결 개운해질걸.”
관리는 예전에도 키가 작고 통통하긴 했지만 귀엽고 순박한 데가 있었다. 특히 화가 나거나 기분이 좋으면 콧등이 새빨개져선 말을 더듬었다. 평소엔 낙천적인 명랑한 성격이지만, 욱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다혈질이어서 친구들은 그의 기분이 어떤 상태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어쩐지 불안하고 찌든 얼굴을 하고 있다. 그가 전공했던 외국어가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쓰일 데가 비교적 적었고 몇 번의 불운한 변전을 거듭한 끝에 관청의 하급 관리로 낙착이 지어졌다. 한때는 그가 열심히 번역했던 몇몇 이야기들에 빈번히 등장하는 짜르 치하의 칠등관 같은 생활분위기가 자신의 것이 된 듯했다. 그는 정년퇴직할 때가 가까운 국민학교 교사인 노모와 두 아이와 세파에 시달려 무감각해진 처를 거느린 가장이었다. 한시간 반이나 걸리는 교외에서 중심가까지 그는 이만원도 못되는 봉급을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서야 했다.
간혹가다 운전사가 거칠게 브레이크를 잡는 통에 졸던 사람이 머리를 부딪고 깨어나거나 섰던 사람이 넘어지는 일이 벌어지자, 버스 안이 불평으로 가득 차곤 했다. 운전사는 대중가요와 만담이 곁들인 카 스테레오를 틀어줌으로써 승객들의 불만을 진정시키려 하는 눈치였다. 차가 시외의 지선도로에 들어서자 물탕을 튀기며 덜컹거렸다. 벌써 갑갑증이 났는지 피로한 기색이 된 도안사가 머리를 돌리고 관리에게 물었다.
“야, 어디라구 그랬지?”
“상교말. 아직 멀었어.”
차창 위에 흙탕물이 번져 들판이며 하늘이 온통 누렇게 보였다. 비가 차차 걷혀가는지 유리창을 때리던 빗줄기도 훨씬 성기어졌다. 관리가 옆에 앉은 기자에게 말했다.
“낚시질 갔다가 우연히 만났지. 그날 밤에 곰치네 집에서 잤어.”
“몸은 불편하지 않은가?”
“왼발을 못 쓰지만 거동엔 별루 지장이 없나보더라. 습관돼서 괜찮대.”
“하긴, 십년이 넘었으니까.”
시외로 나온 뒤 처음으로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제대 특명을 받은 듯한 예비군복 둘이 누런 종이봉투를 옆에 끼고 올라왔으며, 장사치 모습의 남자가 네 사람, 어린이를 동반한 할머니가 탔다. 좌석은 빈 자리가 없어졌으나, 일요일치고는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드문 편이다.
한참 고개를 오르는 중인데 운전석 옆의 엔진 위에 앉았던 예비군복 하나가 어 어! 하고 소리쳤다. 차가 모퉁이로 돌아서기가 무섭게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흙탕물을 튀기며 바짝 스칠 듯이 지나갔다. 예비군복은 한잔 술로 벌게진 면상을 운전사에게로 기울이며 뒷좌석에까지 들릴 정도로 외쳤다.
“앗씨, 거 좀 조심하쇼.”
“젊은 사람이 뭘 이쯤 가지고…….”
운전사는 성대가 갈라진 듯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예비군복이 말했다.
“여보, 삼년 정성 나무아미타불이란 말요.”
앞뒤 창가에 앉은 관리와 도안사가 말했다.
"차틀 거칠 게 모는구만.”
“기분 나쁜데. 더구나 길이 험하니까.”
내리막길이다. 차체 밑으로 자갈이 튀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창문은 쉴새없이 덜컹거렸다. 길이 층층이 구부러지고 있었는데, 비탈 아래로 송림이 내려다보였다. 경적소리가 길게 울렸다. 택시가 재빠르게 지나갔다.
“어…… 어라, 속도 못 늦춰, 이거?”
“그보담 담뱃불 좀 끄시지. 머리 위를 보슈.”
