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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석화시인의 시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에 올라
*윤동주서거 65주기 추모세미나 및 시랑송대회 발언*
주최: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연변시인협회
후원: 연변청년국제여행사대교영업부
일시: 2010년 5월 21일(금) 오전 9시
장소: 한성호텔 7층 세미나실
동주의 시, 다시 읽다
read a poem of dongju all over again
석화
1. 처음에
우리는 오늘 시인 윤동주의 이름으로 여기 모였습니다. 1917년 12월 30일, 용정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꾸오까형무소 유치장에서 생을 마감한 그, 우리나이로는 29살, 실제로는 스물일곱 해, 한 달 반가량 밖에 살지 않은 그가 아름다운 시, 불후의 시편들을 써서 남김으로써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동주의 시는 그 문학적가치로 윤동주라는 자신의 이름을 영원한 시간속에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 땅에 태어나고 다시 돌아와 이 땅에 묻힘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중국조선족문학사를 기술하는데 있어서 더할 나위없는 다행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중국조선족문학의 개념과 성격, 그리고 시간적구분에 대하여 학계에 여러 가지 견해가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 윤동주와 그 시문학의 귀속에 대하여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관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각론하고 동주의 시가 중국조선족문학에 매우 큰 비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의심할 바 없는 일이며 그 존재가치와 의미는 무한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건국후 중국조선족문학에 김학철이라는 큰 산이 솟아있어 우리문학이 비로소 본질적의미를 확보하게 된 것과 같이 건국전, 광복전의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에 동주의 시가 존재함으로써 우리의 문학은 주제와 제재면에서 보다 중대한 가치를 획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인 윤동주가 한 줌의 재가 되어 태어났던 이 땅에 다시 돌아와 묻힌 지도 어언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따라서 반세기전에 씌어진 동주의 시가 2010년대 오늘의 우리문학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나아가 현재형으로 부단히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현실적으로 제시된 이 과제를 바로 밝히는 것은 동주의 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 중국조선족문학 특히는 중국조선족시문학의 보다 나은 내일을 도모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화자는 동주의 시 세편을 다시 읽으며 아래와 같은 세 가지 화두를 던지고 그 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시의 길은 궁극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둘째, 시의 탑은 어떻게 쌓여지는가. 셋째, 시의 향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1. 시의 길은 궁극적으로 민족어완성을 향한 길
문학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 또는 언어를 통하여 인간과 생활을 형상적으로 반영하는 예술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부터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문학의 문학으로 불리는 시는 언어에 대한 요구가 보다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시에서의 언어는 도구이면서 목적이며 과정이면서 결과입니다.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무한한 책임감 그리고 보다 아름다운 시적언어를 얻고 다듬기 위해 바치는 각고한 노력이 결국 시인의 자격과 품위를 가늠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작품을 이루는 시어는 불가피하게 시인 본인이 속한 해당 민족의 민족어를 두고 말하게 됩니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의 시는 운율에 의하여 완성되는데 이 운율을 이루는 리듬은 그 민족어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르게 형성됩니다. 그것은 민족마다 발성법이 다르며 이 자기만의 발성법은 그 민족 나름의 호흡에 의한 성대의 울림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민족은 역사, 지리, 문화의 사회학적 공통성과 함께 피부, 골격, 체질 등 생리학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 민족어는 그 해당 민족의 제일 주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특징으로 나타나 이 모두를 함께 아우르게 됩니다. 따라서 시어는 생태적으로 모태의 시간을 넘어 아득한 태고로부터 한줄기 핏줄을 타고 흘러온 그 민족의 맥박과 숨결이 시인의 호흡에 이어져 민족어의 운율로 리듬을 타게 되는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전문.
