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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예학과 다산예학
1. 자연주의적 예학과 인간주의적 예학
옛 경전을 읽고 생각하고 주석하는 ‘학문유학’의 외연이 어디까지인지 확정하기는 어렵다. 유학사 내지 경학사經學史의 흐름을 일별해 보면, 학문유학은 때로는 자연주의에 근접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주의에 근접하기도 한다. 아마도 맹자孟子 류의 유학은 자연주의적 경향이 농후할 것이고, 순자荀子 류의 유학은 인간주의적 경향이 농후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유학이건 그것이 유학인 한 효제의 윤리와 그 실천이 갖는 중요성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유학의 학파마다 강조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효제의 윤리는 유학의 내포적 본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유학은 항상 가부장적 가족윤리인 효제의 윤리와 그 실천을 중심으로 하면서, 때로는 자연세계로의 수동적인 물러남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세계로의 능동적인 나아감을 고취하기도 한다. 자연주의적 방향성을 가진 유학이 노장老莊과 친화적이고 시적이라면 인간주의적 방향성을 가진 유학은 노장과 대립적이고 산문적이다. 자연주의적 유학이 초탈적인 경향을 갖는다면 인간주의적 유학은 세속적인 경향을 갖는다. 자연주의적 유학이 수기修己를 중시한다면 인간주의적 유학은 치인治人을 중시한다. 하지만 두 가지 유학 모두 효제의 윤리에 의해 지탱되는 가부장적 가족을 늘 중심에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대체적인 경향을 두고 말한다면, 주자학은 맹자류의 자연주의적 유학에 속하고, 이런 주자학이 가지고 있는 수동적인 퇴행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다산학은 순자류의 인간주의적 유학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1) 하지만 주자학과 다산학이 제아무리 다르다 해도 둘 다 유학의 일종임에는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둘 다 효제의 윤리와 그 실천을 다른 무엇보다도 중시하기 때문이다. 다산은 한대漢代 이래 경학사를 송두리째 전복하려는 혁명적인 시도를 감행하지만 효제의 윤리를 잠시도 버린 적이 없다. 바로 여기에 주자학과 다산학 사이의 근원적인 연속성이 자리잡고 있다. 주자학과 다산학 사이에는 완전히 다른 것들끼리의 대립이 아니라 서로 유사한 것들끼리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주자학과 다산학은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르다. 같음 속에 다름이 있기에 양자는 효제의 윤리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게 된다. 다시 대체적인 경향을 두고 말한다면, 효제의 윤리를 주자학은 주로 자연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반면, 다산학은 주로 인간주의적으로 해석한다.
자연주의적 해석과 인간주의적 해석의 차이는 인仁에 대한 양자의 상이한 해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자와 다산 모두 인을 유학의 최고덕목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 유학의 다른 가치들이 다 포괄된다고 본다. 또한 두 유학자 모두 인의 실천의 출발점에 효제의 실천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인에 대한 양자의 해석은 판이하다. 주자학에서 인은 천지인물天地人物을 관통하는 자연지리自然之理 혹은 천리天理로서 인간의 행위에 앞서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선善의 원천이다. 반면, 다산학에서 인은 오직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윤리적 행위를 축적함으로써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것이다. 다산학에서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작위가 선의 원천이다. 주자학에서 효제의 실천은 천리를 체득하여 천지만물과 일체화됨을 목표로 삼는 반면, 다산학에서 효제의 실천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엮어지는 인간세계의 치리治理를 목표로 삼는다. 주자학은 효제의 윤리를 통해 인간세계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자연세계로 물러날 것을 고취하는 반면, 다산학은 효제의 윤리를 통해 자연세계의 가치를 격하시키고 오로지 인간세계로 나아갈 것을 고취한다. 유학의 기본가치에 대한 이 같은 해석학적 차이는 주자학과 다산학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양자의 예학에도 마찬가지의 해석학적인 차이가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주자예학이 자연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다산예학은 인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禮가 없는 유학을 상상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예는 유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효제의 윤리와 불가분하다. 인간의 삶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고, 인간의 삶이 있는 곳 어디에나 각종의 질서가 있게 마련이다. 유학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유학의 예도 인간의 삶이 있는 곳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 각종의 질서와 관련된다. 그러나 유학은 인간세계 어디에나 있는 그 질서를 모두 예로 수용하지 않는다. 예는 민간의 풍속이나 국가적 차원의 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나 풍속이나 법이 곧 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각종 질서로부터 유학의 예를 선별해내는 기준은 그 질서가 효제의 윤리를 구현하고 있는지 여부에 있다. 예는 효제의 윤리를 둘러싸고 있는 종법宗法제도나 봉건封建제도 혹은 세세한 곡례曲禮 등등의 크고 작은 각종 질서를 가리킨다. 이 모든 예적 질서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핵심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곧 가부장적 가족의 핵심원리인 ‘아버지중심주의’일 것이다. “아버지는 지존至尊”이라는 『의례儀禮』의 한 마디는 예적 질서를 관통하고 있는 아버지중심주의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아버지중심주의의 윤리적 표현이 효제와 삼강오륜이고, 아버지중심주의에 따라 부계 친족을 질서지우는 제도가 종법제도이며, 이 종법제도를 정치행정제도로까지 확대한 것이 주대에 시행되었다고 알려진 봉건제도이다. 아버지중심주의에 의거한 유학의 예적 질서를 상당히 체계적으로 망라하고 그 뜻을 풀이해 놓은 책들이 바로 예학의 소의경전이 되는 삼례三禮 즉 『주례』, 『의례』, 『예기』이다.
경학사에서 예학은 늘 삼례의 해석학으로 전개된다. 주자예학도, 다산예학도 삼례의 해석학일 뿐이다. 하지만 주자학과 다산학이 근본적으로 자연주의와 인간주의로 각기 그 방향을 달리 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중심적인 유학의 예에 대한 양자의 해석도 자연주의와 인간주의로 각기 그 방향을 달리 하게 된다. 자연주의적 해석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노장의 경우처럼 예가 증발되고 무위자연無爲自然만 남을 우려가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주의적 해석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법가의 경우처럼 예가 증발되고 법의 획일적 지배만 남을 우려가 있다. 무위자연의 세계도, 법이 획일적으로 지배하는 세계도 모두 무례無禮의 세계에 속한다. 물론 주자예학은 자연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완전히 도가화되지는 않고, 다산예학은 인간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완전히 법가화되지는 않는다. 주자예학과 다산예학은 모두 아버지중심적인 유학의 예를 늘 중심에다 확고하게 위치시키고 있으며, 이 중심의 자력이 양자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예학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상반된 방향성 속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무례의 세계로까지 치닫게 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논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원래 유학은 그 경계선이 불분명해서 때로는 도가와 인접하기도 하고 때로는 법가와 인접하기도 한다.2) 이 글에서는 이상과 같이 도가에서 극단화되는 자연주의(naturalism)와 법가에서 극단화되는 인간주의(humanism)를 양극으로 하는 전체적인 좌표를 설정한 다음, 이런 좌표의 틀 안에서 주자예학과 다산예학의 차이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2. 주자의 이학과 소학 중심의 예학
주자학을 위시한 송명이학宋明理學은 자연의 질서가 곧 윤리적 질서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송명이학의 이 믿음을 두고 필자는 ‘자연도덕주의’自然道德主義라고 이름지은 바 있다.3) 자연도덕주의적 믿음에 따르면, 자연은 완전무결한 불변의 신적 존재나 형이상학적 실체와 같은 것은 아니고, 자연의 질서(理)도 언제나 선인 것은 아니다.4) 자연은 인간을 자신 안에 포용하고 인간과 함께 시공을 공유하면서 끊임없이 순환적으로 변화한다(易). 하지만 자연은 공간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더 크고 시간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며 인간과 그의 작위도 모두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송명이학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동중서董仲舒가 가부장적 질서에 따라 설명한 바 있듯이 계보학적이다. 자연은 인간의 계보학적 시조이므로 인간은 부모를 받들어 모시듯 자연의 질서를 윤리적 질서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5) 송명이학은 인간의 자연화를 목표로 하며, 인간의 자연화가 곧 인간의 도덕화이다. 이 같은 자연도덕주의적 믿음이 양명학까지 포함해서 송명이학 전체를 밑에서부터 떠받쳐 주고 있다. 이 믿음은 물론 송명이학의 독창이 아니다. 그 유래를 따지자면, 한대의 천인지학天人之學과 맹자의 성선설을 거쳐 공자와 그 이전 시서詩書의 세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주자학의 이기론理氣論도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자연도덕주의적 믿음의 철학적 표현이다. 이기론에서 기氣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말하고, 이理는 음양오행의 순환적 질서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이理가 바로 자연의 질서天理이고, 마음의 본성性이고, 유학적 가치(仁 혹은 仁義禮智)이다. 주자학에서는 그 이理에 의해 자연학과 심학心學과 도덕학은 상호 교환이 가능하도록 하나로 꿰이게 된다. 주자학은 아버지중심적인 예까지도 이런 이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한다. 그래서 주자는 예를 “천리의 절문”(天理之節文)이라고 규정한다. 예는 자연의 질서에 뿌리박은 것이고 이 자연의 질서를 인간이 절문節文함으로써 출현하는 것이다. 주자학은 자연의 질서로부터 어떻게 예라는 복잡다단한 명분적名分的 위계질서가 도출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연과 인간의 유비적 관계와 그 계보학적 관계를 제시하는 것 외에 달리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쩌면 자연의 도가 상실되면서 유학적 가치와 질서가 출현한다는 노자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6) 『예기』 예운편에서도 대도大道가 행해지는 대동大同사회에서는 예가 없고, 인간사회가 폐쇄적인 가家 단위로 분열되는 소강小康사회에 가서야 예가 출현한다고 말한다. 이는 아버지중심적인 가의 폐쇄적 질서에 기반한 유학의 예가 본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 내지 역사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효제의 윤리와 예적 질서의 핵심 원리인 아버지중심주의란 자연적인 혈연관계 속에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시사는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혈연관계 상에서 보자면, 자식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등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식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가깝게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아버지중심주의는 혈연간의 이런 자연적 느낌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데서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설령 예가 자연의 질서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학과 예학 사이에는 여전히 근본적인 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논점이 있다. 『예기』 좡악기편좡에서 말하듯 악樂의 원리가 합合에 있다면 예의 원리는 분分에 있다. 예는 부와 자, 군과 신 따위와 같은 분의 다름 위에서 성립하는 명분적 위계질서이다. 그런데 주자학을 위시한 송명이학에 의하면 예의 원천이 되는 자연의 질서는 분이 다르면서도 동시에 근원적으로 하나다. 자연의 질서는 상호 모순적인 다양성(分殊)과 통일성(理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이는 하나이면서 그 분이 다르다”(理一分殊)라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명제의 함축이다. 자연의 질서의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서는 분명히 자연의 질서와 예 사이의 연속성을 말할 수 있다 해도 자연의 질서의 통일성이라는 차원에서는 양자의 연속성을 말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인 차원에서는 예라는 명분적 위계질서가 도무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송명이학은 대체로 다양성보다는 통일성을 더 근원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일理一을 분수分殊보다 더 근원적으로 보게 되면 탈예학적脫禮學的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자연도덕주의적인 송명이학 가운데서도 이일理一을 더 중시하는 유학일수록 예학에 대한 강조의 정도가 줄어든다. 이는 이학과 예학이 근원적으로 괴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은 예학의 중요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예가 자연의 질서에 뿌리박은 것이라 믿는다. 이 믿음으로 인해 주자예학은 그 이학과 마찬가지로 자연주의적으로 방향지어진다.
