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2일 묵상 본문 : 사도행전 25장 13절 - 27절 - 진리를 따라 세상의 권세와 거짓을 이기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주의 백성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많은 비가 예상되는 날씨 가운데 하루를 시작합니다.
폭염으로 이어지는 날씨 가운데 비 소식은 잠시 쉬어가는 상황을 만들어 줍니다.
뜨거운 날씨를 잠시 식히고 선선한 가을을 기대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그러나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주의 은혜를 따라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시길 소망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주시고 주의 진리를 따라 믿음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 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복음으로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자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3 수일 후에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14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16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17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18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20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21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22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24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25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26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27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본문 해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였기에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전에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지만 가이사에게 보낼만한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보고해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때 아그립바 왕과 그의 여동생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을 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 날 머물렀기에 베스도는 유대 종교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에게 조언을 구한다.
본문의 아그립바 2세는 야고보 사도를 죽인 헤롯 아그립바 1세(행12:1)의 아들이었으며 버니게는 아그립바 1세의 큰 딸로써 벨릭스 총독의 아내 드루실라의 언니였다.
그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있을 때 유대인의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바울을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요청하였지만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로마법이기에 가이사랴에서 다시 재판을 하게 되었고 유대인들의 주장처럼 바울이 악행의 혐의가 없었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와 또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대인들의 고소는 로마법정에서 다루는 문제가 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이 일을 어떻게 심리할지 몰라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심문을 받겠냐고 물었지만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줄 것을 요청하여 구류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은 자신이 바울의 말을 듣고 판단해야겠다고 요청하고 이에 베스도는 다음날 바울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음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왔으며 바울을 그곳으로 데려온다.
이 모임은 재판이 아니라 공청회나 청문회 같은 자리였기에 가이사랴의 고위층들이 참석했다.
베스도는 모인 청중들에게 바울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외치며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도 자신에게 청원했지만 자신은 그에게 죽일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였기 때문에 그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했음을 밝힌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 대해 황제에게 보고할 내용이 없기에 심문한 후에 상소할 자료를 얻고자 청중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앞에 바울을 세웠음을 이야기한다.
특별히 바울의 죄목도 밝히지 않고 죄수를 보내는 것은 무리한 일이기 때문임을 밝힌다.
나의 묵상
베스도가 바울을 로마로 보내면서 어떻게 보고서를 써야 할지를 고민하던 차에 헤롯 아그립바 2세와 그의 여동생이 자신을 방문하러 왔기에 그에게 조언을 구하게 된다.
아그립바 2세는 야고보 사도를 죽인 아그립바 1세를 이어 유대 땅을 다스리지는 못하고 그의 삼촌 죽은 후 그가 다스리던 레바논과 안틸레바논 사이의 작은 왕국을 다스리게 된다.
그리고 이후 A.D.53년에는 빌립과 루사니아가 다스리던 지역을 포함한 더 큰 땅을 다스린다.
그는 유대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베스도는 그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었으며 아그립바는 베스도가 새로 부임했기에 인사차 가이사랴에 들리게 된 것이었다.
베스도는 바울이 로마에 상소했기에 그를 로마에 보내기 위한 구실을 찾아야 함을 말하면서 아그립바가 바울에 대한 죄목을 밝혀 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바울은 어떤 죄도 범하지 않았기에 밝힐 죄목이 없었으며 아그립바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게 된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은 죄와 타협하는 삶이 아니기에 바울은 자신이 행하는 일에 있어서 지켜야 할 법을 지켰으며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과 화합하기를 힘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 것 외에는 다른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었으며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태도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진리는 거짓과 타협하지 않지만 진리 안에서는 다른 사람과 연합하는 능력을 가져온다.
그리스도는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셨으며 죄인이 회개할 때 그를 품으시고 받아주셨다.
이는 진리가 가진 특징은 그대로 보여주신 것이며 진정한 연합은 진리 안에서 가능한 것임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의 권세자들에게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하는 것임을 제시했고 세워진 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의무임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롬13:1~4)
법은 사회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언약을 기대하며 사는 자는 동일하게 사회의 약속도 성실하게 이행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19절) 바울을 고소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당시 부활에 대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부활에 대해 증거 하는 바울을 극도로 싫어했음을 의미한다.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사두개파는 예수님의 부활은 자신들의 신학적 기반을 흔들었기에 부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주장을 더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이권과 주장을 위해 기꺼이 하나님의 약속과 뜻도 거스르는 것이 그들이 살아갔던 방법이었기에 거짓과의 타협도 불사했으며 바울을 죽이는 일에 조금의 고민도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당시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가르치셨으며 모든 불의와 거짓은 분명하게 밝혀질 날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다.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6~28)
참 신앙은 진리 안에서 드러나며 진리 안에 거할 때 세상의 불의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담대하게 사는 자가 된다.
그래서 바울은 가이사랴의 고위층들이 둘러선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말하고 복음을 증거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특별히 자신을 죽이고 혈안이 되어있는 유대인들 앞에서도 당당했었다.
이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진리 가운데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며 주께서 자신을 로마에까지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 것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더 컸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성도는 자신이 진리 가운데 있음을 확신할 때 담대함을 가지는 자가 되며 진리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낄 때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됨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도가 복음에 연합되어 살아갈 때 세상에 대해 담대한 자가 되며 상황에 매여 살지 않고 땅의 상황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게 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던 가운데 한 친구가 큰 교회에서 보여주는 규모의 거대함과 시스템의 견고함을 보며 놀랐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아마도 평소에 보지 못하는 잘 준비된 교회의 모습이 부러웠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교회의 시스템과 견고함은 진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현제 큰 교회로 불리는 교회들이 어떤 결말을 가지고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제시했다.
진리를 담지 않은 교회의 시스템과 견고함은 죄악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며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하게 만드는 원인이 됨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진리를 담지 않은 수많은 화려한 배경과 조건, 능력은 결국 죄를 범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성도는 진리를 따라 살아가며 그 안에서 생명의 능력을 누리는 자가 될 때 비로써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뛰어 넘어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된다.
여전히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모습은 죄와 친숙한 자로 만든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 주께 나아가 진리를 따라 생명을 누리는 자가 될 때 세상을 이기는 자로 서게 되며 상황과 환경, 세상의 권세로부터 자유한 자가 된다.
오늘도 그 자리에서 주를 더 알아가는 삶을 살며 영생 누리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속에 세상을 이기는 능력은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임을 발견합니다.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는 삶이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이며 세상의 권세와 능력을 이기는 자로 만드는 통로임을 고백합니다.
땅의 상황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주의 복음에 매여 사는 자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세상은 권세와 능력으로 진리를 거스르고 자기 생각과 이익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게 하시고 주의 진리를 따라 생명의 길을 걷는 자 되게 하옵소서.
참 진리를 알고 그 진리 가운데 거하기를 힘쓰며 그 진리를 전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주의 지체들을 기억해 주시고 주와 교제하는 일에 힘쓰며 진리를 따라 거짓을 이기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