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 지눌스님 에게는 한 분의 누님이 있었다.
그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였다.
학식도 꽤 깊은 편이었다.
사람들과 논쟁하면 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교만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는 지눌이 깨달음을 이뤄 온
나라의 존경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지눌은 어린 시절에 누님의 보살핌을 유난히 많이 받았다.
몸이 약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눌은 나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
찾아가면 모른 척 하지 않겠지.'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상무주암을 찾아 갔다.
지눌은 오랜 만에 만난
누님을 무척 반가와 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출가하고도 이따금 부모님을 찾아뵙고
문안을 드렸었다.
그때마다 누님은 지눌과 학문적인 토론을 나누었었다.
하지만 거조사에서 정혜결사를 시작하고서는
전혀 여가가 없었다.
10여년 만의 상봉인 셈이었다.
"누님, 많이 늙으셨습니다.
세월은 속일 수가 없나 보군요."
"스님께서도 몸이 야위신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잘 계시지요?"
"예. 나이에 비하면 건강하신 편이지요."
"학문은 여전히 열심히 하십니까?"
"한다고는 하지만 워낙 자질이 우둔해서요.
스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요."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누님의 실력이야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습니까?
이젠 불도에도 관심을 기울여 보시지요."
누님은 유교나 도교에는 상당한 소양이 있었다.
하지만 유독 불교에 대해서만은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불교 공부를 전혀 안해본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남에게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였다.
그런데 지눌과 이야기해서는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동생에게 계속 지기만 하자
그만 불교가 싫어져 버린 것이었다.
유교나 도교에 빠진 것도 일종의 열등감 때문이었다.
지눌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님에게 불교 공부를 권한 것이었다.
그녀의 자질로 보아 마음을 돌리면
훌륭한 불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불교는 너무 심오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잖아요?
부모도 처자도 다 버려야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겠어요?"
누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눌의 권유를 거절했다.
가시 돋힌 대답이었다.
그녀는 불교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불도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들어 올 수 있고요."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스님처럼 총명한 분도 출가하신 지 30년이 넘어서야
겨우 깨닫지 않으셨습니까?
보통사람 같으면 한 평생 노력해도 어림없는 일입니다.
하물며 집에 있는 사람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누님은 직접 공부해 보지도 않고
왜 지레짐작만 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총명함은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바보 백치에게도 불성이 있어요.
불교는 결코 어려운 종교가 아닙니다.
출가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도를 이룰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이 실제로 많았습니다."
누님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불교의 핵심을 말해주십시요.
두고 두고 생각 해 보지요."
이야기를 그만 하자는 투였다.
지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옳거니 이젠 됐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의 말을
듣게 하려는 심산이 아니었던가?
"그러면 잘 들으십시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수 많은 부처님들이 계셨어요.
그 분들 모두가 불교의 가르침을
단 몇 마디로 간추린 내용입니다."
누님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귀가 솔깃하였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해도 불교는
엄청나게 방대한 사상이 아닌가?
그것을 단 몇 마디로 모두 간추렸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눌은 숨을 고르고 천천히 말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은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누님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쿡!'하며 자지러졌다.
"잘 들으셨습니까?"
지눌은 누님을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그녀는 지눌의 진지한 표정이 한층 어이가 없었다.
기껏 기대하고 들었더니
'착한 일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이건 세살 난 꼬마도 아는 말이 아닌가?
순간, 지눌의 음성이 그녀의 심중을 꿰뚫고 들어왔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만,
여든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녀는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뜨끔하였다.
"스님의 가르침 잘 들었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에게도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실천할 수 있는 자신이 없군요.
하지만 스님같이 고명한 분을 동생으로 두고 있으니
설마 지옥에야 떨어지겠습니까?
스님이 계시니 저는 스님을 믿고
이대로 살아가겠습니다."
그녀는 지눌에게 합장을 했다.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지눌도 말을 멈추었다.
남매는 그간의 집안 일을 묻고 대답하기 시작하였다.
점심때가 되었다. 지눌의 방으로 밥상이 들어왔다.
상은 하나였고 밥도 한그릇 뿐이었다.
누님은 의아했다.
'왜 한 명 것 뿐이지? 스님은 점심을 안 드시나?'
자기의 밥이 없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밥상은 지눌의 앞으로 놓여졌고,
지눌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조금 후에 가지고 오려나?'
누님은 기다렸지만 부엌쪽에서는 전혀 기척이 없었다.
절에서는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일단 시간이 넘으면 먹지 못하는 것이 관례였다.
누님은 배가 고팠다.
일찍 아침을 먹고 지리산을 올라 왔으니
당연한 일 이었다.
그런데 지눌은 자기에게는 한 숱갈 권하지도 않고
혼자 식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얄밉고 괘씸하기 그지 없었다.
'이름이 높아졌다고 누님인 나를 무시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님은 참다 못해 말을 건넸다.
체면만 차리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니, 어째서 나에겐 먹어보란
소리도 않고 혼자만 드시는 겁니까?"
지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밥그릇은 거의 비워졌다.
"스님, 손님을 이렇게 대하실 수 있습니까?
나는 스님의 친누나입니다."
그제서야 지눌은 누님을 쳐다보았다.
누님이 화내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십니까?"
지눌의 대답은 너무나 태연했다.
누님은 기가 찼다. 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나를 골탕먹이시는 겁니까?"
그녀는 지눌을 노려보았다.
울그락 불그락한 표정이었다.
지눌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허허, 골탕을 먹이다니요.
누님은 배가 부르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를 점입가경이라고 하던가?
밥 한술 주지 않고서 배가 부르지 않느냐고 묻다니.
"사람을 놀리는 것도 분수가 있습니다.
스님이 밥을 먹는데 어째서 내 배가 부르단 말입니까?"
그녀는 어느덧 울상이 되어 있었다.
"누님께서 아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수행을 열심히 한 동생이 있으니
그 덕분에 지옥엔 안 가실거라고요.
그러니 제가 밥을 먹으면
누님도 덩달아 배가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끔한 일침이었다. 피해 갈 도리가 없었다.
'내 생각이 너무 안일했구나!'
누님은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남에게만 의지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저의 부족함이 너무도 큽니다.
얕은 지식에 만족해서 큰 법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이제사 스님의 은혜를 입어 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저의 스승이십니다."
지눌은 누님의 말을 공손하게 받았다.
"누님의 스승은 제가 아니라 부처님입니다.
누님은 제게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렇게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니 기쁘기만 하군요."
"당치도 않습니다.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쳐 주신 은혜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시장하시지요. 사실은 밖에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닙니다. 스님의 가르침에 이미 배가 부릅니다."
불법의 인연 속에서 남매의 정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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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불법에 관한 좋은 글
보조국사 지눌스님 얘기.
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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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0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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