자연을 인간보다 앞서는 것으로 보고 예를 “천리의 절문”으로 보는 자연주의적 주자예학의 결정적 특징은 예학이 이학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주자학에서 예학의 위상은 이학에 비해 높지 않다. 이것은 송명이학과 같은 맹자 류의 자연주의적 유학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맹자』에는 예에 대한 언급조차 많지 않다. 이는 순자나 다산 혹은 청대 고증학자들과 같은 인간주의적 유학자들이 예학을 매우 중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7) 자연주의적 유학 가운데서도 이理의 직접적인 체득을 강조하는 유학일수록 내면적 심학을 더 강조하고 외면적 예학을 덜 강조하게 된다. 상산학象山學이나 양명학陽明學은 심학을 매우 강조하는 반면 예학을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특히 양명좌파陽明左派에 가면 탈예학적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심학만 남고 예학은 거의 무시되다시피 한다. 물론 주자학이 양명좌파처럼 내면적 마음의 텅 빈 세계로만 치닫지는 않는다. 조선조의 빈번한 예송禮訟과 수많은 예서禮書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듯이 주자학도 인간세계를 떠날 수 없는 유학인 한 예학을 중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8) 주자학적 이학은 늘 예학과 더불어 있다. 하지만 예학을 강조하는 정도에 있어서 만큼은 순자학이나 다산학과 같은 인간주의적 유학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도가처럼 인간세계로의 참여보다는 자연세계로의 퇴행을 더 근본적인 인간의 자세로 여기는 자연주의적 유학의 필연적인 귀결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자예학은 주자학의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주자학은 이理를 온전히 체득하여 성인聖人이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초학자初學者가 공부의 단계를 뛰어넘어 이理에로 일초직입一超直入하려는 것을 몹시 경계한다. 성인 되기를 자꾸만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주자학의 점수적漸修的 공부론은 모든 사람이 이미 성인이라고 말하는 양명학의 돈오적頓悟的 공부론과 다르다. 그런 점수적 공부론이야말로 주자학을 탈예학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는 양명학과 구별시켜주는 분기점인 것이다. 주자학의 본체론에서는 예보다 이理를 우선시하지만 그 공부론에서는 이보다 예를 우선시한다. 주자학의 공부론은 미발未發시의 함양공부居敬와 이발已發시의 성찰공부窮理로 대별되는데 주자는 이 두 가지 공부를 하기에 앞서 집안팎 일상적 공간 속에서 잡다한 예의 실천을 통해 몸을 수렴收斂하는 소학의 학습이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학은 초학자가 제일 먼저 익혀야 할 아동용 초급교과 즉 “소인지학小人之學”에 그치지 않는다. 소학은 주자학의 공부론에 있어서 모든 공부의 기초에 해당한다. 대학大學에 대비되는 바로 이 소학에 대한 관심이 주자예학을 끌어가는 동력일 것이다. 이 말은 물론 소학이 곧 주자예학의 모든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자학의 예학적 관심이 소학에 대한 강조에서 비롯되고 또한 소학에 집중되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소학이라고 하는 것은 대학에 대비되는 주자학 특유의 공부론적 개념으로서의 소학을 가리키지, 주자가 58세 때에 유청지劉淸之와 함께 편찬했던 『소학』이란 책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유학의 예가 효제의 윤리를 축으로 하는 삼강오륜에 뿌리박고 있는 것처럼 『소학』도 삼강오륜을 그 골격으로 하면서 삼강오륜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소학』이 예서에 속하는 책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소학』이라는 예서는 소학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에 불과하지 소학 전체를 다 커버하지는 못한다. 주자는 “소학은 사事를 배우고, 대학은 소학에서 배운 그 사의 소이所以를 배운다”9)고 설명한 바 있다. 여기서 “사事”란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따위의 사소한 의절儀節들을 가리키고, “사의 소이”란 그런 의절들을 지켜야 하는 이유(理)를 가리키는데, 소학에서 배우는 “사”가 『소학』에 집록되어 있는 예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주자학에 있어서 대학이 사서의 하나인 『대학』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처럼 소학도 『소학』과 구별되어야 한다.
주자예학에 있어서 소학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소학』을 포함해서 주자가 편찬한 예서들이 대개 소학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예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서도 알 수가 있다. 집안에서 거행하는 관혼상제의 사례四禮를 요약한 간편한 매뉴얼 『주자가례朱子家禮』는 그 진위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주자학자들에 의해 널리 수용됨으로써 동아시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예서이다. 이 작은 예서의 내용도 실은 모두 소학의 범위 안에 포함되는 것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자예학의 전체적인 규모를 보여주는 책으로는 주자가 만년에 편찬한 거질巨帙의 예서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가 있다. 행례의 장소에 따라 가례家禮-향례鄕禮-학례學禮-방국례邦國禮-왕조례王朝禮의 순서로 예를 분류 편집하고 있는 이 새로운 형식의 방대한 예서 가운데 첫 세 부분에 해당하는 가례, 향례, 학례의 내용이 주로 소학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예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10) 이처럼 주자가 편찬한 예서들이 한결같이 소학의 영역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는 것은 주자예학이 늘 소학을 둘러싸고 전개된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3. 이학과 예학의 상호 관련
주자예학이 소학 중심이라는 것은 결국 주자학에서 예학이 하학下學의 낮은 단계에 속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하학의 기초가 없이는 상달上達이 불가능한 만큼 주자학에서도 예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자학의 본체론적 축이 이理에 있다면 그 공부론적 축은 예의 실천을 통해 함양되는 경敬에 있다. 주자는 본체론적으로는 예가 이에서 유래한 것이라 보면서도 양자의 상호 교환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공부의 순서에 있어서는 분명히 예가 이보다 앞선다고 자주 말한다. 소학이 곧 이학보다 앞서 요구되는 그 예학인 것이다. 주자학을 논의하면서 소학의 중요성을 도외시한다면 주자학의 공부론 안에서 예학이 갖는 위치를 간과하게 됨으로써 주자학의 목적을 탈유학적인 것으로 곡해하게 될 염려마저 있다. 물론 주자학에서 예학이 그 중심이고 목표인 것은 결코 아니다. 주자예학은 예학을 위한 예학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학을 위한 예학일 뿐이다. 그러면 도대체 주자예학은 이학에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일까.
