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쌍웅의 고향이야기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뭇 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녁을 날아간다
아....이제는 한적한 빈들에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달 가고 해가면 별은 멀어도
산골짝 깊은 곳 초가 마을에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우리
아 ...이제는 손 모아 눈을 감으라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고 그곳이 어디이건 간에 고향이라는 단어는
노모의 품속같은 따사로움과 넉넉함 그리고 아늑함을 지니고 있다.
작곡가 이수인은 1939년 1월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으며
6.25사변이 일어나자 그의 가족은
마산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것은 이수인에게 있어서는,
당시 전쟁을 피하여 피난 온 많은 예술가 들을 접하게 되는 기회가 된다.
이수인이 마산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이다.
당시 마산의 푸른바다는 이수인으로 하여금 꿈과 이상을 키우는 온상이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시내 다방을 빌려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음악가를 초대해
베토벤, 차이콥스키등의 해설을 들으면서 심오한 분위기에 젖기도 했다.
교내 음악회가 있을때는 음악선생님에게 불려나가
교내 강당에서 「내마음」과 「가고파」를 단골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던 이수인은 어느날 '음악을 하지않는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그날 밤으로 책가방과 옷가지를 챙겨들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서울에 사는 친구집에 기거하면서 그는 서라벌예술대학
(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 전학기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바로 이수인이 이흥렬, 김동진 선생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되고
평소 김동진을 흠모하던 이수인은 그의 총애받는 제자가 된다.
그때부터 그는 김동진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김동진 또한 그에게 많은 음악수업을 받게한다.
서라벌예대졸업 후 그는 고향인 마산성지여자중학교 음악선생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이수인은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은인들을 만나게 된다.
여류시인 유안진, 평론가 조병무, 소설가 김지인,
시인 김재호 등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수인이 그후 남산 중앙방송국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합창단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성지여고 재직시절의 단짝친구 김재호의 엽서를 받게 된다.
그 엽서의 내용이 바로 이수인을 생각하는 고향친구
김재호의 마음을 담은 「고향의 노래」이다.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열면 하얗게 뭇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 보라
고향 길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의 노래」, 이수인은 김재호의 엽서에서 한참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는 국민의 가곡 "고향의 노래"을 쓴다.
그것은 사랑하는 친구를 생각하면서 단숨에 쓴 곡이었다.
그리고 「고향의 노래」는 테너 엄정행의 노래로 레코드를 타고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작곡가 이수인(李秀仁)이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968년.
고향 마산에서 교편을 잡다가
1967년에 KBS 어린이합창단 상임지휘자로 발탁돼
서울 생활에 적응해 가려는 참이었다.
"마산 살 때 저와 같은 학교인 성지여고에서 국어 교사로 있던
김재호 시인이 어느 날 보내 온 편지에
이 시를 지어서 보내 왔습니다.
그와 늘 친했고 제가 서울에 온 후에도 자주 연락을 취하던 친구였지요.
시를 받고 보니 아직 생생한 기억 속에 있는
고향이 새삼 그리워져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고향은 늘 젊게 기억하는 법이고
추억속의 자신이나 이웃도 매번 젊고 영원하다.
그 날 밤 그는 젊은 고향, 눈 앞에 확연히 살아 있는
감동의 고향을 생각하며 작곡했다.
곡 당시 그는 신촌 셋방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 그의 주소는 잊었다.
지금은 그 셋방에서 이사간 집이지만 상경 이후
신촌을 벗어나지 못해 이젠 신촌의 터주대감을 자처한다.
<고향의 노래>는 주요 성악가들이 다투어 부른 곡의 하나다.
이 곡은 그 자신이 합창곡으로도 편곡했다.
이수인(李秀仁, 1939년 - 경상남도 의령) 작곡가
음악이 생활이고 생활이 곧 음악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수인.
그는 마산 동중에 입학하면서 교회 성가대 활동과
집에서 바이올린과 기타 연주를 통해
이미 ‘에밀레종’ 등 여러 곡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한다.
동중 졸업 후 마산고에 진학,
당시 교사인 작곡가 윤이상과
함께 시인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등의 가르침을 받아
문학에도 심취하는 계기가 된다,
그가 수십 년에 걸쳐 작곡한
대부분의 곡들이
짙은 서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57년 서라벌 예술대학 음악과에 입학,
김동진, 이흥렬 등의 지도아래 전문적인 수업을
받게 되며 대학 졸업 후에는 마산KBS어린이합창단과
그후 KBS어린이합창단의 지휘를 맡게된다.
한편 이수인 씨에게 시를 전한 김재호 시인은 1938년 김해에서 출생했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마산의 성지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문학 활동을 펴 나갔다.
그는 1960년에 국제신보 신춘문예에 시
<강물>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1964~1966년에는 <현대문학>에 시 <까마귀 표상>
<겨울 심상> <편력의 까마귀>를 매년 한 편씩
차례로 발표해 문단 위치를 다져 나갔다.
1973년에는 첫 시집 <눈과 보리밭과 까마귀>를 발간했다.
그리고 15년 후인 1987년에는 제2시집 <가을 심상>을 출판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강물> <겨울 심상> <자조 문선록>
<까마귀 표상> <도정> <젖양> <하교> <황국> <눈> 등
자연을 노래한 서정시가 꼽힌다.
그는 1968년에 대한민국 예술교육문학상을 수상했다
첫댓글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