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는 ‘사이코패스’ 열풍이다.
2004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을 시작으로 정남규, 보성 연쇄 살인 어부 오종근, 그리고 강호순까지. 이들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에 범죄 심리 분석가들은 ‘사이코패스’ 진단을 내놨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란 겉은 멀쩡하면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성격(인격) 장애자를 뜻한다.
온 나라를 혼동에 빠뜨린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언론은 사이코패스를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에서는 사이코패스 자가 진단, 동영상 테스트 등이 급속도로 퍼지며 네티즌의 큰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적 원인보다는 ‘누가 사이코패스인가’하는 감별법에만 관심을 갖게 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세상을 경악하게 만드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정신분열증적 착란과 편집증 사이를 오가며 모호한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설명이 불가능할 경우엔 예외 없이 ‘사이코패스’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자각은 이유 없는 살해와 폭력 안에 숨겨져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의미를 외면하거나 감춰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사이코패스라는 인격 장애가 성급한 인과 관계 설정으로 범죄라는 말과 동의어로 작용하고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이에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범죄자마다 붙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연쇄 살인마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사이코패스라 단정 지어선 안 되며, 여러 방면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진단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평범한 시민 ‘누구라도’ ‘언제든지’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며 실제 이상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2월 3일자 ‘당신 곁에도 사이코패스가 있다’는 글을 통해 공기업 경영진, 공기업 노조 간부 등을 언급하며 “억대 연봉을 위협할 경쟁자를 막겠다고 진입 장벽을 사수 하고, 불법 파업을 벌이는 방송사 노조 간부들 모두 사이코패스 감정을 받아 봐야 할 대상”이라고 비난했다.
정부도 사이코패스 논쟁에서 예외가 아니다. 용산 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사이코패스 열풍을 몰고 온 강 씨 활용을 지시한 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당은 사형 집행을 강력하게 추진함은 물론, 가석방이나 사면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을 추가로 도입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흉악 범죄자 신상공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나, 가발이나 마스크를 쓰면 현금자동인출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위험한 범죄자’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시민 사회를 감시하고 억누르는 통제 권한을 본격적으로 강화하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 공포증을 공권력 강화의 호재로 활용한 것.
이렇듯 지금 한국 사회는 흥밋거리의 관심에서부터 정부 권력에 의한 계산된 활용까지 ‘사이코패스 열풍’에 너무 쉽게 휘둘리고 있다. 원인과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일부 언론과 정부의 자기 잇속 챙기기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진단명 사이코패스》의 글쓴이 로버트 헤어 박사는 ‘오직 경쟁만을 가르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의 존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이코패스’ 열풍에 휘둘리기보다는 그 속에 드리워진 음흉한 그림자를 바로 보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건전한 공동체 문화의 기틀이 되는 유대와 소통을 ‘나부터’ 실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웃는 얼굴로 다가와 양심의 가책 하나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이코패스는 강호순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뿐 아니라 공권력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