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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란다대학’ 꿈꾸는 善知識 요람
총장 종범스님
몇 년 전 뉴스에서 청년실업난에 대해 보도하면서 취업률 100%인 4년제 대학을 소개한 적이 있다. 명단에는 중앙승가대학교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스님을 일종의 직업으로 간주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물론 학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적절한 반면교사이긴 했다. 중앙승가대가 교육부로부터 공인받은 종단 유일의 정규대학이기 때문에 빚어진 ‘오보’인 셈이다. 총 대지 면적 5만3000평에 7개 동의 건물이 들어선 김포학사는 규모만으로도 불교계의 자랑이다. 인도 나란다대학에 필적할 승가교육의 요람은 사실 몇몇 젊은 스님들의 소박한 원력에서 출발했다. <중앙승가대학교 학인 스님들이 지난 2000년 완공된 김포학사 안을 걸어가고 있다.> 중앙승가대는 오는 2009년 설립 30주년을 맞는다. 1979년 2월24일 강원을 갓 졸업한 범산 성문 화정 평상스님이 의정부 쌍룡사에 모여들었다. 중앙승가대의 전신인 중앙불교승가학원 설립을 위한 발기인 모임이다. 한 연배 위였던 성우스님(현 불교TV 회장), 당시 쌍룡사 주지 도윤스님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한국승가 전통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기관을 설립하자고 발원했다. 발기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범산스님(현재 부산 영주암 주지)은 “70년대 근대화 열풍을 타고 사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승가도 변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나타났다”며 “산업화 시대에 걸맞은 포교방법론을 생산해낼 현대적인 교육기관이 필요했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에 진짜 대학이 생긴다는 소문을 듣고 한 달 만에 60명의 입학생이 몰려들었다. 같은 해 3월18일 서울 돈암동 소재 보현사를 학사로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됐다. 철거 직전의 건물을 빌려 강당과 사무실로 나누어 사용했다. 성우스님이 내놓은 900만원이 운영예산의 전부였다. 결국 학인들이 방학내 권선을 다니며 자금을 모아야 했다. 정성어린 십시일반에 감동해 전 직지사 조실 관응스님,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스님 등 내로라하는 강백들이 기꺼이 찾아와 학인들을 가르쳤다. 1980년 중앙승가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구의동 영화사를 거쳐 1981년 개운사에서 ‘안암학사’ 시대를 연다. 김응철 포교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990년 재가자 교수 1호로 임용됐다. “처음엔 수업의 대부분을 스님들에게 XT, 286과 같은 기초적인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치는데 썼다”고 한다. 그만큼 초반엔 일반적인 대학, 엄밀히 말하면 전문대학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김응철 교수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전통성을 점진적으로 확장시켜 온 것이 교과과정의 역사”라고 말했다. ‘산업화 걸맞은 현대적 교육기관 필요성’ 발맞춰 79년 출범 교육부 인가받은 종단 유일 정규大…2003년 대학원도 개원 정규대학 설립은 조계종의 오랜 화두였다. 물론 기존의 강원교육은 내실 면에서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 단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졸업하더라도 사회활동의 폭이 제한됐다. 불교학 이외의 전문분야 연마로 실질적인 포교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종도들의 원력은 중앙승가대로 집중됐다. 범종단적인 관심과 지원, 동문.재학생.교직원의 노력, 문공부 종무실과 문교부 담당부서의 협조로 비로소 1990년 2월 각종학교 인가를 취득했다. 졸업하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89년 7월엔 학교법인 승가학원이 설립돼 확실한 운영주체를 얻었다. 승가학원의 이사장직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당연직으로 겸임하며 학교의 예산 가운데 60% 가량을 종단이 부담한다. 1993년에는 중앙승가대학 설치령 개정으로 개운사와 보타사가 부속사찰로 지정돼 운영비를 보조받을 수 있었다. 괄목할 만한 외형적 성장을 바탕으로 사회민주화와 종단개혁의 선봉에 서는 등 인재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1996년 12월 교육부로부터 정규대학 인가를 취득하면서 학사 이전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김포 풍무동에 부지를 마련한 학교 구성원들은 기공식을 봉행한 1995년 9월 이후 새로운 학사 건립을 위한 불사에 매달렸다. 공사 도중 건설회사의 부도와 IMF 금융환란이 잇따라 터지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여보란 듯한 스님들의 대학을 세우겠다는 염원은 각계에서 이어진 보시와 성원으로 꺾이지 않았다. 2000년 김포학사를 완공하면서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김포학사 시대를 맞이했다. 중앙승가대 총동문회장 정념스님(평창 월정사 주지)은 “튼실한 수행환경을 확보하면서 학교는 종단 안팎에서 더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게 됐다”며 “국내 최고의 전문승려 교육기관으로서 중생을 교화하는데 소중한 힘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사회민주화 종단개혁 앞장서며 ‘인재 등용문’ 자리매김 일례로 1000명이 생활할 수 있는 시설과 규모을 갖춘 김포학사엔 현재 279명의 학인이 정진 중이다. 