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떠들썩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태'에 대해 딴 사이트에서 어떤 글을 보고 그 글에 반박한다는 심정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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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의 반대말은 '비민주노조'가 아닙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태를 놓고 민주노총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물음표를 '조직에 민주자를 붙이면서까지 염원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훼손'이라는 방식으로 붙인다면, 아무래도 하나 망각되는 것이 있다 싶군요. '민주노조'는 '비민주노조'가 아니라 '어용노조'에 반대되는 노조였으며, '민주노조'의 '민주'란 궁극적으로 '자본에 맞서 싸우는 노조',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노조'라는 뜻이었다는 것.
물론 단상점거에 따르는 몸싸움 정도가 아니라 '신나' 운운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겠거니 하는 생각은 듭니다. 그렇지만 '민주노조'의 본 뜻을 생각해 본다면, '민주주의'의 문제를 묻더라도 과연 '폭력'이 그 핵심 문제일까 싶군요.
2월 2-3일 동안 '민주노총 집행부 기관지' 노릇을 톡톡히 해 댄 <한겨레>의 기사 중에서 가장 어이없었던 건, '폭력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대공장 노조 사람들이라, 자기 노조 혼자 회사 상대로 따 낼 수 있는 게 많은데 사회적 교섭하면 괜히 방해받을까봐 저런다'는 식의 보도였지요. 당장 드는 생각이.. '아니, 배일도 치하의 서울지하철이, 계약직노조 따 시킨 KT노조가, 대체 어디를 지지할(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현대자동차에 비정규직 합법적으로 들여놓는 거 합의한 노조 위원장이 무슨 파라고 생각하니?'라는 거였습니다만...(머, 한겨레는 이 게시판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민주노동당 당직자 폭행사건'에 대해서도 참으로 어이없는 소리를 하더라만요)
그렇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투쟁과 관련해 별로 좋은 이야기 못 듣는 정규직 노조 위원장이 어디 소속이(었)더라 하는 거하고, 박일수 열사 분신을 냉대해 금속연맹에서 제명당한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이 어디 소속이었더라 하는 거..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어 있는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께서 얼마 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자기 일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1998년 정리해고제를 수용한 노사정 합의의 책임을 지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한 후에, 그 합의를 깨기 위한 총파업 비대위 위원장을 맡았다가 정작 총파업을 철회한 일이라구요.
어떤 분들은 이 일화를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기 위한 논거로 사용하시기도 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사용하는 게 틀렸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렇지만 저 일화는 어쩌면 현재의 상황이 '변절의 길을 걷고 있는 국민파 나쁜 놈들'(저도 국민파를 상당히 의심하는 편이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민주노조운동'이 부닥친 어떤 한계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 주는 실마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어제 저랑 메신저 나눈 어떤 사람의 표현을 빌리면, '대공장 노조 몇 개면 민주노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인 그런 상황.. ***님 같은 분껜 좀 죄송할 수 있지만 한 걸음 더 나가면, '전노투'에 비정규직 조직이 참여하는 건 압니다만, 그렇게 '비정규직 조직이 외삽적으로 어떤 정파에 참여'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이미 아니게 되어 버린 그런 상황까지도.
머 여기까지야 이미 민주노조운동, 아니 '어용노조'에서 조금씩 벗어날랑 말랑 하고 있는 한국노총까지를 포함한 전체 노동운동이 이미 감지하고 있는 위기와 한계지요. '대공장 노조'를 들먹일 것도 없이 '조직률 10%대'와 아직도 남아 있는 '기업별 노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 '위기와 한계'의 지점까지 민주노조운동을 어쨌든 성장시킨 동력의 '관성'이 그 극복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까지도.
그런데 이 대한민국의 빌어먹을 인간들은, '위기와 한계'에 대한 비판을 '도덕적 비난'으로 바꿔치기를 엄청 좋아해서리.. 노무현 정부 이후, 대기업 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 대기업 비정규직,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아주 골고루 죽어나가는 판에도 '노동귀족' 소리만 드높더이다.
'연대'란 언제나 노동운동의 가장 기본적이고 유력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 '연대'를 달성하라고 권고한다면, 대체 누구랑 무슨 '연대'를 하라는 말인지요. 지금 이 땅의 '노동운동' 아닌 '운동' 치고, 현재의 '노동운동'보다 더 '급진적'인 운동이 아닌 판에는, 특히나 그 운동이 '공익'을 내세우는 운동이라면, 모두 작든 크든 '노동귀족' 이야기는 다 하는 판인데. '노-사-정 2대1 쌈'도 모자라서 '노-사-정-'공익' 3대1 쌈'을 하라구요?
더군다나 그 '연대'의 목적이 '비정규직'을 위한 것이라구요? '노동해방'과는 전혀 인연도 없을 링컨조차도 그의 '민주주의'에서는 'for' 이전에 'of'와 'by'가 옵니다. '비정규직'과의 '연대'는, 먼저 'of 비정규직'과 'by 비정규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약하나마 조금씩 움트고 있는 'of'와 'by'들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어디 가고, '바깥 세력'과 '연대'해서 'for 비정규직'해야 한다는 발상이 가능한지요?
대의원 대회 장에서 나온 '사회적 교섭' 찬성 논리 중에 '지금 총파업 조직할 자신 있나. 교섭틀에 들어가면 발언권을 더 가질 수 있다'는 게 있었다지요. 하다 못해 작업장 단위에서도 '교섭'을 하려니 가장 위력적인(그리고 거의 유일한) 노조 측의 힘이 '파업'이더라인데, 이게 대체 무슨 논리인지.
그러나 저런 논리를 단순히 '바보같다', '억지다', '변절의 기미다'라고만 치부해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위기와 한계'의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사실 단상점거하고 신나 뿌렸으면 원칙적으로는 갈라서야 맞는 거지만 그렇다고 갈라설 수도 없고, 총파업은 어디 가고 사회적 교섭이냐고 비판을 해도 스스로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나라는 물음을 그리 쉽게 떨쳐 버리기도 힘들고...
여기까지 노동운동 외부에 있는 사람의 무책임한 이야기였습니다만, 무책임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면, 결국은 다시금 '연대'의 문제겠지요.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자기의 투쟁을 건설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주체와 주체'로서의 연대... 거기에 하나 덧붙이면, 계급대중조직으로만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정치'로 풀라고 만든 '당'인 민주노동당이 좀 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라는 것까지.
자본주의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아마 어느 지점에서는 '교섭'을 해야 할 날이 오겠지요. 아마 그 때쯤 되면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둘 중의 하나는 저 세상으로 가 있을 테고.. 나머지 하나와 민주노동당이 정권을 다투고 있겠지요.
지금의 맘대로라면, 그 땐 민주노동당원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머 그 때까지의 삶이 결정할 문제일 테니 지금 함부로 말할 것도 아니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