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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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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너를 죽이고...
... 나는 자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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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고등학교 이사장실..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은 자가 이사장으로 보이는 백발 남자와 마주앉아 있다.
" 이 학생인가.."
"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장님.."
" 최회장 부탁이니 내 거절할 수도 없고..이런.."
" 먼 친척 따님 되시는데 쭉 외국에서 사시다가 얼마전에 귀국했죠.
고국에서 학교생활을 해 보는게 꿈이시라고 하도 노래를 부르는 통에.."
" 그래, 몇 달이라고 했지?"
" 아가씨가 싫증나실 때까지라고만.."
" 싫증? 학생이 싫증나기 전까지만 학교를 다닌다.. 허.. "
" 이미 졸업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아무리 그래도.. 모름지기 교육이란.."
" 그리고 여기.. "
" 이게 뭔가.."
" 그저..최회장님의 작은 성의라고.."
여러장의 사진과 함께 서류들이 어지러히 널려있는 테이블 위로
흰 봉투가 조심스럽게 올려진다.
" 흠흠..그래..그렇지.. 먼 외국땅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고국이 많이 그립긴 하지..허허.."
" 그럼 내일부터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반은.."
" 그거야.. 1학년이나 2학년 반으로 내가 알아서.."
" 2학년 3반으로 해주십시오.."
" 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 아닙니다, 단지 아가씨가 원하셔서..
아마도 그 숫자에 특별한 추억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 음..3반이라면.. 보자..아! 정용수 선생반.. 알았네.. 내 그렇게 하지.."
* * * * *
어두운 조명아래 한 남자가 앉아있다.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듯한 남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눈꺼풀을 가만히 붙혀둔 채, 조용히 쇼파에 기대어 있다.
" 이게 뭐야.."
퍼억.. 바닥으로 내던져진 무언가..
" 몰라서 묻는 거냐.."
그제서야 남자는 눈을 뜬다..
" 그러니까..이게..왜.."
" 보고도 몰라서 묻는 건 아닐테고..."
" 갑자기 교복을 왜 내게 주는 거야..?"
" 왜, 한번쯤 가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 그때 넌.. 분명 갈수 없는 곳이라고 했어. 나는.. 처음부터!! "
" 그렇지, 갈 수 없지.. 서류상으로 넌.. 존재하지 않는 애니까.."
" ...."
" 허나, 가짜 하나 만들어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 겨우 그 아이 하나 때문에 내가.."
" 최회장 꿍꿍이가 있겠지.. 어쨌든 널 학교로 보내라니
우리야 그저.. 따를 수 밖에.."
" ...."
" 그러게 그때.. 죽이지 그랬어? "
" ...."
" 훗.. 어쨌든.. 축하라도 해야 하는 건가.."
납득할 수 없다.
그 아비 대신 그 놈의 자식을 죽여야 한다는 것도..
그깟 애송이 하날 치기 위해..
여지껏 한번도..누구도..
권하지 않던 교복이란 걸 입어야 한다는 사실도..
난..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 오늘 밤이라도 당장 죽여주겠어.. 그러면 굳이.."
" 기다려.."
" ...."
" 서두를 이유..없다.."
" ...."
" 영감이 시간을 주는 거라면.. 너도 얼마든지 즐겨도 되는 거 아닌가.."
" 즐겨? 무엇을.. 그 자식 죽이는 거?"
" 평범한 생활.."
" 헛소리 마."
" 내가 널 모를거라 생각하지 마.
너에 관한 건 너보다 내가 더 명확하니까.."
" ...."
" 잊었어? "
" ...."
" 널 만든 건.. 나라는 사실.."
" 미안하군.. 나보다도 더 내 생각을 잘 아는 네게
감히 나 따위가 지껄여서 말야.."
" 내일부터야.."
" ...."
" 시작은.."
" ...."
" 너에게도..나에게도.."
내게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고 있는
카인의 저 까만 눈동자가 점점 더 짙어져간다.