동주의 이 시는 형태상 여덟 행으로 이루어진 1연과 한 행으로 이루어진 2연, 이렇게 두 연, 아홉 행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 시는 《하늘/ 부끄럼》, 《바람/ 괴로움》, 《별/ 사랑》, 《길/ 인생》의 상관구조를 펼쳐 보이면서 티 없이 맑은 별의 이미지를 통하여 전체적인 서정성을 획득하고 시인의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변함없는 지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구성상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이 시의 리듬, 즉 운율적 특성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언어예술의 최고형태인 시어는 일반적인 경우 사전적인 일상어로서의 단순한 의사전달도구나 기술상의 언어가 아니라 비유되거나 상징화된 특수한 언어로서 심미적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의미망을 형성합니다. 또 이와 같은 시어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시적운율입니다. 이 시적운율의 조성에는 부동한 언어에 따라 각기 여러 가지 다양한 기법이 있습니다. 우리말은 일반적으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되어있는데 낱말이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소리가 반복되는 현상을 각운(脚韻)이라고 합니다. 이 각운은 초성이 반복되면 두운(頭韻 머리운), 중성이 반복되면 요운(腰韻 허리운), 종성이 반복되면 말운(末韻 다리운)이 됩니다.
이 작품 《서시》의 첫 행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라고 씌어졌습니다. 이 첫 구절이 왜서 《하늘을 쳐다보며》 혹은 《하늘을 공경하며》가 아니고 《하늘을 우러러》일가요. 이것은 바로 요운효과를 이루어내기 위함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을 공경하며》가 단순한 의미전달을 목표로 한 것이라면 《하늘을 우러러》에는 《―ㄹ― / ―ㄹ―》의 반복이 이루어져 요운현상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훌륭한 것은 이 시의 마지막 행의 운율조성입니다. 이 시의 마지막 행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가 아름다운 것 역시 상기 요운효과를 최대한 발휘한 훌륭한 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밤― / ―별― / ―바람―》에서의 《ㅂ》, 《ㅁ》, 《ㄹ》의 연속되는 반복이 이루어내는 요운현상입니다. 시가 예술임은 바로 이와 같이 미적효과를 목표로 세밀하게 작업하는 미적책략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시는 리듬 속에 모든 것을 담아냅니다. 훌륭한 시인은 민족어의 운율에 자기 숨결의 호흡을 맞추는 자이며 그 리듬에 자기 심장의 박자를 맞추는 자입니다. 조상의 숨결에 핏줄을 대고 그 맥박에 박자를 같이 하여 가슴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리듬이 입에 올라 스스럼없는 경지에 이르는 자, 그 리듬으로 조화로운 운율을 엮어내는 자를 우리는 훌륭한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윤동주시인의 이 작품 《서시》가 수많은 인구에 회자되며 아름다운 명시로 사랑받는 것은 이 시에 담긴 내용과 함께 바로 이와 같은 미묘한 시적 운율 즉 소리효과, 음악성 그것도 섬세한 운율의 효과가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시가 명시인 것은 작품의 내면에 이와 같은 시어의 예술성이 안받침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윤동주시인은 이처럼 민족어의 특성을 깊이 깨닫고 시를 썼습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은 우선 민족어에 대한 시인의 무한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인의 평전에는 1930,40년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나날이 가혹해지는 상황 하에서 사라져가는 민족어의 운명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고향에 있는 아우에게 우리글이 찍힌 책이나 신문지라면 종이 한 조각이라도 모두 소장해 두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참으로 처절한 부탁이라고 하겠고 간절한 호소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고도 부르는 데는 시인이 잃어져가는 조선말, 민족어를 붙들고 한 글자 한 구절씩 시로 써내려갔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각일각 멸망에 다다른 일제가 소위 “국가총동원령”을 내린 체제하에서 시국과 엇나가 조선말로 시를 썼다는 자체가 바로 처절한 저항이었던 것입니다. 그 절체절명의 시각, 내 말을 내가 한다는 것은 굳은 의지와 대단한 용기의 소산으로 오늘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볍게 볼 일이 아니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민족의 언어에는 그 민족의 숨결과 함께 그 민족의 문화, 풍습, 역사와 전통 모든 것이 스며있어 이를 일러 그 민족혼의 가장 기본적인 염색체(DNA)라고 합니다. 따라서 민족어를 잃은 민족은 모든 것을 잃은 민족이며 역사 속에 버림받고 현실 속에 사라진 민족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우리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우선 이 지역에서 민족어의 자치가 실시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민족어가 사라진 마당에서의 민족자치는 그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민족에게 자치구역을 따로 떼어준다고 한들 별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시인들은 반세기전 윤동주시인이 민족어에 바친 무한한 사랑 그리고 우리말의 더욱 훌륭한 표현을 위해 끝없이 탁마해온 장인정신을 본받아 오늘의 우리시를 더욱 푸르게 가꿔가할 것입니다. 우리시인들의 민족어에 대한 자각과 애정, 그로부터 우리시는 비로소 보석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시의 길은 궁극적으로 민족어완성을 향한 길입니다.
