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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늦은 후회(後悔)
전 호준
아침저녁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삶아대던 폭염도 지나고 나니 허전함마저 느껴진다. 인생의 가을! 지난 세월은 모두가 아쉽고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가을의 길목에서 지난 세월을 되짚는다.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기고만장 폭염처럼 뜨겁던 정열과 아집은 어디 가고, 어제 한 일도 오늘 뉘우치는 일상의 반복이다. 가버린 세월에 대한 아쉬움일까? 연민일까? 후회뿐인 지난 세월이 무정하다.
사람이 살아가며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겠나만, 나 같은 필부가 무슨 거창한 주자(朱子) 십회훈(十悔訓) 같은 경구(警句)를 들먹이며 인생을 말하려 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누군가 살아온 세월, 후회스런 일 한 가지만 묻는다면 담배를 배운 것이라 말하고 싶다.
의학이 발달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담배에 대한 해악이 점점 밝혀진다. 정부의 금연 정책으로 애연가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주머니 사정만 더 팍팍해지고 기대만큼의 실효는 거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담배를 끊는 것은 나는 물론 가족의 건강과 타인에까지 애꿎은 피해를 줄 수 있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시험이다. 국가 전매사업에서 민영화했다지만 막대한 세금을 지우면서 흡연자를 죄인 취급, 다시 금연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는 병 주고 약 주는 정부 시책이 아리송하다.
나와 담배는 무슨 악연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애연가시다. 그 옛날 어머님도 일찍부터 담배를 피우셨다 한다. 그러니 젖먹이 시절부터 나는 담배 연기를 마시며 자랐다. 연기만 마신 게 아니라 니코틴 진액을 맛보며 큰 셈이다. 유독 늦도록 어머님의 젖꼭지에 매달리던 나를 젖을 떼기 위해 댓진 즉, 옛날 담뱃대를 후비면 나오는 쓴 진액을 젖꼭지에 발라 젖떼기를 시도했다 한다. 젖꼭지를 물었다가 쓰면 뱉어 버리고 오지랖 으로 닦고 다시 어머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님께 들었다. 요즘 어머니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지금은 담배를 백해무익 만병의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몰랐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지금처럼 담배의 해악을 알았다면 돈 태운 연기를 마시며 건강을 해치는 어리석은 짓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 좋고 물 좋아 인심 좋기로 소문난 우리 민족, 그중 가장 좋은 인심이 술과 담배 인심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면 소재지 신작로 변에 있었고 아버지는 농기구를 수리하는 철공소를 경영하셨다.
오일장이 되면 초가삼간 우리 집은 온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집에서 오리쯤 떨어진 곳이 외가 집성촌이다. 사시사철 다를 바 없지만, 특히 겨울철이면 오일장 보러 나온 할매, 할배, 아지매, 며 농기구 수리를 맡긴 고객들, 방안은 항상 빈틈이 없었다. 추위를 피해 담배 한 대로 정담도 나누고 그동안 궁금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가 되었다.
장날 아침이면 어머님은 화롯불을 두둑이 담으시고 속에 제법 큰 두어 개의 숯덩이를 묻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했다. 화로를 방 한가운데 놓고 손님들이 들기 시작하면 준비해둔 풍년 초 봉지나 아버님이 미리 준비해 두신 두둑한 행초 쌈지와 담뱃대를 화로 옆에 두고. 인사도 나누기 바쁘게 “한 대 하이소” 하며 내밀곤 하셨다.
당시만 해도 성냥과 담배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화롯불 준비는 기본, 담배 한 대 대접 하는 것이 기본 예의고 인심의 상징이었다. 초등학교가 지척인지라 점심시간이면 밥 먹으려 집에까지 왔다. 담배 연기로 가득한 방안에는 오, 육 명의 사람들은 예사로운 풍경이었다. 성인이 되면 으레 담배를 피우는 줄 알았다.
당시 사회상도 그러했다. 어른들 앞에서나 연장자들 앞에서 감히 담배를 입에 물지 못했다. “애들 담배 피우면 삐 녹는다.” 어른들의 경고 아닌 경고가 무서웠다. 그 말속에 이미 담배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실제 담배를 피운 것은 입대와 더불어 시작됐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빠끔 담배를 한두 번 피운 적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들은 남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멋의 상징 같았다.
유행가 가사를 보며 알 수 있다. “미련 없이 내 품는 담배 연기 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그 여인의 얼굴을” 시작하는 최 희준 씨의 진 고개 신사며 “파이프에 꿈을 실은 첫사랑 마도로스”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전우야 잠들어라” 등 노래뿐만 아니다. 흑백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며 뿜어내는 멋있는 포즈, 고향을 떠나 삶의 전선에서 고단함을 달래는 민초들의 애환 속에 등장하는 담배 연기는 해악은 고사하고 고달픈 인생살이의 애환을 달래주는 기호품 이상의 환상으로 각인 되었다.
군대에는 필터도 없는 화랑 담배가 지급 되었다. 골초들은 항상 그 양이 부족하다. 형편이 좋은 사람은 PX(군대 내 매점에서)에 사서 피우지만, 대다수 훈련병은 그렇지 못했다. 고된 훈련 중 십 분간 휴식시간이며 맨땅에 다리를 뻗고 퍼질고 앉아 화랑 담배 한 모금으로 심신의 피로를 달랬다.
담배가 바닥난 골초들은 한 모금 얻어 태우겠다고 주위에 둘러서 한 모금, 차례를 기다리던 전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담배가 귀하던 그때 무료 공급되던 화랑 담배가 족쇄가 되었다. 화랑 담배 탓만이 아닌 내 탓이다.