운전사가 정면에 붉은 글씨로 쓰인 ‘금연’ 을 가리켰으나, 예비군복은 꿀리려 들질 않았다.
“당신은 왜 피워, 왜 피느냐구?”
운전사가 이번엔 대답 없이 옆에 쓰인 주의문을 가리켰다. 틀림없이 운전사와 잡담을 하지 말라는 경고일 게 분명하다.
“에라, 이…… 순…… 개새꺄.”
“응, 너 말 다 했지. 이 새끼, 너 운전 방해야.”
두 사람의 말다툼이 시끌짝하게 벌어졌다. 차는 두 사람의 빈정거림과 욕설을 삼키며 계속 달려갔다.
“세워, 안 세울래?”
차가 마을의 상가들 사이로 들어서고 있을 때 예비군복이 엔진 위로 벌떡 일어섰다. 그는 한 발을 높이 쳐들었고 운전사를 찰 듯이 위협했다. 운전사가 브레이크를 세게 밟자마자 그는 바닥에 나둥그러졌다. 동요하고 있던 앞자리의 남자 승객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예비군복을 잡아 바닥에 깔아뭉개고 몇번 구타했다. 운전사와 뒷문에 섰던 조수도 합세하는 통에 그의 동행은 멀거니 구경만 할 뿐이었다. 승객들은 모두들 저놈 끌어내라고 소리쳤다. 그들은 평온한 여행이 귀찮게 방해받은 데 대해서 동일하게 분개하고 있었다. 여차장이 재빠르게 뛰어나가 경관 한사람을 달고 돌아왔다. 차 밖에 내려선 예비군복이 자기야 제대술 얻어먹고 귀향하는 놈이지만, 하면서 버스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승객들에게 떠들었다.
“저 운전사 새끼는 한잔 들구 기분나서 몰구 있단 말요.”
운전사도 불려 내려갔다. 차는 시골길 위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승객들은 곧 체념하고 의자에 기대어 잠들거나 신문을 펴들거나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계속해서 창문에 부딪쳐 흘러내렸다. 도안사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야야, 내리자. 택시를 잡는 게 낫겠다.”
네 친구들은 물건들을 나눠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들은 우산을 받고 있었으나 하반신이 젖는 게 몹시 귀찮았고, 요금을 냈는데도 길 한쪽에 섰는 버스를 보니까 더욱 불평이 커졌다. 그들은 택시를 기다리며 제각기 투덜거렸다.
“통뼈 같은 놈이 설치더니, 일진을 망치네그려.”
“그래두 사고가 나느니 차라리 이게 다행이잖아.”
“보다시피 여기까지 잘 왔는데…… 한놈 땜에 여러 사람이 지장을 받는군.”
그들의 상상은 언덕이나 강물에 처박히는 끔찍한 광경에까지는 미치지 못했고, 다만 비가 내리는 질척한 진흙길 속에 서 있게 된 것만이 화가 났다. 택시가 왔다. 그들은 곧 난간이 없는 비좁은 다리를 지나갔다.
관리의 실착으로 그들은 상교말에 있다는 저수지 입구를 지나서 내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저수지가 아니라 강변이었던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 주민에게 묻고 나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가깝다는 주민의 말을 믿고 오던 길로 되짚어 내려갔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산마루로 구름 걷힌 하늘이 드문드문 내다보였다. 네 사람은 길에 널찍이 팬 물구덩이를 건너뛰기도 하고, 차가 지날 때엔 길 아래 논둑으로 피하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걸었다. 헛딛고 진흙 속에 빠졌던 도안사가 말했다.
“촌놈들은 십리를 가지구두, 바로 요 너머라구 그런단 말야.”
“나뽈레옹두 그런 식으루 알프스를 넘었거든.”
“오랜만에 좀 걷는 게 건강에 해롭진 않을 거야.”
법무관이 킬킬 웃어 댔다.
“느이들 물리선생 생각나니?”
모두들 쾌활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 고교적의 물리선생님 별명이 나뽈레옹이었던 것이다. 몸집이 작고 텁수룩한 몰골이었는데 말씨와 성질이 거칠었다. 도안사가 흉내를 냈다.