전원이 기숙사에 머물며 2.3학년에겐 2인 1실, 4학년에겐 1인 1실이 제공된다. 1학년은 큰방에서 단체생활을 하지만 방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수행기강 확립 차원이다. 정규대학으로 개편된 이후 교육체제와 내용에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1997년 역경학과.포교사회학과를 신설, 기존의 불교학과.사회복지학과와 더불어 4개 학과로 늘어났다. 2000학년도부터는 복수전공제를 실시해 보다 폭넓게 공부할 수 있게 됐다. 2003년 대학원 개원으로 교육체계가 완성됐다. 중앙승가대는 대학과 사찰의 경계에 서 있다. 리포트를 쓰고 시험을 쳐서 학점을 따는 일은 절 밖의 대학생들과 다를 게 없다. 2007년 현재 비구와 사미 158명, 비구니와 사미니 118명이 공부하는 ‘남녀공학’이다. 학보사인 ‘승가대신문사’가 활동한다. 승가문학회 향원회(꽃꽂이) 산악부 인도불교연구회 등 동아리와 학회도 형식은 대동소이하다. 다만 공부의 목적에서 확연히 갈라진다. 살인적인 취업난 탓에 속세의 상아탑은 급속하게 일종의 전지훈련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남보다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지위를 얻기 위한 지식과 기술이 매매되는 것이다. 반면 공익적인 전법(傳法)을 위한 배움터인 중앙승가대는 자본주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공공성은 저렴한 등록금에서도 드러난다. 중앙승가대의 한 학기 등록금은 90만원 수준. 4년제 대학 평균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종단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이마저 성적과 소임에 따른 다양한 장학금 혜택에 따라 조금만 수고하면 반액 정도는 벌충이 된다. 물론 여기가 스님들의 학교라는 사실은 학교 정문만 통과해도 느낄 수 있다. 시내와는 야산 하나를 넘어야 할 거리. 산사에 온 듯 고요한 분위기는 젊은이들의 수다, 문명의 소음과 씨름하는 세간의 캠퍼스와는 천양지차다. 새벽예불과 발우공양의 장엄한 광경 역시 여기서만 볼 수 있다. 교과목 분류에서 ‘수행 필수’가 눈에 띈다. ‘교양 필수’가 현대인들이 갖춰야할 기본적인 소양과 기능이라면 ‘수행 필수’는 스님으로서 익혀야 할 최소한이다. 실천불교(의식작법), 좌선실수, 불교사 등 10개 과목 20학점을 4년 내내 수강해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강원교육의 대안으로 출발했지만 강원의 장점은 고스란히 계승한 셈이다. 스님으로서의 위의를 강화하기 위해 빠르면 내년부터 수행 전담 교수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중앙승가대는 나란다대학의 복원을 꿈꾼다. 승가의 입장에서 불교학과 제반 학문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승가학연구원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서기 5세기 초에 세워진 나란다대학은 세계 최초의 승가대학이자 종합대학이다. 절정의 불교문화를 창달했지만 오늘날은 황량한 절터로만 존재한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를 공평하게 가르쳤으며 불교학뿐만 아니라 베다, 우파니샤드, 논리학, 음악, 의학, 공학, 산수, 서화 등 모든 학문을 통합적으로 접근했다. 총장 종범스님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불교의 법풍을 통합적으로 계승하고 인도불교의 근본정신을 창의적으로 꽃피울 때 나란다대학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교육목표를 밝혔다. 김포=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행자교육원 입교 제한사유 흔히 스님을 인천(人天)의 사표(師表)라고 말한다. 만인의 모범이 될 만한 인물만 가사를 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신체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한다. 조계종은 15세 이상 50세 이하인 고졸 이상 남녀라면 균등하게 출가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다만 행자교육원 입교 자격을 제한하면서 승가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혼 6개월 미만-양육권 不포기 금치산자-문신한 자 등도 ‘불가’ 배우자나 자녀와 같은 실질상 세속관계를 끊지 못했다면 출가할 수 없다. 입교일 기준으로 이혼한 지 6개월이 되지 않았거나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파산자로서 복권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 형사상 피의자 또는 구금 이상의 형에 처해 복권되지 않은 자, 파렴치범에게도 산문은 닫힌다. 신체적 결격 사유는 다음과 같다. △백치 중성 불구자 △난치병 혹은 전염병을 앓고 있는 자 △문신이나 자해를 한 흔적이 있는 자 △입산 이전 수족을 자른 자 △향정신성 의약품 상습복용자 등이다. 학림성사란? ‘학림성사’는 승가대학(강원)을 비롯한 조계종 기본교육기관의 역사와 현황, 학인 스님들의 수행담을 소개하는 기획연재입니다. 제목은 중국 송나라 도융스님이 지은 〈총림성사(叢林盛事)〉에서 따왔습니다. 성사(盛事)란 ‘훌륭한 일’을 뜻합니다. |
첫댓글 문제는 학생인 스님이 없다는 거~스님 괜찮은데??? 왜? 그러지~70%도 학생 충원이 안 된다는 거~
주는 인구가 문제는 문제인가? 봅니다.
미래 직업으로 스님, 강추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결론적 힘든것을 회피하는 세대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