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는…..
어제(2월20일)는 아내와 내가 24년전에 처음 만난 날이었다. 24년전인 1993년 2월 하고도 20날, 나는 나의 대학 과친구의 전화에 무조건 나갔다. 그는 나보다 2살이나 위지만 82학번이다. 평상시 그의 진중함을 볼때 뭔가 심상치는 않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그게 자기의 사촌 여동생을 소개시켜주는 자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만났다. 그 당시 나이가 31살이고 또 쌍용이라는 약간은 대 기업 비슷한 곳을 다니고 있던 나는 30살이 넘으니 주위에서 옛날 말로 선이라는 것이 왕왕 들어왔다. 나름 잘 나간다고 생각했던 나는 뭐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어서 선이 들어오는 즉시 만남을 가졌다. 회사부근이라 명동의 세종호텔과 아스토리아호텔, 코리아나호텔등 무궁화 네개 정도의 호텔에서 만남을 많이 가졌는데 말 그대로 서로의 얼굴을 모르니 여 종업원이 피켓을 들고 왔다 갔다하면 내 이름을 발견하고 만남을 가졌던 기억이 새롭다. 참 유치찬란이다.ㅋㅋㅋ. 나는 유달리 피아노를 전공했거나 피아노를 잘 치는 여성분들과 만났다. 그 중에는 정말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열쇠 3개를 요구하는 여성분들도 있었다. 그런 세련되고 되바라진 서울 여자들만 보다가 그녀를 보니 오히려 더 신선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마음씨가 착했고, 그리고 결정적인 건 그녀의 여동생과 남동생이었다. 처제는 대한항공 스튜어디스였고, 처남은 서울대생이었다.나름 머리 쓴다고 2세를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많이 밀린다. 그래서 바로 결정을 했다. 그녀와 결혼하기로…. 그라고 종교를 물으니 두 집안 모두 불교집안이라 종교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 그녀의 집은 경남 거창 나는 서울 노량진. 결국 우리의 데이트는 중간 지점인 대전의 한적한 절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그땐 왜 그랬는지 후회를 많이 한다. 서로의 거리가 멀어서 힘들었으므로 우리는 조속히 합치기로 의기 투합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6월 하고도 19일에 영등포 M예식장에서 둘이 하나가 되었는데, 2월 20일에 만나서 6월19일에 결혼을 하였으니 만 4개월만에 둘이 하나 되었다.살면서 우여곡절도 많았고 헤어질 순간도 두번 있었으니 말 그대로 순탄치만은 않은 결혼생활이었다. 아이는 셋이지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밑천 안 들이는 자영업이라는 보험에 입문하여 몸도 마음도 황폐화가 되었던 그때에도 아내는 나를 끝까지 지켜주었다. 정말 내가 나를 생각해도 책임감 없지 무능하지,개 폼만 잡지, 유혹에 잘 넘어가지, 놀음 술 여자등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와 24년을 살았다. 어느덧 아이들은 대학생이 둘이요, 고등학생이 하나인 상태가 되었다. 지금도 아내의 속을 안 썩이는 건 아니지만 나의 30대, 40대에 비하면 정말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아내가 이끄는 대로 개신교로 개종하여 열심히 믿고 있다. 아내가 6년전에 내가 3년전에 개종하여 오직 주님만 믿고 가고 있다. 이 또한 아내의 전도로 이루어졌다. 이제는 술도 끊고(5년전), 담배는 20년전에 끊었다. 오직 아내와 아이들을 위하여 남은 여생을 바칠것이다. 그런 아내를 처음 만난 날이 20일인 어제였다. 모처럼 그때의 기분을 내기 위하여 삼성동의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저녁때 나오라고 하니 물 한잔 먹는데 2만원을 어떻게 쓰냐고 하면서 손사레를 친다. 그래도 그냥 넘기기 싫어서 집 부근의 부천역에서 일식 전문점을 가려하니 양도 적고 맛도 검증이 안되었다고 하면서 또 거절을 한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몸에 베인 절약때문에 무드라고는 모기 눈물 만큼도 없어진 아내를 책망해야할지 무능한 나를 자책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양으로 승부하고 맛도 무난한 순대국으로 결정을 보았다. 들어가서 보니 밥과 국물이 무한 리필이다. 값도 저렴하고 맛도 좋았다. 결국 우리의 처음 만난 날의 축하연은 순대국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이 걸린다면서 요즘 유행하는 카스테라를 사 가지고 가는 그녀는 영락없는 50대의 아줌마이다. 그런 아내가 나는 좋다. 늘 부족한 나만 바라보고 되지도 않는 찬송을 성가대에서 하는대도 내가 제일 노래 잘한다고 추켜세우는 나의 아내, 능력 없어도 늘 당신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는 아내, 이런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이렇게 우리들의 처음 만난 날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저물어 가기만 했다.
첫댓글 살다보면 어느 한 순간
이렇게 켜켜이 쌓이는 시간을 뚫고 송곳처럼 솟아나는 것 들이 있지요.
먼지낀 지난 시간들이 아무리 두껍게 덮으려 해도, 덮히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카롭지 않지만 덮이지 않는 것....
맞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소소한 일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것 같습니다. 윤영귀친구~ 댓글 주어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소원하는 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