몰라..
모르겠어..
그렇게 쳐다보지 마..
니 머릿속을 들여다 보는 일 따윈..
난 이미 예전에 포기해버렸으니까..
* * * *
오전 여덟시 반..
끼익-,
검은 승용차 한대가 교문 앞에 선다.
모두들 학교로 들어가버린 건지.. 고요한 운동장만이 눈에 들어온다.
" 정승표.."
" 아함.. 졸려죽겠네, 새벽부터 이게 뭐냐.. 왜 불러? 정떨어지게.."
" 원래 이렇게 다들 이른건가.. 학교라는 곳은.."
" 난 학교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야, 니가 학교를 안다녀봐서 그렇지..으휴.. 말도 마라.."
" 왜 그만뒀다고 했지? 넌.."
" 선생들 꼴보기 싫어서.. 엿 같은 잔소리.. 돈 밝히는 쓰레기.."
" 책 같은데선 좋은 선생들도 간혹 나오는 것 같더니.."
" 몰라, 좋은 선생같은 건 전부 어디에 짱박혀 있는 건지..
내 인생에 선생들은.. 죄다 테클이었지.."
" ...."
" 들어가봐, 나도 이제 그만 가서 잘란다.."
" 응.."
" 내가 나중에 봐서 데리러 올게.."
부웅-,
날 내려놓은 승표가 저만치 멀어져간다.
저벅.. 천천히 몸을 틀어 교문안으로 발을 옮기는데..
" 야, 거기.."
" ...."
" 이씨, 이년아! 내말 안들려?"
아마도 나를 향해 내뱉은 소리라 짐작되는 곳을 향해 고개를 틀자
담벼락 아래 무리지어 있는 대여섯명의 여자애들이 보인다..
" 야, 차 좀 좋은 거 탄다고 뵈는 게 없냐?"
머리가 노란 여자 애 하나가 나를 노려본다.
" 너 몇학년 누구야?"
담배를 물고 있던 단발머리가 옆에서 거든다.
" 못보던 년인데.. 이거 전학왔냐.."
" ..."
" 근데 이게.. 야, 너 병신이냐.. 대답 안해?"
" 오늘.."
" 뭐?"
" 전학.."
" 씹.. 말이 짧다?"
나를 향해 오른 팔을 들다.. '어휴..이걸 그냥 '하고 짧은 한숨을 내뱉더니
이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려 발로 비벼 끈다..
" 어쭈, 이거봐라.. 눈 안깔아?"
" 너.."
" 뭐? 너?"
" 주워.."
" 아우 이게 진짜.. 야!!"
" 장해영!! 니가 참아..야.. 아침부터 학주한테 끌려갈 일 있냐.."
" 이년아 너 오늘 재수 억세게 좋은 줄 알어, 우리가 누군데 감히.."
" 누군데.."
" 뭐?"
" 뭔데..너희가.."
" 씹..보자보자하니까 이게.."
" 야, 시끄럽고.. 본론만 말한다.. 가진거 있음 내 놔.."
" ...."
" 졸라 잘나서 재수없게 기사까지 끌고 다니는 거 보니..
돈 꽤나 있는 거 같은데.. 좀 내놔봐 이년아.."
" ...."
" 짜증나게 직접털어가게 만들지 말고 그냥 좋은 말로 할때.."
" 줄게...돈.."
" ...."
" 근데..."
" ...."
" 뭐하게.. 그 걸로.."
" 쓰는 거까지 네 년한테 고해야 되냐 우리가?"
" 장난감이라도 살거냐.."
" 뭐? 진짜 이게 죽고싶나..야!!"
독기어린 눈으로 날 쏘아보는 무리들..
곧 한대 칠 기세로 내게 다가온다.
" 야, 그만.."
" ...."
" 씹.. 그만 하란 말 안들려?!!"
" 은주야 너도 지금 봤잖아.. 이년이.."
