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 근처 마트에 들렀는데 먹음직스런 애호박이 비닐에 싸여 진열되어 있는 걸 보고 냉큼 하나 집어 바구니에 담았다. 옛날엔 밭은 물론 담장 밑에 심은 호박줄기에 주렁주렁 달린 게 호박이었는데, 요즘엔 호박도 애지중지 비닐에 싸 모셔지는 호사를 누려야 제대로 달린 결실을 보는 건지...하긴 뭐 예전엔 아무에게나 발로 툭 차이는 게 동네 똥개였는데 요즘엔 개가 상전으로 모셔지는 세상에 호박 하나 먹으려면 비닐로 고이 모시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거니, 에궁! 인간이 최귀(最貴)한 시절은 저 먼 피안의 이야기에 다름아닐지도...
그 옛날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우리나라를 지원한 미국의 AID차관 덕분에 그래도 쌀 대신에 밀가루 음식으로라도 겨우겨우 끼니를 때웠던 그 시절, 우리집은 일본에서 갓 귀국하여 손바닥만한 땅 한 평 없이 피죽(피로 쑨 죽인데, 피란 논에서 자라는 벼와 비슷한 잡초를 말함)에 더하여 밀가루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단다. 나야 뭐 해방을 맞고 또 6.25전쟁까지 치른 직후 태어났으니까 부모님이나 형님들에게 들은 얘기였지만...하튼 미국의 밀가루 지원으로 그 힘들고 고달픈 인고의 세월을 이겼냈음은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
가난한 우리집이었지만 형님 두 분이 객지에 나가 생활비를 부쳐 주셨기 때문에 집에 있는 부모님과 나머지 우리 형제들은 그럭저럭 끼니를 굶지 않고 살았던 건 그나마 천운이었을 터...하지만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은 게 인간의 욕심이라 했던가? 끼니 걱정 없다고 주구장창 이밥만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니, 어쩌다 한 번 먹는 밀가루 음식인 국수가 우리 형제들에겐 천하일미에 다름아니었으니...
어느 날 점심 무렵 어머니께서 밭에 가서 애호박 한 개 따 오라고 말씀하시면 우리 형제들은 뛸 듯이 기뻐할 정도를 넘어 아예 마당을 떼굴떼굴 뒹굴 정도였으니...왜냐고? 어머니께선 늘 빨간 고추와 애호박을 곱게 썰어 지단을 얹은 칼국수를 만들어 주셨으니, 아 오늘 점심은 칼국수를 먹는다는 걸 지레 알게 된 거다. 그렇게 그 시절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는 국수는 우리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인정받았다는 거다.
비릿한 멸치 다시물을 끓이는 가운데 어머니께서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밀면 우리들은 어머니 옆에 동그마니 앉았다가 국수를 썰고 남은 꼬랑지를 받아 아궁이 불에 얹어 익혀 먹은 맛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먹으라면 니맛도 내맛도 아닌 단지 밀가루 뿐인 그 맛에 금방 뱉고 말았을 그걸 그때는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어머니의 사랑스런 손길을 거쳤던 거라면 밀가루가 아니라 돌인들 못 먹었을까. 그때 그 시절 우린 그렇게 가없는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