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닛켄의 10가지 대죄
닛켄의 대방법(大謗法)의 사실을 후세의 역사에 남긴다
…(전략) 세계대전이 끝난 지 50여 년, 다시 한번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라고 되새겨 보아야 할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이런 시대에 선견성을 갖고 불법을 기조로 평화, 인권, 생명존엄의 인간주의를 내걸고 위대한 지도자 이케다(池田)선생님의 슬하에서 신세기를 향한 지역승리의 해인 올해, 모든 장마(障魔)를 타파하고 민중의 손에 의한 21세기를 향한 개막을 훌륭하게 이루었다고 이에 대승리를 선언하는 바입니다.
학회는 왜 지금 닛켄종과 싸워야 하는가. 그것은 종교란 본래 인간을 위한 종교이며 불교에 있어서도 석존이나, 니치렌(日蓮)대성인 역시 그 본의에 입각해 인류구제를 위한 가르침을 설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근본궤도를 완전히 벗어나 종교는 의식화(儀式化)되고 승려는 권위를 휘둘러 구제해야 할 신자를 노예화하고, 돈더미에 올라앉아 유흥에 빠져 타락해 갔던 것입니다. 닛켄종은 실로 그 전형이며 광선유포에 매진해온 역대 회장의 사신홍법(死身弘法)을 몹시 싫어하여 사사건건 방해하고 특히 닛켄에 이르러서는 이케다 SGI회장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혀 음흉한 모략으로 함정에 빠트리려 했던 것입니다.
이케다 SGI회장의 시대에 들어와 건립한 사원만 해도 343개사에 이르며 해외에도 7개사, 정본당, 대객전, 총방(總坊) 등, 종전 후 농지해방으로 대폭 축소된 대석사의 부지면적을 크게 확대해서 총본산의 체재를 완전히 정비하고 막대한 공양을 했던 것입니다. 과연 이런 대단나(大檀那)가 세계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렇게 외호의 정성을 다한 이케다 SGI회장을 배신하고 전 학회원의 신심을 짓밟으며, 본존하부를 중지하고 법요(法要)를 하지 않겠다고 협박하면 학회는 대혼란을 일으켜 몇십 만은 우리쪽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획책하여 야마자키 마사토모 등 반역자와 결탁해서 총강두 파면, 파문이라는 폭거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니치렌(日蓮)대성인의 어유명에 위배하여 광선유포를 파괴하고 많은 학회원을 괴롭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닛코 유계치문(遺誡置文) 26개조를 남김없이 위배하고 온갖 파불법의 행위란 행위는 다했습니다. 입정안국론에는 저 만기(萬祈)를 수행하기 보다는 이 일흉(一凶)을 금(禁)해야 할 것이로다(어서 24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들 닛켄과 닛켄종의 악승들을 이대로 방치한 채, 참된 불법이 멸망하는 것을 우리들은 그대로 간과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들 극악의 일흉을 금하는 싸움에 창가학회가 단호히 궐기한 것은 신앙자로서, 인간의 도리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이 울분이 신앙의 타오르는 불길로 되어 이케다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세계광포의 길을 크게 전진시키는 단결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닛켄이 저질러 온 극악과 도리에 어긋난 행동들은 불법사상 유례가 없는 일들 뿐이었습니다. 이 악업을 영원히 남겨두기 위해 10개의 대죄를 들어 단죄하는 바입니다.
제 1 에 대성인 부정, 불법 파괴의 대죄
닛켄은 법주(法主)라는 자신의 권위를 절대화시키며 대성인을 부정하는 것에 통하는 법주본불론을 용인, 불법의 가장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혈맥상승을 사칭했습니다. 닛코상인은 유계치문에서 후지(富士)의 입의(立義) 조금도 선사(先師)의 홍통하심에 위배하지 말아야 할 것(어서 1617쪽)이라고 엄명하셨습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정말로 불법 파괴의 대죄를 닛켄은 범한 것입니다.
제 2 에 파화합승의 대죄
닛켄은 창가학회에 대해 1991년 11월에 해산권고서, 이어서 파문통고서, 1997년 11월에 모든 학회원의 신도제명처분이라는 공갈로 파화합승의 단도만들기에 광분했습니다.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바를 생사일대사의 혈맥이라고 하느니라(어서 1337쪽)는 어성훈을 모독하는 것도 유분수이며 그 죄는 타지옥이라 할 것입니다.