앞에서 이학은 예학과 괴리가 있을 수 있고, 자연주의적 경향이 극단화될 경우 탈예학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소학에 무게중심을 두는 주자예학은 그런 위험한 이학을 가부장적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비근한 일상적 세계의 예적 질서 안으로 되돌리고, 그 일상적 세계로부터 재출발하도록 만든다. 『소학』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소학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예는 “쇄소灑掃 응대應對 진퇴進退의 의절과 애친愛親 경장敬長 융사隆師 친우親友의 방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심에는 집안에서 효를 실천하는 방법이 자리잡고 있다. 소학은 집안팎의 신근身近한 공간 속에서 사소한 의절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엄하게 규율함으로써 효제의 윤리에 충실한 그런 “사람의 꼴”(人底樣子)을 만들어 준다. 주자예학은 이런 소학을 이학의 기초 공부로 강조함으로써 이학을 다시 유학화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집을 넘어선 세계로만 향할지도 모를 이학을 다시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바로 이것이 소학을 중심으로 하는 주자예학이 이학에 기여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된다. 집안으로 다시 끌어들임이란 물론 집안에다 가두어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안을 확고한 발판으로 삼아 집밖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임은 물론이다. 주자의 이학을 노장이나 불교와 구별해주고 그것이 여전히 유학의 일종임을 담보해주는 가장 확실한 징표는 아마도 그의 소학일 것이다.
순자학이나 다산학에 비교한다면, 주자학은 이학의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말미암아 인간세계에 대한 다스림 즉 치인의 측면에는 아무래도 소극적인 편이다. 무위자연의 세계를 동경하면서 경세經世에의 의지를 불태운다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자학이 가지고 있는 인간세계에 대한 관심은 소학이 다루는 신근한 일상적 세계 즉 집과 그 인근의 향리鄕里에다 그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학 중심의 주자예학 또한 『의례경전통해』의 배열 순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방국례나 왕조례보다는 가례, 향례, 학례 등 집안팎 일상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예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주자예학의 이런 입장은 삼례 가운데 국가의 전장제도典章制度를 말하는 『주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종법宗法을 그 근본 원리로 하는 사가례士家禮 위주의 『의례』를 예학의 으뜸 경전으로, 『예기』를 『의례』에 대한 해석으로 보는 경학적 입장과 연관된다. 주자예학이 신근한 일상적 세계를 우선시하는 태도는 『대학』이 가르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본말론적本末論的 순서와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자는 물론 나의 몸과 마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국國이나 천하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언제나 가家와 그 주변의 향리鄕里 속에 살아가는 나의 몸과 마음을 우선적인 것으로 본다. 이런 입장이 더 진전되면 자연히 사적(private) 영역과 공적(public) 영역 사이의 불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사적 영역을 중심으로 두 영역간의 연속성을 더 강조하게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집안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복잡한 국이나 천하까지 집안의 질서에 따라 이해하려 함으로써 방국례나 왕조례까지도 가례에 의거해서 유비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혼동할 우려가 있는 이런 태도는 주자예학과 같은 『의례』 중심의 예학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17세기 조선조 예송에서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노론 계열 주자학자들은 예학의 중심을 가례에 두고 가례에 의거하여 왕조례를 비정한 바 있다. 여기에는 가와 국, 아버지(家君)와 군주(國君)를 이원적(dualistic) 관계가 아니라 유비적(analogical) 관계로 이해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유비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국가의 군주가 아니라 집안의 아버지이다. 이것은 혈연을 바탕을 두고 구성된 아버지 중심의 종법 질서를 집안의 울타리 바깥 국가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수신과 제가를 한 다음 치국과 평천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자학적 경세經世의 기획은 결국 종법 질서의 사회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주자학의 경세학은 역사의 자연화 내지 가족화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주자는 예를 “천리의 절문”이라 규정하지만 예와 이의 상호 교환에 반대한 데서 드러나듯이 이학과 예학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학과 예학의 괴리는 그 근원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의 괴리를 뜻한다. 주자학에서 이학이 본本이고 예학은 그 말末에 불과하긴 하지만 이학과 예학은 그 괴리의 공간을 가운데 놓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주자예학이 “이학을 위한 예학”이라는 앞서의 지적은 두 가지 상반된 측면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대로 자연주의적 이학의 극단화를 막음으로써 이학의 재유학화再儒學化에 기여하는 측면, 즉 예학이 노장처럼 초탈적인 경향을 갖는 이학에 제동을 거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자연주의적 이학이 예학에 영향을 미쳐 번잡한 고례古禮를 시의時宜와 인정人情에 맞도록 간소하게 변형시키는 측면이다. 주자예학도 삼례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지만 주자는 “고례는 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삼례가 제시하는 예문禮文이 너무 번잡할 뿐만 아니라 지금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주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고례는 너무 번거롭고, 뒷사람들은 예에 있어 날로 소략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살면서 고례를 행하려 하면 정情과 문文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까 염려된다.”11) “예에는 시時가 중요하다. 성현으로 하여금 예를 행하게 하더라도 기어이 모든 면에서 고례에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고례를 간소화(減殺)하고 오늘날 세속의 예를 따르면서 약간 모범과 절문이 있게 하여 태간太簡에 이르지는 않도록 할 따름일 것이다.”12) 주자는 『의례경전통해』를 편찬한 것도 고례의 준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금 예서를 편집한 것은 다만 옛 제도를 대략 보존해서 뒷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간소화시켜 행할 만한 것을 구하게 하려는 것이다.”13)
이 두 번째 측면은 주자예학의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주자예학은 이학의 자연주의적 경향에 따라 예를 자연의 질서에서 유래한다고 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주의적 예학에 비해 예의 중요성이 다소 낮게 평가되고 소학 중심으로 축소되는 한편, 예에는 인위적인 문식文飾이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예의 문文보다는 그 이면의 질質이나 정情을 더 중시하게 된다. 이로 인해 주자예학은 삼례가 제시하는 고례의 외적 형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되어 시의와 인정에 따라 고례를 변형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자가례』와 같은 간편한 매뉴얼이 편찬되고, 고례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묘제墓祭나 사대봉사와 같은 송대 당시의 풍속이 예제禮制 속에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주자예학이 보여주는 고례의 변형은 대체로 간소화의 방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주자는, 사대봉사를 보편화시킨다던가 부재父在시 어머니에 대한 삼년복을 허용하는 데서 엿볼 수 있듯이, 고례가 전제하고 있는 엄격한 위계질서를 다소 완화시키기도 한다. 이 점은 주자예학을 청대유학자들의 예학이나 다산예학과 비교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14) 이理가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본체론적 믿음이 명분적 위계질서의 완화를 부채질하는 먼 요인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례가 제시하는 “행하기 어려운” 고례를 이학 혹은 심학의 요구에 따라 제아무리 간소화시키더라도 위계질서를 너무 완화시킨다거나 문을 모두 버리고 질이나 정만을 취함으로써 “태간”에 이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태간”은 자연주의적 방향의 극단에 있는 탈예학 내지 무례를 뜻한다. “태간”하게 되면 유학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래서 주자예학은 고古와 금今, 문文과 질質, 내內(즉 마음)와 외外의 조화에 애쓴다. 이것은 주자예학이 근본적으로는 자연주의적 방향(理, 質, 情, 今, 內 따위가 이런 방향에 속함)으로 쏠리면서도 다른 한편 인간주의적인 방향(禮, 文, 古, 外 따위가 이런 방향에 속함)을 버리지 못하는 애매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자 공부론의 중심축인 경敬의 애매한 성격은 주자예학의 애매한 입장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주자학에서 공부는 미발未發시 함양공부와 이발已發시 성찰공부로 양분된다. 미발시 함양공부는 미발 속에 있는 이발(動中之靜)을 드러내는 공부이고, 이발시 성찰공부는 이발 속에 있는 미발(靜中之動)을 살피는 공부다. 이 두 공부를 가능케 하는 힘이 바로 몸 혹은 마음이 언제나 하나로 수렴收斂되어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경이다. 경은 미발, 정靜, 무위자연에 치우지는 것도 막고, 이발, 동動, 인간적 작위에 치우치는 것도 막는다.15) 그러나 중심은 의연히 미발, 정, 무위자연에 있다. 경은 주정主靜적이다. 다시 말해, 경은 자연주의적 방향으로 쏠리면서도 자연주의적 방향과 인간주의적 방향 사이에서 중용을 취하려는 힘이다. 주자는 그런 경이 소학 단계에서 쇄소응대의 의절을 배움으로써 함양된다고 본다. 주자예학의 중심이 소학에 있고 소학에 의해 이중적 방향성을 가진 경이 함양된다는 것이 옳다면 결국 주자예학은 한편으로는 자연주의적 방향으로 쏠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주의적 방향을 버리지 못하는 양자의 애매한 교직交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다산의 경세학적 관심과 실학을 위한 예학
