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고요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본다. 저 강은 언제부터 흘렀을까. 2000년여 년 전 백제의 수도였을 때부터 삼국은 한강을 차지하려고 싸웠으며 60 여년에도 이마가 터지도록 다퉜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강.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흘러오고 흘러 갈 강.
내일 새벽에는 아침 안개 속에 흐르는 강을 보리라. 밤새 잠을 뒤척인다. 강 건너 노량진 수산시장은 밤새도록 불야성을 이룬다. 한밤중에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소리와 전철의 굉음이 들린다.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강물은 자의에 의해서 흐르는 것이 아니다. 뒤에서 밀려오는 물에 의해 등 떠밀려 가는 것이다. 부터 사람의 삶도 자신의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따름이다.
옛날부터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은 남한강이 되고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황지에서 시작한 물은 낙동강이 되었다. 거의 같은 곳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강이 되고 나머지는 가장 긴 강물이 된 것이다. 검룡소의 작은 연못에서 차차 덩치를 키운 여울은 정선에서 강이 되어 뗏목을 엮어 흘러내려 왔단다. 정선 아리랑의 그 구성진 소리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드디어 양수리에 도착한 강물은 숨을 고른 후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조우하여 흘러왔다. 한강 가에 있는 양화진, 노량진 등 ‘진’자로 끝나는 곳은 군대가 거주한 곳이고 마포나루, 등 ‘진’자가 없는 곳은 민간인들만의 사용하는 시장이었다. 행주산성을 지난 강물은 강화도 앞 손돌목을 지나 서해로 들어가며 기나긴 여행을 끝낸다.
한강에 비가 내린다. 한강 가에 늘어 선 수많은 아파트들이 비에 젖고 있다. 빗물에 젖은 건물들은 모두 측은해 보인다. 아니, 가뭄 끝에 내리는 비를 맞는 수목과 풀꽃들이 만세를 부르는 듯 느껴진다. 강심(江心)가득히 수많은 동심원들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다. 세상사 그렇지 아니한가 생성했다가 소멸하는 것. 우리의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강. 늙어 눈 감을 때 마지막까지 망막에 남을 강. 오늘도 노을 속으로 강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