제 3 에 광포파괴의 대죄
닛켄은 창가학회의 파괴와 신자의 예속을 목적으로 소위 C작전을 지휘하고 본존 하부의 중지와 첨서등산(添書登山)에 의한 사실상의 등산거부라는 폭거를 자행, 게다가 퇴전자나 권력, 매스컴 등과 결탁해서 학회를 비방하고 탄압하는 광포파괴의 대죄를 범했습니다.
제 4 에 교만, 질투의 광란의 대죄
닛켄은 종문외호, 광선유포의 대공로자인 이케다선생님에 대해 미친 듯이 질투하고, 계속해서 음험한 언행을 행해왔습니다. 1990년 7월 21일. 본산에서 접견했을 때, 선생님과 동행한 나에게 법주의 발언을 막았다며 생트집을 잡아 교만하다! 교만방법이다!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 대해서도 당신에게도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징벌에 회부할테니 두고 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고함쳤습니다. 그 고함소리는 멀리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사람들까지 놀랄만큼 광기에 찬 고자세였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1990년 12월의 총강두 파면, 1992년 8월의 신도제명처분. 그리고 1998년 5월에는 본문(本門)의 사(事)의 계단(戒壇)이자 8백만 신도들의 신심의 결정체라 할 정본당까지도 무참히 파괴했습니다. 온갖 교만을 다 부린 것은 바로 닛켄입니다. 어서에 경만함을 그치지 않으므로 혀가 입 안에서 헐음(어서 1234쪽)이라고 있습니다. 하늘에 침을 뱉는 언사는 반드시 환착어본인(還着於本人)이며 자신이 대벌을 받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 5 에 민중멸시, 신도협박의 대죄
닛켄은 항상 승려가 위, 신도는 아래라는 민중멸시의 승속차별로 신도의 인권을 억압하여, 승려 없는 장례식은 타지옥이라는 등 학회 탈회자를 만드는 데 협박용으로 사용하는 등 아주 비열하기 짝이 없는 수단으로 순수한 회원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제 6 에 방법용인, 미노부 영합의 대죄
닛켄은 종개양조(宗開兩祖)의 근본정신인 방법엄계를 가르쳐야 할 법주의 입장에 있으면서 선종의 절에 자기 조상의 묘를 세우고, 대석사 주변 단신도들의 방법 일탈을 방치했습니다. 더욱이 미노부파에 영합하는 상상도 못할 행각을 벌이는 등 선사의 유업(遺業)을 완전히 부정하고 파괴하며 스스로 대석사를 기성불교의 사탑으로 만들어버린 대방법의 장본인입니다.
제 7 에 부패타락, 유희잡담의 대죄
닛켄은 첫 해외출장 어수계에서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시애틀사건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기생놀이, 호화판 온천놀이 등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유계를 위배했습니다. 이처럼 유희잡담에 빠져 방탕하는 못된 버릇을 종문에 퍼뜨려 부패타락의 원흉으로 되었던 것입니다.
제 8 에 일구이언(一口二言), 대망어(大妄語)의 대죄
닛켄은 시애틀사건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자 호텔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라는 당초의 주장을 번복, 술 마시러 나갔었다라고 수긍하며 증거로서 당시의 수첩을 제시하는 등 필사적으로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내놓은 수첩도 전문가의 감정에 의해 중요한 부분이 나중에 가필된 것임이 판명되는 등 불법상의 대죄인 십악(十惡) 중의 양설(兩舌), 즉 일구이언으로 거짓말을 거듭하며 사회를 기만해 온 죄 또한 지대합니다.
제 9 에 문화파괴, 폭력주의의 대죄
닛켄은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을 외도예찬(外道禮讚)의 노래라고 비방하고, 또 해외에서는 닛켄종의 중이 테레사 수녀는 악마라고 발언해서 추방당하는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문화, 예술을 차례로 부정, 세계의 상식을 짓밟는 전혀 상식밖의 행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편 본산에서는 행자승에 대한 체벌 등 불법자에게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전혀 상식밖의 폭력주의의 행위로 사회악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제 10 에 공양도둑, 종문 사물화의 대죄
닛켄은 대성인에 대한 신도들의 공양을 가로채어 호화주택이나 일가족의 유흥비로 물쓰듯이 낭비했습니다. 또 등산이나 장례, 법요를 전부 돈벌이로 이용했습니다. 이처럼 일개 종파의 최고책임자로서 종문을 사물화한 죄는 큽니다.