역사의 어떤 시대이건 불행하지 아니한 시대는 없을 것이다. 주자학이나 다산학 모두 자기 시대의 불행에 대한 유학자로서의 경학적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의 응답 방식은 서로 달랐다. 다산은 주자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자기 시대의 불행을 아파하면서 주자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경세經世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산의 시대가 주자의 시대보다 더 불행했다는 증거도 별로 없고, 다산이 주자보자 더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증거도 별로 없다. 하지만 어쨌건 다산은 자기 시대에 대해 절규하듯이 말한다. “생각해보면 터럭 하나,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병들지 아니한 것이 없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만든 다음에야 그칠 것이다. 이 어찌 충신 지사가 수수방관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16)
다산은 늘 자기 시대의 불행에 대한 우환의식에 쫓기고 있는 편이지만 유배기 이후 그의 우환의식은 더욱 절박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다산은 저 무위자연의 세계를 근본으로 보는 주자학이란 도저히 자기 시대의 불행에 대한 처방일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주자경학을 넘어 인간의 능동적 작위 즉 “행사”行事를 고취하는 새로운 경학의 건립으로 나아가고, 이런 경학을 바탕으로 주자학에서는 도저히 생각될 수 없는 사회과학적 경세학의 건립으로 나아간다. 다산예학 역시 그런 경학의 일부인 동시에 그런 경세학의 일부로서 양자를 연결하는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것이 다산학에서 예학이 차지하는 위치일 것이다. 이학에 종속되어 소학 단계에 머물러 있던 주자예학과는 달리 다산예학은 신근한 일상적 공간 속에서 처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세계로 더 멀리 나아가 일왕一王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능하기도 하다. 다산예학에는 경세를 향한 유학자 다산의 적극적 의지가 담겨 있다.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해 전대미문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다산경학은 일표이서一表二書로 대표되는 그의 경세학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다산은 「자찬묘지명」에서 육경사서에 의한 수기修己가 본本이고 일표이서에 의한 치인治人이 말末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수기와 치인, 경학과 경세학에 대한 다산의 이 같은 입장은 일견 『대학』의 수제치평修齊治平의 순서에 따르는 주자의 입장과 별로 다르지 아니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산의 수기와 주자의 수기는 지향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자가 치국 평천하의 경세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그에게 근본적인 것은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천리의 체인體認인 반면, 다산은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그 천리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유배기 이후 경학적 저술 속에서 다산은 주자학의 음양오행론과 귀신론鬼神論, 그리고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초토화시키다시피 한다. 다산은 도덕적 선이란 인간의 능동적 행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도덕화를 위한 수기란 오로지 주어진 자연을 극복하는 인간적 작위 속에 있을 뿐이라고 본다. 다산학에서 개인적 혹은 가족적 차원의 작위인 수기는 국가적 차원의 작위인 경세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이다. “선비(士)란 벼슬하는(仕) 자”라고 다산은 자주 말한다. 모든 인간적 작위의 최종 목적이 경세에 있다고 다산이 생각했다면 다산학의 진정한 본은, 그 자신의 술회와는 달리, 수기의 경학이 아니라 치인의 경세학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산학에 있어서 수기의 경학과 치인의 경세학을 일관하고 있는 철학적 중심 원리는 인간주의이다. 다산은 자신의 경학적 저술 도처에서 인간주의 내지 인간중심주의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靈이다. 궁천穹天과 후지厚地, 일월성신日月星辰, 산천초목山川草木 가운데 어느 하나도 우리 인간의 물物 아닌 것이 없다. 천天은 우리의 집이고, 지地는 우리가 먹는 것이고, 일월성신은 우리를 밝혀주는 것이고, 산천초목은 우리를 길러주는 것이다. 기氣가 있고 질質이 있되 정情도 없고 영靈도 없는 저 모든 것들이 어찌 우리 인간의 숭배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17) 자연이 인간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목적이며, 자연적인 어떤 것도 인간보다 더 위대하지 않고, 인간이야말로 자연의 관리자요 지배자라는 것이다. 선진시대로부터 한대를 거쳐 주자학에까지 관류하고 있는 저 천인지학天人之學의 오랜 전통은 다산에 의해 송두리째 파괴된다.18) 다산은 순자보다 더 분명하게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고, 자연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인간의 능동적 주체성을 순자보다 더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다산은 자신을 순자 류로 규정한 적이 한번도 없지만 실상 다산학은 순자 이상으로 순자적이다.
다산학이 주자학과 모든 면에서 대척적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자연도덕주의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만큼은 매우 단호하다. 도덕적 실천이나 제도적 개혁을 통해 인간세계를 적극적으로 치리治理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능동적 주체로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자학의 자연도덕주의에 따르면 그런 인간주체의 정립이 곤란하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다. 사실 주자학은 제도적 개혁에는 별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인간적 가치의 최종적 서식지로 보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화마저 그 궁극에 가서는 인간의 자연화로 귀착시키고 만다. 주자학이 그리워하는 성인이란 인륜세계를 떠나지 않지만 마치 노장의 지인至人처럼 인륜세계와 자연세계의 모든 물物들과 더불어 즐겁게 유희하는 자이다. 다산이 보기에 자연학과 심학, 그리고 도덕학을 한 줄로 꿰어 놓는 주자의 이학理學은 침체된 조선조를 더욱 침체시키는 수동적 퇴행성을 초래할 뿐이다. 이런 비판은 자연도덕주의적 주자학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다산은 인간세계의 적극적인 치리를 위해 주자학을 넘어 인간이 스스로를 주체로서 정립하는 탈자연학적, 탈심학적 인간학을 세우고자 한다. 이런 인간학적 기획 위에 수기의 경학과 치인의 경세학을 포괄하는 그의 실학實學 즉 “사친事親과 경장敬長, 충군忠君과 목민牧民, 예악禮樂과 형정刑政, 군려軍旅와 재부財賦의 실천실용實踐實用의 학學”19)이 서 있다. 다산학에서 예학은 그런 “실천실용의 학”의 일환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산예학은 이학을 위한 예학이 아니라 실학을 위한 예학이다.
다산학은 인간의 자연화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화와 자연의 인간화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근대성(modernity)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다산경학은 기묘하게도 근대성과 정반대인 중세적 신중심주의를 그 철학적 핵심 속에 대폭 수용하고 있다. 다산은 자연주의적 유학에 전해내려 오고 있는 천신天神, 지시地示, 인귀人鬼 등의 각종 귀신들 가운데 자연신들을 모조리 소탕해버린다. 그렇다고 그가 유물론자인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다산은 천지만물의 주재자로서 지고의 인격적 유일신인 상제上帝를 드높인다. 다산은 이 상제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질서에 따라 초자연적 신들을 그 휘하에 통일시키고, 상제 중심의 제신들의 위계질서에 따라 사전祀典체제를 대폭 수정한다. “천지에 귀신들이 밝게 빽빽하게 나열해 있지만 그 가운데 지극히 높고 위대한 분이 바로 상제이시다.”20) “천지의 백령百靈이 모두 상제의 신하이다.”21) 다산은 전통적인 천인지학 대신 상제를 섬기는 “소사지학昭事之學”이 옛 성현들의 참된 학문이었다고 말한다. 다산의 신중심주의는 인간주체를 주자학에서처럼 자연에 매몰시키는 대신 초자연적 신에 매몰시킴으로써 근대성과 어긋날 우려가 있다.
하지만 다산학에서는 중세적 신중심주의가 주로 인간주체를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근대적 인간중심주의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데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소개한 토미즘(Thomism)의 영향을 받아 옛 경전의 상제를 종교신학적으로 해석하면서도 다산은 이런 해석을 통해 토미즘과는 정반대로 근대적이고 세속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인간의 본질을 주자학에서처럼 자연적으로 주어진 성리性理나 기질氣質에서 찾지 않고 자연이나 신체와 이원적으로 구별될 뿐만 아니라 오직 선악을 선택할 능력으로서의 자유의지만을 가진 “영명무형지체靈明無形之體”(soul)에서 찾는 다산의 심학心學에도 토미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다산의 심학은 영혼의 내면 세계로 침잠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인간주체를 해방시키고, 그 주체의 능동적인 도덕실천을 통해 외부 세계로 진취하려는 근대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 다산이 신체적 욕구에서 오는 인심人心과 상제의 명령에 따르는 도심道心 사이의 이원적 대립 구도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도심에 의한 인심의 극복을 강조할 때, 그는 마음 밖 인간세계로 향하는 인간주체의 능동적 행사를 이미 염두에 두고 있다. 이는 차별성의 원리氣質之性인 동시에 동일성의 원리本然之性인 성리가 모든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어 작위하기 이전부터 근원적으로 꼭 같이 선하다고 보고, 또 인심과 도심이 상호 대립적인 동시에 은밀히 상호 의존적이라고 보는 주자학의 소극적이고 애매한 도덕론과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다.
요컨대, 다산은 토미즘의 종교신학적 세계관을 도입하여 자연을 극복하는 능동적 인간주체(영혼)를 확보하고, 아울러 그 인간주체를 감시 감독하는 주재자(상제)를 확보한다. 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는 정반대의 것들로 보이지만 다산학의 경우에는 신중심주의가 인간중심주의를 보장하고 고취하기 위한 이념적 장치로도 작용한다. 다산학에서 상제는 심학적으로는 영혼의 내면에 도심으로서 임재臨在하고, 정치적으로는 지상에서 그를 대신하여 경세의 주체가 되는 일왕一王과 오버랩된다. 순자에겐 없는 토미즘적 신중심주의는 다산을 순자보다 더 순자적인 유학자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인 듯하다.
