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수단 통합 및 협조 전장사례연구
초기 춘천지역을 담당한 제6사단 진지강화 : 보병, 포병진지 구축, 작전지역 철조망/대인지뢰 매설
북한군 제2사단의 공격계획과 막심한 피해 발생원인
※ 출처 : 일본육전사연구보급회편, 한국전쟁(1권), 1987, pp.67~70
제2사단장 최현 소장은 대담한 공격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즉 정면의 한국군은 400~500미터의 깍아 세운 듯한 수리산 일대의 토오치카를 중심으로 야전진지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수법으로는 반나절 안에 춘천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포병을 배치시킬 만한 진지가 없었다.
한국군의 진지 북방 8킬로미터의 토둔리 주변에 있는 남북 3.5킬로미터, 동서 1킬로미터의 분지가 포병진지로서 유일한 적지였지만, 이 분지의 남쪽에는 표고 470미터의 고지가 있기 때문에 포병의 주력인 평사포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 정면에서 운용 가능한 화포는 122밀리 곡사포와 박격포뿐인데 이러한 곡사포로서는 토오치카의 총안을 사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2사단은 제4연대로서 정면을 공격시켜 이를 견제하고, 그 사이에 제6연대를 북한강의 하류지역으로 투입시켜 신속하게 진지 중앙을 돌파하려고 했다. 이 착상은 팔로군 출신의 제6사단장 방호산 소장이 실시한 개성 공격의 착상과 흡사했다.
제2사단은 공격준비사격후 예정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제6연대를 북한강의 하천부지로 투입시켰다.(주 : 북한강은 하폭이 평균 200미터, 수심 1.8 ~ 2미터의 수량이 풍부한 강이었는데, 상류의 하천에다 댐을 건설했기 때문에 물이 적은 하천이 되었다.) 그런데 하천부지로 접근하던 제6연대는 대기하고 있던 한국군의 105밀리 곡사포의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의 양안이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망할 수가 없어서 막대한 피해만 입었다. 또한 수리산 정상의 토오치카를 공격한 제4연대는 한국군을 급습하려고 돌격을 감행했으나 지형의 잇점을 갖고 있는 한국군의 진지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하상도로로 진출한 제6연대는 어떻게 해서라도 전진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집중사격을 받아 마침내 그 피해가 50%에 달했기 때문에 사단장은 예비인 제17연대를 우 제1선으로 투입시켰지만 전세를 만회할 재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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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제2군단은 양사단의 공격을 조정하여 총공격을 실시했으나 험준한 산악 때문에 전차와 포병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해 제2사단의 손실은 마침내 40% 이상에 달해 공격력을 잃고 말았다. 이 피해의 대부분은 한국군 105밀리 곡사포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주 : 춘천을 점령하고 난 적들은 제6사단 16포병대대장 김성 소령의 하숙집 주인을 "국군 포병대대장을 하숙시켰다"는 죄목으로 반동으로 몰아 체포하였는데 다행히도 탈출하여 피신하고 있다가 수복후 김성 소령을 만났을 때, 그가 말하기를 "그 놈(김성 소령) 때문에 1개 연대가 전멸당하였다"는 말을 여러 북한군들 한테서 들었다고 하였다.(출처 :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제3권("춘천-홍천전투", p.280), 1970년.))
북한군의 포병 손실은 막심하여 사단포 7문, 76밀리 자주포 16문, 45밀리대전차포 2문, 박격포 수문이 파괴되었다. 이것은 지형의 제한으로 포병진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군이 진지가 될 만한 곳에는 미리 사격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북한군이 직접조준사격을 위하여 자주포 등을 무리하게 전선으로 추진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