군 제대를 하고 칠십 년대 공직 생활을 할 때만 해도 담배는 명절이나 윗 사람에 인사를 갈 때 가장 보편적이고 손쉬운 선물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정종 1병 고급담배 한 보루면 웬만한 곳의 인사치레는 끝이다. 지금은 건강을 해치는 마약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말이다.
군대에서 애연가 고참 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하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식후불연은 소화 불량이라.” 밥 먹고 피우는 소화 초, 심심할 때 한 대는 심심초, 화장실엔 소독 초, 변명 같은 억지 담배 애찬가를 늘어놓았다.
지금은 담뱃값이 올라 양상이 조금은 달라졌지만, 친구들이나 지인을 만나면 현금 몇백 원보다, 담배 한 개비는 거침없이 권하는 인심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고희가 된 지금, 어느 날 모임에서 친구들의 농담 섞인 대화다.
“아직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나?” 최근 담배를 끊었다며 삼십 년을 넘게 담배를 피우던 골초 친구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깟 담배 하나 끊지 못하는 결단력 없는 희미한 사람이라 힐난하자, 그 친구의 답변 또한 가관이다. “담배를 단칼에 무 베듯 딱 끊는 지독한 놈” 상종 못 할 위인이라 응수한다. 사실 담배의 중독성을 단적으로 들어내는 에피소드다.
이렇게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담배, 왜? 피우며,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아프리카에 한 인디언 소녀가 살았다. 불행히도 너무 추한 얼굴로 태어난 그녀는 단 한 번의 연애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은 누구보다 착하고 순했지만 모든 남자들은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여자로 태어나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면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그녀는 죽기 전 한 서린 마지막 한마디 남겼다. “ 다음 생엔 모든 남자와 키스하고 싶어요!” 그녀의 무덤에 풀 한 포기가 돋아났다 그 풀이 바로 담배라는 인디언의 전설이다. 그녀의 소원은 이룬 것일까? 아직도 많은 남자들이 그를 외면 혹은 사랑하고 있다. 일부 여자들도 그녀의 유혹에 동성애적 사랑에 빠져든다. 평생을 이어온 그녀와 악연, 때 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내린 뿌리가 너무 깊다. 끊자! 연(緣)의 고리를,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시름만 깊어간다.
2017. 9. 30
첫댓글 전 선생님, 참 오랜만입니다. 그 간 몇 번의 소식에도 답을 못해 드려 미안합니다. 저도 담배와는 참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담배사러 역전에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면 저도 지금쯤 담배와의 전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씩 줄이시면 어떨까요? 글쏨씨가 진일보 하시니 축하드립니다.
저도 담배를 군대에서 배웠습니다. 보병생활 중 휴식시간에 화랑담배 한개피로 훈련의 고달픔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계속 피우다가 91년도에 대신동에서 일할때 담배를 안피우던 사무장님의 천대 때문에 끊었습니다. 금연한 후에도 한동안 목에서 검은 가래가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잘 읽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고있는 담배. 어떻게 하시든 끊으셔야 합니다. 본인의 건강은 물론. 만인의 건강을 해칠 수 있으므로 더욱 그러합니다. "때늦은 후회"의 글을 계가로 때 늦었지만 금연을 시도해 보시길 적극 권해 드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옛날, 그러니까 2001년 까지의 내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같은지요. 어떤 계기가 있어 끊을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끊고 나니 좋은 점이 더 많았습니다. 순간의 고통 다음에 오는 행복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남편은 3개월의 입원 생활로 자연스레 끊게 되었습니다.
건강하실때 조금씩 조금씩 줄여보면 어떨까요?
화이팅!
담배인심..군 시절의 담배 한 개피..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그 해로움을 떠올리면 <금연>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금연을 못해 전자담배로 대신한 경우도 보았는데.. 그것도 유해성분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이 참 멋지네요. 글맛 나는는 글이 이런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건강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아련한 심정. 사랑받지 못하고 떠난 처녀의 혼을 달래기 위함인지? 담배연기 속에 아련한 비밀이 있는 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건강하신 분들입니다. 저는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만 몸에 이상이 있으면 담배가 보기싫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고희도 지났으니 졸업하시고 건강하게 지내야 될것 같습니다. 고심하여 그런지 진솔한글 잘읽었습니다.
늦게까지 어머니 젖을 먹는 사람은 담배를 싶게 끊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니코틴의 유해성은 더욱 강하게 작용하여 해를 끼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제 해로운 요소는 멀리하고 좋은 것을 받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 말입니다. 밥은 안 먹고 못 살지만, 담배는 마음 먹기에 따라 당장 끊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인디언 소녀의 영혼도 달래주었으니 이제 도와 줄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직도 하루 두갑인 남편, 담배값이 용돈의 몇%를 차지한다고 푸념하면서도 못 끊습니다.어지간해야 말리지 말리지도 못합니다. 3여년전 입원해서도 담배를 피워 의사와 실갱이를 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말리지도 못합니다. 담배와는 숙명이라 생각하고 잔소리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시모님께서도 밥은 긂어도 담배는 굶지 못한다고 하셨답니다 모전자전 부전자전 어느 쪽을 봐도 끊지 못하지요. 80이 머잖으니 생명에는 큰 관계가 없다고 자위합니다. 시모님께서도 90을 눈앞에 두고 가셨으니 유전적 명줄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