경세학적 관심이 없는 유학이란 있을 수 없고, 유학의 경세학은 늘 예치禮治를 이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반드시 예학에서 출발한다. 예학에서 경세학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먼저 효제의 윤리와 삼강오륜, 그리고 종법에 따라 우선 집안의 질서를 바로 잡은 다음에 집밖으로 나아가 치국평천하를 도모한다는 뜻이다. 실은 자연주의적인 주자학도 인간세계를 버리고 떠날 수 없기에 그 나름의 경세학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자학의 경세학 역시 예학에서 출발하고, 수기와 치인을 연결하는 예학의 매개자적 기능도 다산학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또한 주자예학도 아버지중심적인 종법질서를 근간하는 명분적 위계질서의 체계라는 점에서 다산예학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주자예학과 다산예학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이 차이는 분명히 자연주의와 인간주의 사이의 철학적 차이에서 온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자학은 자연주의적 이학을 지향하기 때문에 치국평천하의 경세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고, 따라서 경세학의 출발점이 되는 예학도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 편이다. 주자학에서 예학은 경세학보다는 주로 심학 쪽으로 나아가고, 심학은 이학(一理의 체인) 쪽으로 나아간다. 주자학에서 실천의 순서는 ‘예학(소학)’→‘심학’→‘이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주자예학에도 분명히 인간주의적인 경세학적 지향이 있긴 하지만 주자예학은 인간 마음을 자연화시키고 인간 역사를 자연화시키는 데에 더 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다산의 경세학적 관심은 주자학의 자연주의적 경향을 철저하게 버리고 있다. 다산에게 있어서 경세학적 관심이 인간주의적 철학을 낳았는지 아니면 인간주의적 철학이 경세학적 관심을 낳았는지 판정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건 양자가 긴밀하게 얽혀 상승 작용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순자가 성악설을 근거로 그렇게 보았던 것처럼 본래 예학과 경세학은 주어진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적 작위의 노력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다산이 인간주의적 철학과의 상승 작용 속에서 경세학을 주자보다 훨씬 더 강조하고, 또한 경세학의 출발점인 예학도 주자보다 훨씬 더 강조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여유당전서』의 목차를 훑어보기만 해도 다산학에서 예학과 경세학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즉각 알아차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산은 자신의 경세학을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이에 맞추어 자신의 예학까지도 주자예학과 다르게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주자예학이 경敬이라는 내적인 바탕(質)을 강조하는 것과는 반대로 다산예학은 명분적 위계질서와 이를 표현하는 외적인 꾸밈(文)을 강조한다. 다산학에서 심학은 이학 쪽이 아니라 예학 쪽으로 나아가고, 또 예학은 심학 쪽이 아니라 경세학 쪽으로 나아간다.22) 요컨대, 다산학에서의 실천의 순서는 ‘심학’→‘예학’→‘법학’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순서는 자연에서 인간으로라는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 다산학에서 예학은 인간을 자연으로 회귀시키려는 주자학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인간 마음을 더욱 인간화시키고, 인간 역사를 더욱 인간화시켜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산예학은 주자예학과 마찬가지로 전근대적 종법질서를 여전히 금과옥조로 여기지만 그러면서도 주자예학과는 달리 근대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실학을 위한 예학’이라고 역설적인 명명을 했던 것이다.
5. 예학과 법학, 친친과 존존의 상호 관련
실학자로서의 다산은 근대적 지향을 가지고 있지만 유학자로서의 다산은 전근대적 지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산의 경세학이 효제의 윤리에 기초해 있는 예학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다산도 주자와 다를 바 없는 유학자임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다산은 유학자이기를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은 일표이서의 사회과학적 경세학이 여실히 보여주듯이 자기 시대의 불행을 치유하기 위해 예치의 한계를 넘어 근대적인 법치를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 다산학의 근본적인 초점 불일치가 있다. 이 초점 불일치는 다산학이 근대와 전근대 사이의 과도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서로 이질적인 근대와 전근대, 실학과 유학, 법치와 예치, 법학과 예학이 서로 교차하는 가운데 심학에서 예학으로, 다시 예학에서 경세학으로 나아가는 다산학이 서 있다. 순자학에서 예와 법이 서로 교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산학에서도 예와 법은 서로 다르면서도 다르지 아니한 그런 관계를 가지고 있다. 주자예학이 이학과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것과는 달리 다산예학은 법학과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다산학에서는 법학도 예학이 무시된 순수 법학일 수 없게 되고, 예학도 법학이 무시된 순수 예학일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치를 정치의 이상으로 여기는 유학의 예학이란 늘 아버지중심적이고 집안(家)중심적이다. 예치란 아버지중심적인 집안의 가부장적 질서를 집밖의 세계로까지 확대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반면, 법치를 정치의 이상으로 여기는 법가 류의 법학이란 철저히 군주중심적이고 국가중심적이다. 거기에는 무차별적인 법의 획일적 지배만 있을 뿐, 아버지와 집안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있을 수 없다. 『의례』중심의 주자예학은 아버지중심적이고 집안중심적인 예학의 한 전형일 것이고, 한비자의 엄혹한 법가사상은 군주중심적이고 국가중심적인 법학의 극치에 해당할 것이다. 다산은 전근대적인 예학을 거의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자신의 예학을 형성하는 한편, 순자 내지 한비자 류의 법가적 사유를 대폭 수용하여 일표이서의 법학을 형성한다. 그의 예학은 가부장적 가족질서의 보편성에 대한 확고한 유학자적 믿음 위에 서 있지만 그의 법학에서는 그런 유학자적 믿음이 퇴색하고 그 대신 자기 시대에 대한 실학자의 우환의식이 현저해진다.
다산은 자신의 유학자적 믿음에 대해 명시적으로 제한을 가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가부장적 가족질서만으로는 자기 시대의 불행이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일표이서가 보여주는 다산 경세학의 핵심에는 군주를 정점으로 근대적 관료지배체제를 세우고자 하는 왕정론이 있고, 그가 꿈꾸었던 왕정의 핵심에는 지상의 황극皇極으로서 인간세계의 중심이 되는 절대계몽군주가 있다.23) 다산 경세학도 주자 경세학과 마찬가지로 군주제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지만 주자는 재상위임통치를 통해 군신공치君臣共治의 길로 나아가는 반면, 다산은 왕권강화를 통해 정치의 책임을 군주에게만 맡기는 일군만민一君萬民의 길로 나아간다. 평등 지향적인 민중주의와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다산의 이 같은 경세학은 군주와 백성 사이에서 조선조 사회를 농단하던 소수의 특권귀족세력 즉 벌열閥閱들의 발호를 차단하여 백성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그 목표가 있다.24)한비자의 존군론尊君論에 근사한 다산의 반귀족주의적 왕권강화론은 실은 집안의 울타리를 월등히 넘어 근대적 국민국가와 같은 새로운 정치체의 구상을 위한 초석이었다.
다산은 법과 예가 다름을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학자답게 예가 법보다 우월한 것임을 분명히 말하기도 한다. “선왕은 예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인도했다. 예가 쇠해지자 법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법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인도하는 방법이 아니다. 천리天理에도 합하고 인정과도 조화를 이루는 것을 두고 예라 한다. 두려운 일로 위협하고 슬픈 일로 핍박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벌벌 떨면서 감히 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두고 법이라 한다. 선왕을 예를 법으로 삼았고, 후왕은 법을 법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바로 예와 법의 다른 점이다.”25)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의 왕정론에서는 저 가공스런 후왕의 법치가 그 골격을 이루고 있다. 다산예학도 삼례三禮의 해석학으로서 유학에 속하는 것인 한 주자예학과 완전히 다른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다산예학은 예학과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듯한 법학과 공존하면서 그 법학과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주자예학과는 규모와 성격을 상당히 달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선 주자의 오단계 예분류체계에 의지해서 다산예학의 규모를 주자예학과의 대비를 통해 간략히 살펴보자. 주자예학은, 『의례경전통해』의 목차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가례를 출발점으로 해서 점차적으로 향례와 학례로 나아가고 멀리 방국례나 왕조례에도 소극적으로나마 관심을 갖는다. 주자예학은 관혼상제의 가례를 출발점으로 하는 예학이고, 향례와 학례를 가례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며, 방국례와 왕조례까지도 사대부 가례와의 유비적 관계를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26) 주자예학의 중심에는 가례가 있다. 일견 다산예학의 관심 범위도 크게는 주자예학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고, 다산예학 역시 주자예학처럼 가례에서 출발한다. 아버지중심적이고 집안중심적인 유학에 있어서 어떤 종류의 예학이건 가례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다산에게는 가례 관련 저술이 적지 않다. 다산이 학문적 자부심을 느꼈던 거질의 상례서 『상례사전喪禮四箋』(50권)도 가례에 속한다. 하지만 다산예학은 주자예학처럼 가례를 출발점으로 하되 향례나 학례에 대한 관심이 거의 결여되어 있다. 다산학에서 향촌사회라든가 학교제도 따위는 주로 일표이서 등에서 법제적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예제적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다산은 중앙집권적 관료제도를 지향하기 때문에 주대의 봉건제도를 전제로 해서 제후와 경대부들간의 빈주賓主의 예를 주로 취급하는 주자 류의 방국례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다산예학은 가례에서 바로 일왕의 예를 취급하는 왕조례로 건너뛰는 셈이다.27) 다산예학은 관혼상제의 가례를 중심으로 하는 사가례士家禮와 천하국가의 예악제도와 문물제도를 취급하는 왕조례王朝禮를 두 축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축을 기준으로 다산의 예학 관련 저술들을 분류해보면 『상례사전』, 『상례외편喪禮外篇』, 『사례가식四禮家式』 등은 사가례에 속하고, 천자가 행하는 길흉례를 논의한 『춘추고징春秋考徵』, 왕위계승문제를 다룬 『정체전중변正體傳重辨』이나 『국조전례고國朝典禮考』 등은 왕조례에 속한다. 왕조례에 속하는 다산의 이 예서들은 경세의 주체인 일왕이 행해야 할 제례라든가 왕위계승의 방법을 다루고 있지만 왕조례의 외연을 확대해보면 실은 일표이서의 법학서들도 왕조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28) 『주례』를 모델로 해서 중앙정부의 행정제도와 토지제도 등의 설계도를 그린 『경세유표』, 사족士族 주도의 향례나 향약에 의한 향촌사회 질서유지를 대신하여 중앙에서 파견된 목민관 주도의 지방행정 지침을 밝힌 『목민심서』, 구체적인 판례 중심의 형법서인 『흠흠신서』는 모두 일왕의 획일적인 중앙집권을 위한 제도적 기획들이다. 『춘추고징』, 『정체전중변』, 『국조전례고』 등의 예서는 일왕을 드높이기 위한 의례적 형식을 주로 논의하고 있는 반면, 일표이서의 법학서는 지고의 존재인 일왕이 시행해야 할 정치행정적 제도의 실무적 내용을 논의하고 있다. 다산학에서 왕조례는 예학과 법학이 표리의 관계를 이루면서 만나는 접점에 해당한다. 주자의 왕조례에도 왕실의례에 대한 규정뿐만 아니라 『예기』 좡왕제편좡에서 보여주는 봉건적 정치행정제도에 대한 규정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주자예학에서는 제도적 개혁을 위한 법학적 관심이 다산예학에 비해 현저히 낮다. 주자학에는 『의례경전통해』에 제시된 왕조례 외에 다른 법학서가 따로 있지도 않다. 예와 법, 예학과 법학의 경계선이 본래 모호하지만 다산예학은, 『경세유표』를 『방례초본邦禮草本』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버지중심적인 예학의 모호한 경계선을 넘어 주자예학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군주중심적인 법학과 맞물리게 된다.