2. 시의 탑은 시인의 끝없는 거듭나기의 결과물
동주의 시에서 작품 《간》은 다른 작품들보다 덜 거론되는 시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간에 시인의 재치가 곳곳에 숨어있어 전체적으로 시인의 다양한 학식과 문학적 깊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 윤동주, 《간》 전문.
이 시는 시인의 우리전통설화와 서구적 독서체험의 접점을 잘 보여준 작품입니다. 시는 두 개의 이질적인 설화 즉 우리민담의《토끼전》과 그리스로마신화의 《프로메테우스》란 동서양의 두 고전을 혼합하여 시적 변용을 이루어 내었는데 이 두 고전은 작품에서 《간》이라는 공통요소를 중심으로 결합되었습니다. 토끼는 《현실의 고난 때문에 환상에 잠기는 인간성의 전형》입니다. 그는 자기가 처한 현실의 억압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용궁으로 찾아갔으나 오히려 삶의 포기를 요구 받고 그 꿈은 한낱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2연에서 《토끼전》의 귀토설화맥락에 프로메테우스이야기가 접속되며 간은 의미심장한 상징이 됩니다. 간은 뇌나 심장과 더불어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되는데 그것은 영혼과 깊게 관련지어지며 힘과 용기의 수용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간도 쓸개도 없다》는 말,《간이 부었다》, 《간도 크다》는 말은 그래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코카서스의 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는 힘과 권력의 속박을 벗어난 토끼라는 점에서 용궁에서 도망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힘과 권력에 의한 속박의 세계라는 점에서 코카서스산은 용궁과 동일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질적인 두 고전의 접합이 이루어지며 3연으로의 무리 없는 연결을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민담《토끼전》에는 독수리가 출현하지 않기 때문에 3연의 독수리의 등장은 2연의 코카서스 산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합니다. 여기서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는 힘의 상징으로 오래 기르던 독수리를 살찌우고 나는 여위겠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는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의식은 예리하게 지니겠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너》는 정신적 자아요, 《나》는 육체적 자아이며 육체적 자아의 희생은 감수하려하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전적인 포기는 아닙니다. 4연의 《그러나》는 여위어 힘은 없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겠다는 의지, 뜯어 먹히더라도 간을 내놓을 수는 없다는 결의를 표명합니다. 이어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하는데 천상의 불을 훔쳐와 인간들에게 나눠 주고 집 짓는 법, 글 쓰는 법을 배워준 그는 《인류문화의 정신, 지성의 상징》으로 됩니다. 인류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죄로 바위에 묶어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는 밤마다 새로 간이 돋아나기에 그 고통은 끊임없이 계속되며 이것이 《인간적 고통의 핵심》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맷돌의 등장이 매우 특이한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서 맷돌은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에 상응 하면서 또한 우리민속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목에 맷돌을 단 프로메테우스, 그는 고통 받는 조선 사람인 시인 자신이고 시인은 자기 동일성으로 서양의 그리스로마신화인물 프로메테우스를 택하였습니다. 자기희생적 인간, 고통을 감내하며 제우스에 대항하는 저항적 인간으로 시인은 이 프로메테우스를 본받자고 한 것입니다.
