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서둘러 출발한 덕분에 생긴 여유일까요.
모든 것을 품는 대지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더군요.
곡식을 잘 자라게 하는 곡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를 맞은 산천초목들이 그야말로 싱그럽게 보입니다.
아랫텃골을 한자화한 것이 하기동입니다.
하기초등학교 가기 전에 만난 하기1교 다리 아래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더욱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 더러운 물을 정화시켜주는 풀, 텅 빈 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제 마음도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도시에 하천이 있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조망권 때문이라고 하지요.
구불구불 흘러가는 하천 위로 펼쳐진 하늘을 보며 "비어 있음"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중대백로들이 날개짓하며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비어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돋보이게 하는 하늘처럼 살고 싶습니다, 저는.
하기초등학교 입구에 서 있는 게시판의 포스터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 소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책 읽는 소리라고 하지요.
나머지는 자식의 목구멍으로 음식 넘어가는 소리와 여인이 밤에 옷 벗는 소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전에 들었던 말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노란색 우비, 청색 장화, 그리고 빨간 장갑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곡우에 꽃을 심는 이 분.
누구일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만 묻지 못했습니다.
맞은 편에서 모자만 달랑 쓴 채, 비를 맞으며 삽질하는 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심어진 꽃 사이에 백합을 심고, 나무 밑둥 쪽에 부족한 흙을 채우는 일.
단비 내리길 기다렸다가 작업하는 선생님들의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빗속에서 묵묵히 일하던 선생님들을 닮은 아이들도 수업 시간 내내 진지했습니다.
지하철역 주변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앙증맞은 꽃 속이 예뻐서 돋보기로 들이밀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볼수록 사랑스럽다.' 는 말처럼 사람이나 자연이나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오랫동안 관심 갖고 지켜보면, 분명히 큰 나무로 자랄 재목인데.......
누구나 한 가지 장점은 타고 났습니다.
장점이 뿌리 내릴 때까지는 본인의 땀과 눈물과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비를 맞으며 흙을 북돋아주던 선생님의 애정도 꼭 필요합니다.
제게도 그런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남모르게 애쓰시는 선생님들께,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