아버지중심적이고 집안중심적인 가례와 군주중심적이고 국가중심적인 왕조례 및 법학을 두 중심축으로 하면서 전개되는 다산예학의 이상과 같은 전체적인 규모는 다산예학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 두 개의 중심축은 서로 이질적인데도 다산은 어느 한 중심축의 중심성도 버리지 못한다. 주자예학은 확고하게 가례를 중심축으로 하면서 향례, 학례, 방국례를 거쳐 왕조례로 순차적으로 전개되지만 다산예학에는 두 중심축을 연결해주는 매개자가 없다. 다산은 향례나 학례 따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주자예학이 『의례』중심의 예학이라면 다산예학은 『의례』중심의 예학인 동시에 『주례』중심의 예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29) 앞에서 다산학은 유학과 실학, 예학과 법학 사이에서 근본적 ‘초점 불일치’를 노정한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다산예학에서도 가례와 왕조례 및 법학이라는 두 개의 이질적인 중심축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초점 불일치를 노정하고 있다. 유학자로서의 다산은 가례의 중심성을, 실학자로서의 다산은 가례의 한계를 넘어 왕조례 및 법학의 중심성을 생각한다. 예학상의 이런 초점 불일치에는 가부장적 질서의 영향력이란 혈연으로 구성되는 집안의 울타리 안에 제한되어야 하고, 그 울타리를 넘는 순간부터 군주중심의 법질서가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는 다산의 경세학적 구상이 전제되어 있다. 가家와 국國이라는 이중의 초점을 가진 이 구상에는 집안의 가부장적 질서를 그 울타리 넘어 정치세계로까지 함부로 확대하려는 주자학적 경세학에 대한 다산의 강한 비판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다산예학의 초점 불일치를 이론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예학의 두 원리로서의 친친親親과 존존尊尊이다. 친친과 존존은 『예기』 좡중용편좡에 이미 나올 뿐만 아니라 어떤 예학에서건 함께 전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예학에서는 의식적으로 친친과 존존을 두 원리로 삼아 이론적 논의를 전개했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산이 친친과 존존에 새롭게 착안한 것은 집안의 가족적 세계와 집밖의 정치적 세계 사이의 초점 불일치를 스스로 강하게 의식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30) 다산은 자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하의 근본원리(大義)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친친이고, 다른 하나는 존존이다. 이 두 원리를 동시에 세워야 하며, 어느 하나도 폐할 수 없다.”31) 이처럼 강한 어조로 두 원리의 동시적 건립雙立을 요구하는 것은 가족적 세계와 정치적 세계 가운데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양자의 초점이 일치하지 않음을 다산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건 다산예학은 이 두 이질적인 원리에 의해 지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산은 “주공이 노나라를 다스린 것도 친친과 존존이었다”32)고 하면서 이 두 원리를 제가齊家의 원리에 그치지 않고 치국治國의 원리로 삼기까지 한다.
친친은 혈연적 관계 속에서 친소親疎의 다름을 결정하는 원리이고, 존존은 비혈연적 관계 속에서 존비尊卑의 다름을 결정하는 원리이다. 두 원리는 서로 정반대의 방향성을 갖는다. 친친의 원리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혈연적 친소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인간을 자연화시키는 자연주의적 방향성을 갖는 반면, 존존의 원리는 인위적으로 구성되는 비혈연적 존비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자연을 인간화시키는 인간주의적 방향성을 갖는다. 친친의 원리만 고려하여 자연주의의 극단으로 향한다면 다산이 경계하듯이 혈연적 친소관계에만 집착하여 금수의 상태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반면, 존존의 원리만 고려하여 인간주의의 극단으로 향한다면 비혈연적 존비관계에만 집착하여 한비자 류의 법가로 흐르기가 불가피할 것이다. 자연주의와 인간주의의 극단에 있는 금수와 법가는 둘 다 탈유학적이고 탈예학적이다.
혈연적 친소관계에만 의존하는 친친의 원리만으로는 예학이 성립되지 않는다. 비혈연적 존비관계에 의존하는 존존의 원리가 도입되어야 명분적 위계질서가 창출될 수 있다. 유학의 예문禮文이란 본디 자연적으로 주어진 혈연적 친소관계를 아버지중심적인 종법의 존비관계에 따라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데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모든 예학은 인간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순자가 예를 인위(僞)로 본 것은 옳다. ‘자연주의적 예학’이란 말은 용어의 모순일지 모른다. 주자예학도 존존의 원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실은 인간주의적이다. 다산예학은 처음부터 인간주의적 철학에 의거해 있는 만큼 주자예학보다 존존의 원리를 훨씬 더 강조하는 편이다. 다산예학은 친친의 원리와 존존의 원리 사이에서 중용을 취하기 위해 애쓰는 듯하지만 그 무게중심은 존존의 원리에 있다. 이는 다산학을 평등 지향의 민중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볼 경우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기도 하다.
다산은 사가례를 다루건 왕조례를 다루건 늘 존존의 원리에 입각한 명분적 위계질서를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다산은 주자가례가 고례古禮를 인정과 시의에 따라 함부로 변형시킨 것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고례의 회복에 대해 주자보다 훨씬 더 보수적 입장을 취한다. 주자가 고례의 태번太煩을 염려하는 것과 달리 다산이 금례今禮의 태간太簡을 염려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예에 일정한 제도가 없으면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마침내 민간의 풍속을 혼란스럽게 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인정에는 한계가 없되 예제에는 제한이 있다.”33) 다산은 인정에 대한 예제의 통제적 기능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가례 관련 저술 도처에서 명분적 위계질서의 엄수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다산이 주자가례에서 허용된 사대봉사에 반대하여 고례의 규정대로 봉사대수를 줄일 것을 요구하고, 부재父在시 어머니에 대한 삼년상에 반대하여 아버지의 위상을 더욱 높인 것이 그 대표적 본보기들이다.34) 다산이 가례에서 친친의 원리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지만 존존의 원리를 각별히 중시함은 결국 사회적 질서유지라는 경세학적 관심의 소산일 것이다.
다산의 왕조례에서는 “제왕지가의 경우에는 그 예가 다르다”35)고 하면서 친친의 원리를 무시한 채 존존의 원리를 일방적으로 강조한다. 다산은 『상기별』과 같은 가례에서는 종법이 만민에게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면서도 『국조전례고』와 같은 왕조례에서는 왕실의 군통君統과 사가私家의 친속親屬을 완전히 구별하면서 군통은 종법과 무관하게 오직 존존의 원리에 따라서만 계승될 수 있다고 본다. “군통은 군통이고, 친속은 친속이다. 존존과 친친이 서로 간섭하지 아니한 연후에 인仁이 지극해지고 의義가 다해져서 그 예가 찬연해진다.”36)
다산의 왕조례 가운데 일왕의 의례를 다루는 예서들은 일체의 혈연적 연관뿐만 아니라 종법적 질서로부터 일왕을 고립시켜 그가 지고무상의 존재임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일표이서의 법학서들은 그렇게 높여진 일왕을 정점으로 하여 중앙집권적 관료지배체제를 구상한다. 경세학적 법학서들은 친친과 존존이라는 예학의 원리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지라도 친친의 원리가 철저하게 배제된 존존의 원리에 의해 구성될 수밖에 없다. 다산의 법학은 군신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전제할 경우에만 성립한다. “법이란 군주의 명령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군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37)이라고 다산은 말한다.