" 교실로 가자.."
" 뭐? 이대로..가면 저년.."
" 시끄러..가!!"
무리들 중 키가 큰 여자 애가 소리치자..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드는 아이들..
맨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던 그 아이가 곧 내 앞에서 멈춰선다.
" 너.."
" ...."
" 누구냐고 물었냐..우리가.."
" ...."
" 이제 너도 곧 알게 될거야.."
" ...."
" 인사는 조만간 하지.."
" ...."
" 내가 직접.."
저 녀석..
이기는 법을 안다..
상대를 눈으로 제압할 줄도 안다..
제법.. 강한 척 하는 법도 안다..
" 야, 차은주.. 열받아!! 지금 들어가면 나 열받아 죽을지도 몰라!!"
" 씨발..너.. 운 좋은 줄 알아라..퉤-,"
뺨으로 이름모를 녀석의 침이 묻어난다.
훗..
이럴 때 웃음이 나는 것은.. 왜 일까..
어디서든.. 쓰레기는 있다.
단지...
스스로가 쓰레기라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것이..
지금 나와 너희의 다른 점이다..
* * * *
교무실 안으로 한 아이가 들어온다.
" 어, 그래..이리와라, 해주야.. 내가 아침에 말했지?
오늘 전학 온다는 그 학생이다. 교실까지 안내 해주고..
너처럼 제때 학교에 들어온거 아니니까..니가 각별히 더 신경 써 줘..알았냐"
" 와.. 짱 이뿌다..에이 쌤.. 난 나보다 예쁜 애들은 정말 친해지기 싫은데.."
" 욘석이!! 또 까불지~ 수업 시작하기 전에 얼른 데려가!!"
" 푸훗.. 넵!! 염려붙들어 매십쇼!!"
유난히 목소리가 큰 그 아이는 교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덥썩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 헉..헉.. 얼른 가야 돼.."
" ...."
" 쉬는 시간이 3분이나 남았어, 충분하다구!!"
" 어딜.."
그 아이의 손에 끌려 도착한 곳은..
" 야!! 아직 내꺼 남겨뒀지? 안은경 너, 치사하게..
내 초코빵에 손댔지? 손댔지? 이거 이거..양이 확..줄어든 거 같은데?"
" 침까지 발라두고 뛰어갔으면서.. 더럽게.. 내가 그걸 왜 먹어?"
" 더럽다니, 더럽다니!! 내 침 한방울 한방울이 로얄제리야.. 알지도 못하는 게!!"
" 근데.. 쟨 누구야?"
" 어? 아하..내 정신 좀 봐.. 오늘부로 우리반.. 이름은!!!
긁적.. 아까 담탱 뭐라 그랬더라? 아하..미..미안해.. 이..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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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이제부터 네 이름은 「하 로미」..
쭉 미국에서 산거야.. 고국이 그리워서 잠깐 들어온거구.."
" 내 성이 하씨인거.. 나도 처음 알았네.."
" 그냥 임의로 붙인거니 괜히 맘 쓰지 말라고.."
" 승표 네가?"
" 아니, 카인이 그렇게 하라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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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 하로미.."
" 와~ 이름도 장난 아니다.. 빠다 냄새가 좀 나는 것도 같고..으흐..
너도 나처럼 늦게 학교 온거야? 몇 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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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 올해 몇이냐"
" 잘 모르겠습니다.."
" 카인, 니가 알겠지? 롬이 올해 몇이냐?"
" 제가 대여섯살 때부터 맡았으니.. 한..스물쯤 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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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이로 스물.."
"그래? 그럼 나보다도 언니네.. 난 열아홉.. 꽤 동안이지? 큭큭..
난 오해주야.. 목촌여고 잠시 다니다가.. 사정이 있어서 나도 작년에 복학했어.."
" 안녕? 난.. 안은경.. 그럼 앞으로 언니라고 불러야 되나.."
" 편할대로..."