이 시는 간을 말리고 그 간을 지켜 지배층 세계와 대응하는 자세를 취하려는 토끼의 저항정신과 고통을 당하며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정신을 나타내었습니다. 또한 우리민담의《토끼전》과 그리스로마신화의 《프로메테우스》란 두 고전을 차용하여 저항과 희생이라는 이질적인 정신적 지향을 무리 없이 담아냈습니다. 여기서 특히 《코카서의 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란 표현을 써서 두 고전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해나간 수법은 놀랄 만한 것입니다.
시인의 이와 같은 재치 있고 놀란 표현력은 결코 하늘이 그에게 천재시인의 선물로 그냥 준 것이 아닙니다. 시인의 이력과 학습과정, 독서경력을 살펴보면 한낱 용정 명동촌에서 태어난 시골아이에 불과했던 그가 나중에 어떻게 우리겨레의 가장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였는가를 잘 알 수 있게 합니다.
시인은 아홉 살 때인 1925년 4월 4일,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12~14살이 되는 4학년 무렵부터 서울에서 간행되는 간행물인 《어린이》, 《아이생활》등 잡지를 구독하였고 5학년 때는 급우들과 함께 《새 명동》이란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1931년 3월 25일, 이 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졸업선물로 김동환의 시집 《국경의 밤》을 받았습니다. 이어 명동에서 동남쪽으로 약 10여리 상거한 달라재(大拉子 ― 현재의 룡정시 지신향)의 중국인 관립학교 6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공부하였습니다. 시 《별 헤는 밤》에 나오는 패(佩), 경(鏡), 옥(玉) 등 이름의 《이국소녀》들과 책상을 나란히 하고 함께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중국어(漢語)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대목으로 여기에는 북경유학까지 하고 온 아버지의 영향과 함께 한학자집안인 외가의 영향이 컸습니다. 특히 외삼촌인 규암 김약연선생의 가르침이 많았던 것으로 그분은 1900년대 초에 손수 명동학교의 전신인 규암서숙(圭巖書塾)을 일떠세우고 수많은 애국지사를 길러내어 《간도의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던 분이셨습니다.
1932년 4월, 용정의 기독교계 학교인 은진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1935년 9월 1일 이 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에 편입하였습니다. 1936년말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거부로 폐교되자 다시 용정에 돌아와 5년제인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였습니다. 이때 연길에서 간행하던 《카톨릭소년》지 1935년 11월호, 12월호에 연속 《병아리》《빗자루》등 동시를 발표하였으며 이듬해 1936년 1월호, 3월호, 10월호에 또 《오줌싸개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등 동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무렵 그는 외가에 와있던 동요시인 강소천선생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신문과 잡지들에서 이상 등 문인들의 작품을 스크랩하였고 《정지용시집》을 정독하였습니다. 또한 1937년 8월에는 당시 100부 한정판으로 출판된 백석의 시집 《사슴》 한 책을 완전히 필사하였습니다. 1938년 2월 17일, 용정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4월 9일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그는 최현배선생에게서 조선어를 배우고 리양하교수에게서 영시(英詩)를 배웠으며 당시 문단의 대시인 정지용시인과 동요시인 윤석중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방학기간 용정에 돌아와서는 또 외삼촌 김약연선생에게서 《시전(詩傳)》을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 시기 《문장(文章)》, 《인문평론(人文評論)》등 간행물을 정기적으로 구독하였고 교내잡지인《문우(文友)》에 《자화상》, 《새로운 길》등 시작품을 발표하였으며 키에르케고르, 도스토예프스키, 발레리, 지드, 장 콕토 등의 외국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전졸업기념 자선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를 준비를 하며 1941년 11월 5일에 쓴 시 《별 헤는 밤》의 《프랑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여기서 온 것입니다.