다산예학은 사가례에서는 아버지를 지존至尊으로 높이고, 왕조례에서는 일왕을 “천지신인天地神人의 주主”로 높일 뿐만 아니라 상제上帝를 천지만물의 주재자로 높여, 아버지-일왕-상제라는 세 지존의 수직적 계열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세학적 관심에 의해 주도되는 다산예학은 이 세 지존의 수직적 계열 속에서 자연주의 혹은 자연도덕주의에서 벗어나서 인간주의적 방향으로 멀리 나아가 법학과 손을 잡는다. 요순의 통치술의 요체라는 고적考績은 법가의 형명참동形名參同과 다를 바 없다. 아버지-일왕-상제는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의 수직적 계열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계열 안에서 전개되는 가례와 왕조례, 예학과 법학 사이에는 심각한 초점 불일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작용이 없을 수 없다. 가례에서 친친보다 존존이 월등히 더 강조되는 것은 아마도 일왕을 정점으로 하면서 서로 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는 왕조례 및 법학으로부터 암암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거꾸로 가례가 왕조례에 영향을 미치고 예학이 법학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불가피할 것이다. 다산은 혈연적 질서와 종법을 초월해 있는 절대계몽군주로서의 일왕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런 일왕에게 효제의 윤리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또 『정체전중변』에서 볼 수 있듯이 군주의 경우에도 친친의 원리를 저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산은 서로 초점이 맞지 않는 유학과 실학, 예학과 법학, 가족과 국가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버리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서로 이질적인 양자가 상호 작용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산학에서 예학은 법학과 맞물림으로써 순수 예학으로 일관하지 못하고, 법학은 예학과 맞물림으로써 순수 법학으로 일관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산의 예학은 유학의 한계 바깥 무례의 세계로 나가려는 법학을 안으로 끌어들여 재유학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그의 법학은 마냥 유학의 한계 안에 머물려는 예학을 밖으로 끌어내어 경세의 유익한 수단으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이 말이 옳다면 다산은 순자처럼 예와 법을 상호 교차시키면서 전근대와 근대 사이에서 사상적 교량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6. 자연, 가족, 인간의 초점 불일치
인간은 누구나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집안에서 태어난다. 집밖으로 나가면 한편에는 고요한 자연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시끄러운 인간세계가 있다. 집과 가족은 서로 이질적인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유학은 자연세계나 인간세계보다도 가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리고 인간가족을 아버지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으로 다시 질서지우고자 한다. 효제, 삼강오륜, 종법이 지고의 가치로 요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삼례가 보여주는 유학의 예제는 효제를 위시한 유학의 가치를 실천에 옮기는 구체적인 방법의 체계이다.
유학은 아버지, 가족, 효제, 삼강오륜, 종법, 예제 따위를 버릴 수 없지만 항상 그런 것들에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유학은 한편으로는 저 고요한 자연세계로의 퇴행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 시끄러운 인간세계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연세계와 인간세계 가운데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아버지, 가족, 효제, 종법, 예제 따위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주자와 다산 둘 다 유학자라고 자처하지만 두 사람의 지향점이 자연주의와 인간주의로 갈라지기 때문에 그들의 예학도 성격을 서로 달리하게 된다.
본고에서는 도가적 자연주의와 법가적 인간주의를 양극으로 하는 좌표의 틀 안에서 주자의 자연주의적 예학과 다산의 인간주의적 예학을 거시적으로 비교해보았다. 물론 이 좌표의 중심에는 가부장적 가족이 있고, 두 유학자의 예학 모두 이 중심을 확실하게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주자예학은 가부장적 가족이라는 중심으로부터 자연으로 향하는 반면, 다산예학은 그 중심으로부터 인간으로 향한다. 주자예학을 자연의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은 무위자연을 그리워하는 이학이고, 다산예학을 인간의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은 법학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그리워하는 실학이다. 무위자연의 세계나 법학의 세계에서는 유학적 의미의 예학이 도저히 성립할 수 없다. 주자예학과 다산예학 모두 은밀하게 탈예학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예학도 자기 파괴의 극단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유학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어느 예학도 좌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가부장적 가족질서의 구체화인 저 예학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자예학에도, 다산예학에도 괴리 혹은 초점 불일치가 발생한다.
주자의 이학에서 천리는 자연세계와 인간세계 전체를 일관하는 본체에 해당한다. 주자는 그 천리가 근원적으로 하나이고, 또 무無라고 본다. 주자의 이학, 그리고 이학을 자기화하는 공부인 심학에는 이미 노장과 불교의 영향이 깊이 침투해 있다. 그러니 이학은 인간적 작위의 노력이 요구되는 예학과는 애당초 어울리기 어려운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이학과 예학 사이에 괴리가 있다. 주자는 이학이 탈인륜적, 탈예학적으로 변질될 염려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주자는 소학을 강조함으로써 이학을 재유학화시키고자 한다. 이와 동시에 주자는 이간易簡함을 숭상하는 이학의 정신에 따라 그 번쇄한 예학을 인정과 시의에 맞게끔 간소화시킨다. 주자학에서 초점이 서로 맞지 않는 이학과 예학은 괴리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다산은 주자의 자연주의적인 이학 대신 적극적인 행사를 통해 조선조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실학을 희망한다. 다산실학은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지배체제를 지향한다. 다산은 법가로 자처한 적이 없지만 순자적 내지 한비자적 사유에 투철하다. 일표이서는 법학서이다. 군신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주의적 법학은 부자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주의적 예학과 어울리기 어렵다. 가례와 왕조례를 두 중심축으로 하면서 전개되는 다산예학에는 법학과 예학 사이의 초점 불일치가 있다. 하지만 법학과 예학은 괴리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다산학에서 예학이 법학화되기도 하고, 법학이 예학화되기도 한다. 예학의 법학화를 알려주는 징표는 존존을 친친보다 훨씬 더 중시한다는 점이고, 법학의 예학화를 알려주는 징표는 존존 일변도로 가면서도 친친을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자예학이나 다산예학 속에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내재되어 있는 초점 불일치는 비단 예학의 차원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주자학 일반에도, 그리고 다산학 일반에도 초점 불일치가 있다. 더 나아가,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헷갈리는 언행에서 엿볼 수 있듯이, 유학 자체에 근원적인 초점 불일치가 있다. 이 근원적인 초점 불일치는 서로 이질적인 자연세계, 가족세계, 인간세계 가운데 어느 한 세계의 시민으로만 살아갈 수가 없는 인간의 운명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은 자연세계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 가족 안에서 탄생, 성장한 다음 인간세계에서 살아야 하는데, 유학은 회피할 수 없는 이 같은 인간 조건을 일단 긍정하고 세 세계 가운데 가족세계의 중심성을 강조함으로써 성립한다. 하지만 유학도 가족세계만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족세계와는 이질적인 자연세계나 인간세계와 교류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이질적인 세 세계 혹은 두 세계에 동시에 충실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면 인간은 늘 초점 불일치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공자와 같은 유학의 성인은 그런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운명 안에서 자유로워진 자라 할 수 있다.
주자학이나 다산학 모두 인간의 그런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자나 다산은 유학자로서 가족세계의 가부장적 질서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시대적 소명에 따라 자연세계 혹은 인간세계에 나름대로 충실하고자 한다. 자연과 가족, 가족과 인간이 동질적인 세계일 수 없다면 주자학이나 다산학, 또는 주자예학이나 다산예학에 초점 불일치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주자나 다산이 이런 초점 불일치를 분명하게 의식한 것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 설령 분명하게 의식했다 해도 초점 불일치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간 초점 불일치의 운명 속에서도 초점 불일치를 굳이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초점 불일치는 초점 불일치가 아닌 초점 일치로 의식된다.
주자예학이나 다산예학에 이학과 예학 혹은 예학과 법학간의 초점 불일치가 있다는 본고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관찰자의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관찰자의 눈에 비친 주자학이나 다산학은 결코 수미일관된 체계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은 주자학이나 다산학에 대한 험담이 아니다. 오히려 칭송이다. 인간의 복잡성, 인간의 운명을 정직하게 담아내고자 애쓰는 한 어떤 지적인 작업이건 자기 모순을 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자기 모순을 회피하는 지적 작업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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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산은 자신의 학문이 순자류라고 명시적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겠지만 주자학에 비하면 순자처럼 인간주의적 경향이 농후하고, 또한 다산에게는 순자에게서 찾을 수 없는 종교신학적 경향이 있지만 그의 이런 경향은 인간주의적 경향과 겹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맹자류와 순자류로 유학사의 흐름을 대별해본다면 다산학은 순자류로 분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졸고, 「孔子 仁學의 一貫性 혹은 不一貫性」, 『정신문화연구』6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참조.
3) 졸고, 「退溪 性理學의 自然道德主義的 解釋」, 『退溪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참조.
4) 程明道의 ‘天下善惡皆天理’(『二程集』一, 中華書局, 1984, 14쪽)이란 말은 이를 말해준다.
5) 董仲舒는 『春秋繁露』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天이란 萬物의 祖이다.” 「順命」; “天은 또한 人의 曾祖父이다.” 「爲人者天」.
6) 『老子』 제18장 및 제38장 참조.
