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함양 법화산 (991m)
두 법화사 사이에 솟은 지리산 조망명산
법화산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에 자리한 해발 991m의 산이다.
덕유산과 백운산을 지나온 백두대간이 봉화산(920m)을 눈앞에 두고 동남쪽으로 곁가지를 일으킨다. 연비지맥으로 불리는 이 산줄기는 연비산(843.8m), 상산을 지나 삼봉산(1187m)에서 다시 두 줄기로 나누어지는데, 동쪽으로 이어내린 오도재를 사이에 두고 정동녘에 다시 솟구친 산이 법화산이다.
이 땅에는 오늘 소개하는 함양의 법화산 외에도 장수군 천천면의 법화산(707m), 공주시 유구읍의 법화산(470m), 용인시 구성면의 법화산(383m)이 있다. 법화라는 산 이름은 불교의 경전인 법화경, 즉 묘법연화경을 의미한다. 이 경전은 불교의 모든 경전 중 가장 넓은 지역과 많은 민족들에 의해서 수지(경전이나 계율을 받아 항상 잊지 않고 머리에 새겨 가짐) 애호된 대승경전이다.
휴천면에 자리한 법화산의 동북 자락 대천리에는 신라 헌강왕(883) 결언이 창건한 법화사가 있고, 남녘 중턱 문정리에도 태종무열왕 7년(660) 마적조사가 창건한 법화사가 자리하니 산 이름도 법화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법화산의 들머리는 함양군 휴천면과 마천면의 경계를 이룬 오도재 고갯마루다. 7년 전 단독산행 때는 비포장이더니 지금은 말끔한 포장도가 지나고, 당당한 '지리산 제1문'이며 너른 주차장, 새로 지은 휴게소 등 주변 풍경이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눈 쌓인 고갯마루에 세운 시비들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조선조의 승려 청매선사의 '십이각시'를 비롯해 신숙주(1417~1475)의 '두류산 바라보며', 김종직(1431~1492)의 '엄천사에서', 유호인(1445~1494)의 '두류산 노래', 김일손(1464~1498)의 '두류시' 등 다양한 시비가 눈밭 속에서 경이롭다. 더더욱 아득한 세월 동안 고갯마루를 지켜온 두어 아름 고사목과 전설이 전하는 산신각은 칠순을 목전에 둔 산꾼시인을 절로 산정무한의 깊은 늪에 빠져들게 하였으니...
불도 진리의 깨달음을 뜻하는 오도재는 532년 신라에 나라를 물려준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전설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고갯길이다. 그 당시에도 마천, 하동, 구례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이곳 고갯마루에 구형왕의 왕후였던 계화부인이 제단을 쌓고 망국의 한과 선왕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해온다. 그로부터 성황당이 생기고 지나는 길손들이 기도하고 주민과 무당들이 천왕신을 모시고 제를 지내던 곳인데, 최근에 산신각을 복원하고 안내비도 세웠다.
등산기점인 '지리산 제1문'에 올라 굽어보는 경관 또한 절경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그러나 <사람과산>의 독자들이 직접 느낄 터. 하고 싶은 말을 아끼고 동쪽으로 능선길을 오른다. 서설이 쌓인 비탈길은 미끄러워도 묘한 정취가 묻어난다. 이정표 두 곳을 지나자 앞서간 일행들의 발자국이 뚜렷한 헬기장에 이른다. 눈길을 걸을 때마다 저절로 생각나는 서산대사의 시를 소리 내어 읊조려 본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모름지기 발걸음을 이저러이 하지 말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서산대사(1520~1604)가 어느 날 눈길에서 먼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러나 앞서간 사람은 산천이 모두 눈으로 덮여 길을 잘못 걸어간 것이다. 잘못 간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낭패를 보게 된 대사께서는 깨달은 바가 있어 위와 같은 시를 남겼다고 한다.
다시 능선을 이어가니 통신탑삼거리에 이른다. 옛날 묵무덤이 외롭던 이곳에서 남동쪽 능선을 이어내리면 문정리의 법화사가 나온다. 그 길을 버리고 동북녘 능선을 이어 10분 가자 오뚝 솟구친 법화산의 좁은 정수리에 올라선다. 1991년에 세운 삼각점과 함양군에서 설치한 정상석이 자리한 이곳에서 바라본 삼봉산의 산세는 황홀하다.
대천리를 향한 하산길은 동녘 능선을 이어야 한다. 960봉으로 짐작되는 동봉에서 뒤돌아본 풍경이 멋지다. 법화산 너머로 눈 쌓인 삼봉산의 산세가 황홀하다. 그 밑의 전망바위에 서니 동녘의 필봉산(848m), 왕산(923m)이며 지리산국립공원의 왕등재(936m)와 멀리 웅석봉(1099m)까지 황홀한 산경을 펼친다.