" 어쨌든 무지무지 반갑다.. 잘 지내보자.."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도 한참동안 그들은..
그 매점이라는 곳에서 나갈 생각이 없는 듯이 보였다.
" 그나저나 해주야.. 오늘부터 설찬오빠 다시 학교나온대!!..
와.. 이제부터 나 눈 크게 뜨고 다녀야지..이렇게~"
" 이거..이거.. 또 시작이네.."
" 왜~ 우리 설찬 오빠가 얼마나 멋진데.. 얼굴 돼~ 머리 돼~
들리는 소문에 집안도 좋다고 그러지.. 정말이지..그는 나의 이상형이야.."
" 허.. 그런 자식이 왜 허접한 오토바이 타다가 다리를 분질렀다냐.."
" 그건 좀..그래.. 학교에선 쉬쉬하는데.. 꽤 큰 사고였다더라.. 안그래도 걱정돼서 죽겠어.."
" 아, 우리 이럴 때가 아니다.. 로미야.. 얼른 교실 갈켜줄게.. 따라와.."
* * * *
난생 처음..
네모난 나무조각들이 숨쉴틈 없이 다닥다닥 몸을 맞대고 길게 늘여져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 교실이란 곳에 들어섰다..
어지러히 널려 있는 책들 만큼이나..
그곳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표정도 혼란스럽다.
" 해주야!! 야, 오반장~ 으앙~"
내가 들어온 문을 닫자마자 반장이라는 아이에게로 달려드는 아이..
큰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있다.
" 우리 정재 아직 안왔어.. 저번처럼 또 어디서 일하다 다친 거 아닐까.."
" 이것들이 아침부터 사람 염장질은.. 서정재 어디서 또 퍼질러 자겠지,
노혜리 넌 허구헌 날 그렇게 호들갑이냐!!!"
" 그래도..자꾸자꾸 걱정되는 걸.."
" 야, 오해주 얼굴 좀 치워봐.. 너 때문에 뒤에 애 광채가 빛을 바랜다.."
" 으.. 조동욱, 그 조동아리 좀 닥치지.. 먼지 들어간다."
" 휘익-, 누구냐.. 너랑 대비되는 저 섹시녀는 누구야!!"
" 으유.. 어째 이것들이 말에 씨가 있다? 아침에 담탱이 말했지?
방금 온 따끈한 전학생.. 어때? 나만큼이나 미모가 출중하지 않냐?
하하.. 소갠 네가 직접할래?"
나를 돌아보며 말을 건네는 아이..
소개..
평생 누구에게 날 설명하는 일 따윈.
내겐 없을 줄 알았는데..
동그란 눈동자들이 모조리 나를 향해 있다.
" 나.. 하..로미.."
" 엥? 끄..끝이야?"
" 오우~ 내 스탈이야!! 도도한 꽃순아 요기.."
" 웃기지마, 너 나랑 앉자 일루와~"
" 이 자식들.. 이 언니는 오늘부로 내 옆에다 모실테니까.. 침 바르지 마!! 확~
로마, 신경 쓰지 마.. 쟤들 원래 밥 맛이거든..하하..
책상.. 창고에서 가지고 와야 되는데.. 일단 정재 자리에 앉아,
그놈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 애 손가락 끝이 가리킨 자리는 2분단 맨 뒷줄..
끼익-, 의자 끝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끝으로..
나는 그 녀석의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우주인 자격 조건'
책상 위로 어느 과학잡지 한 페이지가 잘려진 채 놓여 있다.
" 궁금한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음 뭐든 말해..
애들은 다 좋으니까 금세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아마도 내 앞 자리인 그 애가 웃으면서 돌아본다.
" 반장.."
" 응? 난..해주..오해주.."
" 그..래.. 오해주.."
" 말해봐.."
" 왜.. 없지.."
" 응? 뭐가.."
" 자리 주인.."
" 아.. 정재? 글쎄.. 그 자식..어디서 또 때라도 밀고 있으려나.."
