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반장 월례연수] 교회 시대의 희년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희년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해방과 땅의 회복에 관련된 구약 성경의 희년을 사랑과 나눔, 그리고 섬김의 실천으로 더욱 확장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인 교회는 어떻게 해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희년과 교회의 희년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희년을 선포하고 거행한 기록은 서기 1300년에야 나타납니다. 물론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사랑과 나눔과 섬김의 실천을 그 시작부터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해를 희년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며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해방이 이루어졌다고 하셨기에, 희년은 어떤 특정한 해에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늘 희년의 정신이 살아있는 날들이어야 합니다.
성경 전통에서의 희년은 해방과 땅(재산)의 회복을 강조했습니다. 구약의 파스카가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약속된 땅을 주신 것을 기념한다면, 신약의 파스카는 하느님께서 죄악의 종살이에서 인류를 해방시키시고 하느님 나라를 열어 주신 것을 기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희년은 영적인 의미로 발전합니다. 세례성사로 구원받았으나 다시 죄를 짓고 죄의 종살이를 하던 신자들이 다시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께로 돌아와 하느님 자녀의 품위를 되찾게 하려는 것이지요.
고해성사와 대사
여기서 필요한 것이 고해성사와 대사(Indulgence)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고, 인류를 통해 전해지는 원죄와 자신이 지은 죄인 본죄를 모두 용서받고 깨끗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유혹에 빠지고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런데 죄는 흔적을 남깁니다. 죄로 인한 외적인 피해도 갚아야 하겠지만, 우리 영혼에도 피해가 생깁니다. 상처입고 얼룩진 영혼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공로(기도, 선행 등)와 보속으로 정화하고, 또한 부족한 부분은 이 세상에서 죽은 뒤 연옥에서 정화하고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교회는 벌을 정화하는 데에 당사자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도와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입니다. 교회의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쌓은 공로의 보화를 어머니인 교회는 그 자녀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제도화한 것이 바로 ‘대사’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희년을 거행하게 되기까지 고해성사와 대사에 관한 교리가 정리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대사는 9세기경부터 나타나는데, 본격적으로 베풀어진 것은 십자군 원정 때의 일입니다. 1095년 우르바노 2세 교황은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을 선포하며 종군하는 사람에게 잠벌을 모두 면해주는 전대사를 부여하였습니다. 이후 12세기에는 대사 교리에 관한 신학적 성찰이 이루어지고 교회 안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리하여 1300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첫 번째 희년을 선포합니다. 교황은 희년 칙서를 통해 신자들이 통회하며 고해성사를 받고, 로마에 있는 베드로 대성전과 바오로 대성전을 순례한다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 선포는 신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고 약 20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로마를 찾아 희년 전대사를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희년을 선포하는 칙서에서 “모든 희년 행사의 근본 요소는 순례입니다.”(「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5항)라고 강조한 것처럼 교회의 희년에는 로마로의 순례가 중요요소가 됩니다.
25년마다 거행하는 정기 희년
처음 희년을 선포하면서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희년을 100년마다 거행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클레멘스 6세 교황이 다음 희년을 1350년에 거행하도록 선포하면서 50년마다 희년을 거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50년이라는 간격도 희년을 경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라 우르바노 6세 교황은 예수님께서 33년간 지상에서 사셨던 것에 근거하여 33년마다 희년을 거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희년은 1390년에 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400년은 15세기를 시작하는 첫해라 당연하게도 희년으로 선포됩니다.
마르티노 5세 교황은 1390년 희년으로부터 33년이 지난 1423년을 희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 때부터 라테라노 대성전의 성문(門)을 여는 예식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마르티노 5세 교황은 희년을 다시 50년마다 지내도록 정했습니다. 1450년 여섯 번째 희년이 거행되었고 이때 희년 기념 주화가 처음으로 주조되었다고 합니다. 1470년, 바오로 2세 교황은 1475년에 희년을 거행하는 칙서를 통해 ‘성년’(聖年, Annus Sanctus)이라는 용어를 제안하며 25년마다 성년을 지내도록 했습니다(오늘날 ‘성년’과 ‘희년’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이렇게 25년마다 정기 희년을 거행하는 전통이 이루어져 오늘날에 이릅니다.
특별 희년
구세주 강생으로부터 25년마다 거행하는 정기 희년이 있지만 이후 교황들은 다양한 동기로 특별 희년을 거행하였습니다. 교회가 위험한 상황에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서나, 흑사병 창궐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또는 교회의 다양한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해 희년을 선포하고 거행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가까운 특별 희년인 2016년 자비의 희년(2015년 12월 8일~2016년 11월 20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기념하여 거행되었습니다. 세계 젊은이의 날의 기원이 된 1983년 구원의 성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인류 구원을 이루신지 1950주년을 기념하여 거행한 특별 희년이었습니다.
전세계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희년 거행도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2021년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으로 지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한국 교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희년 거행과 희년 전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희망의 순례자들
희년의 핵심 상징은 순례이므로 희년 대사 수여 교령을 살펴보면 대사를 받는 요건으로 특정 성당이나 성지로 순례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봉쇄 수도승이나 노인들, 병자들, 수감자들, 병자를 돌보는 이들 같이 희년 순례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직접 참여하는 신자들과 영적으로 결합하여 정해진 기도를 바치면 희년 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2025년 희년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희년 주제를 제시하시며 우리 신자들이 주님께 받은 희망을 지니고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순례자가 되자고 강조하십니다. 다음 시간에는 교황님의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를 중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2025년 정기 회년을 살아갈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4년 9월호, 김광두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