동봉에서 길게 동녘 능선을 이어가서 임도에 내려선다. 지금까지의 벌거벗은 참나무숲이 끝나고 비로소 하늘을 찌른 초록 솔숲을 만나는 이곳에서 '청산에 살리라', '독야청청' 등 선현들의 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임도를 건너 ㄷ아시 이어간 산길은 빽빽한 소나무숲길이다. 간혹 만나는 벌목지대에서 베어 넘긴 나무둥치들을 피해가며 해발 약 490m 지점의 능선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왼쪽(북쪽)으로 솔숲 능선을 따라 내리니 진관동 아래쪽의 농가를 지나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을길을 만난다. 저수지로 흘러드는 맑은 개천가에는 흔들리는 갈대 대궁이 역광을 받아 황홀하다.
구대천저수지 옆길에서 마을노인을 만난다. 눈길이 좋아 산책에 나섰다는 84세의 노인은 저수지를 막은 내력이며 아랫마을의 역사를 자상하게 들려준다.
저수지 둑에 서서 지나온 법화산을 하염없이 우러른다. 맑은 초록빛 못물 속에 잠긴 법화산을 지그시 굽어본다. 회삼귀일과 구원성불을 근간으로 한 법화경, 아니 묘법연화경의 귀한 법문을 내 비록 깨우치지 못하였어도 그득히 고인 저 맑고 깨끗한 물이야말로 육십억 인류에세 가장 소중한 보물이고, 지나온 오늘 하루의 법화산 종주산행이야말로 진정 극락의 삶이 아니겠는가.
*산행길잡이
오도재 고갯마루-(40분)-통신탑 삼거리-(10분)-법화산 정수리-(1시간30분)-동쪽 능선 임도-(1시간)-구대천저수지-(10분)-미천마을회관
법화산은 몇 개의 코스가 열려 있다. 첫째, 법화사(문정리)~통신탑삼거리~정수리~통신탑삼거리~오도재의 최단코스(2시간), 둘째, 오도재~법화산 정수리~동쪽 능선~구대천저수지의 중간 코스(4시간), 셋째, 문정리 법화사~법화산~오도재~삼봉산~백운산~금대산~마천을 잇는 장거리코스(8시가)가 그것이다. 모두 답사를 마친 세 코스 중 오늘은 두번째의 중간 코스를 소개한다. 단체산행인 경우 오도치로 하산하면 너른 주차장과 휴게소 등 쉴 곳과 산신각, 명사들의 시비, 고사목 등 볼거리가 있어 좋다.
두번재 코스의 들머리는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를 이룬 오도재 고갯마루. 최근에 완공된 '지리산 제1문' 서쪽에서 올라가면 동쪽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법화산 정상 1.05km'와 '법화산 정상 0.75m'라 적인 이정표를 모두 지나면 헬기장에 이르고 뒤이어 통신철탑이 자리한 옛 헬기장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남동쪽 능선을 따르면 문정리 법화사에 내려선다. 법화사에서 60번 도로까지는 승용차가 다닐 수 있는 3.5km의 포장도가 이어진다.
통신탑에서 10분이면 삼각점과 정상석이 세워진 법화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하산은 동녘 능선을 이어간다. 해발 약 960m의 동봉에서는 뒤돌아본 법화산과 삼봉산, 동쪽의 왕산, 필봉산, 동남쪽의 왕등재, 웅석봉 등의 멋진 산세가 조망된다. 길게 능선을 이어 930봉과 860봉을 지난 후 760봉 지점에서 만나는 둔한 벼랑지대에서 왼족으로 돌아가면 다시 능선길이 이어진다. 벌목지대를 지나면 해발 약 530m의 임도마루에 내려선다.
임도를 건너 동녘 능선을 따르면 옛길 사거리 지나 해발 490m 지점의 능선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왼쪽(북쪽)으로 크게 꺾어야 한다. 이후 길은 빽빽한 솔숲과 약간의 벌목지대를 지나 진관동과 저수지의 중간쯤에서 도로에 내려선다. 날머리인 구대천저수지가 가깝다. 저수지에서 10분이면 대천리의 미천마을회관에 닿는다.
*교통
대전-통영간고속도로와 88올림픽고속도로가 만나는 함양은 교통편이 좋다. 서울이나 대전, 대구, 광주, 전주, 부산 등 어디서라도 찾아가기가 수월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행 버스가 1일 10회(08:20~24:00) 출발하며 3시간 걸리고 요금은 16,600원이다. 24:00 출발하는 심야버스는 18,200원. 서울남부터미널에서는 1일 4회(08:40, 10:32, 16:10, 23:00) 출발한다.
함양읍에서는 택시(055-963-2400)로 들머리인 오도재까지 가야 한다. 요금은 12,000원. 날머리 미천마을에서 함양까지는 25,000원 받는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 오도재휴게소에서 식사와 숙박이 가능하다. 011-323-3331. 011-9890-2922. 이 외에는 이렇다할 시설이 없으니 함양읍내의 시설을 이용하도록 한다.
글쓴이:김은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