이 10가지 대죄와 더불어 닛켄의 극악, 대방법의 사실을 전 학회원 동지들과 함께 후세의 역사에 영원히 밝혀, 부처의 적을 한 사람도 남겨놓지 말라는 유훈(遺訓)대로 우리들은 쇠망일로를 달리는 닛켄종에 대해 단호히 추격의 손을 늦추지 말고 끝까지 싸우지 않겠습니까.
─ 종문문제의 어제와 오늘
1. 종문문제란 무엇인가
종문문제의 발단은 창가학회의 설립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대로부터 악승(惡僧)들이 일반 신도들을 주종관계처럼 여겨 각종 방법(謗法)을 자행한 것은, 수백 년에 걸친 사회제도와 봉건주의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종문문제는 1990년 하반기에 일련정종 종문에서 SGI를 제거하려는 C작전의 획책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좀더 깊이 통찰해보면 학회와 SGI가 지금 이렇게 닛켄종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대성인의 불법이 본격적으로 이 세상에 넓혀질 시기가 도래했음을 예고하는 것이며, 이러한 광선유포는 진정으로 세계평화와 민중의 행복을 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지용의 보살들에 의해 이룩된다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SGI가 아베 닛켄으로부터 파문 당한 것은 오히려 학회가 종문의 권위적인 승려들로부터 확실히 해방된 것이라고 우리들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2. 역사속의 종문의 파행
종문의 신찰수용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군부가 치안유지법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모든 종파에 신찰을 받도록 강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어처구니 없는 대방법을 범한 당시 법주였던 제62세(世) 닛쿄상인은 국가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신궁참배를 찬탄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대성인의 혈맥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법주가 이런 말도 안되는 방법을 저지른 것이다.
대성인의 생애는 과연 어떠한 생애였던가? 방법(謗法)과의 목숨을 건 투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닛쿄상인은 그것을 망각하고 자기 보신(保身)을 위해 방법과 너무도 쉽게 결탁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창가교육학회의 마키구치 초대회장은 신찰수용을 단호히 거부, 그로 인해 종문측은 관헌의 탄압이 미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1943년 6월 총본산에 마키구치 초대회장과 도다 이사장(당시)을 불러 닛쿄법주 입회하에 와타나베지카이 서무부장이 학회도 신찰을 받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학회는 끝까지 대성인의 정법정의에 위반되는 신찰은 받을 수 없다고 거부했다. 이로 인해 마키구치 초대회장은 체포, 입옥되어 대성인의 뒤를 잇는 순교의 길을 걸어 가셨다. 법화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것이다.
이러한 준엄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볼 때 학회야말로 대성인의 정신이 맥맥히 흐르는 불의불칙의 단체이며, 대성인의 혈맥을 그대로 이어 실천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편 종문은 마키구치 회장과 도다 이사장등의 등산을 정지시키고, 학회와 종문은 무관계임을 표명하며, 1943년 12월 1일에는 궁성요배, 신사참배를 장려하는 통달(通達)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관념문의 변경
근행의 관념문에 대해서도 군부가 추진하는 황국주의에 가담하는 내용으로 변경한 취지를 통보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군부와 결탁하고 종문탈취의 야망을 품고 있던 가사하라지코의 주장에 따른 것이며, 천조태신 중심주의로 관념문을 개찬한 것이다.
그 내용은 우선 초좌의 관념문에서 삼가 황조 천조태신. 환종신문천황. 조국 이래의 대대의 황은에 감사하며, 아울러 황국수호의 일월천 등의 제신에게 법미를 바치나이다. 원하건대 애민납수하여 주십시오라고 변경, 제천선신 중에서 유독 천조태신만을 숭경하고 이어 역대 천황에 대한 감사가 표명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2좌, 3좌에서도 본래 최대한으로 보은사덕해야 할 불법승 삼보에 대한 관념문은 지극히 간소화된 표현으로 하고, 4좌의 광선유포 기념에 이르러서는 관민일체 국위증휘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삽입, 대성인의 세계광포관에 황국사관을 집어넣는 대방법을 저질렀던 것이다.