7) 송명이학에 반대하여 漢學을 숭상하는 淸代經學의 초점이 禮學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Kai-wing Chow, The Rise of Confucian Ritualism in Late Imperial Chin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4, p.180 참조.
8) 禮訟이 자주 발생하고 禮書가 수없이 간행되는 현상을 두고 주자학 자체가 禮學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가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에게는 그런 현상이 주자학의 필연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주자학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주자학이 통치이념화됨으로써 일어나는 정치사회적 현상의 일부라고 보여진다. 禮學史의 흐름 속에서 볼 때 禮에 대해 비교적 澹泊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주자학의 본래 입장에 따라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禮學 과잉현상은 주자학 내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조선조에서 주자학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면 그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래 주자학은 禮를 버리진 않지만 繁文縟禮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三禮가 제시하는 古禮의 遵行에 회의적이라는 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9) 『朱子語類』(中華書局本)卷7, 124쪽. “小學者, 學其事, 大學者, 學其小學所學之事之所以.”
10) 「家禮」(卷~5)에는 士冠禮, 冠義, 士昏禮, 昏義, 內則, 內治, 五宗, 親屬義가 포함되고, 「鄕禮」(卷6~8)에는 士相見禮, 士相見義, 投壺, 鄕飮酒禮, 鄕飮酒義, 鄕射禮, 鄕射義가 포함되며, 「學禮」(卷9~19)에는 學制, 學義, 弟子職, 少儀, 曲禮, 臣禮, 鐘律, 鐘律義, 詩樂, 禮樂記, 書數, 學記, 大學, 中庸, 保傅, 踐?가 포함된다.(『儀禮經傳通解』, 文淵閣四庫全書 第131冊, 참조)
11) 『朱子語類』卷84, 2177쪽. “古禮繁縟, 後人於禮日益疏略. 然居今而欲行古禮, 亦恐情文不相稱.”
12) 『朱子語類』卷84, 2185쪽. “禮, 時爲大. 使聖賢用禮, 必不一切從古之禮. 疑只是以古禮減殺, 從今世俗之禮, 令稍有防範節文, 不至太簡而已.”
13) 『朱子語類』卷84, 2185쪽. “今所集禮書, 也只是略存古之制度, 使後人自去減殺, 求其可行者而已.”
14) 청대 예학에 대해서는 張壽安, 『以禮代理-凌廷堪與淸中葉儒學思想之轉變』, 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 1994 및 Kai-wing Chow, 앞의 책 참조. 다산예학의 위계질서 존중에 대해서는 졸고, 「茶山 實學의 構造와 그의 喪服制度論」, 『茶山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김형효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참조.
15) 졸고, 「주자의 中和新說과 敬의 공부론」, 『哲學硏究』제51집, 2000, 42쪽 참조
16) 『經世遺表』引(『與猶堂全書』5集, 1卷, 3b). “蓋一毛一髮, 無非病耳. 及今不改, 其必亡國而後已. 此豈忠臣志士所能袖手而傍觀者哉.”
17) 『春秋考徵』(『與全』2集, 1卷, 37a). “吾人者, 萬物之靈. 彼穹天厚地, 日月星辰, 山川草木, 無一而非吾人之物. 天吾屋也, 地吾食也, 日月星辰吾所明也, 山川草木吾所養也. 彼皆有氣有質, 無情無靈, 豈吾人所能事哉.”
18) 다산은 漢代 讖緯術數家들의 迷信뿐만 아니라 주자가 상당히 존중했던 鄭玄에 대해서도 혹독하게 비판한다. “정현의 說은 讖緯의 末流이고, 巫覡의 導師이고, 衆邪의 宗이고, 群僞의 叢이니 儒者는 辨別하지 않으면 안 된다.”(『春秋考徵』, 『與全』2集, 1卷, 15a) 다산은 주자학의 理氣論도 한대 유학자들의 설과 멀지 않다고 본다.
19) 『孟子要義』 좡盡心좡(『與全』2集, 2卷, 36b).
20) 『中庸講義』(『與全』2集, 1卷, 23a). “天地鬼神昭布森列, 而其至尊至大者, 上帝是已.”
21) 『春秋考徵』(『與全』2集, 2卷, 2b). “天地百靈, 皆是上帝臣佐.”
22) 김형효 교수는 다산학도 심학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다산심학에는 心身一元論과 心身二元論의 양면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명쾌한 분석에 따르면, 심신일원론은 물질의 도구적 이용과 관련된 과학기술의 개발과 같은 지성적인 “實用”의 행사로 나아가는 반면, 심신이원론은 신체적 욕망에서 생기는 人心을 극복하여 道心을 실현하는 의지적인 “實踐”의 행사로 나아간다. 이 두 가지 방향의 행사가 다산의 실학을 구성한다.(김형효, 「다산의 사상과 행사론의 독법」, 『원효에서 다산까지』제5장, 청계, 2000, 519~601쪽 참조.) 김 교수의 논의를 통해 다산심학이 양명학이나 불교의 심학뿐만 아니라 주자심학과도 성격이 매우 다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예학 내지 경세학을 지향하는 다산심학은 실은 탈심학적인 혹은 반심학적인 심학이라 할 수 있다.
23) 이영훈, 「茶山 經世論의 經學的 基礎」, 『茶山學』창간호, 다산학술문화재단, 2000, 122~161쪽; 김태영, 「다산 경세론에서의 王權論」, 같은 책, 162~262쪽; 김문식, 『朝鮮後期經學思想硏究』, 일조각, 1996, 217~245쪽 참조.
24) 이에 대해서는 김태영, 앞의 글 참조.
25) 『經世遺表』引(『與全』5集, 1卷, 1a). “先王以禮而爲國, 以禮以道民, 至禮之衰而法之名起焉. 法, 非所以爲國, 非所以道民也. 揆諸天理而合, 錯諸人情而協者, 謂之禮. 威之以所恐, 迫之以所悲, 使斯民兢兢然莫之敢干者, 謂之法. 先王以禮而爲法, 後王以法而爲法, 斯其所不同也.”
26) 예컨대, 조선조 주자학자 朴世采(1631~1695)가 저술한 『六禮疑輯』은 다음과 같은 체제를 가지고 있다. 公朝禮(天子諸侯禮): 王朝禮(冠禮, 昏禮, 喪禮, 祭禮), 邦國禮(鄕禮, 相見禮, 雜禮). 私家禮(士大夫禮): 家禮(冠禮, 昏禮, 喪禮, 祭禮). 鄕禮(鄕禮, 相見禮), 家禮(雜禮).(고영진, 「조선 중기 향례에 대한 인식의 변화」, 『조선시대사상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풀빛, 1999, 393쪽 참조) 이런 체제를 보면 天子諸侯禮 즉 王朝禮 및 邦國禮가 士大夫禮 즉 家禮 및 鄕禮와 서로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27) 주자의 『儀禮經傳通解』를 보면 諸侯國에서의 제후 및 경대부들간의 예를 다루는 「邦國禮」에는 燕禮, 大射禮, 聘禮, 公食大夫禮, 諸侯相朝禮가 포함된다. 또 天子의 예를 다루는 「王朝禮」에는 覲禮, 曆法, 卜筮, 月令, 樂制 및 각종 王制(分土, 制國, 王禮, 王事, 設官, 建侯, 名器, 師田, 刑?)가 포함된다.
28) 주자의 오단계 예분류체계에 따른다면 王朝禮에는 의례뿐만 법률과 제도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주자 식의 분류체계에 의존하는 본고에서는 다산의 一表二書도 王朝禮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다산이 天子國이 아닌 조선조를 염두에 두고 저술한 一表二書는 당연히 邦國禮에 속한다고 해야겠지만 주자가 『儀禮經傳通解』에서 보여주는 邦國禮에는 법률과 제도가 없다.
29) 禮學은 三禮의 해석학인데, 예학사를 三禮 가운데 『儀禮』를 經으로 보는 예학과 『周禮』를 經으로 보는 예학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전자의 예학은 宗權중심이고, 후자의 예학은 君權중심이다.(鄒昌林, 『中國古禮硏究』, 臺北:文津出版社, 民國81年, 148~158쪽 참조)
30) 청대의 예학자 凌廷堪은 親親과 尊尊을 예학의 두 근본원리로 중시한 바 있다.(張壽安, 앞의 책, 69쪽 참조)
31) 『春秋考徵』(『與全』2集, 2卷, 10a). “天下之大義有二. 一曰親親, 二曰尊尊. 兩義雙立, 不可偏廢.”
32) 『論語古今注』(『與全』2集, 3卷, 15b). “周公治魯, 親親而尊尊.”
33) 『祭禮考定』(『與全』3集, 19a~19b). “禮無定制, 人自義起, 遂令原野之俗, 紛紛然莫適所從也…人情無限, 禮制有防.”
34) 졸고, 「茶山 實學의 構造와 그의 喪服制度論」 참조.
35) 『喪期別』出後四(『與全』3集, 11卷, 31a). “至若帝王之家, 其禮有異.”
36) 『國朝典禮考』(『與全』3集, 4卷, 12b). “統自爲統, 屬自爲屬. 尊尊親親, 兩不相干, 然後仁至義盡, 其禮粲然.”
37) 『譯註 牧民心書』1(다산연구회역주, 창작과비평사, 1993), 373쪽. “法者, 君命也. 不守法, 是不遵君命也.”