시인의 아우 윤일주씨가 보존한 시인의 유품 중에 42권의 도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도서목록에서 시인의 문학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정지용, 서정주, 김영랑 등 조선시인과 다찌하라(立原)등 일본시인의 시집 그리고 잠의 시집 《밤의 노래》와 《릴케시집》, 《말테의 수기》를 비롯한 여러 나라 시인, 작가의 작품집과 서구문학이론서들인《문학론》, 《시론서설》, 《소설의 미학》, 《근세미학사》, 《전조와 우화》, 《체험과 문학》 및 《고호서간집》과 같은 다양한 내용의 도서들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조선어, 중국어(漢語), 일본어 등 3 개 국어는 기본이었고 영어는 대학전공과목이었던 그가 문학원서를 읽기 위해 또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하였는데 이는 시인의 독서범위와 독서량을 짐작하고도 남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시인 윤동주 그리고 동주의 시는 이렇게 조선과 중국, 일본이라는 지정학적인 역사, 문화환경이 바탕이 되고 이 세 나라를 비교적 쉽게 나들면서 당시의 가장 최첨단의 가치 있고 생생한 정보를 우선 접수하여 다양한 영향을 섭취하였으며 또한 시인 본인의 끈질긴 탐구로 이뤄낸 학문적 깊이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지어 형성된 결과물라고 하겠습니다.
동주시의 탑은 이와 같이 시인의 끝없는 거듭나기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오늘 중국조선족시문학이 침체의 깊은 늪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데에 있어서 우리 시인 모두에게 큰 계시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스스로가 거듭나 내가 세상에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지 세상더러 나를 보아달라고 아양 떨거나 발버둥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겠습니다. 동주의 시와 같이 스스로 거듭나 나날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길, 이 길이 바로 우리시인들 각자 걸어갈 길이며 이렇게 걸어간 노력의 작은 길들이 모아져 우리문학의 밝고 넓은 길이 크게 열린다고 하겠습니다.
3. 시의 향기는 시인의 깊은 자아성찰에서 비롯되는 것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륙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전문.
시인의 깊은 자아성찰을 표현한 이 시는 또한 시인의 최후 작품으로 기록되어 동주시의 문학경향을 전체적으로 갈무리하는데도 의미가 있습니다. 시인의 작품연보를 살펴보면 시인은 1942년도에 모두 여섯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중 시《봄》은 창작 날자가 적혀 있지 않고 그 외 창작 날자가 적힌 다섯 편은 《참회록》(1월24일), 《흰 그림자》(4월14일),《흐르는 거리》(5월12일),《사랑스런 추억》(5월13일) 그리고 이 작품인데 1942년 6월 3일이라고 창작 날자를 밝힌 이 작품《쉽게 쓰어진 시》가 시인의 마지막 작품으로 되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시인이 1943년 7월 14일, 쿄토에서 《독립운동》죄목으로 체포된 후 일본경찰당국에 압수당한 상당한 분량의 작품과 일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아 그 후의 작품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내용상으로 크게 두 개 부분으로 나뉘어 볼 수 있는데 1연부터 7연까지가 첫째 부분으로, 이하 8연부터가 둘째 부분입니다. 이 시는 첫 연에서 《밤비》와 《육첩방》의 이미지로 시 ․ 공간적 환경을 제시하면서 시인이 처하고 있는《남의 나라》라는 현재의 엄혹한 상황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하에서도 시인은 이 《한 줄 시를 적》는 《천명》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시인의 시인됨은 하늘의 명령이며 그것은 또한 극도로 민감한 상처의 능력이기에 슬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쉽게 씌어지는” 시가 부끄러운 일로 명백히 인지되는 순간, 시인은 어려운 인생을 살면서 자신은 시를 너무 안이하게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시의 두 번째 부분 8연에서 시인은 다시 처음의 시적상황을 되풀이하여 어두운 현실의 분위기를 부각시키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립니다. 이러한 자기다짐 속에서 갈등하는 두 자아가 만나게 되는데 《나는 나에게》, 이렇게 두 사람의 자신을 악수시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나》는 하나는 《홀로 침전하는》 그래서 부끄러운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즉 반성적 자아로서 이것은 먼 길을 돌아온 시인의 또 다른 자기 응시가 됩니다. 이렇게 시인은 이 작품에서 부끄러움의 정서를 거짓 없이 드러냄으로써 그의 작품세계의 대표적인 시적주제로 나타나는 자아성찰의 경지를 원만하게 이루어내었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소위 “조선독립운동” 등의 혐의로 일경에게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받고 복역 중 생체실험의 의문사로 옥사하였습니다. 