“요 망한 쌔들 망한 쌔들. 왜 떠드네 망한 쌔들!”
네 사람 모두 한참이나 정신없이 웃었다. 도안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내레 점수 벌거지가 델 싫두나. 기게 사람놈에 대가리가, 비니루 대가리디.”
나뽈레응은 언제나 짤막한 방망이를 들고 다리께를 톡톡 두들기면서 교단을 오락가락했는데, 망또와 장화만 갖추면 진짜 황제감이었다. 나뽈레옹 떴다, 하면 그 주변이 쥐죽은 듯해지곤 하였다. 그분은 항시 협기(俠氣)를 주장해서 담임을 맡는 반마다 친필로 써 붙이던 것이다.
“그 양반 날 별루 신통찮게 여겼지.”
뿐만 아니라 미워했다고 법무관은 믿고 있었다. 나뽈레웅은 그들 짝패들을 좋아해서 가끔 하숙방에 데려가기도 했는데, 유독 그에게만 덤덤했다.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지금도 법무관은 잊지 않고 있다. 그날, 넷째 시간을 막 시작했을 무렵부터 산발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한 총성이 점점 커졌고, 교실 분위기가 술렁술렁해 지기 시작했다. 선배라는 대학생들이 교실마다 찾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했다. 나가자! 누군가 외쳤고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나갔다. 교문 앞에서 직접 저지에 나선 교장과 간부급 교사들이 밀려나온 학생들
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대세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분명치 않은 때에, 그는 앞에 나가 동급생과 하급생들을 무마시키는 연설을 했던 것이다. “여러분,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다. 현명하게 판단하여 차가운 이성으로 돌아갑시다.” 그 일이 있은 뒤에 나뽈레옹은 출석을부르다가 그의 이름에 부딪치자 잠시 궁리하고 나서 말했다. “우등생의 이름이군.” 교실 복도나 운동장에서 마주쳐 그가 인사를 하면 나뽈레옹은 빙긋이 웃기만 하곤 지나치는 거였다. 졸업시험 이 시작된 어느 날 그는 텅 빈 변소에서 나뽈레옹과 나란히 소변을 봤던 적이 있었다. 나뽈레옹은 첫눈이 하얗게 덮인 뒷산 쪽에다 시선을 둔 채, 어느 학교 무슨 과를 지망했느냐, 지난번 성적은 어땠느냐면서 말을 걸었다. 밖에 나와 헤어지면서 나뽈레옹이 귀 좀 빌리자는 듯이 가까이 불렀다. 나뽈레응이 그의 귀에다 속삭였다. “이 애늙은이야.”
“지금 뭐하구 지낼까?”
“죽었다더라.”
관리가 말했다.
“몸이 나빠서 시골루 전근해갔는데, 과로해서 쓰러졌지.”
“성깔 하나 괴팍하더니만.”
“그 양반 늘 하던 말이 있었지. 사람이 개인은 참 초라하다구 말야.”
하면서 기자는 생각했다. 아무리 작은 구멍을 파기 위해서라도 헤아릴 수 없는 물방울들의 낙하가 필요하지 않은가. 한 목숨이란 얼마나 귀하고 한편 하잘것없는 것이랴. 선생님의 하숙방은 썰렁했다. 웬 걸인 같은 사내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갈 적마다 언제나 취한 얼굴이었다. 성적 내는 일을 돕느라고 거기서 곰치와 함께 새운 적이 있었다. 선생님과 그 사내는 밤새도록 소주병을 깠다. 그들은 여러 이야기를 했었다. 옛날 학생 때 처음에 생각했던 게 옳았다고 선생님이 말했으며, 사내도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게 옳았던 거 같다
고 말했다. 젊은 시절엔 정신이 올바르고 정직 했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런 일이 어쩐지 인상 깊었고, 아직도 때때로 생각날 적이 있다. 저수지의 상류 쪽에 마을이 보였다. 그들은 상교말로 이어지는 저수지의 둑길을 걸었다. 논에서 맹꽁이들이 울었다. 짙푸른 포도원의 무성한 숲이 보였다. 관리가 이제부터는 길을 알겠다고 앞장을 섰다. 법무관이 도안사에게 말했다.