" ...."
" 하핫.. 생각보다 꽤 오래버틴단 말씀이야..기특하게시리..큭큭.."
약간의 나른함..
잘 표현할 수 없지만..
그것이 내가 처음 본 교실이란 곳의 느낌이었다..
늘 시끄럽고 활기에 넘쳐 보이긴 해도
막상.. 그곳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막상.. 그곳에 속해 있는 그들의 얼굴을 십여분만 들여다보면..
아니다..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이곳이 무지 즐거운 곳만은..
표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눈빛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니다.. 아니었다..
이곳도..
아니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말하는 외로움이란..
오로지 혼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 * * *
띠링~ 띠링~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자 여기 저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 로미야~ 우리 책상 가질러 갈까?"
* *
교실이 있는 건물 뒤켠으로 허름한 창고 하나가 나온다..
" 으라차, 요게 쓸만하네.. 아냐.. 넌 다리가 기니까 요거?"
" 상관없어..난.."
" ..."
" 왜.."
" 응?"
" 뭘 보는 거지..?"
" 웅..하하.. 하.. 은경이 기지배..
자기보다 니가 더 이쁜 거 같다고 괜히 심통이잖아..
그래서 어디가 얼만큼 이쁜가 내가 좀 봤다..하하..
하여간 별것도 아닌 것에 라이벌의식은.. 으하하..
걔가 사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지금껏 내 빼어난 외모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거든..크흐.."
" 훗..내가..들게.."
책상을 들고 먼지 가득한 창고를 나오는 찰라..
" 야, 싸가지 나 좀 보자.."
" 으..응? 서..선배님들.. 무신 용무이신지.."
" 거기 촌닭, 너 말고 얘.. "
" 그러니까..거시기.. 저희반 동무에게.. 왜.."
" 야, 차은주 얘 맞지?"
" 네, 언니.. 꽤 쓸만하죠?"
아침에 만났던 무리들과 몇몇이 더 보인다.
" 뭐..니 말대로.. 얼굴은 좀 반반하다?"
" 깡도 좀 있다면서 너?"
" 서..선배님들.. 저..저희들은 이만..수..업이.."
" 촌닭, 넌 가라니까!! 우린 너한테 볼일 없어!"
" 아..안돼요!! 아니됩니다.. 우리반 동무의 손을 놓고 내 절대 비겁한 발걸음을.."
" 아..이거.. 말귀 못알아 먹네.. 이걸 그냥 확!!"
" 아..아야야.. 아이쿠.. 사람죽네..사람죽어.."
" 이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엄살은.."
" 오해주.."
" 으응?"
" 가.."
" 무..무어라.. 내 어찌 너를 혼자두고.."
" 괜찮으니까..가.."
" 안돼.. 너.. 이 선배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혼자..어쩌려구.."
" 이게..칭얼대지 말고 얼른 꺼져라.."
" 서..선배님들..정녕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신다면 내 당장..학주를.."
퍼억-,
아침에 봤던 노랑머리의 발길질에 저만큼 튕겨져 나가는 오해주..
정신이라도 잃은 건지 미동도 없이 쓰러져 버린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
" 뭐야..너.."
" 그러는 넌.."
" 뭐하다 온 년인데.. 우리 애들 눈에 거슬려?"
" 그런적 없어."
" 어쭈.. 눈뜨는거봐..요거.."
" 용건이 뭐지.."
" 내가 가장 아끼는 차은주 후배께서 니가 맘에 든다고 하니..
어쩔까 고민중이지.. 우리가 널 받아주는 거.."
" 훗..."
" 웃어? 이게.."
" 거기서 뭘하지? 애들 코묻은 돈이나 뜯는 건가.."
짜악-,
녀석의 손바닥에 맞닿은 얼굴이 그대로 돌아간다.
"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니가.."
" 언니, 한번 밟아주죠.. 이런 년.."
" 싫어.."