이런 전기적사실로부터 우리는 시인을 저항시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주의 시에는 육사의 시《광야》나《절정》에 나타나는 서릿발어린 투지나 만해시가 품고 있는 깊은 사념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동주의 시에는 사랑과 그리움과 눈물 그리고 참회와 감동이 담겨있습니다. 시인 윤동주와 동주의 시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이 “부끄러움의 시학”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주의 시에서 “부끄러움”이라는 시어가 《서시》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에서부터 시작하여 《별 세는 밤》, 《길》,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등 다수의 작품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의 시 전체 흐름에서 주요한 경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주시의 특징을 작품에서의 시인과 시적화자의 일치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작품에서의 시적화자가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시에서처럼 시인자신과는 별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과는 다른 표현입니다. 김소월, 한용운 시에서의 시적화자는 “님”을 노래하는 “여성화자”의 어조로 나타나 시인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동주의 시에서 시적화자는 대체로 시인자신과 일치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1942년 1월 24일”이라고 지은 날짜를 밝힌 시《참회록》에는 “만 24년 1개 월”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정확히 시인의 나이와 일치합니다. 이처럼 동주시의 문체가 고백체 또는 일기체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체험시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시인과 시적화자가 일치할 경우 시인의 자기인식문제가 작품의 중심주제로 제기되면서 시인자신의 내면상태를 그대로 드러내게 되어 그만큼 시에 자아성찰의 색채가 두드러지게 합니다.
연변대학 김호웅교수는 시인 윤동주와 동주시의 문학적의미를 개괄하여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방면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첫째, 그는 강인한 저항정신을 지녔지만 이를 사춘기소년과 같은 청순한 감각으로, 겸허하고 유연한 언어로 써나갔기 때문에 다수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는다. 또한 그는 저항시인이었지만 그 기본정신은 결코 타민족에 대한 배타주의자가 아니라 평화주의이고 인도주의였다.
둘째, 그의 정신은 염치사상(廉恥思想)이다. 염치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서 예의(禮儀)와 더불어 참된 인간이 가져야할 덕목이다. 그것은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정신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 그의 사상은 정신적 순결주의이며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염치사상과 다름없다.
셋째, 그가 남긴 가장 빛나는 시는 사명시(使命詩)이다. 우리민족 또는 온 세상에서 고통을 받고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통해 순수한 동심, 겸허한 자세, 평화주의와 인도주의를 되찾을 수 있고 자기반성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김호웅교수의 상기 지적은 동주시의 문학적의미에 대한 정치(精緻)한 개괄입니다. 특히 시인 윤동주를 강인한 저항정신을 지녔지만 타민족에 대한 배타주의자가 아닌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평가한 부분과 동주시의 “부끄러운 마음”에서 비롯되는 “염치사상”과 “사명시”에 대한 논술은 윤동주연구에서 새롭고 가치 있는 의논이 되며 오늘의 우리 중국조선족시문학이 새로운 시기 새 모습에로의 변신을 기약하는데 훌륭한 가르침이기 되겠습니다.
시인을 “한줄 시를 적”는 “슬픈 천명”을 소명(召命) 받은 자로 규명하면서 자신의 “쉽게 씌어진 시”로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는 시인 윤동주를 조금만이라도 더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더 이상 한 줄의 시라도 쉽게 쓰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한 동주시에 표현된 “염치사상”과 “사명시”에 대하여 조금만이라도 더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시인들의 마음이 한결 순수해지고 우리시단이 보다 깨끗해지게 될 것입니다. 시의 향기는 시인의 깊은 자아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마무리
동주의 시 세편 《서시》, 《간》, 《쉽게 씌어진 시》를 다시 읽으며 던져본 세 가지 화두에 그 답을 적어봅니다.
첫째, 시의 길은 궁극적으로 민족어완성을 향한 길이다.
둘째, 시의 탑은 시인의 끝없는 거듭나기의 결과물이다.
셋째, 시의 향기는 시인의 깊은 자아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모아산이 바라보이는 창가에서 씀
2010년 5월 16일
read a poem of dongju all over again.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