어서의 어문(御文)삭제
1941년 9월 종문은 어서의 어문 14곳의 삭제를 지시하는 통달을 내렸다. 이것은 니치렌대성인이 스스로를 어본불이라고 선언하신 부분과 천조태신(天照太神)에 관한 기술이다. 특히 국주(國主)를 언급한 부분과 천황, 국가신도 등 불경죄에 걸릴 위험이 있는 표현에 대해서는 모두 삭제한 것이다. 주요 삭제부분은 다음과 같다.
니치렌은 일염부제 제일의 성인(聖人)이로다.(어서 974쪽)
천조태신(天照太神) 정팔번(正八幡) 등이라고 하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중시되지만 범석(梵釋) 일월(日月) 사천(四天)에 비(比)하면 소신(小神)이니라.(어서 919쪽)
이 일본국의 일체중생을 위해서는 석가불(釋迦佛)은 주(主)이며 사(師)이며 친(親)이로다, 천신칠대(天神七代) 지신오대(地神五代) 인왕구십대(人王九十代)의 신(神)과 왕(王)조차 또한 석가불의 소종(所從)이니라.(어서 1410쪽)
생명존엄의 근본정신에 위배
말할 나위없이 불교의 근본정신은 자비와 비폭력에 근거한 절대평화주의에 있다. 그것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재보도 목숨과는 바꿀 수 없나이다(어서 1596쪽)라고 했듯이, 생명의 절대존엄을 대성인은 분명히 설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이란 우주대의 재보를 가지고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런데 군부 권력에 절조없는 영합을 계속하고 있던 종문은 이 불교의 근본정신에 등을 돌리고, 살생 행위인 전쟁을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살인의 장려까지 태연히 자행한 것이다.
전쟁 참여의 역사적 진실
- 1943년 6월 6일자 『요미우리 신문』
일련정종 승려 스즈키 닛쿄가 야마모토 제독의 국장(國葬)에 참석.
그는 야마모토 제독의 사망은 크나큰 국가적 손실이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계승하여, 사악한 미국과 영국의 적들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까지 국가를 수호하여야 한다. 장례식에서 내가 할 의식순서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대석사로 돌아가면 야마모토 제독에 버금가는 소화들로 재교육시킬 것을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 1943년 8월 11일자 『시즈오카 신문』
대석사가 전쟁지원을 위한 승려교육과정 제공. 20일과 24일에 후지현, 우에노의 일련정종 대석사에 100여 명 이상의 승려들이 전쟁 기간중의 황민으로서의 정신교육을 위해 참석하였다. 이것은 승려들이 종교의식만을 행하던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 1944년 2월 1일자 『시즈오카 신문』
대석사가 군사훈련을 위해 15개 사원을 개방, 일련정종 총본산 대석사에서 수행으로 단련된 인내심을 가지고 국부의 증강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에 들어갔다. 그들은 또한 삼문과 본당의 구리 지붕판을 기증하기로 결의했다.
지금 그들은 가능한 한 군수품 증가를 위해 구리 지붕판을 제공하려고 지붕판 대용품을 찾고 있다.
- 1944년 4월 1일자 『시즈오카 신문』
대석사에서 일본의 승리를 위한 1주일간의 제목회. 일련정종 총본산 대석사에서 3월 28일에서 4월 3일까지 일본의 승리를 기원하는 제목회가 열렸다.
- 『대일련(大日蓮:종문기관지)』에서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 개전의 날에 스즈키 닛쿄 법주가 전쟁을 찬양한 훈유(訓諭) 발령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오늘 미국 및 영국에 대해 황송하옵게도 선전(宣戰)의 대조(大詔)가 환발되시어 참으로 황송하옵고 감격을 금할 수 없나이다.(중략) 각기 그 본분을 다함으로써 전고(前古) 미증유의 대전(大戰)에 필승(必勝)을 기할 것을 이와 같이 훈유(訓諭)함.
3. C작전을 밝힌다
이 C작전은 SGI회장이 먼저 닛켄법주를 비평했다고 이케다회장을 비난하면서 9가지의 서면 질의를 1990년 12월 16일, 종문이 일방적으로 SGI에 통고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9가지 문의사항은 이케다회장의 스피치를 조작한 테입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종문측에서 얻었다는 날조된 녹음테이프는 근원도 확실치 않은데다가 날조된 녹음 내용 속에서도 의심스러운 점들이 속속 드러나, 즉각 4개의 문의서 내용은 취소했다. 하지만 나머지 문의사항들도 완전히 앞뒤가 맞지 않는 것들로, 그 중의 한 예가 이케다회장이 본부간부회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노래의 합창 제의에 대한 비난이었다.
