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묵시 20,1-21,2; 루카 21,29-33 /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2024.11.29.
어느 덧 전례력의 마지막 때가 다가왔습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산행의 9부 능선까지 올라가면 지금까지 올라온 등산 길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것처럼,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하느님 말씀은 한 해 동안 선포된 말씀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간추린 대단원(大團圓)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이 성경 메시지를, 서학으로 불린 천주교의 교리에서 영감을 받아 동학에서 한민족의 고유 사상으로 표현한 바로 말하자면, ‘후천개벽’(後天開闢)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또 믿고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사도들과 초대교회 신자들이 깨달은 계시는 기본적으로 그분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로서 하느님과 같은 반열에 속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 따라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는 완성으로서의 종말에 도달했으므로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분께서 새로이 창조자요 구세주로서 우리 개별 인생들과 전체 인류 역사를 창조하시기 위해 이끄신다는 것, 우리는 그 이끄심에 순명하는 만큼 하느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으며, 만일 이를 거절하는 경우에는 그 대가로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될 수밖에 없다는 것 등 가톨릭교회가 믿을 교리로 가르치는 핵심이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 요한은, “어좌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지고, 이 권한에 따라서 이들이.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다.”(묵시 20,4.)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천년왕국’이라. 합니다.또한 이와 관련하여 심판의 결과가 기록되는 ‘생명의 책’이라든지, 심판 후에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등 여러 가지 상징 언어도 사용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내용으로서, 요한은 이미 그가 쓴 복음서에서도 그러했듯이, 재림과 심판 그리고 도래에 관하여 자신이 본 환시를 당시 신자들에게 익숙했던 상황 즉 로마 제국의 통치와 그리스 사상의. 언어 등을 감안하여 전하고자 하였을 것이고, 유다인으로서 자신이 알고 있던 유다교의 종말 사상의 표현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리에 있어서도 위계질서가 있으며, 성경의 기록들도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기록의 위계질서는 첫째가 예수님의 말씀이고, 그 다음이 사도들의 해석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 말씀들을 해석함에 있어 기준이 되어 주는 것이 성전(聖傳) 즉 거룩한 전통인데, 성전에 있어서 으뜸은 사도들의 제자인 교부들의 증언이고, 교부 시대 이래로 지난 이천 년 동안 21차에 걸쳐서 개최된 역대 공의회에서 반포한 문헌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최근의 공의회에서 반포한 계시헌장에 따르면,성경과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진리의 두 원천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당신 제자들과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약속하셨고, 과연 사도가 된 제자들을 비롯하여 그들과 함께 교회를 이룬 믿는 이들에게 성령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니케아 공의회(325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에페소 공의회(431년), 칼케돈 공의회(451년) 등 네 차례에 걸쳐 신앙고백문을 확정하였고, 이에 의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삼위로서 일체이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강림이 바로 예수 재림입니다.
교회는 개별 신자들에게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에 성령강림과 예수재림을 맞이할 은총을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도록 기회를 마련하고 있으며, 전체 신자들에게는 성령강림대축일에 특별히 그리고 매 미사 때마다 성찬례에서 성체와 성혈의 형상으로 오시는 성령을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받아 모시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천년 왕국의 실상이며, 성찬레에서 거룩하게 변화된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신 신자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희생과 봉사로 신앙을 증거하며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킴으로써 자신들도 거룩하게 변화되고자 노력하는 그 일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 때에 성체를 영하기 전에 주의 기도를 바치고 나서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라고 소망하는 사제의 기도를 듣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영성체를 하는 신자들도 성체와 성혈로 거룩하게 변화되어 재림하시는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변화되어 세상에 봉사하며 하느님을 증거하게 해 달라는 뜻이고, 이로써 세상을 다스리는 동시에 심판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 이외에 ‘천 년’이라는 말이나, ‘1000’이라는 숫자에 별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특정한 숫자로 하느님의 때를 정하고자 하는 유혹을 제자들로부터 받으셨지만(마르13,4 등),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아신다.”(마르 13,32)고 유보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다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 때마다 그 때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마태 25,40 참조). 오늘 복음에서도 말씀하시듯이,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언제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시대의 징표를 늘 보여주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남은 과제는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서 이러한 시대의 징표를 올바르게 식별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일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복음선포 활동을 하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셨던 예수님께서 그들의 귀환보고를 들으시고“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생명의 책’입니다. 복음선포 활동으로 인한 업적보다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된 새롭고 거룩한 존재가 된 것을 더 기뻐해야 한다는 뜻으로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느님의 뜻인 최고선과 공동선으로 채워져서 그분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나아감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이를 위해 믿는 이들의 지향과 노력이 기반을 두고 있는 교회가 바로 ‘새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살고 일하는 터전을 교회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곳이 바로 ‘새 예루살렘’이요, ‘새 땅’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 하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난 한 해 동안 교회가 선포한 말씀의 요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