“잘 봐둬라. 시골 풍경은 이게 마지막일 테니.”
도안사는 대답이 없었다. 기자가 물었다.
“정확히 언제쯤야?”
“꼭 한달 남았어.”
“거기선 일한 만큼은 대접을 받을걸. 가서 잘 살아라.”
“잘 살아야지.”
“바로 저 집이다.”
앞서 가던 관리가 돌아보며 채소밭 가운데 있는 작은 블록 집을 가리켰다. 울타리가 없어서 집의 측면과 마당이 빤히 보였다. 돼지우리와 제법 큼직한 계사가 보였고,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마당에 들어서자 계사에서 곰치의 아내가 뛰어나왔다. 그 여자는 입에 가렸던 마스크를 떼어내고 수줍은 웃음을 웃었다. 관리가 물었다.
“집에있죠?”
“저어, 면에 가셨어요. 곧 오실 테니까 어서 올라가세요.”
관리가 친구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닭장을 들여다보던 기자가 말했다.
“뭐야, 닭들 태반이 졸구 있는데……”
“큰일났어요. 돌림 병인가봐요. 그래서 알아본다구 나가셨죠.”
여자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지나갔다. 검은 팬티를 입은 건장한 사내놈이 방문을 빠끔히 열고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법무관이 말했다.
“얀마, 일루 와. 저놈 좀 봐라.”
“저게 큰놈인가요.”
방문이 쾅 닫혔다.
“네, 다섯살예요.”
“허 그놈 애빌 닮아 체격이 근사한걸.”
그들은 마루로 올라갔다. 사람들 소리에 깼는지 갓난애가 칭얼거렸다. 계사에 갔던 관리가 고개를 흔들며 돌아왔다.
“심상칠 않아, 격리는 시킨 모양인데 거진 다 걸린 모양이군.”
“농사는 안 짓나?”
“돼지하구 저거뿐야. 그리구 채소밭.”
“이 동네 포도밭 많던데.”
관리가 말했다.
“모두 주말농장이야. 저기 이쁜 집들이 보이지?”
맞은편 숲 사이로 붉고 푸른 높다란 지붕들이 보였다. 전부 묵묵히 앉아 있는데 큰놈이 살그머니 나왔다. 그들의 관심은 아이에게로 집중이 되었다.
“너 몇 살이 지?”
“이름 뭐야?”
“이담에 뭐 될래?”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아이는 어리벙벙해졌다. 그러나 과연 그 아버지의 자식 인지라 숫기가 좋았다.
“다섯살, 김찬수. 이담에…… 응, 이담에는 홀륭한 사람 될래.”
계사에서 닭이 날개치며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아마도 격리시키기를 계속하는 것 같다. 온전하게 살아남는 게 몇 마리나 될 건가.
그들은 친구네 집에 우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음을 느꼈다.
곰치는 국비환자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대학을 다니지 못했다. 그는 퇴원하자마자 곧장 낙향해버렸고, 간혹가다 서울에 들러도 가까운 친구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엉뚱한 쪽에서 그의 풍문만을 전해들었을 뿐이다.
부상동지회인가 어딘가에서 탈퇴했다더라, 공민학교를 해보겠다더라, 사기를 당했다더라, 결혼했다더라, 양계를 친다더라……
“아부지 온다!”
아이가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채소밭 고랑 사이로 곰치가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다. 왼편으로 어깨를 흔들면서…… 그는 활짝 웃으며 친구들을 손가락질한다. 마음이 바빠 이제는 뛰느라고 왼발을 심하게 절고 온다. 친구들은 마루 끝에 멍하니 서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놈이 마주 뛰어간다.
부자가 손을 잡고 함께 온다.
친구들은 눈시울이 뜨끈하다. 그들 부자의 뒤편에 깔린 하늘이 컴컴했다.
〔문학사상 1972. 11 ; 삼포 가는 길, 삼중당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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