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살던 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협궤열차가 다니던 수인선 종점인 수인역 근처였다. 당시 수인역에는 시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 덕에 자주 나가서 놀았다. 아마 장사를 하시지 않았더라도 시장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자주 그곳을 배회했을 것이다. 추억속에만 남아 있는 꼬마 열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신 허연 김을 뿜어내던 수인선 마지막 종점이었던 수인역 앞에는 늘 시장이 섰다.
시장은 점포를 가지고 있는 장사를 하는 사람과 월남 참전용사들에게 보내는 김치를 가공하는 김치공장 담벼락 주변 공터나 기차길옆 공터에 그저 앉을 만한 곳에 먼저 자리를 펴 보따리를 풀고 장사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시장은 곡물을 취급하는 점포가 전면을 차지하고 골목 안쪽으로 잡화를 파는 가게가 자리를 잡아 주곡과 잡곡을 많이 파는 전문시장이었다.
그렇지만 난리법석 시끌시끌한 시장을 만드는 것은 봄부터 가을까지 매일매일 수인선 꼬마기차를 타고 온 노점상들이었다.
집에서 기른 푸성귀나 잡곡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고, 송도 앞바다 동막해안 너른 갯벌 널빤지를 밀고 나가 캐온 바지락을 함지박에 담아 하나씩 까고 앉은 아줌마도 있었고, 지금은 아파트로 뒤덮여 사라진 고잔역 앞 수로에서 뛰놀던 가물치가 그리고 붕어나 잉어가 그물로 끌어 올려져 파닥이는 생을 마감하고 양은 다라이에서 애 낳은 산모를 위해 팔려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소래역이나 월곳역에서는 주변 염전에서 난 질 좋은 천일염과 포구에 몸을 댄 배에서 철따라 잡히는 싱싱한 생선들을 실어 보냈다.
그 외에도 집에서 고와 만든 엿이나 강정, 손수 만든 수제품들도 다 좌판에 넘쳐났다.
철따라 시장에 나오는 것들은 모두 달랐으니 계절은 사람들을 시장으로 내몰고 시장은 그 곳에 온 사람들에게 철을 알려주었다.
그나저나 수인역시장의 풍경을 더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물론 이 모든 사람들을 그리로 오게 한 꼬마기차가 뿌뿌 고동소리와 함께 내뿜는 증기였다.
칙칙폭폭 빽~ 소리를 내면서 수원부터 달려온 꼬마기차가 잠시 멈춰 서서 물을 보충하고 석탄을 보충하기 위해 서 있는 동안에 해녀들이 내쉬는 숨비소리처럼 삐이 하면서 하얀 김을 내뿜으면 그곳 시장의 소소한 일상들은 일순 멈춰 수증기와 덩달아 하늘로 올라간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니 먹을 것을 빼 놓을 수 없는데, 시장하면 생각나는 장터국밥집이 이곳에도 한(?) 곳인가 있었다. 비를 긋거나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 쳐진 차양아래 한쪽 구석에서는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국솥에선 선지와 우거지가 빙글빙글 돌고 있고, 그 옆 바닥에는 핏물이 뚝뚝 배어나오는 선지가 사각 양철통에 , 그 옆에는 소 천엽과 간과 내장이 함지박에 담겨 있다. 사람들이 앉는 식탁위에는 뚝배기 그릇이 엎어져 있고 삶은 내장과 간 혀가 한켠에 놓여있다.
이곳에 앉아 내장 탕인지 선지해장국인지 모를 그 국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한번인가 두 번 정도 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학교 마치고 저녁 못 미쳐 태권도 도장에 가든 길에 들렀을 때 이었던 거 같다.
그날따라 땀을 흘리며 들른 내가 가엾어 보였는지 어머님은 시장 한켠 국밥집으로 데려가셨다.
핏물이 징그러워 선지는 빼고 천엽의 돌기가 징그러워 그것도 빼고 이것저것 다 빼고 밥과 국물만 먹으며 국솥에서 피어나는 자욱한 김이 차양안을 흐릿하게 하는 속에서 국밥을 호호 불며 땀을 흘리며 먹었었다.
그렇게 먹고 있는 나를 어머님은 옆에 앉아 처다보고 계셨다.
밥숫가락 위에 김치도 얹어주고 큼직한 깍두기도 놓아주었다.
맛있게 먹었는지 어떤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천막 안에 풍경이 지금도 생생한 것을 보면
어린나이에 본 내장이나 선지 등이 꽤나 충격적이었나 보다.
박제가 되어 남동구청 앞에 전시되어 있는 그 꼬마기차를 날마다 보고 있다.
무심코 지나는 날들이 더 많지만 어쩌다 옛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어쩌다 한 번 먹었을 그 시장 그 국밥집에 놓여있던 막창 간 천엽 곱창 선지가 생각난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더러웠을지도 모르고 말하기 좋아하는 말로 비위생적이었을지도 모르는 보관 상태는 어떨지 모르지만, 보기에 징그러웠을 뿐 항생제나 광우병을 떠나 떨어진 기운을 걱정하는 어머님의 마음에 감사하며 약으로 생각하고 먹었을 그 날의 그 국밥.
이제 내 아이에게 내 부모가 한 것처럼 기력 보충하라고 내장 탕이나 선짓국 한 그릇 마음 놓고 먹게 할 수 있을까?
첫댓글 내장은 모르겠고, 선지는 들어오지 못하겠죠... 선지국은 집에서도 끓일 수 있어요..끓이는 법이 그리 어렵지 않거등요..
선지국,내장탕 뜨거운 국밥 한그릇 참 맛있고 기운날 거 같은데...맘 편히 먹기는 이제 힘들겠네요...
미국서 내장 들어오기 전에 소곱창구이나 먹으러 가야겠네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 줄 수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