거듭 학회측에서는 면담을 제의, 오해를 풀기를 원했으나 종문은 완강히 거절하면서 일 주일 내에 서신으로 답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종문의 이러한 말도 안되는 트집과 근원도 확실치 않은 녹음테이프를 내세워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모습에서 강한 의구심이 유발되었다. 종문이 전부터 학회를 해체하려는 계획이 사전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예측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화로써 서로의 오해를 풀 것을 제의했지만 계속 거부당하자이후, 학회는 종문의 그러한 행동과 의도를 더욱 간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종문이 일방적으로 자체 내의 규율까지 변경하면서 같은 해 12월 27일에 이케다회장을 일반신도를 대표하는 총강두직에서 파면한다고 통보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신도라 할지라도 말이나 글로써 법주를 비판하면 징벌을 취할 것이라는 또다른 규칙까지 제정했다. 하지만 어떠한 말이나 글이 비판의 대상으로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해설이 없었다.
이윽고 학회와 SGI를 해체하려는 종문의 방침은 1991년 11월, 학회에 해산권고서와 파문권고서를 송부하며, 학회를 파문시키기에 이르른 것이다.
결국 이 일련의 과정에서 볼 때, 컷트(Cut)작전이란 결국 권력의 마성에 휘둘리고 있는 닛켄을 중심으로, 그 측근 승려그룹들이 학회를 종문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꾸민 사전각본이었다. 이들은 학회 내부에 불신과 혼란, 분열을 야기시켜 탈회하는 학회원을 흡수, 학회조직을 붕괴시키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닛켄 스스로도 1990년 여름의 시점에서 C작전을 알고 계셨나요?라는 어느 승려의 질문에 알고 있었다. C작전은 저 녀석의 머리를 컷트한다는 의미이다 라고 대답한 것만 보더라도 C작전의 목적과 내용을 닛켄이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학회 파문 이후 종문은 대객전과 정본당 파괴, 시애틀 사건, 대어본존 가짜 발언과 승려들의 유흥타락 등 대방법을 자행하며 한없이 깊은 파행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4. 인간을 기만한 닛켄종의 등산
조금도 불어나지 않는 신도, 그리고 공양.
지금 닛켄종에서는 2002년 종지건립 750주년을 맞아 무모한 법화강 30만 총등산을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혈안이 되어 등산자 계몽과 공양의 수탈에 착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총등산 계획을 1994년 6만 총등산의 당일날 갑작스레 닛켄이 일방적으로 발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닛켄은 30만 등산의 준비가 잘 진척되지 않자, 속이 탔던 지 등산을 대성인의 명령이라며 어서 어디에도 없는 대사의로 채찍을 가하고 있다. 대성인으로부터 명받은 30만 총등산임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예하(닛켄)가 6만 총등산 때에 말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진지한 각오가 서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어본불 대성인의 어명이다.(1998년 8월 27일, 전국교사지도회에서의 닛켄의 설법)
하지만 1990년의 3만도, 1994년의 6만도, 1998년의 10만도 등산자수 모으기를 최우선으로 해서 체재를 정비했지만 무엇보다도 모자란 일손과 빡빡한 일정으로는 대량의 인원을 움직이는 것이 무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다섯 배나 되는 30만이 된다면 어떤 생지옥이 전개될 것인가. 30만 등산은 앞으로 3년 동안에 현재 있는 신자수를 적어도 세 배로 불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러나 절복은 조금도 진전되지 않고 있다.
다급해진 지금 종무원은 말사(末寺)를 죄고 그 중들은 강의나 법요 석상에서 할당된 기준량처럼 신자들에게 포교를 강요하고 있지만 정작 신자들은 30만 등산은 애당초 허풍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다. 또한 무엇보다도 6만 등산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지옥과 같은 등산에 대한 공포심을 쉽사리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30만 등산의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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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전권 여자부 입니다.
요번 25일날 지부 여성 포럼을 하는데요, 제가 니켄에 관해 조사하게 되었답니다. 니켄에 관해 자세히 나와있는 사이트가 있을까요?
멤버님들 알려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