" 뭐?"
" 너희가 뭘하든..어쨌든 싫어.."
" 니 선택을 묻자고 온게 아니야.. 은주가 찍은 널
나는 그저 확인사살 차 온거 뿐이니까.. 니년이 정말 쓸만한건지.."
" 싫다고.. 말했어.."
" 허.. 미친.. 꼴깝은..야, 니들 이년 잡아!!"
말이 끝나자마자 내 양팔을 붙드는 아이..
" 뭐..? 싫어?"
" ...."
" 이래도?"
물고 있던 담배를 엄지와 검지로 고쳐 잡더니..
입고리를 들어 내 얼굴을 향해 뿌연 연기를 내뿜어댄다.
" 어때? 기대되지?"
스윽.. 내 교복 블라우스를 걷어 허리춤으로 담배불을 가져간다.
" 이래도 니가 싫다는 말이 나오는지..내가.."
" 대.."
" ..뭐?"
" 갖다 대.. 들고 있지만 말고.."
" 이게.."
" 왜.. 겁나?"
" 못할 거 같아 내가?"
" ...."
" 날.. 우습게 보지 마.."
지직..
온 몸의 피가 한 곳으로 몰리는 것처럼 심장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살이.. 타들어간다.
피식..
웃는다..
그 녀석의 떨리는 눈동자에다 대고
나는 그렇게 웃어준다..
" 이년이..정말.."
" 알아?"
" ...."
" 이 딴건.. 간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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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싫어!! 싫어!!!"
" 겁나는가.."
" 아파.. 흐윽.. 저리가.. 무서워.."
" 두려움은 고통을 배가 되게 하지.."
" 흐으.. 윽..흐.."
"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고통도 없다."
" 으..윽.. 흑.."
" 고통이란 무뎌지기 마련이야..
죽을 것처럼 아픈 고통도 막상 한번 겪고나면
오히려 더 강한 자극을 주기전엔 기억에서 멀어지지.."
" ...."
" 견뎌.. 두려움이 달아날 때까지..
..참아.. 고통이 무뎌질 때까지.."
" ...."
" 그 두려움을 이겨낸 자보다..
그 고통을 견뎌낸 자보다
더 두려운 존재는 세상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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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운가..너도.."
" 미..미쳤어..이거.."
그 녀석의 떨리는 목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내 등뒤로 또 한개의 목소리가 내려앉는다..
" 야, 니들 아직도 이렇게 유치하게 노냐.."
저벅..스윽.. 저벅.. 스윽..
요란한 소리를 달고 내 앞으로 다가오는 아이..
" 서..설찬아.."
" 어디서 골 때리는 거 하나 또 들어왔나보네.."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한채 목발에 몸을 기대어 날 내려다 보는 녀석.
" 훗.. 어쨌든 너 깡하난 끝내준다.."
" ...."
" 넥타이를 보니.. 2학년?"
" ...."
" 뭐하자는 거냐.. 지금 선배 말 씹어?"
쓸데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싫다.
눈 앞에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 말했어.."
" ...."
" 싫다고.."
" 은주야.. 완전 저거 또라이야.."
" 그만 가자.. 얼굴만 봐도 재수 없어.."
" 야, 뉴페이스가 싫대잖아... 니들 그만 가라!!"
깁스를 한 녀석이 한마디 하자
하나둘 사라져 가는 무리들..
시시해..
언제나 그렇 듯 사는 게.. 시시해..
" 뭐냐 너.."
" 피곤해.."
" 뭐?"
" 너도.. 꺼져.."
" 훗... 아.. 그러셔?"
" ...."
" 정체가 뭐야, 외계인.."
" ...."
" 못보던 얼굴인데.. 여기 왜 왔어? 어디서 사고쳤냐..."
대꾸도 하지않고 쓰러져있는 해주에게로 몸을 돌리려는데..
툭..
내 앞을 가로막는 목발 하나..
" 어이~ 후배, 귀엽게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 그래서.."
