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심복사, 정 도전 유적지를 찾아서
2020년 5월 27일,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평택 안중에 있는 심복사라는 사찰과,진위면에 있는 삼봉 정도전 유적지를 돌아보는 답사의 길에 올랐다.
필자의 본래 일정은 일찍 서울에 올라가, 백운대 등반을 하려는 계획이었으나,갑작스런 집안의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스케줄이 바뀌어, 천안과 아산에 있는 절친의 벗들과 가까운 평택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여행 스케줄은, 평택 안중과 인근지역 명소들을 돌아보자는 제안으로 안중을 찾아가게 되었는데,안중에 도착하여 우연히 처음 만나본 곳은 곳은 현충탑이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안중에서 가장 손꼽는 명소가 심복사라는 소개를 받고, 현덕면에 있다는 심복사로 달렸다.
찾아간 심복사는 야트막한 광덕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독특하게도 비로자나불이란 돌부처가 인상적이었고, 우보살을 모셨다는 소무덤 이야기도 재미있는 일화였다.
심복사를 돌아보고 삼봉 정도전 유적지를 가보기로 마음먹고 송탄을 거쳐 진위면에 도착하여 먼저 만난 곳은 진위향교....
향교가 있다는 것은, 이곳 진위면이 조선시대엔 현이라는 큰 고을이었음을 얼른 파악하게 되었다.
진위 향교 주변에 선굼터라는 생선구이 맛집이 있어, 그곳에서 갈치조림 정식 오찬을 하고서, 다음 코스인 정도전 유적지를 향해 달렸다.
필자는 이곳 정도전 유적지를 일차 다녀긴 곳이지만,일행들이 꼭 보고 싶어하는 마음들이 있어 다시 찾게된 것이다.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안내로 삼봉의 흔적들을 돌아본후,덤으로 돌아본 곳은 인근에 자리한 원 균의 유적지였다.
평택 안중의 현충탑
이곳에서 평택 3.1독립운동 봉기가 있었단다.
심복사 일주문
벽화를 그리고 있는 장면
스님께서 다과를 대접해 주셨고....
능인전
능인전 안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65호) 이 인상적이었다.
이곳 심복사는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광덕산에 있는 용주사의 말사이며, 대한 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575년(선조 8)에 중건하였고, 1705년 중수, 1767년, 1825년(순조 25) 두 차례 중건하였단다.
현존 당우로는 법당인 능인전, 요사채와 주지실, 내원당과 공씨선묘인 어촌재 등이 있다.
사찰 안에 독특하게 재실이 있는 것은 주변 산이 공씨 소유이기 때문이란다.
심복사에는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는데, 옛날 파주 문산포에 천문을(千文乙)이라는 어부가 살고 있었단다.
그는 어느 날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이곳 덕목리 앞 아산만에 이르게 되었고, 그가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있던 중 그물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그물을 당겨보니 큰 돌이었는데,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다시 바다에 그물을 던졌다.
얼마 후 그물에는 또 무엇인가 걸린 듯하여 다시 건져보니 이번에도 돌이었다.
이상히 여겨 살펴보니 그것은 불상이었단다.
깊은 불심을 지니고 있었던 어부는 부처님 앞에 여러 차례 절을 올렸다.
그리고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디든지 모셔야 되겠다고 생각하고서 절터를 찾아 근처 고등산으로 향하였다.
이상하게도 등에 지고 있는 부처가 그리 무겁지 않고 새털같이 가볍게 느껴졌다고....
얼마쯤을 왔을까. 그렇게 가볍게 느껴지던 부처가 갑자기 무거워지며 발길을 옮겨놓을 수가 없었다.
어부는 이곳이 부처님을 모실 곳인가 보다 생각하고 그곳에 모시기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그러나 어부에게는 걱정이 있었다.
부처님을 모시자면 당연히 법당이 있어야 하는데 나이 든 혼자의 몸으로 어떻게 불사를 한단 말인가.
걱정을 하다가 늦게야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어부는 꿈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걱정하지 말거라. 바닷가에 나가 보면, 난파된 배가 있을 것이니 그 재목을 써서 건물을 짓도록 하고, 또한 바닷가에는 검은 소가 있을 테니 끌어다가 법당을 짓도록 하여라.”
잠시 동안의 일이었지만, 그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어부는 날이 밝자마자 바닷가로 달려갔고, 그 곳에는 난파된 배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가 하면, 멀리 검은 소 세 마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어부는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꿇어 절을 올리고, 그 재목을 가져다가 불사를 하고, 바다에서 건진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창건된 사찰이 바로 지금의 심복사라고 전한다.
진위 향교
오찬의 시간
삼봉 정도전 집목판을 이곳 진위천을 건너서 갔다.
4Km이상 여기서 달려야만 했다.
정도전 초상화
삼봉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제도의 개혁을 통해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이 된 정치가.
자는 종지, 호는 삼봉으로 1370년 성균관에 중영되고 성균박사가 되었으며, 1383년 이성계를 찾아가 세상사를 논하며 인연을 맺었다.
정도전(鄭道傳))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며 혁명가이기도 하였다.
고려말, 조선 초의 문신.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으로서 고려 말기의 사회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다. 각종 제도의 개혁과 정비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고려 말 권문세족의 부패 정치와 이에 기생하는 불교를 비판하였고, 주자학 이념에 기초한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인 조선 왕조 성립에 핵심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일으킬 때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워 밀직부사가 됐다.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살해되고 반대세력이 제거되자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해 조선왕조를 개창하였으며, 이후 진법 훈련을 강화하면서 요동정벌을 추진하고, 이방원을 전자로도, 이방번을 동북면으로 보내려 했으나 이방원 세력의 기습을 받아 방번, 방석 등과 함께 살해당했다.
삼봉 정도전이 설계한 한양도성
필자는 한양도성 전체를 답사해보며, 정도전의 방대한 스케일을 실감한바 있다.
원릉군 기념관
필자의 시선을 끈 것은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지 않았다는 대목이었다.
일부러 문화해설사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지만,그 진위 여부는 속단할순 없는 일이라 본다.
평택 문화원에서 발간한 원균 평전과, 임진왜란의 영웅 원균 그 뜨거운 진실이란 부제로 쓴 '새로 쓰는 원균 이야기'라는 저서를 받아오긴 했지만,아직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현 상태로썬 노코맨트할수 밖에 없다.
원균의 묘소
오래묵은 향나무가 무덤앞을 지키고 있었고....
작은 저수지 너머에는 사당이 바라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