" 뭐냐고 물었다, 정체가.."
" ..."
" 여기 왜 있냐고 물었어..내가.."
" ...."
" 너..한번만 더 내 말 씹으면.."
" 죽이러.."
" 뭐?"
" 누굴 좀 죽이러.."
" 누구.."
" 너한테 설명할 필욘 없는 것 같은데.."
" 훗.. 진짜 이거 골때리네..하하.."
녀석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난 그냥 돌아섰다.
점점 더 이 곳이.. 싫어질 것만 같다..
" 무서운 후배, 갈땐 가더라도.. 거기 목발은 좀 집어주고 가라..
내가 보시다시피 몸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서 말야.."
내 몸을 가로 막을때만해도 저 녀석 손에 들려있던 목발이
어느새 내 발 밑에 떨어져 있다.
스윽.. 허리를 숙여 목발 끝을 잡고는 손잡이 쪽을 돌려
녀석에게로 내민다.
" 됐지, 이제 난 그만.."
(( 뭐야..이건..))
내가 목발에서 미처 손을 떼기도 전에
녀석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쪽으로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휘익..
녀석 앞으로 몸이 기우는 것이 느껴지는 찰라.
녀석의 강한 팔이 내 머리칼에 파고든다.
꽉..
순식간에 낯선 두 눈동자가 마주치고..
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을 향해 다가온다.
" ..!!.."
아니, 내가 다시 묻고 싶어.
도대체..
도대체..
너야 말로..정말..
정체가 뭐지..
서서히.. 맞닿았던 두 눈빛의 거리가 멀어져간다.
" 어때?"
" ...."
" 죽이지? 내 키스.."
" ...."
" 기억해 둬.."
" ...."
" 내가 먼저다.."
" ...."
" 내가 먼저.. 죽인거다.."
바람이 치마 끝을 스쳐간다.
햇살이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내 삶에서..
내가 지금껏 살아 온 삶에서..
우연이라던가..
예측불허라든가..
그런 말은 떠올릴 수 없는 그런 단어였다.
그런데..
그 날 창고 앞에서의 그 짧은 입맞춤으로 인해..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대단한 학교생활은..
알 수 없는 궤도 위를 도는 것처럼..
내 예측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윤설찬과 내가 서 있는 이..학교라는 곳은
훨씬 더 사람을 미치게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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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고비라는 것이 있는데요..
요 몇주가 제겐 그런 날들이었답니다..
1편을 좀 더 늦게 올릴 걸 조금 후회가 되네요..
글은 약속 같은 거니까.. 도중에 포기하진 않습니다만..
자주자주 글 올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한번 올릴 때 많이 올려드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저번 소설보다는 긴 내용이 될거구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인물들이 많으니까..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세요.
글을 쓰는 것은 행복한 일인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힘든 일 입니다..
얼른 얼른 마음을 추스려 자주 찾아뵙기를..
응원해 주시면 힘이 될거 같아요..
클릭해 주신 님들아 정말 감사해요^^
첫댓글 저는 별헤는밤 완결때야 작가님소설을 접하고서 다음 소설을기다렸답니다! 하하. 많이 힘드신거 같네요. 그래도 얼른 털고 일어나세요. 고비라는것도 그냥 말그대로 잠시 겪는 어려움이나 시련같은 거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글쓰는게 참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다니, 다행이네요. 별헤는밤에 이어(제멋대로 줄였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쓰는 이번 소설도 재밌게 보겠습니다! 천천히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지켜볼께요- 힘 내시고 언제든지.. 소설들고 찾아오시기만 하면 되요. ^ ^
제겐 많은 독자님은 없지만.. 좋은 독자님이 많이 계시단 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그래서 참 다행이고 고맙구 그런 밤입니다.. 님의 마음이 그대로 제게 전해졌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구요~ 얼른 얼른 올릴 수 있도록 분발할게요.. 보슬님아 정말정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